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年8月17日 詩篇 4 篇 「夕べの賛歌」
序文)詩篇3篇は朝の賛歌といわれています。詩篇4篇は夕べの賛歌といわれます。主題が「夕べ」というわけではありません。夜が更けてくると、過去の悪事と現在の不安をあれこれくよくよ考えてしまうのです。眠りを失うほどの心労と病いに陥いるのです。主に三つの原因があります。詩篇4篇はこれに答えています。原因の一つ目は、私たち自身の内側にある不安、原因の二つ目は、私たちクリスチャンを滅ぼそうとしている悪人、また、国家の強力な敵意です。原因の三つ目は、教会にある神の民の間に生じる弱い悲観論です。これらに対して答えています。1節は、心の不安に打ち勝つために神に祈ることです。2-5節は、神に背いている世に向かって、福音を恐れることなく、愛を持って語ることです。6-8節は、常に新しく主イエス・キリストをあおぐことによって、見ゆる教会内の敗北主義に打ち勝つこと(ヨハネ14:27。16:24、33)です。
詩篇が「私」を多用して一人称で書かれている場合は、個人の経験を述べているので、個人祈祷において大いに用い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
「指揮者のために」は詩篇に55回でてきます。「ダビデの」は39回です。このことばのついている詩篇は、レビ人の合唱隊と器楽伴奏の配置を示すために、楽長に与えられたものである。「弦楽器に合わせて。」楽器の弦を引いて鳴らすことをさします。「ダビデの讃歌」ミズミール/器楽を伴う詩篇という意味です。
Ⅰ 第一の答え: 心の不安に打ち勝つために神に祈ることです
1 節「私が呼ぶとき、答えてください。私の義なる神。あなたは、私の苦しみのときにゆとりを与えてくださいました。私をあわれみ、私の祈りを聞いてください。」
大声で呼ばわる祈りです。黙祷ではありません。動詞なので絶えまなく祈り続けた。祈りのときに大声で祈ることがあります。そのとき霊的におおいに奮い立たせられる。
「私の義なる神。」義「真直ぐな、正しい、直立した」というような概念をもつ語根から来たものです。詩人は敵の不当な中傷に悩まされており、すべての人は、彼の敗北によって、神が彼を見捨てたと思っているのです。その時ダビデは、敵と世の人の前に自分の潔白を現すために「私の義なる神」に訴えているのです。
「あなたは、わたしの苦しみの時に、」過去の苦しみの時に神様はゆとりを与えてくださいました。その経験をもとにして祈っています。現在の祈りは、過去から力を引き出している。あのときこうだったから、今も、祈る。
苦しみ–窮屈な場所に押し込められている魂。ギリシャ語では「艱難」スリプシス。日本語では「窮地」
「ゆとりを与えてくださいました。」広いところに開放し、魂に自由を与え、圧迫をゆるくしてくださった。「私をあわれみ、私の祈りを聞いてください。」潔白を訴えることが出来たが、聖なる神の前に出ると、ただ、主にあわれみを求めるだけです。私たちもほとんど同じである。このような神への呼びかけは、祈りの霊を豊かにし、祈りの結果への期待を大きくする。
Ⅱ 第二の答え:神に背いている世に向かって、福音を恐れることなく、愛を持って語ることです
2節「 人の子たちよ。いつまでわたしの栄光をはずかしめ、むなしいものを愛し、まやかしものを慕い求めるのか。セラ 3 知れ。主は、ご自分の聖徒を特別に扱われるのだ。私が呼ぶとき、主は聞いてくださる。 4 恐れおののけ。そして罪を犯すな。床の上で自分の心に語り、静まれ。セラ 5 義のいけにえをささげ、主に拠り頼め。」
「人の子たちよ。」ヘブル語ベネーイシー 本来は、高い地位にある支配者を指すことば。ダビデは皮肉の意味に用いている。すなわち、「自分で尊く、力あるものと思い込んでいる、高慢なあなたがた人の子よ。」「いつもで私の栄光をはずかしめ、」ダビデの王としての尊厳をさす。
1 ダビデの権威が、敵対者による偽りの誹謗によってさげすまれるようになっている。「むなしいものを愛し、」むなしい–からっぽの器。「まやかしものを慕い求めるのか。」いつわりをしたいつづける。慕う–母親がまいごを探すときのように、あらゆる熱心を持って求めること。
セラ–歌を止めて思い巡らせ。
2 「知れ。」経験によってねんごろに知る。
「主は、ご自分の聖徒を特別に扱われるのだ。」ダビデを王様に選んだ主は、特別の恵みによって、神ご自身のために奉仕へと就かせられた。神の永遠の選びの上に希望をおくダビデ。私が呼ぶとき、主は聞いてくださる。中傷や落胆によって傷ついている者への究極の答えが「主は聞いてくださる」ということにある。
3 「恐れおののけ。」恐怖か怒りによって生じる内なるおののき、動揺、興奮、を意味する言葉。何にたいしておおのけというのか。神がダビデを敬虔な人としてご自分のために選び分たれた。神の受膏者を攻めるものは皆ついにはおそろしい応報にあう、という永遠の事実に対しておののけ。「そして罪を犯すな。」
