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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年4月12日 礼拝 説教(日本語文、韓国語文)

2015年4月12日 礼拝音声

 

2015.4.12  礼拝説教 招詞 ガラテヤ 5:22-23 ヨハネ15:9-13 「聖霊の実は愛」

序文)御霊の実は愛です。

1 「愛」のことばをめぐって

驚くべき事ですが、旧約聖書39巻の中に「神の愛」という字は、一度も出てこないのです。アダムが罪を犯した瞬間から、神様は、私たちを救いだそうとして、創世記3:15に「わたしは、おまえと女との間に。また、おまえの子孫と女の子孫との間に、敵意を置く。彼は、おまえの頭を踏み砕き、おまえは、彼のかかとにかみつく。」(原福音)の約束を語られています。以後、マラキ書まで、神の愛は当然のこととして、全文書の背後にあって知られているとして、扱われています。それが新約聖書にはいっても、「マタイ」「マルコ」「ルカ」の各福音書にも、実に「神の愛」という言葉はでてきません。初めて「神の愛」がずばり、圧倒的に書かれてでてくるのは「神は実に、そのひとり子をお与えになったほどに、世を愛された。それは御子を信じる者が、ひとりとして滅びることなく、永遠のいのちを持つたてである。」(ヨハネの福音書3章16節)です。「愛」を表す原語はアガペーということばです。このことばは、名詞、動詞、形容詞を入れて新約聖書の全巻に用いられて320回でてきます。キリスト信仰の鍵になることばです。

漢字で「愛」を使います。漢字の愛は、親子の情愛も、男女の恋愛感情も同じ言葉で表すので、神の愛を表すのには不十分です。それでも字の成り立ちは意味深いものであります。愛はもともと、夂(ち)と旡(き)と心を合わせた字です。夂は「歩き悩む」ことです。旡は「つかえる」「むせぶ」のいみで、こころがつかえる気持ちを表します。「心がつかえてゆき悩む」のです。立ち去ろうとして、後ろに心が引かれる人の姿をあらわす。そこから「いとおしむ」「おしむ」の意味を表してきました。さらに興味深いことですが日本語として古くは「愛」を「かなし」とか「めぐし」と読みました。「かなし」は、後ろの人に心を残す。「めぐし」は見苦しいということです。現在は悪い意味で使いますが、もともとは、かわいそうで見ていられない、ということです。つまり相手の状態が気の毒でほっておけない。それを考えると心がつかえてゆき悩む、悲しいというのが漢字の「愛」なのです。

 

2 神様の愛

この意味からすると、天の神様が、ご自分に似せて人格的な存在として、すばらしく創造してくださった私たちが、神様を認めず、拝まず、みことばにさからい、自分の罪の中に永遠に滅んで行こうとするのを見て、深く憐れみ、悲しくてほっておけなかったのです。

しかし神様の愛は、この意味を越えています。愛のために、御子イエス・キリストを世に送り、その十字架の身代わりの死によって救いの道を開いてくださったのでした。まさにまことの「神の愛」を示しています。

主イエス様が私たちに注がれた愛は、多く愛してとか、誰にもまんべんなくとかいった、愛の量ではありません。主イエス様が用いられた愛(アガペー)という言葉は、一方通行の愛をしめします。愛を示す他の言葉、エロース(肉の愛)は自分の方にだけ引き寄せる愛、奪う愛、自己満足だけの愛です。フィリア(親子、兄弟、姉妹の間にあり、友情の愛なども入る)という言葉は相互通行の愛、おかえしを求める愛を示します。

主イエス様は、自分で模範を示しつつ、わたしたちに「互いに愛し」合いなさいと勧められたのです。人は自分に示された愛の大きさによって、愛してくださった方のいのちを受け継ぎ、今度は自分が他の人をそのように愛することが出来るように変えられるのです。それで「あなたがたも互いに愛し合うこと」と戒められて、愛が実行できることを発見してゆくのです。弟子たちに出来ないことを主イエス様が戒められたのではありません。出来る者に変えてくださったので戒めが生かされるのです。主は言われました。「父がわたしを愛されたように、わたしもあなたがたを愛しました。わたしの愛の中にとどまりなさい。」ヨハネ15:9

