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年11月9日 詩篇 13篇 「主よ いつまでですか」
(神が御顔をかくされるときどのように祈るか)
序文)神との祈りの交わりは、人間の最高の悦びです。これなしには神の民は生きられません。聖書でたびたびでてくる「あなたの御顔の光」ということばは、神の子たちが天にいます御父、至高の神との密接で愛情溢れる交わりを表します。民数記6:23-26 「アロンとその子らに告げて言え。あなたがたはイスラエル人をこのように祝福して言いなさい。 『主があなたを祝福し、あなたを守られますように。 主が御顔をあなたに照らし、あなたを恵まれますように。 主が御顔をあなたに向け、あなたに平安を与えられますように。』
神が御顔を隠される事があります。その理由のいくつかは、私たち信仰者の信仰への省みが無頓着のためや、特別な罪に陥っているため、神が御顔の光を取り上げて、神を恐れる者をさえ、暗黒の中を歩み,光を持たないようにしたもう事によってもたらされます。また、ある突然の激しい誘惑などもあります。
聖書の中でこのような経験をした聖徒たちの実例をたくさん見つけることが出来ます。詩篇はこのような思想が満ちています。「 どうか、御顔を私に隠さないでください。あなたのしもべを、怒って、押しのけないでください。あなたは私の助けです。私を見放さないでください。見捨てないでください。私の救いの神」(詩篇27:9)。
ヨブはその個人的な、また家庭上の試練によって、また彼の隠れた咎がその原因だと間違って責め立てた彼の友人たちの誤解によって、「なぜ、あなたは御顔を隠し、私をあなたの敵とみなされるのですか」(ヨブ13:24 )と叫びました。イザヤも「イスラエルの神、救い主よ。まことに、あなたはご自身を隠す神」(イザヤ45:15)と、うち続く背教のために神がイスラエルにくだされた刑罰を嘆き悲しんでいます。
しかし全聖書中、最も偉大な実例は主イエス様の十字架上の叫びです。{「三時ごろ、イエスは大声で、「エリ、エリ、レマ、サバクタニ。」と叫ばれた。これは、「わが神、わが神。どうしてわたしをお見捨てになったのですか。」という意味である」(マタイ27:46)。罪の刑罰を身代わりに負ってくださったので、その負われた罪にたいして神は、本当に十字架の上で裁かれ、うち捨てられた。それで十字架の主を信じた者たちは、もはやキリストの叫びを叫ぶ必要がなくなったのです。神が罪人から離れられるという呪いは、イエス様によって引き受けられた。その死は聖徒のために父なる神様との永遠不滅の交わりをかち得てくださった。
{主ご自身がこう言われるのです。「わたしは決してあなたを離れず、また、あなたを捨てない。」そこで、私たちは確信に満ちてこう言います。「主は私の助け手です。私は恐れません。人間が、私に対して何ができましょう」}(ヘブル13:5.6)。
Ⅰ 指揮者のために。ダビデの賛歌
サウル王の打ち続くダビデ迫害という暗い背景にたいして詩篇13篇は輝く信仰の貴重な宝玉です。
1-2節 神の救いが長く遅らされていることと、神の霊的慰めの不可解な喪失とに対する悲嘆
1 主よ。いつまでですか。あなたは私を永久にお忘れになるのですか。いつまで御顔を私からお隠しになるのですか。
いつまでですか。「アズ・アーナー」1.2節に4回、各節に2回づつでてきます。試みられる信仰は、神がもたらした状況がとこしえに続くと想像します。神はもう決して救いにきてくださらないのだ。しかしこのように使う「とこしえ」こそ、人間の盲目の一部なのです。信徒の艱難や、霊的なこらしめはとこしえに続くのではありません。ただ、神の憐れみだけがとこしえに続くのです。コリント第二 4:17-18「 今の時の軽い患難は、私たちのうちに働いて、測り知れない、重い永遠の栄光をもたらすからです。私たちは、見えるものにではなく、見えないものにこそ目を留めます。見えるものは一時的であり、見えないものはいつまでも続くからです。」
2 いつまで私は自分のたましいのうちで思い計ら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しょう。私の心には、一日中、悲しみがあります。いつまで敵が私の上に、勝ちおごるのでしょう。
思い計り–「忠告する、相談する」の名詞、ダビデの心の内側の艱難と敵から来る外側の艱難。ダビデはサウロ王から逃れるために次から次へと逃亡計画を考え実施しながら自分と仲間の者たちの安全を計ろうとした。自分自身は精魂尽き果てました。しかもあらゆる計画がむなしく成ってきた。彼はすべてこれら無益徒労と思われる計画を魂のうちに考案するけれども、それらは心に悲嘆をもたらした。どのような意味と考えるか。むつかしい。多分、彼のいらだった「精神」が考えたところを、彼の「感情的」性質がほどくのを面倒だと思った。あるいわ内面にあれくるう霊と肉の相克。有名な宗教改革者マルチン・ルッター「希望それ自身が絶望し、それにもかかわらず絶望が希望する。」
コリント第二 7:5「マケドニヤに着いたとき、私たちの身には少しの安らぎもなく、さまざまの苦しみに会って、外には戦い、うちには恐れがありました。」
一日中 これは一日中ずっとの意味か、毎日の意味か。なかなかむつかしい。文語訳「われ心の内に終日(ひねもす)」が良いでしょう。
勝ちおごる 「高い、高揚される、そびえている」権威があって優勢である。
Ⅱ 3-4節 ダビデが滅びないように即刻応答を求める神にたいする、熱烈な祈りと哀願
3 私に目を注ぎ、私に答えてください。私の神、主よ。私の目を輝かせてください。私が死の眠りにつかないように。
