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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年12月27日 礼拝 説教(日本語文、韓国語文)イザヤ書 音声あり


 
2015年12月27日 メシヤの生涯と苦難 パート二 イザヤ 53章6−12  

 6節 「私たちはみな羊のようにさまよい、おのおの自分かってな道に向かって行った。しかし、主は、私たちすべての咎を彼に負わせた。」
 私たちは牧者を失った羊のように、罪によって迷い去った。動詞は「迷ってしまっていた。」と訳するのがよい。正しい道からそれて迷って失われていた。しもべが救助してくれるまで迷ったままであった。私たちの、全的堕落のすがたがしめされている。神が探し求めて下さらなければ、迷ったままであった。それで、神はしもべに、われわれ全ての不義を降り掛からせて、介入してくださった。
 私たちが神の律法に違反し、その上迷ってしまっていた。探し出し救うためにしもべの全人格がさしだされたのです。第一ペテロ2:24-25[そして自分から十字架の上で、私たちの罪をその身に負われました。それは私たちが罪を離れ、義のために生きるためです。キリストの打ち傷のゆえに、あなたがたはいやされたのです。あなたがたは、羊のようにさまよっていましたが、今は、自分のたましいの牧者であり監督者である方のもとに帰ったのです。]

 7節「彼は痛めつけられた。彼は苦しんだが、口を開かない。ほふり場に引かれて行く子羊のように、毛を刈る者の前で黙っている雌羊のように、彼は口を開かない。 
「彼は痛めつけられた」は「彼は圧迫された」と訳すほうが正確です。しもべは迫害者により圧迫された。彼は圧迫され、なやまされたが、事実としては、彼自身が悩みに服した。故意に自分を卑しくして、口を開かなかった。「かれは自分自身を悩まされるようにした。」「彼は自分の口をひらかなかった」とヘブル語は訳できる。自発的受難を示す。
 自発的であり、また、忍耐強く受難した。自己弁護や抗議をするために口を開かなかった。イザヤはこの説明をおぎなうために、「ほふり場に引かれて行く羊のように、毛を刈る者の前で黙っている雌羊のように、彼は口を開かない。」と表現している。屠殺人の前にいる羊と、毛を刈る者の前にいる子羊とは、無害無援である。無実さと忍耐強さが強調されている。ルカ23:9「それでいろいろ質問したが、イエスは何も答えにならなかった。」 黙示録5:6「さらに私は、御座 — そこには、四つの生き物がいる。— と長老たちの間に、ほふられたと見える小羊が立っているのを見た。」

 8節「しいたげと、さばきによって、彼は取り去られた。彼の時代の者で、だれが思ったことだろう。彼がわたしの民のそむきの罪のために打たれ、生ける者の地から絶たれたことを。」口語訳「彼は暴虐なさばきによって取り去られた。」文語訳「彼はしえたげとさばきとによりてとりさられ。」英語「彼は獄屋から、またさばきから取り去られた。」しいたげ、獄屋、圧迫等と訳されているヘブル語は、違う訳しかたが可能であるためです。
 解釈上議論があるところです。「迫害的なさばきのゆえに」「圧迫(妨げ)やさばきなしに、彼は取り去られた。」(公正な審判なしに)「圧迫(獄屋)から、またさばきから彼は取り去られた。」
 「 預言者が、しもべの上に起こった肉体上の拘束または抑圧のことを語っているのは、明らかである。これは、述べられている審判との関連で、理解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災難、または迫害である。迫害は法律上の検束によって起こされるようなものだと言うことが、明らかになる。 
 述べられている審判は、しもべに下された法律上の宣告を指している。だから、受難者が検束された。しかもおそらく、特にその性質において弾圧的な検束と理解すべきだろう。
また彼が審問に付されもした、と思われる。彼は告発され、有罪で死に値すると宣告された。けれども、彼は悪行について潔白の身であったから、実にそれ以上であった。彼は積極的に正しかったのだから、彼に下された宣告は不正なものであった。
 自分は罪なき者であった彼が、不正な審問にゆだねられたと言うことを読むのは、かなりの衝撃である。もちろんイザヤ書のもっとまえのほうでも、このことの暗示はあった。42章でしもべが初めて示されること、かれは遂行すべき偉大な任務を有し、その任務が成し遂げられるまでは自分の苦労をつづける者として示されている。しもべの次の登場、49章では、着手される仕事のむつかしさについて、いくらかの指示があった。49:4。50章においては、胸を刺すような受難が、さらに一層の明確さで描き出されている。50:6。けれどもこの受難の理由はまた与えられてこなかった。しもべの苦痛の理由が、彼は他人のために、その代わりに受難するという事実、また彼がこうするのは、神が人々の不義を彼の上に置かれたからだという事実に見いだされることを述べるのは、53章まで保留されている。
 けれども、驚きを生じさせるのは、罪なき彼が、人々の手で不当に苦しめられなくてはならないという思想である。「主」が受難の究極的原因であることはむろん全く真実である。主が、確かにわれわれの不義を彼の上に置かれたのであった。しかし、しもべの受難が同時に人々の手によるものであったということは、いやましに明らかになる。」(E.Jヤング)。
 人々がしもべに苦痛をもたらしたのは、彼らが裁判を間違ったからだといえるだろうか。
そうではなくて、無実の人が不正に告発され、罪に定められたと理解するだけではたりない。むしろさばいた人々が、本来的に邪悪だったからである。闇は光を受け入れられない。しもべの言葉を聞かない、救い主だと信じない。地上から取り去ろうとする。では彼らだけが邪悪だったのか。そうではない。私たちの罪のために彼は死んだ。むしろ私のためというべきである。「彼は生ける者の地から絶たれた」死ぬように取り去られたのである。