主イエスの一方通行の愛をもって、相手を愛するように。互いに一方通行の愛を示し合うようにと戒めておられるのです。互いに愛し合うのだから、相互通行だと理解したら、違ってしまうのです。おかえしを求めないで、それぞれが一方通行で示されるまことの愛をあらわすのです。

 

3 聖霊が実らせてくださる愛

このような愛は、弟子たち同様に、わたしたちも生まれながらに持ってい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弟子たちとともに、私たちもまた、主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るときに「互いに愛し合う」ことが出来るいのちと恵みと愛をいただくのです。聖書の生きておられる真の神様は、主イエス様を信じた者に、新しい神の子としての誕生を与えられます。主イエス・キリストのうちにおられた聖なる霊が、信じる者のうちにも宿られることによってそうなるのです。聖霊は信じた者のうちにその実りをもたらして、宿っておられることを示されます。「御霊の実は愛、喜び、平安、寛容、親切、善意、誠実、柔和、自制です。」ガラテヤ5:22。実りの一番初めの実が「愛」です。愛は数々の実りの中で最高の位置を聖書で与えられています。コリント第一13:13「こういうわけで、いつまでも残るものは信仰と希望と愛です。その中で一番すぐれているのは愛です。」

結び)この愛は用いてみることで実っていることが分かるのです。ここが一番大切です。御霊の実である愛は行動にあらわれます。その結果、神様との関係ばかりでなく、あなたをとりまくすべての人間関係の中心に、愛がはたらき、深い満足と喜びと平安が生まれるのです。

神を愛し、隣人を愛することは一番重要なこと。

ペテロ第二の手紙 1:5−7 兄弟愛には愛を加えなさい。

 

2015 419   시편231-6   그저 감사만이

 

시편 23편은 도움을 받기위한 소원이나 슬픔의 탄원, 기도가 들어있지 않습니다. 그저 감사의 내용만이 쓰여있습니다. 찬양이 넘치고 있습니다. 이 시편은 그냥 읽고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시라 말하고 있습니다. 암송하고, 때로는 노래하는 시편입니다. 실제로 설명등을 하지않아도 훌륭한 시편인 것입니다.

 

1-3 감사만이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것은 누구일까요? 어떤 사람은 교회가 그리스도를 향해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래는 다윗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어떤 영국의 주석자는 아버지를 향해 말하고 계신 그리스도의 목소리라고도 합니다. 이 시편은 교회를 위해, 또한 목자 그리스도를 위해 노래되는 찬양으로, 성령께서 다윗에게 영감으로 노래하게 하셨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시편은 어린 아이들에게, 연장자에게, 강건한 사람,, 병중에서 죽음 가까이를 걷고 있는 자들, 또한 결혼식에서, 성찬식에서, 장례식에서도 사용되어 왔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기쁨으로 가득차, 우리들의 목자를 향한 진정한 찬양을 돌리는데 어울리는 노래입니다.

주 예수님이야말로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우리에게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주 예수님은 하늘과 땅에 있어서 일체의 권위를 부여받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로, 왕의 왕, 주의 주로써 창조자로써, 일체의 소유원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 분이 양치기로 양들을 위해 참된 사랑과 자비를 주시는 것입니다. 부족함이 있을까요? 그럴수 없습니다.

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푸른 초장∙∙∙양들을 위해 부드러운, 어린초목이 있는 목초지

∙∙∙에, 인간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 끝에 마지막 찾는 곳을 의미하는 말에서 온 단어.

누이시며∙∙∙웅크리게 하다, 눕게하다, 진을 치다

쉴만한 물가로∙∙∙「잔잔한 물」을 나타내는 히브리어의 관용구. 휴식의 의미가 들어있다. 양들은 물이 조용하게, 잔잔하게 흐르지 않으면 마실 수 없습니다.