原文の「死の眠り」の前に「おそらくは」というへブル語のことばが、はいっている。「艱難に雲って死の中に今まさに閉じようとする目を明るくすることは、新しいいのちを注入するに等しいのであって、その目の新鮮であざやかな輝きがその反映なのです。その照らし出す光は、神の御顔の慈愛あふれる光なのです。」(デリッチ)「死の眠り」は文字通り{死を眠る」
4 また私の敵が、「おれは彼に勝った。」と言わないように。私がよろめいた、と言って私の仇が喜ばないように。
原文の「また」のかわりに「おそらくは」というへブル語のことばが、はいっている。原文の「私の仇」の前に「おそらくは」というへブル語のことばが、はいっている。もし、神がダビデを省みて答えてくださらなかったなら、何か惨憺たる事態がおこるでしょう。神よ救助を急いでください。私が倒れるときは、敵は欣喜雀躍するでしょうから。「喜ぶ」または「勝ち誇る」は「輪になってすすみ、動き・・喜ぶ」ダビデの残忍な敵たちは、ダビデが倒れたら輪になって悦び踊るでしょう。
Ⅲ 5-6節神の愛が彼の心に回復されたことに基づく、勝利の信仰と歓喜
5 私はあなたの恵みに拠り頼みました。私の心はあなたの救いを喜びます。6 私は主に歌を歌います。主が私を豊かにあしらわれたゆえ。
神はダビデの目を明るくしてくださった。神の恵みと救いの内なる確信を受けた。へブル11:1「信仰は望んでいる事がらを保証し、目に見えないものを確信させるものです。」「あなたの恵み」「あなたの救い」といっている。ダビデは自らそう語っている。「よりたのむ」パータフ すがりつく信仰。
どうしてダビデは、突然このように歌っているのでしょう。
「主が私を豊かにあしらわれたゆえ。」です。
「ガーマル」報いる、あしらう。
結び)神にたいする、溢れるばかりの悦び、歌声、悦び勇んだ賛美、それらの唯一の根拠は、キリストにある神の永遠の憐れみと慈愛。ダビデのように、神が一時その御顔をかくされたため、暗黒と疑惑の中を、わたしたちが過ぎてゆくとき、十字架の上で死んでくださった程のキリストの愛という偉大な慰めが、私たちの必要に答える。贖いの愛のみわざを思い、神が過ぎ去ったひびにどのように恵み深くありたもうたかを思うならば、神が終始示される愛にたいして、歓喜の歌を歌う力を取り戻すでしょう。
注:ウェストミンスター信仰告白 18章「恵みと救いの確信について」
4項まことの信者も、自分の救いの確信を維持することの怠慢、良心を傷つけ・みたまを悲しませるある特殊な罪に陥ること、ある突然の激しい誘惑、神がみ顔の光をかくされて神を恐れる者をさえもやみの中を歩き光を持たないままにしておかれることによるなど、種々の方法によって、それを動揺させ、滅らし、中断させることがある(1)。しかし彼らは決して、神の種と信仰の命、キリストと兄弟とへの愛、義務を行なう心と良心の誠実さ、を全く欠いているのではない。これらから、みたまの働きによって、適当な時にこの確信が回復され(2)、またこれらによって、全くの絶望に陥らないようその間支えられている(3)。
1 雅5:2,3,6、詩51:8,12,14(10,14,16)、エペソ4:30,31、詩77:1-10(2-11)、
マタイ26:69-72、詩31:22(23)、詩88編、イザヤ50:10
2 Ⅰヨハネ3:9、ルカ22:32、ヨブ13:15、詩73:15、詩51:8,12(10,14)、イザヤ50:10
3 ミカ7:7-9、エレミヤ32:40、イザヤ54:7-10、詩22:1(2)、詩88編
2014년 11월 9일 시편13편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나님께서 주의 얼굴을 숨기실때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서문)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는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큰 기쁨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하나님의 백성이 생겨날 수 없습니다. 성경에 자주 나오고 있는 「주의 얼굴의 영광」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 지고하신 하나님과의 밀접하고 애정깊은 교제를 나타냅니다. 민수기6:23-26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찌니라 하라」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감추시는 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의 몇가지는, 우리들의 믿음에 대한 반성이 없을 때나, 특별한 죄에 빠져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 얼굴의 영광을 거두시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조차도 빛을 갖지않고 암흑속을 걸어가도록 두시는 일도 있습니다. 또한 갑자기 격한 유혹을 맞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한 성도들의 실례를 성경중에 자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중 시편은 이러한 사상에 가득차 있습니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말고 떠나지 마옵소서」(시편27:9)
