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年3月29日 棕櫚の日曜日 マタイ26:47-68 「イエス様逮捕と審判」
序)主がオリーブ山のゲッセマネの園で、十字架への心そなえを完了し、その杯を飲み干すために心から神に従う決断をされたとき、主を裏切る者・ユダがやってきました。イエス様は、[今はあなたがたの時です、暗やみの力です、]と言われました。しかし、その姿勢の中には敗北者でなく、勝利者イエスの姿を見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
Ⅰ イエス様 逮捕
1 ユダの裏切り 26:47-50
暗やみの中を、イエス逮捕にむかった最高議会の人々、すなわち、祭司長、宮の守衛長、ユダヤの長老たち、群衆たちは、あらかじめ手筈をととのえたとおり、ユダによる裏切りの手順にしたがってまちがえることなく、主イエスの前に到達しました。「12弟子のひとりのユダ」が先頭に立っていた。マタイの書き方には深い悲しみと、憤りがこもっているのです。ユダは最後の晩餐の席から途中で退席し、自分の計画を実行に移しました。最高議会の人々は剣や棒をもってきました。ヨハネの福音書によると一隊の兵士たちも来たのです。裏切りの合図は「口づけ」でした。「私が口づけをするのが、その人だ。その人を捕まえるのだ。」とユダは示し合わせていました。
現場に着き、ユダはイエスを認めると、挨拶の接吻をしようとしました。「先生。お元気ですか」ユダの口づけは、単なる挨拶以上の、幾度も、幾度もしたというほどの表現で書かれています。ギリシャ語では愛する者が愛する者にする接吻、幾たびも、幾たびもする接吻を意味します。この人だ、まちがえるなよ、といった意味のこもったことでありました。ルカの福音書では、イエス様は「ユダ。口づけで人の子を裏切ろうとするのか」と言われたとあります。イエスは人に出しぬかれるようなお方ではありません。一切をご存知で十字架に向われたのです。ユダの意図は暴かれました。主イエスに敵対する者や、裏切る者たちが、鄭重熱烈な接吻に類する、何らかの「偽装工作」により行動にでるという、恐ろしい警告がここに記されているのです。主はそのようなものに、その犯そうとしている恐ろしい罪をはっきりと指摘して悟らせ、止めさせようとされました。ユダの懸命な演技も、真実な主の前には、むなしい茶番劇です。主はユダの永遠の運命の為に配慮し、案じておられました。わたしたちがする主イエスヘの愛の信仰告白はいかがでしょうか。
2「やめなさい。それまで。」26:51-54
イエスのそばに立っていたひとりが、剣を抜いて大祭司のしもべに撃ちかかり、その耳を切り落とした。ルカの福音書では事の成りゆきを見て、弟子達が「主よ、剣で撃ちましょうか。」と言って、その中の一人が、実際に大祭司のしもべに撃ちかかって、右の耳を切落としたと書かれています。血気にはやって、主の返事を聞くいとまもなく切りかかりました。ペテロであったと他の福音書にあります。主はすぐに制されました。「やめなさい。それまで。」剣をおさめよ。それ以上エスカレートすることを禁じられ、同時に、切られたしもべをすぐに治してやりました。公務執行妨害、と傷害致死罪などの理由でペテロが逮捕され、また、主イエスがそれを止めなかったと言い掛かりを付けて、反乱の頭であると犯罪人あつかいされることを、主は拒否されました。自分の罪のために十字架にかけられる危険性が、ペテロの血気にはやった行動はもたらすところでした。イエスは無罪のままに裁判にかけられ、十字架にかか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した。また、「あなたがあたえてくださったものを一人もわたしは失わなかった」ということばが成就するためでした。主は始めから無抵抗、無罪のままで逮捕される積りであったのです。それは、人の罪ゆえにであって、私たちの罪の為の十字架であることをはっきりする必要があったのです。
3 今はあなたがたの時、暗やみの力です。26:55〜56節
「まるで強盗にでも向かうように、剣や棒を持ってわたしを捕えに来たのですか。 わたしは毎日、宮であなたがたといっしょにいて、教えていたのに、あなたがたは、わたしを捕えなかったのです。しかし、こうなったのは聖書のことばが実現するためです。」イエスのことばは、逮捕の不当性を告発するものでした。犯罪人のように逮捕されようとしていましたが、実際は白昼堂々と逮捕出来ず、毎日宮でいっしょにいる間は手もだせなかった。そしてまるで彼が犯罪人であるかのように夜に、暗やみに乗じて、お金で釣った裏切り者を用いてやってきた。宮で連日論争してきたのに、逮捕できるような過失、罪を発見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まさに今夜の逮捕は、暗やみの力である。いかにも、イエスが強盗であるかのように装わないと逮捕できなかった。さらに、それによって、バラバよりも強暴なイエスを演出して、エルサレムの人々や、ローマの官憲にアピールするための悪意がみちていた。
