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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年7月12日 礼拝 説教(日本語文、韓国語文)

2015年7月12日 礼拝音声

 

2015年7月12日  詩篇27篇 「私の光、私の救い。」

 

序文)私たちがただ一つのことを、主イエス・キリスト様にねがうようにと

 求められたら、いったい何をもとめることでしょうか? 詩人ダビデは、自分の

 願いを歌っています。いのちの日の限り『主の家に住むこと』です。詩篇27

 篇で、ダビデは礼拝と祈りと主の啓示されたみことばへの傾聴を歌っています。

 一般論ではなくて、「私の」と信仰告白しています。自分を取り巻く周りにたと

 えどんなことが起ろうとも、主は私しにとって光であり、救いです。

 全体は明確に二つに分かれます。1—6節 信仰の歓喜と確かさに開かれた精

 神と7—14節 突如おそう恐怖、不安、神の援助を求める叫び・信仰の緊張が

 示されているのです。

Ⅰ 1-6節 「私の」と告白する信仰の確かさ

 1ダビデ個人の主にたいする堅固な確信が、「主に」ついて15ヶ所ぐらい言及

  してあります。1節「主は、私の光、私の救い。だれを私は恐れよう。主は、

  私のいのちのとりで。だれを私はこわがろう」。4節「私は一つのことを主に

  願った。私はそれを求めている。私のいのちの日の限り、主の家に住むこと

  を。主の麗しさを仰ぎ見、その宮で、思いにふける、そのために。」

5節「主が、悩みの日に私を隠れ場に隠し、その幕屋のひそかな所に私をかくまい、岩の上に私を上げてくださるからだ」。6節「主に、ほめ歌を歌おう」。

7節「聞いてください。主よ。私の呼ぶこの声を。私をあわれみ、私に答えてください。」8節「主よ。あなたの御顔を私は慕い求めます。」9節「私の救いの神」。10節「主が私を取り上げてくださる」。11節「主よ。あなたの道を私に教えてください。」13節「主のいつくしみを見ること」14節「待ち望め。主を。雄々しくあれ。心を強くせよ。待ち望め。主を。」

 

2 1節「私の光」の「光」は、ほとんどすべての積極的なことの自然から取った象徴です。真理とか善、喜び、生命力などを光と言って表現します。ここでは、「恐れ」や、悪の勢力に対する解答としての「光」です。聖書は「恐れ」や悪の勢力について過小評価していません。過大評価もしていません。いのちをおびやかすものは、「恐れ」や悪の勢力ですから、いのちを守るために「とりで」が必要なのです。詩人にとって主こそはとりでなのです。すべてのすべてです。人生で私たちが直面する、「もし・・だったら」にたいして、ダビデが想定したことがらは、

2節「 悪を行なう者が私の肉を食らおうと、私に襲いかかったとき、私の仇、私の敵、彼らはつまずき、倒れた。」3節「 たとい、私に向かって陣営が張られても、私の心は恐れない。たとい、戦いが私に向かって起こっても、それにも、私は動じない。」ダビデが直面した実例。「サウルは山の一方の側を進み、ダビデとその部下は山の他の側を進んだ。ダビデは急いでサウルから逃げようとしていた。サウルとその部下が、ダビデとその部下を捕らえようと迫って来ていたからである。そのとき、一人の使者がサウルのもとに来て告げた。急いで来てください。ペリシテ人が、この国に突入してきました」(第一サムエル23:26-27)。エリシャが直面した実例。「神の人の召使が、朝早く起きて、外に出ると、なんと、馬と戦車の軍隊がその町を包囲していた。若い者がエリシャに、ああ、ご主人さま。どうしたらようのでしょう。といった」(列王第二6:15)。恐ろしい戦い、その恐怖に直面した場合でも、神の聖徒たちは、それらを克服することができる。主がそばを歩む光であると同時に、追跡する者たちを防ぐ手で触れることのできない防御壁である。あらゆる悪から守ってくださるからである。

 

3 ダビデは答えます。4節 私は一つのことを主に願った。私はそれを求めている。私のいのちの日の限り、主の家に住むことを。主の麗しさを仰ぎ見、その宮で、思いにふける、そのために。