 9 イザヤ53:9「彼の墓は悪者ども(複数)とともに設けられた、彼は富む者(単数)とともに葬られた。彼は暴虐を行わず、その口に欺きはなかったが。」
 しもべの葬りの性質について、ここに述べている。しもべの墓は犯罪人たちとともに、また彼の死後は富める者とともに設置された。マタイ27:59-60[ヨセフはそれを取り降ろして、きれいな亜麻布に包み、岩を掘って造った自分の新しい墓に納めた。墓の入り口には大きな石がころがしかけて帰った。] ある意味でしもべの高挙と栄光は、死において始まったと言える。人間は犯罪人として葬ることを意図したが、神はしもべを富める者とともにあらせられた。しもべの運命の転換点である。潔白さの役に立つ仕置きである。不名誉な死後に、高貴な葬りを与えられた理由は、彼の完璧な潔白にあった。主は、彼の葬りを、悪人たちが企てていたものとは違うものとされた。

 10節「しかし、彼を砕いて、いためることは、主のみこころであった。もし彼が、自分のいのちを罪過のためのいけにえ とするなら、彼は末永く、子孫を見ることができ、主のみこころは彼によって成し遂げられる。」
 しもべの潔白さにもかかわらず、10節で対照が導入される。彼を砕くことが主のみこころであった。しもべの受難の究極的な原因は、神ご自身にあったことが明らかにされる。
「罪過のためのいけにえ」はレビ記5:14-19に書かれている。これは、古い言葉では「けん祭」と言われていた。「罪祭」(罪のためのいけにえ)区別して書かれている。「罪過のためのいけにえ」と「罪のためのいけにえ」とどのような区別があるかといえば、それは「弁償する必要がある」罪であった。それは負債を支払ったり、生じた咎を償ったりして、そのことによって罪人を自由にする犠牲です。おそらくこの理由のために、しもべの供え物を描写するのにこれがいちばん適当な言葉として選ばれた。いずれにせよ第一義的には、なだめの供え物をさす総称としてここに用いられている。
 しもべの死、いのちの血の注ぎだし、は、罪のなだめ、神の正義が要求する賠償を果たすように意図された犠牲であった。しもべの死は犠牲の供え物であった。それはまさに祭司の仕事を遂行したことである。受難は自発的であった。われわれの悩みを負い、われわれの悲しみを背負った者は、自分の意に反してこういう死に追いやられた者ではかった。他人の手でささげられる犠牲として自分をゆだねるよう、無理強いされたのではなかった。むしろ自由に自分をささげた者である。他人の咎のために償いがなされるために、義なる犠牲を、いや自分自身をささげる義なる祭司でした。彼はこのような祭司であり、またとがの供え物でもあります。これにこれは動物の犠牲ではなくて、一人格の供え物であってこうしてモーセの律法に述べられていた犠牲とは全く異なるのでした。他の類のない供え物でした。レビ記に記された諸々の犠牲は模型であって、ここに原型があるのでした。
 ヘブル9:26「しかしキリストはただ一度、今の世の終わりに、ご自身をいけにえとして罪を取り除くために、来られたのです。」
「彼は末永く、子孫を見ることができ」しもべは、自発的に自身を咎の供え物とするが、それは死を意味する。けれども、それで終わるのではない。なぜなら「子孫」を見るからである。霊的な勝利を得て、再び生きるのである。子孫を見る。末永く見る。ずっと生き続ける。彼は寿命をのばすのである。主はいわれた。「わたしは死んだことがあるが、見よ、代々限りなく生きている者である。」黙示録1:18。
 「主のみこころは彼によって成し遂げられる。」しもべは神のみこころをおこなうためにきた。それを成し遂げた。上首尾の結末を迎える。「イエスは酸いぶどう酒を受けられると、「完了した」と言われた。そして、頭を垂れて、霊をおわたしになった。」(ヨハネ19:30)。