욥에게 닥친 개인, 가정의 시련은 그의 숨겨진 허물이 원인이였다고 책망하는 친구들의 오해로 인해 욥은 「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우시고 나를 주의 대적으로 여기시나이까」 (욥기13:24) 라고 외쳤습니다. 이사야도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이사야45:15)라며, 그치지않는 배교행위로 인해 이스라엘에게 내려진 형벌을 슬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중, 가장 위대한 실례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에서의 외침입니다. {제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마태복음27:46 예수님은 죄에 대한 형벌을 대신 받으셨으므로, 그 벌에 대하여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심판하시고, 예수님을 버리셨습니다. 그것으로 십자가의 주를 믿는 자들은 더이상 그리스도의 외침을 외칠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로부터 떠나시겠다는 저주는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셨습니다. 이 죽음은 성도들과 아버지되신 하나님과의 영원불멸한 교제를 얻게 해주었습니다.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히브리서13:5,6)
Ⅰ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다윗에 대한 사울왕의 계속되는 박해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시편13편은 신앙의 귀중한 보물이 됩니다.
1-2절 하나님의 구원이 늦어지는 것과, 하나님의 영적 위로의 불가결한 상실에 대한 비탄
1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
어느 때까지니이까. 「아즈∙아나」 1,2절에 4번, 각 절에 두번씩 나오고 있습니다. 시험받고 있는 신앙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상태가 언제까지나 계속될거라 상상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구해주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때에 사용하는 「영영히」야말로 인간의 맹목적인 부분을 나타냅니다. 성도의 환란이나 영적 시험은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비만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4:17-18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2 내가 나의 영혼에 경영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쳐서 자긍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경영하고 「충고하다, 상담하다」의 명사, 다윗의 마음속 내적곤란과 적으로부터의 외적 곤란. 다윗은 사울왕으로부터 도망하기위해 계속해서 피난계획을 짜고 실행하면서 자신과 동료들의 안전을 도모하려 했습니다. 자신의 영혼은 피곤에 지쳐있었습니다. 더욱이 수많은 계획들이 덧없게 여겨졌습니다. 그는 이 모든 무익한 헛수고라고 여겨지는 계획을 마음속에 고안하지만, 그것들은 마음에 비탄을 가져왔습니다. 어떤 의미로 생각할지 어려운 문제입니다. 아마도 그의 초조한 「정신」이 생각한것을, 그의 「감정적」성질이 푸는 것을 귀찮게 생각했다. 또는 미친듯이 날뛰는 내면의 영과 육의 상극. 유명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 「소망 그 자체가 절망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이 소망하다.」
고린도후서7:5「우리가 마게도니아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치 못하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
종일토록 이것은 하루종일 계속이라는 의미인지, 매일매일을 의미하는 것인지 좀처럼 어려운 말이다. 문어역 「내 마음속에 종일」이 알맞을 것이다.