 戦いに明け暮れたダビデ王が、願っていたことは、常に勝利することでもなく、武器を新しく貯えることでもなく、軍隊の増強でもない。それは、実に意外と言えば意外であるが、主との常なる交わりであり、そのためには主の家に住むことである。たえることのない、主の臨在をこそ求め願っていた。

 主イエス・キリスト様との交わりを求めることを人生の唯一の目的としているからだ。「たとえ・・・だとしても」、私は5 節 それは、主が、悩みの日に私を隠れ場に隠し、その幕屋のひそかな所に私をかくまい、岩の上に私を上げてくださるからだ。6 節 今、私のかしらは、私を取り囲む敵の上に高く上げられる。私は、その幕屋で、喜びのいけにえをささげ、歌うたい、主に、ほめ歌を歌おう。

 暗やみ、死、遺棄、恐れ、弱さ、危険で、よこしまな敵、軍勢の侵略、戦争、待ち伏せ、患難、屈辱、不安。これらの恐怖がダビデを取り巻くと予想されていた。その中で、ダビデはひたすら主の事のみを考えるために、自分を励まして立ちつづけた。すべて外部の危急や、内なる恐怖に対する彼の対処法は、いよいよ深く神のかくれ場に突き入ることであった。主との人格的まじわりとご意志に夢中になりたい。これこそダビデの人生の最優先事項であった。そして私たちの最優先事項である。

 

Ⅱ 7-14節 信仰の緊張

1 1-6節の信仰の確信から、突然7-14節の恐怖と危急があります。

 この叫びは深く一瞬です。彼は主のみ声を呼びさまします。そしてそれを聞いて立ち直っています。

[7節 聞いてください。主よ。私の呼ぶこの声を。私をあわれみ、私に答えてください。] 私たちの信仰の緊迫は、よく大きな信仰の確かさの後におこります。ダビデは今や、神がみ顔を隠して去ってしまわれないかと深刻に案じています。自分のすべての敵のまっただ中で、自分をおみすてにならないでしょうかと、深刻に案じています。ダビデの敵は外敵だけではなく、家族もいました。義理の父サウルや、実の息子アブシャロムでした。家族と剣をまじえるのです。同胞相打つ争いは、彼にとって外敵よりも難しく、心はにぶり、剣をはなれて身を隠しました。平静ではいられないのです。ダビデはそのような苦悩、錯乱の中から信仰に目覚めて、自分の心に命じます。主が言われるはずのことばを、自分でいいます。「わたしの顔を、慕い求めよ。」

 

2 10節「私の父、私の母が、私を見捨てるときは、主が私を取り上げてくださる。」ついに父の愛、母の愛も尽き、見捨てるほどの事が起こる。イザヤも後にこの言葉を吐いています(イザヤ49:15)。「女が自分の乳飲み子を忘れようか。自分の胎の子をあわれまないだろうか。たとい、女たちが忘れても、このわたしはあなたを忘れない。」起こりえないことがおこるのです。聖書は人間の愛を絶対化していません。神聖視していません。家族関係における愛の崩壊が起こってもなお、主イエス・キリストの愛と守りは究極的に永遠的につづきます。父なる神の愛、母なる教会のかしらである、主の愛に包まれています。それで、詩人は祈ります。

 11 節 主よ。あなたの道を私に教えてください。私を待ち伏せている者どもがおりますから、私を平らな小道に導いてください。

 主のご指導とご教示を求める祈りがつづいています。私の敵が私たちを見張り、躓くのを待っているのですから。敵たちのおもいのままにならぬようにしてください。12節 私を、私の仇の意のままに、させないでください。偽りの証人どもが私に立ち向かい、暴言を吐いているのです。

 

3 13 節 ああ、私に、生ける者の地で主のいつくしみを見ることが信じられなかったなら。——

 ダビデは信仰の戦いがもたらした緊張の中から、思わず感嘆をあげています。

結びは14節にあるように、主を待ち望むことを確信しつづけるしかありません。他に何かあるでしょうか。ありません。待ち望め。主を。雄々しくあれ。心を強くせよ。待ち望め。主を。

 