「床の上で自分の心に語り、静まれ。」そうぞうしい高ぶりを止めて、床の上で静かに自分の心に語りかけよ。内省せよ。黙せ。あまりにも熱心であるために、すべてを衝動的に決める人々がいる。ルカ9:54-55「弟子のヤコブとヨハネが、これを見て言った。“主よ。私たちが天から火を呼び下して、彼らを焼き滅ぼしましょうか。”しかし、イエスは振り向いて彼らを戒められた。」主イエスへの忠誠心が定まらないことも良くないが、熱心のあまりに、主イエスさまでもしないことをしようとして、行き過ぎることがある。どちらの人々も同じぐらい危害をもたらしてしまうのです。神の前にへりくだり、静まることで、神への信頼を深めよう。
4 「義のいけにえをささげ、主に拠り頼め。」贖罪のために主が制定したもうた普通の動物の犠牲のこと。敵対しているアブシャロムと彼につく反逆のやからたちは、主の契約の箱と幕屋が自分らの手にあることに信頼をおいていた。神の愛顧が自分たちともにあると。しかしダビデは、律法には内的、倫理的な要求があることを気付かせた。主に拠り頼むことが第一である。
Ⅲ 第三の答え: 常に新しく主イエス・キリストをあおぐことによって、見ゆる教会内の敗北主義に打ち勝つこと
6 節「多くの者は言っています。「だれかわれわれに良い目を見せてくれないものか。」主よ。どうか、あなたの御顔の光を、私たちの上に照らしてください。 7 あなたは私の心に喜びを下さいました。それは穀物と新しいぶどう酒が豊かにあるときにもまさっています。 8 平安のうちに私は身を横たえ、すぐ、眠りにつきます。主よ。あなただけが、私を安らかに住まわせてくださいます。」
1 多くの者は言っています
「だれかわれわれに良い目を見せてくれないものか。」ダビデの天幕にともにいる者たちから出た言葉と考えられている。すっかり意気消沈している。危険と疲労と飢餓がダビデの軍隊をおそっていた。アブシャロムの軍隊はうるおっていた。収穫時期であり、豊であった。敗北主義者である。
「主よ。どうか、あなたの御顔の光を、私たちの上に照らしてください。」
民数記6;24の祝福の一部分。ダビデは彼の部下に、恒久的に善を生じる唯一まことの源泉を示している。贖い主が、恵みの愛顧をもって照らしてくださるとき、私たちは永々に変わらないあらゆる善の基をもつ。神の愛顧がなければ、人生には何のよきことも存在しない。
ダビデは祈りの形で、主に向かって自分の個人的な信仰を現す。
2「あなたは私の心に喜びをくださいました。それは穀物と新しいぶどう酒が、豊かにあるときにまさっています。」真の喜びは、神が私たちの心に与えられるのでなければならない。物質の豊かさがもたらすものではありません。そう考えるのは無神論的社会主義の根本的な誤りなのです。「喜び」にあたるヘブル語はサーマックで、ちょうど、嵐の海を照らす灯台のように、また闇夜に旅人をよろこばす窓の灯火のように、明るく楽しげに輝くという意味を持っています。御父の愛という霊の光輝は私たちの心に消えない喜びを与えるのです。それは人間の闇がどれほどであっても、それに勝るものです。
3 「平安のうちに私は身を横たえ、すぐ、眠りにつきます。」眠りにつくだけでなく、すぐに、ぐっすりとねむります。
「主よ。あなただけが、」だれが–主にのみ信頼し、それ以外の何ものも、確かさを求めなかった、という意味に取ることが出来ます。また、ダビデの孤独と危険の状態が如何に極端であるかに注意させているともとれます。
「私を安らかに住まわせてくださいます。」
結び)ヨハネ14:27[わたしは、あなたがたに平安を残します。わたしはあなたがたにわたしの平安を与えます。わたしがあなたがたに与えるのは、世が与えるのとは違います。あなたがたは心を騒がしてはなりません。恐れてはなりません。]
2014년 8월 17일 시편 4편 「저녁의 기도」
서문) 시편 3편은 아침의 기도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시편 4편은 저녁의 기도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주제가 「저녁」이기 때문에 저녁의 기도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밤이 깊어지면, 과거의 악한 일과 현재의 불안을 이것저것 생각하곤 합니다. 졸린 것을 잃어버릴 정도로 마음의 병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이것의 주된 이유는 세가지가 있습니다. 시편 4편은 이것에 답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원인은, 우리들 자신속에 거주하고 있는 불안, 두번째 원인은 우리들 크리스챤을 멸망시키려는 악인, 또한 국가의 강력한 적의에 있습니다. 