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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年3月16日 礼拝

140316_001 2014.3.16 聖書 ルカの福音書22章47−53節 「暗やみの力」 ☆序)主がオリーブ山のゲッセマネの園で、十字架への心そなえを完了し、その杯を飲み干すために心から神に従う決断をされたとき、主を裏切る者・ユダがやってきました。イエス様は、今はあなたがたの時です、暗やみの力です、と言われました。しかし、その姿勢の中には敗北者でなく、勝利者イエスの姿を見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三つのことばで勝利者であることがわかります。   ☆Ⅰ ユダの裏切り 暗いやみの中を、イエス逮捕に向った最高議会の人々、すなわち、祭司長、宮の守衛長、長老たち、群衆たちは、あらかじめ手筈をととのえたとおりの、ユダによる裏切りの手順にしたがってまちがえることなく、主イエスの前に到達しました。「12弟子のひとりのユダ」が先頭にたっていた。☆此の書き方には深い悲しみと、憤りがこもっているのです。ユダは最後の晩餐の席から途中で退席し、自分の計画を実行に移しました。ユダがイエス様を売り渡した相手である最高議会の人々は、剣や棒をもってきました。ヨハネの福音書によると一隊の兵士たちもきたのです。 ☆ユダはイエスを認めると、挨拶の接吻をしようとしました。打ち合わせのとおりです。ユダの口づけは、単なる挨拶以上の、幾度もしたというほどの表現で書かれています。ギリシャ語では愛する者が愛する者にする接吻、幾たびもする接吻を意味します。この人だ、まちがえるなよ、といった意味の籠ったことでありました。 ☆イエス様は「ユダ。口づけで人の子を裏切ろうとするのか」と言われたのです。イエスは人に出しぬかれるようなかたではありません。一切をご存知で十字架に向われたのです。ユダの意図は暴かれました。 主イエスに敵対する者や、裏切る者たちが、鄭重熱烈な接吻に類する、何らかの「偽装工作」により行動にでるという、恐ろしい警告がここに記されているのです。☆主はそのようなものに、その犯そうとしている恐ろしい罪をはっきりと指摘して悟らせ、止めさせようとされました。 ユダの懸命な演技も、真実な主の前には、むなしい茶番劇です。主はユダの永遠の運命の為に配慮し、案じておられました。わたしたちがする主イエスヘの愛の信仰告白はいかがでしょうか。   ☆Ⅱ イエスのそばに立っていたひとりが、剣を抜いて大祭司のしもべ に撃ちかかり、その耳を切り落とした。事の成りゆきを見て、弟子達が「主よ、剣で撃ちましょうか。」と言って、その中の一人が、実際に大祭司のしもべに撃ちかかって、右の耳を切落としたのです。血気にはやって、主の返事を聞くいとまもなく切りかかりました。ヨハネの福音書で、斬りかかったのはペテロで、切られたのはマルコスという者だったのです。☆主はこれを直ちに制されました。「やめなさい。それまで。」剣をおさめよ。それ以上エスカレートすることを禁じられ、同時に、切られたしもべをすぐに治してやりました。公務執行妨害、と傷害致死罪などの理由でペテロが逮捕され、また、主イエスがそれを止めなかったと言い掛かりを付けて、反乱の頭であると犯罪人あつかいされることを、主は拒否されました。☆自分の罪のために十字架にかけられる危険性が、ペテロの血気にはやった行動はもたらすところでした。イエスは無罪のままに裁判にかけられ、十字架にかか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した。 また、「あなたがあたえてくださったものを一人もわたしは失わなかった」ということばが成就するためでした。 主は始めから無抵抗、無罪のままで逮捕されるつもりであったのです。それは、人の罪ゆえにであって、私たちの罪の為の十字架であることをはっきりする必要があったのです。   ☆Ⅲ.今はあなたがたの時、暗やみの力です。 52〜53節。「まるで強盗にでも向かうように、剣や棒を持ってわたしを捕えに来たのですか。 わたしは毎日、宮であなたがたといっしょにいる間は、私に手出しもしなかった。しかし、今はあなたがたの時です。暗やみの力です。」イエスのことばは、逮捕の不当性を告発するものでした。☆犯罪人のように逮捕されようとしていましたが、実際は白昼堂々と逮捕出来ず、毎日宮でいっしょにいる間は手もだせなかった。そしてまるで彼が犯罪人であるかのように夜に、暗やみに乗じて、お金で釣った裏切り者を用いてやってきた。宮で連日論争してきたのに、逮捕できるような過失、罪を発見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まさに今夜の逮捕は、暗やみの力である。☆いかにも、イエスが強盗であるかのように装わないと逮捕できなかった。さらに、それによって、バラバよりも強暴なイエスを演出して、エルサレムの人々や、ローマの官憲にアピールするための悪意がみちていた。 主は「しかし、今はあなたがたの時です。暗やみの力です。」と言われた。☆この暗黒の権力、サタンの権威にしばらくまかせ、ご自分が逮捕されるのを良しとされた。このような時は、弟子たちの信仰が切り崩され、くらやみの支配に弟子たちが引きずりこまれかねない危険な時です。ペテロは大祭司のしもべに切かかるよりも、自分の信仰に切りかかり、主イエスから自分を引き離そうとする悪の力にたいして戦うべきだったのです。 ☆これらの背後に、救い主の働きの一切について聖書預言の実現がからんでいました。神の救いの計画の成就と、神のご経倫の中での、暗黒の権威のしばしの時をはっきりとしめしておられる。これらの終には、暗黒の力は、徹底的に滅ぼされ、神の栄光のみが輝くにいたる歴史経過をたどるのです。 ☆わたしたちの今、というときは、暗やみの力に支配された時でしょうか、それとも、イエスさまのようにすべてを見越した、神の時にたっているでしょうか。 マルコの福音書14:50〜51節「すると、みながイエスを見捨てて、逃げてしまった。ある青年が、素はだに亜麻布を一枚まとったままで、イエスについて行ったところ、人々は彼を捕えようとした。 すると、彼は亜麻布を脱ぎ捨てて、はだかで逃げた。」と記されています。 ☆弟子達は、これらの出来事に耐えられなくなりました。イエスと同じように自分たちも逮捕されるのを恐れて逃げ去ったのです。あの豪語していたペテロも勇気をくじかれて一目散に逃げた。ここに記されている一人の若者とは、マルコ自身のことではないかと言うのが通説です。他の福音書には記されていないのです。とするとマルコ福音書の著者マルコは、主の逮捕に関する事件を目撃していたことになります。この恥ずかしいエピソードをわざわざ本文に書き込んだのは、主を信じてからも彼の生涯で忸怩たる事柄であったのでしょう。 ☆ 結び)主のみ、ゲッセマネでの祈りの勝利に立って、終始変わらず毅然として進んでおられます。祈りよって勝利したもののみ、神のわざをおしすすめ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日々の信仰生活のために、導きと力を求めて、神の時をわきまえる者となりましょう。 ☆ エペソ6:10-20 「終わりに言います。主にあって、その大能の力によって強められなさい。 悪魔の策略に対して立ち向かうことができるために、神のすべての武具を身に着けなさい。私たちの格闘は血肉に対するものではなく、主権、力、この暗やみの世界の支配者たち、また、天にいるもろもろの悪霊に対するものです。ですから、邪悪な日に際して対抗できるように、また、いっさいを成し遂げて、堅く立つことができるように、神のすべての武具をとりなさい。 ☆では、しっかりと立ちなさい。腰には真理の帯を締め、胸には正義の胸当てを着け、 足には平和の福音の備えをはきなさい。 これらすべてのものの上に、信仰の大盾を取りなさい。それによって、悪い者が放つ火矢を、みな消すことができます。 救いのかぶとをかぶり、また御霊の与える剣である、神のことばを受け取りなさい。 すべての祈りと願いを用いて、どんなときにも御霊によって祈りなさい。そのためには絶えず目をさましていて、すべての聖徒のために、忍耐の限りを尽くし、また祈りなさい。 ☆また、私が口を開くとき、語るべきことばが与えられ、福音の奥義を大胆に知らせ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私のためにも祈ってください。 私は鎖につながれて、福音のために大使の役を果たしています。鎖につながれていても、語るべきことを大胆に語れるように、祈ってください。」  

