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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3月5日  エペソ書 5:22−24 「妻たちよ」

序文)ここから使徒パウロは、聖霊に満たされて、助けを受けながら、新しい人間関係をむすぶようにと、三つの関係を取り上げて教えている。夫婦関係、親子関係、主従関係です。22-24節は、まず夫婦についてです。特にここでは、夫婦の互いの義務について書いています。権利については他の手紙に出てきます。中心のことばは、前の21節にあった「キリストを恐れ尊んで、互いに従いなさい。」

受けて、「従いなさい」です。

 

1 妻たちよ。あなたがたは、主に従うように、自分の夫に従いなさい。他の人々はいざしらず、クリスチャンの妻たちよ。エペソの教会にいる妻たちよ。自分の夫に従いなさい。主イエスのいのちにつながりがある者として、自発的に従いなさい。夫婦が幸福な結婚生活を送るためのカギは六つ有ると言われています。

a 成熟 人間的な未熟さから成長してゆくこと 利己主義からの脱却

b 服従 c 愛 d 意志の伝達 e 祈り f キリストとの正しい関係

今朝の聖句はb服従にあたります。近年、幸福な家庭生活に対する大きな妨げは、妻が夫に従わなくてもよいという間違った考え方にあります。創造主である神の聖定は、男性が一家の長、かしらであるというのです。夫はかしらである。もし妻や、子どもや、姑、しゅうとめがかしらであると、実際問題として、夫や父親に対する自然な尊敬を失ってしまうのです。

一般的には妻がかしらである家庭は喧嘩が多く、たいていは夫が何らかのかたちで、いつも「降参」するのです。夫は益々内に閉じこもり、家族全体が年齢を重ねるに従って、夫を軽蔑するようになってゆきます。従うということばは、仕える、伴侶としての役割を果たす事を求めています。妻であるあなたがたは、教会が主イエス様に仕えているように、同様に、喜んで夫に仕えて、夫を愛するように、神は期待しておられるのです。キリストが教会のかしらであると同じように、夫は妻のかしらである。「かしら」ということばは「源」という思想や「リーダー」という思想を含んでいる。

 

2 このように聖書の言葉を最初に前面に語りますと、多くの妻たちは反論をすぐに始めることができます。「そのような言い方をしないでください。世界の歴史の流れを知らないのですか。だいたいパウロと言う人は、2000年も前の人で、古代の時代遅れの文化の中で、そう言ったのに、なんですか。日本の国だって妻が夫の後ろに三歩下がってついて行くという時代では無くなっているのですよ。私たちは仲間、同僚意識の夫婦なのですよ。第一独身で年老いたパウロのことばをまともに聞けると思うのですか?」

でも、このような反論はエペソ5:22から、神の霊感されたみことばで、人間の実態を最も深く知っておられるお方が、聖霊を働かせてパウロに書かせたという点を見失っています。どのようにお腹立ちであっても、これらはやはり、私たちの良い点も悪い点もすべてを理解される神様のおことばなのです。あまりに無思慮に猛然と反論しても、それは女性の恥になるだけでしょう。

パウロはむしろ女性の味方なのです。ローマ人への手紙、コリント人への手紙、テモテへの手紙、等を読むと、パウロほど女性を誉め、高め、その尊厳を守ろうとした人はいません。そしてパウロはいつも「時代の流れ」の中で、人間関係を論じたりしないで、神が、最初に人間を男と女に創造された時にさかのぼって創造の秩序のもとで論じます。「男が先に造られて、それから女が造られました。」男がかしらで、女が仕える。神がはじめに与えた役割、区分に心を留めるように、ですから、基本的に女がかしらとなり、夫が妻に仕えるというあり方は、神の配慮に逆らうわけです。この前提は,家庭生活、家族関係、そしてキリストの共同体全体に定められた秩序を犠牲にしないならば、女性も仕事を選べるし、社会のいかなる機能も責任も果たすことができる。そのような自己決定権を持っている。

 