다음으로 세번째 원인은 교회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들사이에 생기는 약한 비관론입니다. 이것들에 대하여 시편은 답하고 있습니다. 1절은 마음의 불안을 이겨내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2-5절은,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있는 세상을 향해, 복음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랑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6-8절은, 언제나 새롭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써, 교회 안에 생기는 패배주의를 이겨내는 것(요한복음14:27. 16:24,33)입니다.
시편이 「나」를 자주 이용하며 일인칭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개인의 경험을 말하고 있는 것이므로, 개인기도에 있어서도 언제나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영장으로」는 시편에 55번 나오고 있습니다. 「다윗의」는 39번 입니다. 이말이
붙어있는 시편은, 레위인의 합창단과 기악반주의 배치를 나타내기 위해
악장에게 부여한 것입니다. 「현악에 맞춘」 현을 당겨 음을 내게 하는 악기를
가리킵니다. 「다윗의 시」 미즈모르/현악반주로 부르는 시라는 의미입니다.
Ⅰ 첫번째 대답: 마음의 불안을 이기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1절「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나를 긍휼이 여기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큰소리로 외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묵도가 아닙니다. 동사이므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도할 때에 큰 소리로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영적으로 크게 분기되고 있습니다.
「내 의의 하나님이여」는 「반듯한, 바른, 바르게 서있다」라는 개념을 가진 어원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시인은 적의 부당한 공격으로 고민하고 있으며, 그의 패배로 인해 사람둘은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셨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다윗은 적과 세상사람들 앞에 자신의 결백을 드러내기 위해 「내 의의 하나님이」께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곤란중에」 과거의 고통스러웠던 때에 하나님은 그를 너그럽게 해 주셨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시인은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기도는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힘을 얻고 있습니다. 예전에도 그랬기 때문에, 지금도 , 기도합니다.
힘들때-궁구한 처지에 당해 있을 때의 영혼. 그리스어로 「환란」스리프시스. 일본어로는 「궁지」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넓은 곳에 두시고, 영혼을 자유롭게 해주시고, 압박받던 상태에서 풀어주셨습니다.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다윗은 결백을 주장할 수도 있었지만 성스러우신 하나님앞에 나오면, 그저 긍휼을 구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부르며, 기도의 영을 풍요롭게 해, 기도의 결과에 대한 결과를 더욱 크게 하는 것입니다.