結び)深い海の底は、その表面がいかに嵐にもまれ、波だっていても、静かです。

 大空は、台風が吹き荒れていても、更に成層圏は、全く関係がないほどに平静です。

 高々度の成層圏を飛行機が飛ぶときは、眼下に嵐と台風の目が見えるほどでも安泰

 です。信仰生活は、時として歓喜と確信に満ちますが、時として恐怖におそわれ、

 不安にさいなまれます。しかしそれも一時です。

全能の神の恵が信者の基盤だからです。み父の永遠の愛こそ、わたしたちの

変わることのない希望なのです。人生の嵐や試練の中で、わたしたちの弱い信仰と気分は浮き沈みしますが、しかし神の恩恵的な選びと保持との事実は決して変わりません。

 ヨハネ10:27-30「わたしの羊はわたしの声を聞き分けます。またわたしは彼らを知っています。そして彼らはわたしについて来ます。わたしは彼らに永遠のいのちを与えます。彼らは決して滅びることがなく、また、だれもわたしの手から彼らを奪い去るようなことはありません。わたしに彼らをお与えになった父は、すべてにまさって偉大です。だれもわたしの父の御手から彼らを奪い去ることはできません。わたしと父とは一つです。」

 

2015 712    시편27  나의 나의 구원

서문)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단 한가지 소원을 구할수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구할까요? 시인 다윗은 자신의 소원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계속되는 한 『여호와의 집에 거하는 것』입니다. 시편27편에서 다윗은 예배와 기도와 여호와로부터 계시된 말씀에의 경청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일반론으로써의 고백이 아니라, 「나의」라는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어떤일이 일어날찌라도 여호와는 나에게 있어서 빛이며 구원이십니다.

글 전체는 두가지로 갈라져 있습니다. 1-6절, 믿음의 기쁨과 확실함으로 열린 정신과,  7-14절 갑자기 덮쳐온 공포, 불안, 하나님의 구원을 구하는 외침∙믿음의 긴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Ⅰ 1-6나의라고 고백하는 믿음의 확실함

1다윗 개인의 여호와에 대한 강건한 확신이 「여호와께」라는 단어를 통해 15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1절 「여호와는 나의 빛이여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4절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속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5절「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비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 6절「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7절「여호와여 내가 소리로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8절「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9절「나의 구원의 하나님」 10절「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11절「여호와여 주의 길로 나를 가르치시고」 13절「여호와의 은혜 볼 것」 14절「너는 여호와를 바랄찌어다 강하고 답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찌어다」

1절 「나의 빛」의 「빛」은 대부분의 적극적일의 자연에서 따온 상징을 말합니다. 진리나 선, 기쁨, 생명력 등을 빛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곳에서는  「두려움」이나, 악의 세력에 대한 해답으로써의 「빛」입니다. 성경은 「두려움」이나 악의 세력에 대하여 과소평가를 하지 않습니다. 과대평가를 하지도 않습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두려움」이나 악의 세력이므로,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피난처」가 필요합니다. 시인에게 있어서 피난처는 여호와입니다. 시인의 전부인 것입니다. 삶중에서 우리가 직면하게되는 「만일…라면」라는 상황에 대하여, 다윗이 생각한 것은 2절「나의 대적, 나의 원수 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3절「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칠찌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찌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 다윗이 직면한 실례 「사울이 산 이편으로 가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산 저편으로 가며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급히 피하려 하였으니 이는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고 잡으려 함이었더라 사자가 사울에게 와서 가로되 급히 오소서 블레셋 사람이 땅을 침로하나이다」(사무엘상 23:26-27) 엘리사가 직면한 실례 「하나님의 사람의 수종드는 자가 일찌기 일어나서 나가 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을 에워쌌는지라 그 사환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열왕기하6:15) 생명을 위협하는 두려운 전투, 그 공포에 직면하는 경우에도 하나님의 성도들은 그것을 극복할 수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그 곁을 걸어가 주시는 빛이 되시는 동시에, 뒤를 쫓는 자들을 막으셔서 덤비지 못하도록 방어벽이 되어 주십니다. 모든 악으로부터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대답합니다. 4절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수많은 전투를 해온 다윗왕이 소원한 것은 언제나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무기를 새롭게 준비하는 것도 아니며, 군대의 증강도 아니었습니다. 의외라고 하면 의외라 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것은, 여호와와 언제나 교제속에 있으며, 그것을 위해서는 여호와의 집에 사는 것이었습니다. 끊임없이 여호와의 임재만을 구하며 기도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구하는 것을 인생의 유일한 목표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 일찌라도」, 5절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 6절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두른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어두움, 죽음, 유기, 두려움, 연약함, 위험으로 부정한 적, 군대의 침략, 전쟁, 매복, 환난, 굴욕, 불안. 이러한 두려움이 다윗을 둘러싸고 있을거라 예상됩니다. 그런 중에도 다윗은 여호와만을 생각하기 위해 자신을 격려하고 굳게 서 있었습니다. 외부로부터의 모든 위험이나, 내적인 공포에 대한 그의 대처는 여호와께로 깊이 숨어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와 인격적으로 교제하며, 그분 마음에 젖어있기를 바랬습니다. 이것은 다윗 인생의 최우선 항목이었습니다. 또한 우리들의 최우선 항목이기도 합니다.

