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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年5月4日 礼拝

 

5.4礼拝 音声  音声には説教追加部分 が入っています。

2014年5月4日          ルカ23:33-38

「父よ。彼らをお赦しください」

 序文)私は24才で伝道、牧会の働きを始めてから、50年目を歩んでいます。

この間、多くの方々に出会い相談事を受けつづけてきました。50才をすぎたころ、多い年で年間630件もありました。大会の国内宣教主事となってからは個人的な相談事よりは教会的な相談が多いのですがそれでも年間354件でした。内容はいろいろありますが一番困難な問題は人間関係に関わる課題です。夫婦、家族関係や同僚の関係、教会員同士の課題、教会対教会の課題、教派の課題などです。

人間関係の課題の中で難しくなる理由の一つは、「ゆるせない」ことにあります。また、「ゆるされない」ことにあります。これが一番むつかしいのです。人は自分が変わるよりも相手を変えようとします。自分が赦す前に、相手が赦しを求めてきて欲しいと願っているのです。時には「ごめんなさい」といおうと思っても、相手がすでに死んでしまっている場合もあります。そのままでは心の重荷を負ったままで人生を送り続けます。

夫を許せない妻が、いつも、いつも腹を立てているうちに、それが内向してついに料理の包丁が持てなくなった、ということを読んだことがあります。なぜそうなったかといえば、包丁で夫を殺してしまうのではないかということを恐れて、心が包丁をもたないようにと手に指令を出していたのです。

赦さないことの結果は、相手を心の中で殺すのです。外に現れると実際に殺してしまうことが起こります。恐ろしい反応なのです。これが公の場合は社会が許せないと決断し、裁判官が言い渡す判決となり、日本では死刑の判決が極刑として存在しています。

 

Ⅰ 十字架の存在

今から約2000年前に、エルサレムで二人の犯罪人とイエスが死刑に処せられて、十字架につけられました。これは歴史的事実であります。小説や神話ではありません。41節で「われわれは自分のしたことの報いを受けているのだからあたりまえだ。」と言っていますように当然の報いです。人は自分の播いたことがらを刈り取るのです。犯罪人たちがそれほどに罪深い、救いがたい存在で、あらゆる手を尽くしても改めさせられなかった、更正の道はもはやない。これ以上人間関係を続けさせない方がよい。害ばかりで益なし。十字架を執行した人々の判断はそのようでした。

では十字架の周りにいた人々は、十字架にかけられている者たちよりも、ちょっとはましな存在なのでしょうか。その人間関係はどうなっているんでしょうか。例えば、主イエスの十二弟子たちのうちイスカリオテのユダは、主人イエスを敵対していた祭司長・律法学者たちに銀貨30枚で売り渡した張本人でした。ユダに対して「あなたは口づけでわたしを裏切ろうとするのか」とイエスはいわれました。完璧な裏切り行為で、しかも、あとになって「わたしは罪のない人の血を売ったりした。」と後悔し、自殺してしまったのです。一番の仲間であった者が、一番の仲間たちを裏切ることが今でもあります。相手を罠に陥れて、自分は得をするのです。後悔しますが、赦しを求めてゆくよりは、回復の道を拒否するのです。

十二弟子の頭目であったペテロは、自分の身に災いが及ぶと予想したとき主イエスとは無関係と三度も言い張って偽りの告白をしました。つき合っている相手と仲間だ、親しいと思われるだけで、自分の立場が危うくなると予想されたりすると、あるいわ単に恐れるだけで、人は、簡単に無関係をよそおい、不利な立場に立たされているその人の側に立たないように日和見を決め込み、ときにはクリスチャンでない風をよそおうのです。

裁判官をしたローマ帝国の総督ピラトは何度もイエスを調べた結果、罪は見あたらない、無罪と判断しました。そう主張してイエスを解放しようとしました。でもパリサイ人や祭司長や律法学者たちに煽動された群衆があくまで主張し続け、十字架につけるように要求した。そしてついにその声が勝った。ピラトは彼らの要求どおりすることを宣告した。すなわち、暴動と人殺しのかどで牢にはいっていた男を願いどおり釈放し、イエスを彼らに引き渡して好きなようにさせた。」23-25節。なぜ、それは暴動になること恐れたからで、治安維持の責任者としてローマ帝国からとがめられたくなかったからです。一人の無罪の人間が十字架にかけられて死ぬよりは、自分の地位や身分が大事とばかりに、不正な判決を下した。