인도하시는도다∙∙∙목자용의 한정적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목자가 마실물이 있는 곳으로 양들을 친절하게 데려가는 것을 의미하는 말.

3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피곤하고 목마를 때 목자가 데려가 준, 조용하고 맑은 물가에서 물을 마실 때 편히 쉬게 됩니다. 이것은 영혼을 회복시키고, 다시 살리게 합니다. 이것저것을 한번에 하려하지 않고, 침착하게, 평안함으로 되돌아와 회복되는 것입니다. 의의 길로 인도됩니다.

길∙∙∙문자대로의 의미는 「차의 궤도」를 가리킵니다. 「올바른 길」로 「평탄하고 평이한 길」을 의미합니다. 「의」란 기초적인 의미로 「똑바른, 평탄한」을 가리킵니다. 「똑바르게 바른목표로 달리게 궤도」 인도하시는도다 ∙∙∙ 의의 길을 걷도록「나를 향하게 한다.」라는 의미입니다.

자기이름을 위하여∙∙∙예수님은 이미 그분 자신을 모세에게 계시하고 계십니다.

 

Ⅱ  시편234-6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이 구절만큼 수많은 크리스챤에게 위로를 준 말씀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생을 살아가는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으며, 한번이 아니라 몇번이나 직면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에서는 「∙∙∙의 골짜기」와 「사망」이라는 말의 복합사로 간주되어왔습니다. 대부분의 번역은 이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깊음 음험한 암흑」이라는 단일어의 뜻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욥기28:1-3「은은 나는 광이 있고 연단하는 금은 나는 곳이 있으며 칠은 흙에서 취하고 동은 돌에서 놀려 얻느니라 사람이 흑암을 파하고 끝까지 궁구하여 음예와 우암 중의 광석을 구하되」 중의 음예와 우암의 광석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종류의 경악과 재해에 쌓여, 무덤과 같은 어둡고 음험한 고통스러운 길을 걷게 될 때도, 그는 그의 불행을 두려워하시 않는다∙∙구약문자중, 이곳에 처음으로 나오는 히브리어 명사는, 본래 복합사가 아니다. ∙∙∙체에렘이라는 동사에서 만들어졌다 ∙∙∙이곳은 가장 두려운 암흑의 명칭으로 「사망의 그림자」를 의미한다.」(구약학자 데릿치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의 원어의 순서는 「하심이라∙주께서∙나와 함께」입니다. 이곳은「내 편에」 또는 「가까이 서다」입니다. 선한목자되신 주예수님이 가까이 계시므로, 어두운 사망과 같은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갈 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라고 증언하는 것입니다. 육체의 죽음이나 또는 외과적인 대수술, 어떤 위험한 경로중에 있는 가정이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심각한 일을 경험할 때에 가장 두려워 해야 할 것은 성도의 고독입니다. 23편은 이러한 암흑의 골짜기를 통과하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을 위로해 온 것입니다. 지금 현재도 그러합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 보통의 주석자들의 의견에 의하면, 양치기가 지팡이를 두가지로 나누어 사용하는데, 이것은 다윗의 비유적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로 지팡이는, 양들을 불러모으거나 말을 듣지않을 때 벌을 주는 등, 안내역할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두번째의 지팡이는 목자자신이 의지하는 데 사용하는 것입니다. 팔레스틴지방의 근대적 목축업에 관한 연구를 한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의 목자가 두가지 지팡이를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즉, 우리들이 그림 등에서 보는 전통적인 양치기용의 길고 굽어진 지팡이는 들짐승을 물리치기위해 사용하는 무거운 목재의 굵은 막대기입니다.

일본어 역은 「지팡이와 막대기」로 쓰고 있습니다. 사전을 보면, 「막대기」는 소나 가축을 벌주기 위해 사용하는 지팡이나 막대기이라 나오고 있습니다. 이곳의 「막대기」의 의미는 순종적인 양의 친절한 지도와, 목초를 먹는 것들의 징벌에 사용하는 양에대한 목자의 주의를 가리킵니다.