主は「しかし、今はあなたがたの時です。暗やみの力です。」(ルカの福音書22:53)と言われたと書かれています。この暗黒の権力、サタンの権威にしばらくまかせ、ご自分が逮捕されるのを良しとされた。このような時は、弟子たちの信仰が切り崩され、くらやみの支配に弟子たちがひきずりこまれかねない危険な時です。ペテロは大祭司のしもべに切かかるよりも、自分の信仰に切りかかり、主イエスから自分を引き離そうとする悪の力にたいして戦うべきだったのです。これらの背後に、救い主の働きの一切について聖書の預言実現がからんでいました。神の救いの計画の成就と、神のご経倫の中での、暗黒の権威のしばしの時をはっきりとしめしておられる。これらの終には、暗黒の力は、徹底的に滅ぼされ、神の栄光のみが輝くにいたる歴史経過をたどるのです。
わたしたちの今、というときは、暗やみの力に支配された時でしょうか、それとも、イエスさまのようにすべてをみこした、神の時にたっているでしょうか。
56節「そのとき、弟子達たちはみなイエスを見捨てて、逃げてしまった。」
弟子達は、これらの出来事に耐えられなくなりました。イエスと同じように自分たちも逮捕されるのを恐れて逃げ去ったのです。あの豪語していたペテロも勇気をくじかれて一目散に逃げた。マルコ福音書には、若ものが逃げたことが記されています。彼はマルコ自身のことではないかと言うのが通説です。他の福音書には記されていないのです。とするとマルコ福音書の著者マルコは、主の逮捕に関する事件を目撃していたことになります。この恥ずかしいエピソードをわざわざ本文に書き込んだのは、主を信じてからも彼の生涯で忸怩たる事柄であったのでしょう。
主のみ、ゲッセマネでの祈りの勝利に立って、終始変わらず毅然として進んでおられます。祈りよって勝利したもののみ、神のわざをおしすすめ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日々の信仰生活のために、導きと力を求めて、神の時をわきまえる者となりましょう。
Ⅱ 26:57〜68 「 審 判 」
イエス様は十字架刑までに裁判を6回も受けました。ユダヤ教による裁判は3回で、前大祭司アンナスの家(ヨハネ18:12、24)現大祭司カヤパとサンヒドリン議員たちの前で(マルコ14:53-56)夜明け直後の公式法廷(ルカ22:66-71)でした。ローマ帝国の権力による裁判も3回ありました。それらは総督ピラト(マタイ27:1-6)ガリラヤの国主ヘロデ・アンテパス(マタイ27:7-12)総督ピラト(マタイ27:13-25)です。今朝の場面はカヤパとサンヒドリン議員の前です。主イエス・キリスト様のメシヤであることの証言に注目しましょう。
1 裁く側の生き方
57節 イエス様を裁いたユダヤ人の法廷は、サンヒドリンといいました。ユダヤの国会であると同時に、最高裁判所でした。構成人員は有力長老、律法学者、パリサイ人、サドカイ人たち71人でした。ユダヤの政治上、宗教上の広範囲にわたり権力を行使していました。ただローマ皇帝の支配下にあったため、彼らは死刑を宣告する権限は有りませんでした。
彼らは自分たちの宗教の敵として、イエス様を死刑にするべく訴えるために、ローマの法律で裁いてもらおうとしたのです。彼らはすでに決定していることがらに基づいてそれを実行に移すための口実を見つけようとしました。そのためにはあらゆる手段を用います。はじめに結論がありました。このやり方は不法でした。
59〜62節 そのために主イエス様に不利な証拠を、次々と偽証によって集めました。その結果は不成功に終わりました。偽証は、主イエス様が沈黙しているだけで次々と敗れました。彼らは全く罪がない者を無視することによって、ことを為し遂げたのです。事実や真理を無視する罪がありました。
64節 大祭司の質問にイエス様は大胆に自己証言をしました。大祭司は罪に定める理由を発見しました。神様を冒涜した罪です。これは大祭司が話しのもっていき方で自分の思う方へ誘導尋問したのです。死刑に値する罪として、ユダヤ人には神を冒涜することだけで十分でした。裁判は異常でした。弁護人もいなく、夜行われ、告訴人は証拠において一致できませんでした。死刑の宣告は裁判の翌日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ルールだったのに、彼らユダヤ人たちはその場でしました。まことに主イエス・キリスト様は不法の者の手によって裁かれたのです。
2 裁かれる側のイエス様