2014 3 16 성경 말씀  누가복음22 47-53 

             「어두움의 권세

서문) 예수님께서 감람산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향한 마음의 준비를 다하시고, 그 잔을 다 마시기 위해 자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결단하셨을 때, 예수님을 배반한 가롯유다가 예수님께 다가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는 너희 때라 어두움의 권세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모습은 패배자가 아닌 승리자 예수님의 모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때 하신 세가지의 말씀으로 승리자 되심을 알 수 있습니다.

Ⅰ 가롯유다의 배반

 어두움 속에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향한 최고의회의 사람들, 즉, 제사장, 관수위장, 장로들, 군중들은 사전에 준비했던 대로 가롯유다가 배반하는 과정을 따라 예수님 앞에 도착했습니다. 「열둘 중에 하나인 유다」가 선두에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깊은 슬픔과 노여움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가롯유다는 최후의 만찬중에 자리를 빠져나가 자신의 계획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가롯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긴 상대, 최고의회의 사람들은 검과 몽둥이를 들고 나왔습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일대의 병사들도 있었습니다.

 가롯유다는 예수님을 가리키는 입맞춤을 하려했습니다. 이미 약속한대로였습니다. 가롯유다의 입맞춤은 단순한 인사가 아닌 몇번이나 반복했다는 표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어 중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입맞춤, 몇번이나 하는 입맞춤을 의미합니다. 이 사람이다. 틀리지 않도록. 라는 의미가 들어있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속임수에 당하는 분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아시고 십자가에 향하신 것이었습니다. 이미 가롯유다의 의도는 들켰습니다.