Ⅱ 두번째 대답: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있는 세상을 향해, 두려워하지 않고 사랑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2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며 허사를 좋아하고 궤휼을 구하겠는고(셀라) 3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4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저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셀라) 5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뢰할지어다 」
「인생들아」 히브리어로 베네이시. 본래는 높은 지위에 있는 지배자를 가리키는 말. 이것을 다윗은 풍자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즉, 「자신을 존귀하고 능력있는 자로 착각하고 있는 거만한 인생들이여」「언제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가」 왕으로써의 다윗에 대한 존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1 다윗의 권위가 적대자들의 거짓비방으로 업신여김을 당하고 있습니다. 「허사를 좋아하고」 허사 – 텅비어있는 그릇 「궤휼을 구하겠는고」 거짓행위를 계속하다. 구하다-길잃은 아이를 찾는 어머니처럼, 열심으로 요구하는 것.
셀라- 시를 멈추고 회고한다. セラ–歌を止めて思い巡らせ。
2 「알지어다」 경험을 통해 자세히 알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다윗을 왕으로 선택하신 하나님은 특별한 은혜로 하나님께 봉사할 수 있는 곳에 두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선택위에 소망을 둔 다윗. 내가 부를 때에 하나님은 들어주십니다. 중상이나 낙담에 상처받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궁극적인 대답이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에 있습니다.
3 「너희는 떨며」 공포나 화냄으로 생기는 내부적인 떨림, 동요, 흥분을 의미하는 말. 무엇에 대한 떨림인가? 하나님께서 다윗을 경건한 사람으로, 그분을 위해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공격하는 자는 결국엔 모두 엄청난 보응을 받는다는 영원한 진실에 대한 떨림. 「범죄치 말지어다」
「저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떠들썩하게 뽐내는 것을 그만두고, 바닥에 누워 조용히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봅니다. 반성합니다. 침묵합니다. 너무나 열심인 나머지 모든일을 충동적으로 결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가복음9:54-55「제자 애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가로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주예수님에 대한 충성심이 없는 것도 좋지 않지만, 너무나도 열심인 나머지 주예수님도 하시지 않는 일을 하려는 과도한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쪽도 같은 정도의 위험을 초래하게 됩니다. 하나님앞에 엎드러져 잠잠하는 것으로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깊게 합시다.
4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뢰할지어다」 속죄를 위해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보통의 동물의 희생을 말합니다. 적대자인 압살롬과 다윗을 공격하는 일당들은 하나님의 계약의 상자와 회막이 자신들의 손에 있으므로 안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자신들과 함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율법에는 내적, 윤리적인 요소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Ⅲ 세번째 대답: 언제나 새롭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써 교회안에 생길 수 있는 패배주의를 이겨내는 것.
「6 여러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취소서7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8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1 「여러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다윗의 천막에 함께 있던 자들에게서 나온 말로 생각되어집니다. 완전히 의기소침한 상태입니다. 위험과 피로와 기아가 다윗의 군대를 덮치고 있습니다. 압살롬군대는 풍요로웠습니다. 수확의 시기이기도 했으므로 풍요로웠습니다. 패배주의에 젖어있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취소서」
민수기6:24 축복의 일부분. 다윗은 그의 부하들에게 영구적인 선을 만드는 유일한 원천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구원의 주님께서 은혜를 주시기위해 밝혀주실 때 우리들은 영영히 변함없는 선의 기초를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면 인생에 어떤 선한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기도의 형식으로 하나님을 향해 자신의 개인적인 신뢰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2「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참된 기쁨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마음에 주시는 것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물질적인 풍요로움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무신론적 사회주의의 근본적인 잘못입니다. 「기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사막크로써, 폭풍속에 밝히는 등대처럼, 또한 암흑속의 여행자를 돕는 창문의 등불처럼, 밝게 즐겁게 빛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영적인 빛이 우리들의 마음속에 꺼지지 않는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어두움이 아무리 깊더라도 이겨내는 것입니다.
3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잠에 드는 것만이 아니라. 즉시, 평안히 잠듭니다.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누가? –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그 외의 모든 것들은 믿지않는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다윗의 고독과 위험의 상태가 얼마나 극단적이었는 가를 짐작할 수도 있습니다.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맺음) 요한복음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