① 主イエス様の立場 不法に対しては沈黙あるのみでした。自己弁明をしていません。不当な批判については黙殺しています。イザヤ53:7「 彼は痛めつけられた。彼は苦しんだが、口を開かない。ほふり場に引かれて行く小羊のように、毛を刈る者の前で黙っている雌羊のように、彼は口を開かない。」
② その上で必要な時には真理に対してはっきりした証言をしました。64節。主は答えます。「私はそれです。」自分はほむべき者の子・神の子であり、キリスト・メシヤである。さらに「あなた方は人の子が力ある者の右に座して天の雲に乗って来るのを、あなたがたは見るはずです。」
イエスが用いた「人の子」という称号の背後には、ダニエル書7:13の人の子の概念があることが明らかであり、また同時に苦難と復活に関する言及の背後には、イザヤ書における「苦難のしもべ」の思想があることも明らかです。イエスは「人の子」という称号の中に王としての権威を持ったダビデ的メシヤの概念と、審判者としてのダニエル的人の子の概念と、イザヤ的苦難のしもべの概念を盛り込むことによって、当時のメシヤ観には見られない独自のメシヤ観を提示したと言うことができる。」(新聖書辞典)
これは裁いている者にとって、イエスが神の子・キリストであることが「嘘」ならば、冒涜罪になるけれども、「本当」であるならば、彼らが、神様を冒涜したことになるのです。もっともおそろしい神の裁きにあうという所に、彼らは追いやられたのです。彼らの運命は、裁きの座に着かれたイエス・キリストを迎えるという恐ろしい警告をここで受けたのです。
イエス様は、ご自分の性質と働きに関する限りは沈黙しませんでした。確信を持ってお答えになりました。裁く者たちを神様の前に立たせたのです。
③ 67節 神様のために人々から暴力をふるわれ、憎まれることも避けないで、忍従された主の姿をみます。主はこのつばき、こぶしを受けることにより、メシヤとしての証を立てられました。「イザヤ50:5-6。53:7。」ここに主が救い主であることが沈黙と告白と忍従において、はっきり全聖書と行いから証言された。
結び)主の歩まれた道を、わたしたちも、主からいただいた新しい命を持って歩みつづけましょう。
「信仰の戦いを勇敢に戦い、永遠の命を獲得しなさいあなたはこのために召され。また。多くの証人の前で立派な告白をしました。私はすべてのものにいのちを与える神と、ポンテ・ピラトに対してすばらしい告白をもってあかしされたキリスト・イエスの御前で、あなたに命じます。私たちの主イエス・キリストの現れの時まで、あなたは命令を守り、傷のない、非難されるところのない者でありなさい。その現れを、神はご自分のよしとする時に示してくださいます。神は祝福に満ちた唯一の主権者、王の王、主の主、ただひとり死のない方であり、近づくこともできない光の中に住まわれ、人間がだれひとり見たことのない、また、見ることのできない方です。誉れととこしえの主権は神のものです。アーメン。」(テモテ第一の手紙6章12〜16節)
2015년 3월 29일 종려주일 마태복음 26:47-68 「예수의 체포와 심판」
서문) 예수님께서 감람산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향해 마음을 준비하시고, 그 잔을 다 마시기 위해 하나님께 진정으로 순종할 결심을 하셨을 때, 배반자 가롯유다가 다가왔습니다. 예수님은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두움의 권세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모습은 패배자가 아닌 승리자 예수의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Ⅰ 예수님 체포
1 가롯 유다의 배반 26:47-50
한밤중에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 향한 최고의회의 사람들, 즉, 제사장, 성전의 수위장, 유대의 장로들, 군중들은 사전에 준비한대로 가롯유다의 배반을 이용하여 주 예수님앞에 도달했습니다. 「열둘 중에 하나인 유다」가 그들 앞에 서있었습니다. 마태가 기록한 내용에는 깊은 슬픔과 분노가 들어있었습니다. 가롯유다는 최후의 만찬 도중에 뛰쳐나가, 자신의 계획을 실행으로 옮겼습니다. 최고의회 사람들은 검과 몽치를 들고 왔습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일대의 병사도 같이 왔다고 쓰여있습니다. 배반자의 사인은 「입맞춤」 이었습니다.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라. 그를 체포하라」라고 유다는 알려준 것이었습니다.