明白な不正な判決、判断を今でも日常に私たちは私的に下してしまわないでしょうか。

イエスを官憲に訴えてでたイスラエルの宗教家たちは実はイエスの人気をねたんだがために、彼を十字架の恥かしめにさらし者にして殺し、身体も人気もはぎ取って葬り去ってしまおうとしました。原因は「ねたみ」だったのです。今日隣人にたいして、私たちの間でも一番ポピュラーな感情は「ねたみ」です。ねたみは殺人に発展する恐るべき罪なのです。

イエスは身につけていた物をはぎ取られ、兵隊たちによってくじを引かれて分けられてしまいました。自分たちと関係のない人の苦しみの死にざまは、彼らには面白い見せ物程度にしか受け取られない人間の残忍さが見えます。あざけり、ののしり、つばきするこころは、普段自分たちの不満のはけ口でしかありません。テレビジョンは人間の残忍さや、ときに怖い物見たさという興味本位を利用して番組を放映し続けます。いちいち人の不幸に同情しておれません。そんなことしていては身がもたないから。むしろ、あれは自分のことでないからと楽しんでしまう場合もあるのです。

人間たちが演じるこの十字架の周辺の模様は、現代に共通の出来事でありますし、私たちの日常生活の風景です。わたしたちもまた、十字架の出来事の日にそこにいたなら、彼らと同様の事柄をしたことでしょう。

その上で人々は主イエスに向かって叫びます。「あれは他人を救った。もし神のキリストで選ばれた者なら自分自身を救え。」

わたしたちも。自分のうちにあるバラバをほっておいて、その罪ふかさに気づかないで、イエスに向かってあざけるのです。ののしるのです。救い主なら十字架かから降りてこい。わたしたちも同じなのです。互いの人間関係を改善する力はなく、ますます悪くするのです。確かに「救い主なら十字架から降りて自分自身を救え」という判断は正しいのです。しかし、あざけりながら、ののしりながら、自分たちの判断は正しいのだと主張してみても、関係は回復しませんし、いやされることはないのです。ますます悪くなるのです。人間関係の入り組んだ困難は、このような道においては解きほぐすことは出来ないのです。自分の罪深さに思いが至らなければ、まことの回復といやしとゆるしの道は開けません。

Ⅱ 主イエスはどうされたか

十字架上でイエスはどうされたでしょうか。34節「父よ、彼らをお赦しください。彼らは、何をしているか自分では分からないのです。」と祈っておられます。「父よ。」とは天の父なる神様に子として呼びかけておられるのです。身が裂かれ、血がしたたり流れる真っ最中に、イエスはご自分が天の父の子であるとの意識を持っておられたのです。自分の祈りを聞いてくださるお父さんが天におられる。この方は人間の一切を裁かれる方である。このままではとうてい人間たちが赦されるはずはない。特に御子が使命を帯びて天から地上に降り、神の国の福音を宣べ伝え、神の子としての様々な証拠を示しつつ、悔い改めて神に立ち返るようにと勧めてきた、そのすべてを拒否し、御子にたいしてこのような理不尽なしまつに及んだ事柄は、永遠の裁きに価する恐るべき罪である。「人は一度死ぬことと、死んだ後に裁きを受けることが定まっている」のですから赦されない限り逃れることは出来ないのです。

ところでイエスはなぜ、このような祈りをなさったのでしょうか。それは十字架にかかられるはるか以前にご自分が地上に遣わされてきた目的を示しておられたからです。マルコ10:45「人の子が来たのも、仕えられるためではなく、かえって仕えるためであり、また、多くの人のための、贖いの代価として、自分のいのちを与えるためなのです。」

イエスは多くの人間のために、ご自分のいのちを贖いの代価として払うために来た。といわれたのです。それはイエスの血によって、罪の奴隷状態にあるわたしたち、今日の主題でいうなら、人を愛せない、それでこころから赦すこともできない自分、また人から赦してもらえない自分の罪の枷があるわたしたちを、贖い代価を払って解放するために来たからです。しかもわたしたちは天の神の前に赦していただけなければならない存在なのです。なぜなら、十字架の周辺にいた人々とほとんど同じことをし続けているからです。