3 夫が未信者の場合は第一ペテロ3:1-2

「みことばに従わない夫」福音に真っ向から反対すると言うほどの強いことばです。妻の立場は大変な困難に見舞われていました。そのような立場の妻は言葉ではなく、行動であかしするようにと勧められています。「無言の」ロゴスなしに、ことばなしに。何事につけおしゃべりな、議論好きでない。福音を生活態度を通して語るように。「神を恐れかしこむ清い生き方」を見るようになる。「見る」夫はクリスチャンの妻を「注意深く観察している。」キリストの故に従う。夫に対する従順は、神の創造の配慮です。妻は35-45歳にかけて、誰かによりかかりたい気持ちがだんだん強くなって来る時期に達します。ところが若い頃から夫を従わせてきた妻たちは、この時になって自分を頼る夫はいるが、自分が頼る人がいない事に気づく。50-80代の子どもが一人前になり、親離れしていくとき夫婦二人きりの30年間を、老いて行く日々として過ごさなければなりません。このような時、夫を従わせていた妻は、人生が悪夢に代わるのです。キリストを信じる妻は、教会がキリストに仕えるように、夫に仕える事を通して、そのあかしと幸いを収穫するのです。

 

4 この「夫に従う」ということは奴隷化では決してありません。服従は自由を閉め出しているのではなく、自由を認めています。神の造られた世界は、あらゆるところに、枠があって、そこを離れたり、無視して自由と言うことはないのです。魚は水の中でだけ自由なのと同じです。名ピアニストは基本の枠の中で苦労しなければ、自分の音楽を奏でるところまで達しえません。夫婦として、家庭を形成してゆく上で、それが美しく、幸いな安定があり、信頼があり、愛に溢れた家庭となってゆくために、妻が夫に従うということは、避けて通れないと同時に、むしろ、そこにこそ真の自由が生まれるのです。

さて、服従とは、どういうことでしょうか?夫が妻を「所有」することでは断じてありません。妻が夫に所有され、使われる道具にすぎないと考える事は、全くあやまりです。「夫にぺこぺこして、決して忠告や反対をしてはならない、思っている事を語ってはならない、夫の命じるところをすること」というのは、聖書の服従とは違います。妻が夫の足の下に押さえつけられるという姿は、聖書の服従とちがいます。妻が夫の「助け手」伴侶であるということは、その賜物を無視したり、抑圧したりする事ではあり得ません。賜物を見いだし、開発して用いるのです。人格を踏みつけるのではなく、認めて生かします。夫にできないことで、妻にできる事が多くあって、補い合います。最終決定を夫がくだすさい、全体を守りますが、妻は任せられた分野については、自由に全賜物を発揮して仕えます。箴言31章10-31

 

5 夫がその役割を果たしていなくても、あなたは夫に従わなくてはなりません。後日にまなびます。唯一の例外は、神の明らかな律法に直接違反していることを、夫があなたにするように要求したときです。その時夫は神の権威を持って行動しているのでは無いからです。神の権威と、人の権威が衝突したとき、神の権威が上位です。これは逃げ道として利用してはいけません。このように言われている根本理由は次の通りです。

 

6 このように言われている根本理由 23-24節

イ 主に従うように、キリストは教会のかしら、キリストのからだである教会はひとりのかしらをもつから。夫婦という一つからだも、かしらはひとつである。それは妻ではなく、夫である。

ロ キリストご自身が、そのからだの救い主であられるように。

どういう意味か?

キリストはからだなる教会のために愛の犠牲を払われた。夫が妻のために救い主となれるわけではない。しかし、キリストに習って愛の犠牲を妻のためにはらう。このことの故に、妻は夫に従う。愛と保護が裏打ちになっている。

ハ 教会がキリストに従うように

キリストに対する教会の忠義の例。教会はどのようにキリストに従ってきたか。迫害の嵐の中にも、キリストのみ名の故に喜んで殉じてきた。それは自分のために愛の命を注いでくださったキリストへの真心からの従順をもってであった。

奴隷的な心ではなく、キリストの恵みにこたえた教会のように自分の夫にしたがいなさい。このような従順に夫がこたえないはずはない。

次は夫にたいする主の勧告をまなびます。妻にたいするよりも、もっと重大な大変な命令です。来週をお楽しみに!