현장에 도착한 가롯유다는 예수를 찾아 인사의 입마춤을 하려 했습니다. 「선생이여, 안녕하십니까?」 유다의 입마춤은 단순한 인사이상으로 몇번이나 반복했다는 표현으로 적혀있습니다. 그리스어에서는 사랑하는 자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입맞춤은 몇번이나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사람이다! 틀림없도록. 이라는 의미가 들어있던 것이었습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라고 말씀하셨다고 쓰여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에게 당할만한 분이 아니십니다. 일체의 모든 일을 알고계시면서 십자가에 향하신 분이십니다. 유다의 사인은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을 적대하는 자나 배반자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정중한 입맞춤으로 「위장공작」한다는 무서운 경고가 이곳에 기록되어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그들이 저지르려하는 엄청난 죄를 분명하게 지적하시고, 깨닫게 하시며 멈추게하려 하셨습니다. 가롯유다의 필사적인 연기도 진실한 예수님 앞에서는 허무한 것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가롯유다의 영원한 생명을 배려하시고 알고계셨습니다. 우리들의 예수님에 대한 사랑의 신앙고백은 어떠한 것입니까?
2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26:51-54
예수님과 함께 있던 자 중에 하나가 손을 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렸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그 일에 대하여 제자들이 「주여 우리가 검으로 치리이까」 라고 말하며, 그중에 한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오른편 귀를 떨어뜨렸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혈기로 저지른 것이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 이 사람은 베드로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제재하셨습니다.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집에 꽂으라. 더이상 사태가 나빠지는 것을 금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해 주셨습니다. 공무집행방해, 상해치사죄 등의 이유로 베드로가 체포되고, 예수님께서 그것을 멈추게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붙여 반란의 두령이라는 범죄자취급 받게될것을 예수님은 거부하셨습니다. 베드로의 혈기로 저지른 행동으로인해 예수님이 자신의 죄때문에 십자가에 달리게 될 위험이 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죄없는 상태로 십자가에 달리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또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삽나이다」라는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무저항, 무죄의 몸으로 체포당하실 작정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죄로 인한 것으로, 우리들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것을 분명하게 하실 필요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3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두움의 권세로다 26:55-56절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예수님의 말씀은 부당한 체포를 고발하는 것이었습니다. 범죄자처럼 체포당하셨지만, 실제로 그들은 밝은 대낮에 예수님을 체포하지 못하고, 매일 성전에서 함께 있을 때에는 손을 대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마치 범죄자인 것처럼, 밤에 어두움을 이용해, 돈으로 산 배반자를 이용해 다가온 것이었습니다 성전에서 매일처럼 논쟁해왔지만, 체포할만한 과실이나 죄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오늘밤의 체포는 어두움의 세력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강도인 것처럼 위장하지 않고는 체포할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이것으로 바라바보다 횡포한 예수를 연출해 예루살렘 사람들이나 로마 관헌에게 보이려는 악의가 가득차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두움의 권세로다」(누가복음22:53) 라고 말씀하셨다고 적혀있습니다. 이 암흑의 권력, 사탄의 권위에 잠시동안 맡기시고, 그분 자신이 체포당하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이때는 제자들의 믿음이 허물어지고, 어두움의 지배에 제자들이 끌려다녀 곤궁에 빠져버리는 위험한 순간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대제사장 종의 귀를 자르는 것보다 예수님과 자신을 떨어뜨리려는 악의 세력에 대항하여 싸워야 했습니다. 이것들의 배경에는 구세주의 일하심에 대하여 성경의 예언실현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의 성취와 하나님의 경륜속의 잠시동안의 암흑의 권위의 순간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들의 마지막은 암흑의 세력이 철저하게 멸망당해, 하나님의 영광만이 밝혀지는 역사적 경과를 밟게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지금이라는 이 순간은 암흑의 세력에 지배되어있는 때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처럼 모든것을 아시고, 하나님의 때에 서있는 것입니까?
56절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제자들은 이루어지는 이 일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처럼 자신들도 체포당하는 것이 두려워 도망한 것이었습니다. 호언장담하던 베드로도 용기를 잃고 도망해버렸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한 청년이 도망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는 마가 자신으로 보는 것이 통설입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기록되어있지 않고 있기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마가복음의 저자 마가는 예수님이 체포되는 사건을 복격했다는 것이 됩니다. 그 창피한 경험을 일부러 본문에 남긴것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실패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겟세마네동산 기도의 승리를 세우시고, 시종 변함없이 의연하게 전진하고 계셨습니다. 기도로써 승리한 것만이, 하나님의 업적을 이루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매일매일의 믿음 생활을 위해 도우심과 능력을 구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자가 됩시다.