贖いとは、身代金を払って釈放してもらうことを意味します。わたしたちの罪の束縛の状態から解放して自由にするのです。さらに主イエスが流された血は、「わたしの契約の血です。多くの人の罪を赦すために流されるものです。」と前もっていわれていた血でした。わたしたちを本当に赦すためには、言葉だけでなく、いのちそのものとなる血がながされることが必要だったのです。神の前での罪ゆるしは、ことばや、お金で代えられない。いのちが必要だったのです。すべての罪人の身代わりなのですから。

イエスはご自分がわたしたちの罪の赦しを実現するために、いのちを投げ出してくださったのです。その真っ最中に、「父よ。彼らを赦してやってください。」と祈ってくださったのです。人間が示しうる最も醜い姿、無理解と偏見に満ちた心と態度、悪意と残酷な仕打ち、怒りと憎悪に溢れた人々の中で、ご自分を十字架につけた者たちのために「彼らをお赦しください」と祈られたのです。

このような赦しは盲目の愛ではありません。わたしたちが何をしているのか分かって上での祈りです。「彼らは何をしているのか分からないでいるのです。」と理解している。主イエスは、わたしたちが何をしているのか、知っている。理解している。救い主のいのちを十字架に理不尽にもつけて、しかもその自分たちのためにいのちを捨てて贖おうとしておられる最中に、ののしり、あざけり、むちうち、つばきして、ねたみの心を満足させている。赦すどころか、罪のないのに殺そうとしている。それがどのような結末をもたらすか知らないでいる。しかしわたしは知っている。天の父の前での悲惨な結末を知っている。このままの人生ではあまりにも悲惨な結末を迎える。父よ。彼らを赦してやってください。

あなたも、わたしも、父なる神の前で赦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そして、あなたのために十字架にいのちを投げ出してくださっている主イエス様が、とりなしてくださっているのです。赦しの愛の祈りを今、あなたは自分のこととして受け取るべきではないでしょうか。

 

結び)主イエス・キリストがしめしてくださったいのちがけの本物の赦しの愛をうけいれることは、それ自体によって、神に受け入れられるのです。

しかしこの真実な赦しの愛を拒むならば、神の側からの救いの道は、もう他にないのです。「この人による以外に救いはない。わたしたちを救いうる名は、これを別にして天下のだれにも与えられていない。」

2014 5 4    누가복음23:33-38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서문) 저는 24세에 전도, 목회의 일을 시작해 50년째 이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상담을 해 왔습니다. 50세를 넘어서는 많은 경우 연간 630건의 상담을 한 적도 있습니다. 대회의 국내선교주사라는 자리에 있은 후로는 개인적인 상담보다는 교회에 관한 상담이 많았는데, 그것도 연간 354건 정도였습니다. 내용은 여러가지로, 가장 곤란한 문제는 인간관계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부부, 가족관계나 동료관계, 같은 교회원 사이의 문제, 교회간의 문제, 교파간의 문제 등이었습니다.

 인간관계의 문제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는 「용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한「용서받지 못하는 것」에 있습니다. 이것은 가장 어려운 문제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변하는 것보다 상대를 바꾸려 합니다. 자신이 용서하기 전에 상대가 용서빌기를 원합니다. 때로는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려 해도, 상대가 이미 죽어버린 경우가 있습니다. 그대로 마음의 짐을 진 채 인생을 보내게 되고 말기도 합니다.

남편을  용서하지 못하는 아내가 언제나 화를 내던 동안, 점점 내향적이 되어 결국엔 부엌칼 조차 못잡게 되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부엌칼로 남편을 죽이지는 않을까하고 두려워해 부엌칼을 들지 못하도록 마음이 손에 명령을 내린 것이었습니다.

 용서하지 않는 것은 상대를 마음속에 죽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이 표면으로 드러나게 되면 실제로 죽이는 것과 같은일이 일어납니다. 실로 두려운 일입니다. 이것이 공공의 장소에서는 사회가 인정하지 않도록 하며, 재판관은 그 결과에 대한 판결을 내려, 일본에서는 사형이라는 극형이 내려지기도 합니다.