「지팡이」는 「기대다」 「자신을 지키다」의 동사와 관계된 명사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양을 위로하는 어떤 좋은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 받는 능력의 표현이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안위하시나이다」 안위∙∙깊은 동정의 탄식, 상대를 이해하고 갖게되는 애정이라는 사상을 포함한다. 그리스도를 선한 목자라 한다면 우리들은 그의 수많은 동정의 예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나사로의 무덤앞에서 눈물을 흘리신 예수님. 히브리서4:15「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5 주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머리에 바르셨으니 잔이 넘치나이다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중, 사막에 펼쳐진 상은 수많은 그리스도 순교자들에게 있어서 그들의 죽음의 순간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23편을 순교자용의 절호의 시편이라고 말했습니다. 수많은 순교자가 그 순간, 이 시편을 노래했습니다.

문어역의 「상」은, 히브리어로 음식을 두기위해 지상에 깔아놓은 가죽이나 천을 말합니다. 이곳의 동사 「베푸시고」는, 성전에서 제사장이 희생제물에 사용하는 장작등을 준비하는 것을 가리키며, 또한 전투를 위해 군대설비를 말할때도 사용되는 말입니다. 이곳에서는, 손님이나 가족을 위해 식탁을에 음식을 준비하는 것에 대한 보통의 표현입니다. 목자는 주인이며, 선한목자가 그의 양들을 먹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노여움에 가득찬 적들에 대하여 우뚝 서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훌륭한 연회장입니까? 그렇습니다. 크리스챤의 생활은 언제나 적대자들중에서 영적인 연회(예배. 성찬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위험한 순간속에서도, 그리스도는 우리들 앞에 훌륭한 식사를 준비해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이것이 다윗에 해당하는 일이라면, 다윗은 이미 선지자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상태입니다.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그도 또한 기름부음을 받은 왕입니다. 만일, 이것이 교회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우리도 또한 요한일서2:27「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안에 거하라」 이것은 선한 목자가 부어주는 사랑을 말합니다. 이곳에서는 음식은, 예수님으로부터의 교제와 기쁨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잔이 차고 넘칠정도입니다.

 

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정녕」 반드시라는 의미. 의심의 여지가 없는 확실함을 가리킵니다. 「선하심과 인자하심」 문어역「은혜와 연민」 히브리어로는「토브 선과 헤세즈 자애」 전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받게되는 축복, 후자는 연민, 자애.

구약성경중에서 최대의 단어중 하나.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대우를 가리킵니다. 또한 사람이 마땅히 취해야 할 일을 가리킬때 쓰이는 말. 마가복음10:37 선한 사마리아인이 나타낸 자비의 현애를 가리킨다. 목자의 사랑은 「나를 따르리니」 하나님의 은혜와 자애가 우리 일생에 언제까지나 함께 합니다.

「나의 평생에」 자신의 지금까지의 생애를 생각해봅시다. 좋은날이 있으면, 나쁜날이 있습니다. 병, 실망, 실패, 죄로 괴로워 했던 날들. 목자는 배려를 갖고, 모든 날들에 그의 은혜와 자애를 곁에서 주고 계셨음을 확신시켜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쫓는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잃어버린 우리를 쫓아 찾아내 주신 것입니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다윗은 여호와의 집이라는 말을 예배장소로 가리켰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호와와 함께사는 교제의 장소였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여호와의 집은 하늘에 준비된 집입니다. 주예수님의 약속을 믿습니다.

 

맺음)  요한복음10:11

주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스가랴와 시편의 예언대로 은혜와 자비와 양육을 오늘도 넘치게 우리들에게 부어주십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서 삼일만에 부활하시고, 40일우 승천, 다시 오시는 것에 대하여 선한 목자로 있어주실것입니다. 이런 주의 양된 것에 감동과 깊은 감사를 가지고 순종하며 걸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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