Ⅱ 26:57-68 「심판」
예수님은 십자가까지 여섯번의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유대교에의한 심판이 세번, 이전의 대제사장 안나스의 집(요한복음18:12,24), 현대제사장 가야바와 산헤드린 의원들 앞에서(마가복음14:53-56), 날이 밝기전 공식법정(누가복음22:66-71)이었습니다. 로마제국의 권력에 의한 심판도 세번 있었습니다. 그것들은 총독 빌라도(마태복음27:1-6), 갈릴리 국왕 헤롯∙안티파스(마태복음27:7-12), 총독 빌라도(마태복음27:13-25)입니다. 오늘아침은 가야바와 산헤드린 의원앞에서의 장면입니다. 메시야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에 주목합시다.
1 심판하는 측의 삶
57절 예수님을 심판한 유대인의 법정은 산헤드린이라 합니다. 유대의 국회인 동시, 최고심판소입니다. 구성인은 유력장로, 율법학자, 바리새인, 사도개인들로써 61명 이었습니다. 이것은 유대의 정치상, 종교상의 넓은 범위에 걸쳐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로마제국의 지배하에 있었기때문에 그들은 사형선고할 권한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적으로써,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기위해 로마제국의 율법에 심판받게 하려 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결정한 일을 착수하기 위해 구실을 찾으려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수단을 이용했습니다. 처음부터 결정된 일이었습니다. 이 방법은 불법한 방법이었습니다.
59-62절 그러기 위해 주 예수님께 불리한 증거를 거짓으로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위증은 주 예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만으로 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무고한 자를 무시하는 것으로, 모든일을 진행시켜나갔습니다. 사실이나 진리를 무시하는 죄가 있었습니다.
64절 대제사장의 질문에 예수님은 대담하게 자기증언 하셨습니다. 대제사장은 죄로 정해진 이유를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을 모독한 죄였습니다. 이것은 대제사장 자신이 이야기를 몰고가기 쉽도록 생각해낸 유도질문이었습니다. 유대인에게있어서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은 사형에 처할만한 충분한 죄였습니다. 심판은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변호인도 없이, 한밤중에 이루어져, 고소인은 증거가 일치하지도 않았습니다. 사형선고는 재판의 다음날 하지않으면 안되었지만, 그들 유대인들은 그곳에서 해버렸습니다. 진실로 주 예수 그리스도는 불법한 자들 손에 의해 심판당하신 것이었습니다.
2 심판당하시는 예수님
① 주 예수님의 입장 불법에 대하여 침묵하시는 것 뿐이었습니다. 자기변명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부당한 비판에 대하여도 침묵하셨습니다. 이사야53:7「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② 필요한 때에는 진리에 대하여 분명하게 증언하셨습니다. 64절 예수님은 대답하셨습니다. 「네가 말하였느니라」 자신은 영광받으실 분, 하나님 아들이며 그리스도 메시야되심을. 더욱이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예수님께 말씀하신 「인자」라는 호칭의 배경에는 다니엘7:13의 인자의 개념이 있음은 분명하며, 또한 동시에 고난과 부활에 관련된 언급의 배경에는 이사야에 쓰인 「고난의 종」의 사상에 있음은 분명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자」라는 칭호속에 왕으로써의 권위를 가진 다윗적 메시야의 개념과, 심판자로써의 다니엘적인 인자의 개념과 , 이사야적 고난의 종의 개념을 포함시키는 것으로, 당시의 메시야관에는 볼 수 없는 독자적인 메시야관을 제시한다고 말할 수 있다.」(신성경사전)
이것은 심판하는 자에게 있어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것이 「거짓」 이라면 모독죄가 되지만, 「진실」이라면 그들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 됩니다. 더욱더 두려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될 곳에서 그들은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운명은 심판의 자리에 앉아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게되는 엄청난 경고를 이곳에세 받게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분 자신의 성질과 일에 관하여는 침묵하지 않으셨습니다. 확신을 가지고 대답하셨습니다.
③ 67절 하나님을 위해 사람들의 폭력을 받고, 미움 받는것도 피하지 않으시고 순종하신 주 예수님의 모습을 봅니다. 예수님은 침, 주먹을 당하시는 것으로 메시야로써의 증거를 남기셨습니다. 「이사야50:5-6 53:7」 이곳에서 예수님이 구세주임을 침묵과 고백과 순종을 통해 분명하게 전 성경과 행적으로 증언되었습니다.
맺음) 예수님의 걸어가신 길을 우리들도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새로운 생명으로 걸어갑시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는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찌어다 아멘 」 (디모데전서6:12-1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