Ⅱ 7-14  믿음의 긴장

 1-6절의 믿음의 확신으로부터 갑자기 7-14절의 공포와 위급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외침은 깊으며 한 순간입니다. 그는 여호와의 응답만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듣고나서 다시 일어서게 됩니다.

[7절 여호와여 내가 소리로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우리들 믿음이 긴박할 때에는 나중에 보다 커다란 믿음의 확실함이 일어납니다. 지금 다윗은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워 떠나시지는 않을까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모든 적들의 한가운데에 두고 버리지는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적은 외부로부터의 적만이 아니라, 가족에게도 적이 있었습니다. 장인인 사울이나, 아들 압살롬입니다. 가족과 칼을 겨루고 있었던 것입니다. 동포를 상대로한 싸움은 그에게 있어서 외적보다도 어렵고, 마음이 무뎌져, 검을 버리고 몸을 숨겼습니다. 평정한 마음으로는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다윗은 그러한 고민, 착란중에서 믿음에 눈을 뜨고 자신의 마음에 명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실 말씀은 자신에게 명합니다. 「내 얼굴을 찾으라」

 10절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아버지의 사랑, 어머니의 사랑도 사라져, 버림받게 되는 사태가 일어납니다. 이사야도 후에 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49: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을 혹시 잊을찌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사랑을 절대화하지 않습니다. 신성시하지도 않습니다. 가족관계에서 사랑의 붕괴가 일어날찌라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보호는 적극적으로 영원히 계속됩니다. 아버지되시는 하나님의 사랑, 어머니되시는 교회의 머리되신 여호와의 사랑에 싸여 있습니다. 때문에 시인은 기도합니다.

 11절 여호와여 주의 길로 나를 가르치시고 내 원수를 인하여 평탄한 길로 인도하소서

 주의 인도와 계시를 구하는 기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적들이 나를 지키며, 넘어질것을 기다리고 있으므로. 적들의 원하는 대로 되지 않도록 해주시옵소서. 12절 내 생명을 내 대적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위증자와 악을 토하는 자가 일어나 나를 치려 함이니이다

 13절 내가 산 자의 땅에 있음이여 여호와의 은혜 볼 것을 믿었도다 – 다윗은 믿음의 싸움의 긴박한 상황에서도 무의식 중에 감탄합니다.

맺음은 14절에 있는 것처럼, 주를 기대하는 확신이 계속됩니다.

다른 어떤것이 있을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바랄찌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찌어다.

 

맺음) 깊은 바다는 그 표면이 커다란 폭풍에 말려 파도가 치더라도 바다속은 평정합니다. 하늘은 태풍이 불어 바람이 심할찌라도, 그 위의 성층권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처럼 평정합니다. 비행기가 높은 성층권을 날때, 폭풍이나 태풍의 눈이 보일정도로 대단히 평안합니다. 믿음생활은, 기쁨과 확신에 가득차기도 하지만, 때로는 공포에 둘러싸여 불안으로 괴로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 뿐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믿는자들의 기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영원하신 사랑이야말로 우리들의 변함없는 소망인 것입니다. 인생의 폭풍이나 시련중에 우리들의 연약한 믿음과 기분은 가라앉게 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의 선택과 보유의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10:27-30「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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