Ⅰ 십자가의 존재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전, 예루살렘에서 두명의 범죄자와 예수가 사형에 처해,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소설이나 신화가 아닙니다. 41절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라고 말한 것같이 당연한 보응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뿌린 일들을 거둡니다. 범죄자들이 얼마나 깊은 죄에 빠져있는지, 구할 수도 없는 존재로, 수많은 방법으로도 바꿀수 없는, 갱생의 길이 없는 자들입니다. 이 이상 인간관계를 유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유해한 일만 있으며, 이익이 없다. 십자가를 집행한 사람들의 판단은 그러했습니다.

 그렇다면 십자가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린 자들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들일까요? 그들의 인간관계는 어떻했을까요? 예를 들면, 주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가롯유다는 예수를 적대하던 제사장, 율법학자들에게 은화 30장에 팔아넘긴 장본인 이었습니다. 가롯유다에 대하여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라고 예수는 말씀하셨습니다. 완벽한 배반행위로, 그것도 나중이 되어 「내가 무죄한 파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라며 후회하고, 자살해 버렸습니다. 가장 절친한 동료였던 자가 가장 가까운 친구들을 배반하는 일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상대를 덫에 걸리게 해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것입니다. 결국엔 후회하게 되지만 상대의 용서를 구하러 가기보다는 회복의 길을 거부합니다.

열두제자의 머리였던 베드로는 자신의 신변에 재난이 닥칠것을 예언하신 주 예수와 무관계라며 세번이나 거짓주장을 했습니다. 사귀고 있는 그 사람과 동료라고, 친하다고 여겨지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입장이 위험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면, 사람은 간단하게 무관계인 척하며 불리한 입장에 서있는 사람 쪽에 함께 있지 않으려고 주변동정을 살피며, 때로는 크리스챤이 아닌것 처럼 행동하기도 합니다.

 재판관이었던 로마제국의 총독 빌라도는 몇번이나 예수를 조사한 결과 무죄라고 판단했습니다. 무죄를 주장하여 예수를 석방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이나 제사장, 율법학자들에게 선동된 군중들이 유죄를 주장해, 십자가에 달도록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엔 그 목소리가 이겼습니다. 빌라도는 그들의 요구대로 선고했습니다. 즉, 폭동과 살인죄로 감옥에 잡혀있던 사람을 석방하고, 예수를 그들에게 내주며 하고싶은대로 하도록 했습니다. 23-25절 그 이유는 군중들의 폭동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해 치안유지의 책임자로써 로마제국의 책망을 받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한사람의 무고한 생명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한 것은 자신의 지위와 신분이 중요하다고 여겨, 부정한 판단을 내린 것이었습니다.

 명백한 부정판결, 판단은 현재의 우리들도 일상생활중에 내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를 관헌에 소송한 이스라엘의 종교가들은 실제로는 예수의 인기를 질투한 나머지, 그를 십자가에 달게해 죽여서, 예수의 육체도, 인기도 빼앗아 묻어버리고 싶었습니다. 그 원인은 「질투」였습니다. 오늘날 이웃에 대하여, 우리들중에도 가장 널리 퍼져있는 감정은 「질투」입니다. 질투는 살인으로 커지는 두려운 범죄입니다.

 병사들은 예수가 입고있던 옷을 빼앗아 제비뽑아 나누었습니다. 자기와 관계도 없는 사람의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이 그들에게는 재미있는 볼거리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 인간의 잔인함이 보이기도 합니다. 비웃음, 욕설, 침뱉는 그 마음은, 일상에서의 자신의 불만을 토로하는 수단이었습니다. TV는 인간의 잔인함이나 두려운 볼거리에 흥미를 갖는 인간의 심리를 이용해 방송을 내보내기도 합니다. 한사람한사람의 불행에 동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일을 했다가는 자신을 지탱할 수없기 때문에. 더욱이 그런것은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이므로 즐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간들이 연출한 이 십자가 주변의 모습들은 현대에도 공통된 일이며, 우리들 일상생활의 풍경입니다. 우리들도 또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날, 그곳에 있었다면 그들과 같은 일을 했을것입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저가 남을 구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찌어다」