 

2017 35 에베소서5:22-24 아내들이여

 

서문) 이곳부터 사도바울은 성령이 충만하게 되어 도움을 받아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도록, 세가지 관계를 들어 가르치고 있습니다. 부부관계, 부모와 자녀관계, 주종관계 입니다. 22-24절은 먼저 부부관계에 관한 말씀입니다.특별히 이곳에서는 부부 상호간의 의무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권리에 대해서는 다른 서신에 나오고 있습니다. 중심 말씀은 이전의 21절에 나와있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에 따라서 「복종하라」 입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든 크리스챤 아내들이여. 에베소교회의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 주 예수님의 생명이 접붙혀진 자로써, 자발적으로 순종하라. 부부가 행복한 결혼 생활을 보내기 위한 열쇠는 여섯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a 성숙 인간적 미숙함에서 성장해가는 것. 이기주의로부터 탈피

b 복종 c 사랑 d 의지의 전달 e 기도 f 그리스도와의 올바른 관계

오늘 아침의 말씀은 b복종에 관한 말씀입니다. 최근, 행복한 가정생활에 커다란 방해가 되는 것은 아내가 남편을 섬기지 않아도 된다는 잘못된 생각에 있습니다. 창조주되신 하나님의 성정은 남자가 한 가정의 머리가 되는 것입니다. 남편이 머리입니다. 만일 아내나 자녀나 시부모나 며느리가 머리가 된다면 실제관계에 있어서 남편이나 아버지에 대한 자연스러운 존경은 잃어버리게 되고 맙니다.

일반적으로 아내가 머리가 된 가정은 부부싸움이 잦아지고, 대부분은 남편이 어떤 형태로든 언제나 「손을 들게」되는 것입니다. 남편은 점점 안쪽으로 들어가게 되어 가정전체가 연령을 더해감으로써 남편을 경멸하게 됩니다. 섬긴다는 말은 따르다, 반려로써의 역할을 다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아내인 여러분들은 교회가 주 예수님께 순종하듯, 기쁨으로 남편을 섬기고 남편을 사랑하도록 하나님은 기대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성경의 말씀을 처음으로 전면에 거론하는 것은 많은 아내들이 반론을 시작하게 도비니다. 「그런 말은 하지 말하주시길 바랍니다. 세계역사의 흐름을 알고 계십니까? 사도 바울은 2000년전의 사람으로 고대의 지나간 문화속에서 말한 것입니다. 일본도 아내가 남편을 세걸음 뒤따라가던 시대는 이미 끝났습니다. 우리들은 동료, 친구 의식의 부부입니다. 독신으로 평생을 지낸 바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까?」

그러나 이러한 반론은 에베소서5:22의 말씀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것으로, 인간의 실태를 가장 깊이 알고계시는 분이 성령으로 바울을 통해 쓰게 하신 것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아무리 납득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이것들은 우리들의 좋은 점도 나쁜 점도 모두 이해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어떤 고려도 하지 않고 맹렬하게 반론하는 것은 여성에게 수치를 더할 뿐입니다.

사도 바울은 여성의 편입니다. 로마서, 고린도 전후서, 디모데 전후서 등을 읽어보면 사도바울만큼 여성을 칭찬하고, 높이며, 그 존엄을 지키려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언제나 「시대의 흐름」속에서 인간 관계를 논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태초에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때로 거슬러 올라가 창조 질서의 근본을 논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남자가 머리이며, 여자는 섬깁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처음 부여하신 역할, 구분에 마음을 두도록 합시다. 그러므로 기본적으로 여성이 머리가 되어, 남편이 부인을 섬기는 관계는 하나님의 배려를 거역하는 일이 됩니다.