 11節「彼は、自分のいのちの激しい苦しみのあとを見て、満足する。私の正しいしもべは、その知識によって多くの人を義とし、彼らの咎を彼がになう。」
 しもべは「見る」「満足する」。この二つの表現は、通常は「満ち足りてみる」「豊かな満足をもって見る」と訳すことができる。しもべの高挙がいわれている。
 つづいて、聖書の中でもっとも鮮やかな、福音声明の一つが続いている。「その知識によって、多くの人を義とする」。ここは文法的に「彼についての知識によって」「彼を知ることによって」と訳するほうがよい。「その」を「彼の知識」ととると、文脈的には、義認のわざが、しもべの知識に依拠することとなり、前後文脈としてはおかしいことになる。身代わりの犠牲的死を伝えつづけているのであるから。「その」を「主のしもべを知る知識」ととるなら、「信仰義認」の教えがあることになる。しもべが多くの人を義とするのは、人々が彼を知ることによって、あるいは知ることを通してなのである。

 12節「それゆえ、わたしは、多くの人々を彼に分け与え、かれは強者たちを分捕り物としてわかちとる。彼が自分のいのちを死に明け渡し、そむいた人たちとともに数えられたからである。彼は多くの人の罪を負い、そむいた人たちのためにとりなしをする。」
 わたし・神は、しもべが成し遂げたことのゆえに。多くの者、強者たちを彼に分配する。しもべが敵から奪い返した贖われた者たちである。
 しもべは執りなしをする。
 イザヤは、しもべの高挙された理由を12節でまとめている。「自分のいのちを死に明け渡し」自発的な死。「そむいた人たちとともに数えられ」罪人と同一化。「多くの人の罪を負い」代償。「とりなしをする」他のだれにもできない救いのわざである。それで、主イエス・キリストは誰よりも高く上げられた。ピリピ2:9.ヘブル7:25,26。

 全てのクリスチャンは、代々の教会とともに叫ぶ。「ほふられた小羊は、力と、富と、知恵と、勢いと、誉れと、栄光と、賛美を受けるにふさわしい方です。」(黙示録5:12)。