 우리들도 자기안에 있는 바라바를 묻고, 그 깊은 죄를 깨닫지 못한채 예수님을 향해 비웃고 있는 것입니다. 욕설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주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우리들도 다를바 없습니다. 서로의 인간관계를 개선할 힘도 없이 점점더 악화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들의 말대로「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찌어다」라는 것은 바른판단입니다. 그러나 비웃음과 욕설을 하며 자신들의 판단이 바르다고 주장해도, 관계는 회복되는 것이 아니고, 치유되는 것도 아닙니다. 점점 더 나빠지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에 파고든 곤란은 이러한 길에 있어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죄에 도달하지 않는 한 참된 회복과 치유와 용서의 길은 열리지 않습니다.

Ⅱ 주 예수는 어떻게 하셨는가?

 십자가 위에서 예수는 어떻게 하셨을가요?  34절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란 하늘 아버지되신 하나님께 아들로써 부르고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몸이 찢기고, 피가 흐르는 중에 예수는 그분 자신이 하늘 아버지의 자녀라는 인식을 갖고 계셨습니다.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아버지가 하늘에 계십니다. 이분은 인간의 모든 것을 판단하시는 분이다. 이대로는 도저히 인간이 용서받을 수 없다. 아들되신 이분이 사명을 가지고 하늘로부터 지상에 내려오셔서, 하늘나라의 복음을 전하시고, 하나님의 아들로써 수많은 증거를 보이심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권해오신 그 모든것을 거부하고, 아들에 대하여 이러한 정당치 않은 일들은 영원의 재판에 달하게 될 엄청난 죄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9:27라고 쓰여있으므로, 용서받지 못하는 한 결코 피할수 없는 것입니다.

 한편, 예수는 어째서 이러한 기도를 하셨을까요? 그것은 십자가에 달리기 이전부터 그분께서 지상에 보내심받은 목적을 나타내셨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10:45「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의 피로 죄의 노예에 있는 우리들, 오늘의 주제를 빌어 말한다면, 사랑하지 못하며, 용서하지못하는 자신, 또한 용서받지 못하는 자신의 죄의 사슬에 걸린 우리들을 위해 대속물로 주어 우리를 해방시키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우리들은 하늘 하나님 앞에 용서받지 않으면 안될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 주변에 있던 사람들과 같은 일을 하고있기 때문입니다.

 대속이란 석방받기위해 몸값을 치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에 속박된 상태로부터 우리가 해방되어 자유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주 예수께서 흘린 피는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라고 이전에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을 진실로 용서하기 위해서는 말로만이 아니라, 생명의 피를 흘려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앞에서의 죄에 대한 댓가는 말이나 돈으로는 치룰수 없는 것입니다. 모든 죄인의 대속물이므로 목숨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예수는 우리들의 죄에 대한 용서를 실현하기 위해 생명을 던져주셨습니다. 그런 도중에도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인간의 흉한 모습, 무지, 편견에 찬 마음과 태도, 악의와 잔혹함, 노여움과 증오로 넘치는 마음을 보시면서도, 그분을 십자가에 달리게 한 자들을 위해 「저희를 사하여 주옵서서」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용서는 맹목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를 전부 다 알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기도하셨습니다.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우리들을 이해하고 계셨습니다. 주 예수께서는 우리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계시고 이해하고 계십니다. 구원의 주님의 생명을 십자가에 달리게해도, 그것도 그 장본인들을 위해 생명을 버리시는 도중에도, 그들은 비웃음, 욕설, 때림, 침뱉음, 질투의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용서하기는 커녕 죄없는 분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것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이 장차 맞게될 하늘 아버지 앞에서의 비참한 결과를 알고계셨습니다. 이대로의 인생은 도저히 비참한 결과밖에 초래하지 않는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당신도, 저도, 아버지되신 하나님앞에 용서받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 생명을 던져주고 계신 주 예수님께서 중보하고 계십니다. 용서를 위한 사랑의 기도를 지금도 당신은 자신의 일로써 받지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맺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목숨을 건 참된 용서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써 하나님의 영접하심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진실된 사랑을 거부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의 구원의 길은 없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사도행전4장12절)