이 전제는 가정생활, 가족관계, 그리고 그리스도 공동체에 정한 질서에 근거하지 않으면 여성도 일을 선택하고, 사회의 모든 기능도 책임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한 자기결정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편이 미신자의 경우 베드로전서3:1-2

「도를 순종치 않는 자」 복음을 정면으로 반대하는 듯한 강한 말씀입니다. 아내의 입장은 대단히 곤란한 처지입니다. 이러한 입장의 아내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거하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말로 말미암지 않고」 로고스 없이는 말도 없이. 어떤일이 말을 먼저하고, 의론을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생활태도로 보입니다.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보게 됩니다. 「보는」 남편은 크리스챤 아내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에게 하듯 순종합니다. 남편에 대한 순종은 하나님의 창조의 배려입니다. 아내는 34-35년 지나면 누군가에게 점점 기대고 싶은 시기가 옵니다. 하지만 젊을 때부터 남편을 굴복시켜온 아내들은 이 시기가 되면 자신을 따르는 남편은 있지만, 자신이 기대로 깊은 사람이 없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50-80살이 되어 자녀들이 부모를 떠나, 부부 둘이서만 30여년을 살아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때, 남편을 굴복시켜온 아내는 인생의 악몽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아내는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것처럼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을 통해 그 증거와 행복을 얻게되는 것입니다.

 

 이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은 노예처럼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복종은 자유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는 모든 곳에 구분이 되어 있어서, 그것을 떠나거나 무시하는 것이 자유라는 말이 아닙니다. 물고기는 물을 떠나서는 자유롭게 다닐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유명 피아니스트는 기본의 영역 안에서 노력하지 ㅇ낳으면 자신의 음악을 연주하는 수준으로 도달할 수 없습니다. 부부로써 가정을 형성해나아가는 데 있어서 그것이 아름답고 행복한 안정함이 있고, 신뢰가 있고, 사랑에 넘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동시에 그 곳에야말로 자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복종이란 어떤 것일가요? 남편이 아내를 「소유」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소유되어 쓰여지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생각은 전혀 잘못된 것입니다. 「남편에게 무슨일이든이 따르며, 충고나 반대를 어떤일이 있어도 해서는 안된다」라는 것은 성경의 복종과는 다른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의 발 밑에 눌려있는 모습은 성경의 복종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의 「돕는」 반려라는 것은 그 은사를 무시하거나 제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은사를 발견하거나 개발하는 데 사용합니다. 인격을 짖밟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살리는 것입니다. 남편이 할 수 없는 일 중에서 아내가 할 수있는 일이 많이 있으므로 보충합니다. 최종결정을 남편이 내릴 때. 전체를 지키지만, 아내는 맡겨진 분야에 관해서는 자유롭게 은사를 발휘하는 것으로 섬깁니다. 잠언31장10-31

 

 남편이 그 역할을 완수하지 못하더라도 여러분은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다음주에 배우겠지만, 유일한 예외는, 하나님이 명하신 율법을 직접적으로 위반하는 것을 남편이 여러분에게 요구할 때입니다. 그 때 남편은 하난미의 권위를 갖고 행동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권위와 인간의 권위가 충돌할 때, 하나님의 권위가 위에 있습니다. 이것을 핑계로 삼거나 이용해서는 안됩니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근본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근본 이유 23-24절

イ 예수님께 순종하는 것처럼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하나의 머리를 가지고 있으므로. 부부도 일치된 몸이며, 머리는 하나입니다. 그것은 아내가 아니라 남편입니다.

 

ロ 그리스도께서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어떤 의미?

그리스도는 몸된 교회를 위해 사랑의 희생을 치루셨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위해 구세주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닮아 사랑의 희생을 아내들에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합니다. 사랑과 보호가 뒷받침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ハ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에 대한 교회의 충의의 예. 교회는 어떻게 그리스도에게 순종해 왔을까? 박해의 폭풍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뻐하며 순교해 왔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위한 사랑의 생명을 주신 그리스도에게 진심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노예적 마음이 아닌, 그리스도의 은혜에 보답하는 교회같은 자신의 남편을 섬깁시다. 이러한 순종에 남편이 응답하지 않을리가 없습니다.

 

다음은 남편에 대한 하나님의 권고를 배우겠습니다. 아내에 관한 말씀보다 더욱 중요한 명령입니다.

다음주 말씀을 기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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