자긍하기를 「높이, 고양되다. 우뚝서 있다」권위가 있어서 우세하다.
Ⅱ 3-4절 다윗이 멸망당하지 않도록 지금 당장 대답을 구하는 하나님을 향한 열렬한 기도와 애원
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원문의 「사망의 잠」의 앞에 「아마」라는 히브리어가 들어있습니다. 「환란에 싸여 죽음속으로 들어가려 할때, 눈을 밝게하는 것은 새로운 생명을 주입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 눈의 신선함과 선명한 빛이 그것을 반영하고 있다. 그 눈이 밝히는 빛은 하나님의 얼굴에 나타나는 자비의 빛인것이다.」(데릿치) 「사망의 잠」은 문자그대로 {죽음으로 잠들다}
4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저를 이기었다」 할까 하오며 내가 요동될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원문의 「할까」의 대신에 「아마도」라는 히브리어의 말이 들어있다. 원문의 「나의 대적」의 앞에 「아마도」라는 히브리어의 말이 들어있다. 만일 하나님께서 다윗을 시험하시고 대답해주시지 않는다면, 어떤 참담한 일이 벌어지게 될까요? 하나님이여 속히 구원해 주시옵소서. 내가 쓰러지면 적들이 얼마나 뛰며 기뻐할까요? 「기뻐하다」또는 「자랑하다」는 「둘러싸 나아가다, 움직임∙∙∙기뻐하다」 잔인한 다윗의 적들은 다윗이 쓰러지면 그를 둘러싸고 기뻐하며 춤을 출 것입니다.
Ⅲ 5-6절 하나님의 사랑이 그의 마음속에 회복된다는 것에 근거한 승리의 믿음과 환영
5 나는 오직 주의 인자하심을 위뢰하였사오니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6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나를 후대하심이로다
하나님은 다윗의 눈을 밝게 해주셨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구원의 확신을 받았다. 히브리서11:1「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하나님의 인자하심」「하나님의 구원」이라 말하고 있다. 다윗은 그 스스로 말하고 있다.
「의지하다」파타프 믿고 기대다.
다윗을 어째서 갑자기 이런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일까요?
「이는 나를 후대하심이로다」입니다.
「가말」 보응하다. 대접하다.
맺음) 하나님에 대한 넘치는 기쁨, 성원, 찬양, 그것들의 유일한 근원은 그리스도에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자비와 자애. 다윗처럼 하나님께서 일시적으로 그 얼굴을 가리우셔서, 암흑과 의혹중을 우리가 지날때, 십자가위에서 죽어주실 정도의 위대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위로가 우리들의 요구에 대답이 됩니다. 대속의 사랑이 이루신 업적을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보여주신 사랑에 대하여 환영의 노래를 부르는 힘을 돌이킵시다.
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8장 「은혜와 구원의 확신에 대하여」
4항 참된 신자도 자신의 구원의 확신을 유지하는 것에 대한 태만, 양심을 상처입히는 것∙성령이 슬퍼하시는 특수한 죄에 빠지는 것, 돌연하고 격한 유혹,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우시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를 빛을 가지지 않고 어두움중에 걸어가도록 두시는 등, 여러 방법으로, 그것을 동요시키고, 줄이고, 중단시키는 일이 있다.(1) 그러나 그들은 결코, 하나님의 씨앗과 믿음의 생명, 그리스도와 형제들을 향한 사랑, 의무를 실행하는 마음과 양심의 성실함, 모두가 결여된 것은 아니다. 지금부터 성령님의 일하심으로 적당한 때에 이 확신이 회복되어(2), 또한 이것들로인해 모든 절망에 빠지지않도록 그동안 도우심을 받고 있다. (3)
1 애가5:2,3,6 시편51:8,12,14(10,14,16), 에베소서4:30,31, 시편77:1-10(2-11)
마태복음26:69-72, 시편31:22(23), 시편88편, 이사야50:10
2 요한일서3:9, 누가복음22:32, 욥기13:15, 시편73:15, 시편51:8,12(10,14), 이사야50:10
3 미가7:7-8, 예레미야32:40, 이사야54:7-10, 시편22:1(2), 시편88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