2015년 12월 27일 메시아의 생애와 고난 두번째
 이사야 53장 6-12
  
 6절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우리는 목자를 잃은 양처럼 죄로인해 떠돌았습니다. 동사는 「헤메게 되버리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습니다. 바른 길에서 떠나 길을 잃고 있었습니다. 종이 찾아줄 때까지 헤매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전적으로 타락 된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주시지 않았다면 길을 잃은 채 였을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종에게 우리들의 모든 불의를 지우시고 개입하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을 위반하여 그 길에서 헤메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찾아나서 주신 종의 전인격이 나타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2:24-25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7절「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는 「그는 압박당했다」 라고 번역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종은 박해자에게 압박받았습니다. 그는 압박과 괴로움을 당했지만, 사실상 그가 고의적으로 자신을 비천하게 하고,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괴로움 받게 했다.」 「그는 자신의 입을 열지 않았다.」라고 히브리어는 번역됩니다. 자발적 수난을 가리킵니다.
 자발적이며, 강한 인내로 고난을 받았습니다. 자기변명이나 항의을 하려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이사야는 이것을 덧붙여 설명하기 위해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표현했습니다. 도살자 앞에있는 양과, 털을 깎으려는 자 앞에 있는 어린양은 해가 없으며 자신을 보호할 수 없습니다. 사실무근함과 강한 인내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23:9「여러 말로 물으나 아무 말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요한계시록5:6「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8절「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종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을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구어역 「그는 폭력적인 심문을 당해 끌려갔다.」 문어역 「그는 곤욕과 심문으로 끌려갔다」 영어 「그는 지옥에서 또한 심문을 당해 끌려갔다.」 곤욕, 지옥, 압박등으로 번역되고 있는 히브리어는 다른식으로 번역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해석상으로 의론이 있는 곳입니다. 「압박적인 심문으로」 「압박(방해)나 심문 없이 끌려갔다.」(공정한 심판없이) 「압박(지옥)으로부터, 또한 심문으로 그는 끌려갔다.」 
 「선지자가 종에게 일어난 육체의 구속, 또는 억압의 일을 말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이것은 진술되고 있는 심판과 관련하여 이해하지 않으면 안되는 재난, 또는 압박입니다. 박해는 율법상의 구속으로 인해 일어난 일을 말하고 있슴이 분명합니다.  
 서술된 심판은 종에게 내려진 율법상의 선고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난자가 구속되었습니다. 그것도, 특별히 그 성질에 있어서, 탄압적인 구속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그는 심문당했다고 추측합니다. 그는 고발당하고, 유죄판결을 받아 죽음에 달하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악행에 대해서는 결백한 몸이었으므로, 실제로는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는 적극적으로 올바르기 때문에, 그에게 내려진 선고는 부정한 것이었습니다.
 죄없는 자, 그가 자신이 부정한 심문을 당할것을 읽게 된 것은 대단한 충격이었습니다. 물론 이사야서의 훨씬 전에도, 이 일에 대한 암시가 있었습니다. 42절에 종이 처음으로 나타난, 그가 수행해야만 할 위대한 임무가 있으며, 그 임무가 성취되기까지는 자신이 고통을 받게될 것이라 쓰여 있었습니다. 종의 다음의 등장, 49절에는 착수된 일의 어려움에 대하여 몇 가지 지시가 있습니다. 49:4. 50장에 있어서는 가슴을 찌르는 듯한 수난이 한층 더 명확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50:6그러나 이 수난의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종의 고통의 이유가 다른 사람을 위해, 타인을 대신해 고난받게 된다는 사실, 또한 그가 이렇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불의를 그의 위에 두셨기 때문이라는 사실임이 밝혀지는 것은 53장까지 보류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놀랄만한 것은 죄없는 그가 사람들의 손에 부당하게 고통받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수난의 궁극적 원인임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여호와께서 틀림없이 우리들의 불의를 그의 위에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종의 수난은 사람들의 손에 의한 것이었음이 더욱 밝혀지게 됩니다.」 (E.J영)
 사람들이 종에게 고통을 준 것은 그들이 심판을 잘못내렸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렇지 않고, 사실무근한 사람이 부정하게 고발당해, 죄인으로 정해진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반대로 심판한 사람들이 본래 자악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어두움은 빛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종의 말씀을 듣지않고, 구세주라 믿지 않습니다. 지상으로부터 끌어가려합니다. 그렇다면 자악한 것은 그들뿐 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죄를 위해 종은 죽었습니다. 반대로 나의 죄를 위해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가 산자의 땅에서 끊어짐」 죽음에 임하도록 끌려갔습니다.