4th May 2014

Luke 23:33-38  “Father, forgive them

 

Introduction

 

It has been 50 years since I started ministering a church and involved in evangelism at the age of 24.  During this time, I have met many people and consulted many issues.  When I was above 50 years of age, I received 630 consultation requests in a year.  After I became the director of national evangelism of the PCJ, consultations mainly relates to church issues rather than personal issues, but still I had 354 consultations in a year.  There are many problems, but the most difficult problems involve relationships.  These include: relationships between husband and wife, relationship within the family, relationships amongst co-workers, issues in the church members, issues involving different churches and congregations.

 

One of the reasons the relationship issues become difficult is “you can’t forgive”.  Also, “you cannot be forgiven”.  This is the most difficult issues.  We tries to change the other person, rather than changing ourselves.  We hope the other person might ask for forgiveness before you forgive. Sometimes when you want to say “I am sorry”, the person is already dead.  Then you will have to live with the yoke in your heart.

 

I have read a story that a wife who could not forgive her husband stored up the anger inside and could not hold the cooking knife any longer.  It is because she was afraid of killing her husband with the knife, so her heart was telling her hands not to hold the knife. The result of not forgiving is killing the person in the heart.  If it shows outwards, it can result in real murder.  It is a scary response.  If this becomes public, the society decide this person cannot be forgiven, and the judge delivers a sentence, and death penalty exists in Japan as the extreme penalty.

 

I   The existence of the cross

 

Two criminals and Jesus were sentenced to the death penalty in Jerusalem about 2000 years ago, and they were put on the cross. This is a historical fact. It is not a story or myth. In verse 41, it is a natural consequence as “We are punished justly, for we are getting what our deeds deserve.”  We reap what we sow. The criminals were guilty, and it was very difficult to save them as there was no way of recovery and no methods of making them repent.  It is better that they don’t have any human relationships. There were only harm and no good. The judgement of the people carried out the execution was as such.

 

Were the people standing around the cross any better than the ones put on the cross?  How about their relationships?  For instance, Judas Iscariot, one of the twelve disciples of Jesus, was the very person to sell Jesus for 30 silver coins to the chief priests and the teachers of the law, who were hostile to the Lord Jesus. Jesus said to Judas, “are you betraying the Son of Man with a kiss?”. It is a complete act of betrayal and later he regretted “I have betrayed innocent blood” and killed himself. Even today we can see close friends betraying each other. They set up the trap and benefit from it. They might regret it, but chose to reject the way of recovery rather than asking forgiveness.

 

Peter who was the leader of the twelve, gave the false confessions 3 times, saying that he had nothing to do with the Lord Jesus when he feared his own safety was at stake.  When we anticipate and fear that our position within the group will become unfavourable, because of another person we have relationship with, we might pretend that we have no relationship with that person, and decide not to stand on their side. Sometimes, we might pretend that we are not Christian.

 

The Roman governor Pilate who performed the role of judge, sentenced Jesus not guilty as he could not find any guilt in the investigation of Jesus. By insisting his innocence he tried to release Jesus.  However, the crowd who were persuaded by the Pharisees, the chief priests and the teachers of the law continued to insist, and demanded to put him on the cross.  And their shouts prevailed. Pilate decided to grant their demand. “He release the man who had been thrown into prison for insurrection and murder, the one they asked for, and surrender Jesus to their will (v23-25)”.

 

Why?  It is because he feared the riot, and he did not want to be accountable for it as a person responsible for maintaining the public order in Roman empire.  He made unfair judgement because it was more important for him to keep his position than to let an innocent man die on the cross.

Do we not make an obviously unfair judgement or personal decision daily?  The religious leaders of Israel were actually jealous of popularity of Jesus. They tried to put Jesus’ body and fame to death, by exposing Jesus to public disgrace of the cross and killing him.  The cause was jealousy.  Today the most popular feeling against our neighbours is jealousy.  Jealousy is serious sin that develops into murder.