 주 예수님을 적대하는 자들이나, 배반자들이 정중하고도 열렬한 입맞춤으로 어떠한 일을 시작하려는  「위조공작」과 같은 행동에 대한 무서운 경고가 이곳이 기록되어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저지르려하는 엄청난 죄를 분명하게 지적하시고, 깨닫게 하시며, 멈추게하려 하셨습니다.

가롯유다의 필사적인 연기도 진실하신 예수님 앞에는 헛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롯유다의 영원한 운명을 배려하시고, 걱정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우리들의 사랑의 신앙고백은 어떻습니까?

Ⅱ 예수님의 곁에 서있던 사람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오른편 귀를 떨어뜨린지라.

이 상황을 보고있던 제자들은 「주여 우리가 검으로 치리이까」 라고 말하고, 그 중 한사람이 실제로 대제사장의 종을 쳐 오른편 귀를 떨어뜨렸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을 들을 틈도 없이 혈기로 덤벼든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달려든자가 베드로로, 귀를 잘린자는 말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즉시 말리셨습니다. 「이것까지 참으라」 검을 집에 꽂으라. 이 이상 나쁜상황으로 되어가는 것을 금하시고, 동시에 귀를 잘린 종의 귀를 만져 낫게 해주셨습니다. 공무집행방해와 상해치사죄 등으로 베드로가 체포당하고, 예수님께서 그것을 멈추게 하지 않은것을 이유로 반란의 두목이 되어 범죄자 취급 받는것을 예수님은 거부하셨습니다.

베드로의 혈기로 저질러진 행동으로 인해 예수님께서 자신의 죄로 십자가에 달리게 될뻔한 위험한 순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는 상태로 재판을 당하고 십자가에 달리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또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삽나이다.」라는 말씀이 성취되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무저항, 무죄의 상태로 체포되실 예정이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죄로 인한 것으로써, 우리들의 죄를 위한 십자가임을 분명하게 하실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Ⅲ.이제는 너희때요 어두움의 권세로다.

 52-53절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두움의 권세로다」 예수님의 말씀은 체포의 부당성을 고발하는 것이었습니다. 범죄자같이 체포당하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밝은 대낮에 체포하지 못하고, 매일 성전에 함께 있었을 때는 예수님께 손도 대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밤이 되자 예수님이 범죄자인 것처럼 어두움을 타고, 돈으로 매수한 배반자를 이용해 나아온 것입니다. 성전에서 연일을 논쟁해 왔지만 체포할만한 과실이나 죄는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이날밤의 체포는 어두움의 권세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강도인 것처럼 꾸미지 않으면 체포할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바라바보다도 강폭한 자로 위장시켜 예루살렘의 사람들이나, 로마관헌들에게 보이려는 악의에 가득차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두움의 권세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어두움의 권세, 사탄의 권위에 당분간 맡기시고, 그분께서 체포당하시는 것을 내버려 두셨습니다. 이런 때는 제자들의 믿음이 무너지고, 어두움의 지배하에 끌려들고마는 위험한 순간입니다.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종을 치려고 덤비는 것보다, 자신의 믿음에 걸려들고, 주 예수님에게서 자신을 떼어내려는 악의 세력에 대항해 싸워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들의 배경에는 구원의 주님이 일하신 모든것에 대하여 성경예언의 실현이 얽혀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성취과는 것과,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잠깐동안의 암흑의 권세에 대하여 분명하게 나타내고 계십니다. 이것들의 마지막에는 암흑의 권세는 철저하게 멸망당하고, 하나님의 영광만이 빛나게 되는 역사적 경과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지금, 이라는 시기는 암흑의 권세가 지배하는 때입니까? 아니면, 예수님과 같이 모든것을 내다보는 하나님의 때에 서있습니까?

 마가복음14:50-51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오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자들은 이 일들을 견딜수 없었습니다. 예수처럼 자신들도 체포당할 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도망하고 말았습니다. 그토록 호언장담하던 베드로조차 용기를 잃고 도망쳤습니다. 이곳에 기록되어있는 청년이란 마가 자신으로보는 것이 통설일 것입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기록되어있지 않는 것으로 보아 마가복음의 저자인 마가는 예수님께서 체포당한 사건을 목격한 것이 됩니다. 이 부끄러운 일화를 일부러 기록으로 남긴것은 예수님을 믿은 후에도 그의 생애동안 수치스럽게 여겼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맺음) 예수님만이 겟세마네 기도의 승리에 서서, 시종 변함없이 당당하게 진행해 나아가셨습니다. 기도로써 승리한 자만이 하나님의 업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매일매일의 신앙생활을 위해 인도와 능력을 구하고,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는 자가 됩시다.

 에베소서6:10-29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또 나는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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