9 이사야53:9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복수)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단수)와 함께 되었도다」
 이곳에서는 종의 장사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종의 무덤은 악인들과 함께 또한, 그가 죽은 후에는 부한 자들과 함께 되었습니다. 마태복음27:59-60〔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종이 높이 들리우게 되는 것과 영광은 어떤 의미로 볼 때, 죽은 뒤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범죄자로써 장사치르려 했지만, 하나님은 종을 부한자와 함께 두셨습니다. 종의 운명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결백함에 어울리는 대접이었습니다. 불명예한 죽음 후에 고귀한 장사를 주신 이유는 그의 완벽함 결백함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종의 장사를 악인들이 계획했던 것과는 다르게 만드셨습니다.

 10절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손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종이 결백함에도 불구하고 10절에 대조가 쓰여지고 있습니다. 그를 상하게 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종의 수난의 궁극적인 원인이 하나님 자신이었음이 분명하게 밝혀지고 있습니다.
「속건 제물」은 레위기5:14-19에 쓰여있습니다. 이것은 오래된 말로 「속건제」라 불리웠습니다. 「속죄제」(속함받기위한 제사)로 구별되어 쓰였습니다. 「범과함으로 인한 제사」와 「죄를 지은것에 대한 제사」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배상할 필요가 있는」 죄인지에 따랐습니다. 그것은 배상을 하거나 발생된 잘못을 변상하거나 하는 것으로 죄인을 자유롭게하는 희생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이유로 종의 제물을 묘사하는데, 이것이 가장 적당한 단어로 선택되었습니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 것은, 화해의 제물을 묘사하는 총칭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종의 죽음, 생명의 피를 흘린 것은 죄에대한 보상, 하나님의 정의가 요구하는 배상을 하도록 의도된 희생이었습니다. 종의 죽음은 희생의 제물이었습니다. 그것은 제사장의 일을 수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수난은 자발적인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의 근심을 지고, 우리들의 슬픔을 진 자는, 자신의 뜻에 반하여 이러한 죽음을 당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타인의 손에 바쳐진 희생으로서 자신을 맡기는, 강제로 바쳐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반대로 자진하여 바친 자였습니다. 타인의 잘못을 배상하기 위해 의로운 희생을, 자기자신을 바친 의로운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제사장이었으며, 또한 허물의 제물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동물의 희생이 아니라 한사람의 인격의 희생물로써, 모세의 율법에 나와있던 희생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다른 어떤 것도 비교할 수 없는 제물이었습니다. 레위기에 나와있는 여러 종류의 희생물은 모형으로, 이것은 그 원형이 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9:26「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날은 길 것이요」종은 자발적으로 자신을 허물의 재물이 되고, 그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씨」를 보게되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승리를 얻고, 다시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씨를 보다. 그날은 길 것이라. 언제까지나 살게 됩니다. 그의 수명이 길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요한계시록1:18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종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왔습니다. 종은 성공적 결과를 맺습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요한복음19:30)

  11절「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위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종은 「보다」 「만족히 여기다」. 이 두가지 표현은 「만족하게 보다」 「풍요로운 만족함으로 보다」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종이 높이 들리우게 될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성경 중에서 가장 선명하게, 복음성명의 하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위롭게 하며」 이곳은 문법적으로 「그의 지식으로」 「그를 아는 것으로」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를 「그의 지식」으로 하면, 문법적으로, 의인의 업적이 종의 지식에 근거한 것이 되어, 전후문맥을 삭펴볼 때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대속물의 희생적 죽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를 「하나님의 종을 하는 지식」으로 본다면, 「믿음의인」의 가르침이 있는 것이 된다. 종이 수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는 것은 사람들이 그를 아는 것으로, 또는 알게 됨으로써 가능하게 됩니다.
 
12절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나∙하나님은 종이 달성한 업적으로. 수많은 사람, 강자들을 그에게 분배합니다. 종이 적으로부터 빼앗아 되찾아 온 자들입니다.
 종은 중보합니다.
 이사야는 종이 높이 들리우게되는 이유를 12절에 정리했습니다.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자발적인 죽음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죄인과의 동일화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보상「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다른 누구도 할 수 없는 구원의 업적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보다도 높이 들리웠습니다. 빌립보서2:9, 히브리서7:25,26

 모든 크리스챤은 대대에 걸쳐 교회와 함께 외칩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요한계시록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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