 

Jesus’ clothes was stripped away and divided by lot amongst the soldiers.  We see human cruelty in them who think of the death of an unrelated person as a show.  The heart that mocks, scorns, spits is an outlet of own dissatisfaction.  TV uses human cruelty and interest in the fear to make and broadcast programmes.  We cannot sympathise with misfortune of people.  If we did, our body won’t last.  Sometimes, we might enjoy it thinking it is nothing to do with me.

 

The situation surrounding the cross played by humans is a common event in modern times, and is a common scene in our daily life.  If we were there at the event of the cross, we would have done the same thing. The people shouted to Jesus, “He saved others; let him save himself if he is the Christ of God, the Chosen One”.  We too mock Jesus without noticing the depth of our sins, keeping Barabbas inside us.  We insult him.  If you are the saviour, come down form the cross and save yourself.  We too are the same. We don’t have power to fix the relationships to each other, and we make it worse.  It is a correct judgement to say that “if you are the saviour, come down form the cross and save yourself”.  However, the relationship will not be fixed and we will not be healed if we mock, insult and insist that our judgement is right. It gets worse.  We cannot resolve the complicated problems of the human relationships in this way.  Without considering the depth of own sinfulness, the way to the true recovery and forgiveness will not open.

 

II  What did the Lord Jesus do

 

What did Jesus do on the cross?  In v34 he prays “Father, forgive them, for they do not know what they are doing”.  “Father”, he calls out to the heavenly father as a child. Even when his body was broken and his blood was shed, he knew he was the child of the heavenly Father.  My Father in heaven listens to my prayer.  This person is the judge of the whole of mankind.  There is no way the humans are forgiven if this stays the same.  The Son was sent to earth from heaven, declared the gospel of the kingdom of God, showing many proofs that he was the son of God, urging people to repent and return to God.  Rejecting all this it ended with such an outrageous event in regard to the son of God, the horrible sin of human beings is worth eternal condemnation. “Just as man is destined to die once, and after that to face judgement”, we cannot escape it without being forgiven.

 

Why did Jesus pray like this?  It is to show the purpose of him sent to earth, long before the cross.  Mark 10:45 “ For even the Son of Man did not come to be served, but to serve, and to give his life as a ransom to many”.

 

Jesus said he came to give his life as a ransom for many human beings. Jesus came to free us from the slavery to sin by his blood.  He came to release us form our inability to love, to forgive from the heart and to be forgiven by others.  Furthermore, we need to be forgiven before the heavenly father.  It is because we continue to do the same thing as the people surrounded the cross.

 

Atonement means to pay the ransom and be released.  To free us from under the bond of sin.  Furthermore, the blood Jesus shed is the “blood of the covenant, which is poured out for many for the forgiveness of sins.” as he foretold.  The word wasn’t enough to truly forgive us; it was necessarily to shed blood which consists of life itself.  Forgiveness before God cannot be given by words or money.  It requires life.  Because it is the ransom for all sinners.

Jesus offered his life to realise the forgiveness of our sins. In the hight of it, he prayed “Father, forgive them”. In the midst of the people who display the ugliest picture, the heart and attitude of prejudice and misunderstanding, with evil intention and cruel treatment, anger and hatred, for those who put him on the cross, he prays “forgive them”.

 

This sort of forgiveness is not blind love.  It is the prayer that understood what we were doing.  He understands that “they don’t know what they are doing”. The Lord Jesus knows what we are doing.  He understands.  Putting the saviour’s life on the cross unjustly, we mock, insult, beat, and spit the one who is offering his life for ransom in order to satisfy our jealous heart .  Not just unforgiving, we try to kill, even though he is innocent.  Not knowing what consequence this will cause.  But I know.  I know their tragic end before the Father in heaven.  If they continue to live like this, they will end in indescribable tragedy.  Father. Please forgive them.

 

You and I need to be forgiven before the heavenly father.  The Lord Jesus who is offering his life for you is reconciling you with the Father.  Shouldn’t we receive his prayer of forgiving love now, as our own?

 

Conclusion

 

The Lord Jesus Christ showed with his life the love of real forgiveness, and to receive this means you are received by God.  But if we reject this true love of forgiveness, there is no other way to be forgiven by God.  “ There is  salvation in no one else, for there is no other name under heaven given among men by which we must be saved”. (Acts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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