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年5月10日 招詞 ヨハネ14:27 ピリピ4:4-7
「御霊の実は平安」
序文)御霊の実は平安を今朝は考えてみましょう。日本語の勉強から始めましょう。平安:平は于と八を合わせた字、于は気が上に昇ろうとしてつかえている形、八は分かれること。平は、いきが昇って、二つに分かれ、すらりと通ることで、ことばがなめらかなこと、すべて、たいらなことをさす。
安は宀と女とを合わせた字 宀は家で、安は家の中に女がいる形で家庭の中が静かにおちついている意味から、安らかなことを表す。
ついでながら、原語のエイレーネーは平安とも平和とも翻訳します。和は禾と口である。禾は稲の穂を示し、口は形を表す。やわらかくまるみをおびた気持ちを持っている字である。和は声を合わせて歌うことをあらわすとともに、やわらぐ、なごやかの意味になる。また禾はカという音で加と通じ、和は、一つの声に対して、さらに声が加わることで、人の声にあわせる意味を表すと理解する。
もし、今日、皆様に一日の平安と、永遠の平安のどちらかをあげましょうと言われたら、どちらをほしいと思いますか。たいてい普通の人は、永遠といってもピントこないから、この心騒ぐ世の中、せめて一日でも平安であってほしいというかもしれません。では一日の平安とはどのような種類のものでしょうか。
Ⅰ 一日の平安
それは、ルカの福音書12:16-20にでてくる「ある金持ちのたとえ」でわかるような平安・安心です。主イエス様は、どん欲にならないようにと教えられたのですが、この話の中で金持ちがいっています「たましい、これから先何年分もいっぱい物がためられた。さあ、安心して、食べて、飲んで、楽しめ。」は、一日の平安を示します。何年分もの平安をたくさんとれた穀物によって保証したと考えた。しかし、神様の判断は「愚か者。おまえのたましいは、今夜おまえから取り去られる。そうしたら、お前が用意した物は、いったいだれのものになるのか。」彼が手に入れた平安は、一日しか役にたたなかった。世は現世的、肉的な満足と刺激を与え、生まれながらの人間の情欲と情愛と誇りを満足させることができる一日の平安を与える。貯金や友人や家屋は、遺産として残す物の上位にいつもランクされている。しかしそのような求め方は、愚かだ、何年分などあり得ない、といのちを創造され、いのちを召される神様は診断された。
Ⅱ 永遠の平安
主イエス様は、十字架の前夜、弟子たちに次々と遺言の教えをしておられた。そのなかで、弟子達への遺産の話になった。十字架の上で主イエス様は、たましいを「御父にゆだねられた。」ご遺体は「アリマタヤのヨセフに」遺贈された。着ていた衣は、ローマの兵士たちに渡った。母マリヤはヨハネにおたくしになった。では、主のために一切を捨てて従った弟子たちのために、主は何を残されたらよいのでしょうか?
イエス様は、弟子達に残すようなお金はなかった。これまで従ってきたのでこの世で、右大臣、左大臣にして名誉を与えようと言われなかった。それは否定されていた。むしろしもべになりなさい。実際問題として、神の御子が地に降られたときに、何も持って来られなかった。残す物はない。しかし、主は重大な遺産を彼らにくださると、遺言を語られた。「わたしの平安を与える。」と。十字架を前にしていた弟子達は、実際は何がどう起こるのか分からないでいた。心騒がしていた。主は平安を与えるといわれた。次に十字架が起こり、主が死なれて墓に葬られ、自分たちがどうなるのか恐れに取り囲まれて家に閉じこもっていた。そこに復活の主は現れて、「平安があるように」と言われた。
「わたしの平安」とは、何か特別な固有のことを指している。それは、主イエスが救い主として歩まれ経験されたすべての危険と苦しみと悲しみと裏切りと悲惨の中でも失われることのなかった平安である。主が平安を失われたかのように見えることがあるとすれば、それは人間の罪の結果と対決されたときである。愛するラザロが死んでその親族、友人達が悲しみ呻いていたときに「心騒がせられた」。ラザロをよみがえらせて栄光を示された。ご自分の血によって、わたしたち罪人のために身代わりとなって十字架の上で苦しみ、「なぜ私を見捨てられたのですか?」と苦悩されたとき、それはすべての人間の罪の総合計が全人格にのしかかっていたときであった。罪はいつでも裁きと孤独と神から見捨てられると言う現実を刈り取らせる。主イエスは、その全部を負われたので御子の平安を奪い去られて、罪を背負ってくださった。でもそれは敗北の叫びでなく、ついには平安を勝ち取られた。私の魂をあなたの御手にゆだねますと、安らぎを表明された。このような平安は、それは御父が滅び行く世にそれを分け与えるように命じられた平安である。主イエスを御霊によって救い主と信じる者に永遠に与えられるものであり、もはや決して取り去ったりなさらない平安である。信仰によって神と和解させられた者たちがいただく、内なる平安、良心の休息を受けるのです。。
主イエスが残し、弟子たちに手渡すことが出来た平安は、形而上学的、抽象的なことがらでなく、まことにそれによって心安らぐ実感のある平安であった。聖霊は信じる者の中に、神様との関係において、この平安を実らせてくださる。
Ⅲ クリスチャンとして何を子孫に残すべきか?
残すべきは、自分たちが受けた「キリストの平安」であります。自分がこの「平安の実」を味わっていなければ、子孫に残す価値を神様が認めておられるほどに重要なことと思わないでしょう。主イエスがいのちがけで勝ち取られたほどの「イエスの平安」を、この世が与える一日の平安とすり替えてしまうこととなります。お金をもうけ、良い友達を作り、大きな家にすむためにだけ、人生のすべてを費やしてしまうような生き方でなく、主イエスの平安を味わう信仰をつちかい、神のご栄光をあらわすことを目的として、生きて行くようにと勧めるなら、幸いです。これからでも決して遅くありません。真理は発見し、受け入れたときから、あなたのいのちとなって約束の力を発揮するからです。御霊の実は、今からでも実を信じるあなたの中に結びます。
たとえばピリピ4:6-7「何も思い煩わないで、あらゆるばあいに、感謝をもってささげる祈りと願いによって、あなたがたの願い事を神に知っていただきなさい。そうすれば、人のすべての考えにまさる神の平安が、あなたがたの心と思いをキリスト・イエスにあって守ってくれます。」というみことばを味わっていますか。コロサイ3:15「キリストの平和(平安)が、あなたがたの心を支配するようにしなさい。そのためにこそあなたがたも召されて一体となったのです。また、感謝の心を持つ人になりなさい。」
これらのみことばの約束は、「主イエスの平安」の実体を示しています。
信仰によって、心騒ぐようなときだけでなく、あらゆる場合に「主よ、感謝いたします。今、このようなばあいでも、私があなたの子どもされていることを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と祈ることを通して、主イエスの平安で、こころと思い守っていただきましょう。
結び)この平安を味わうなら、子孫に受け継いでいただくべきことがらとして、主イエスの平安に、焦点を合わせて、伝え、共に祈ることで受け継いでもらえることでしょう。
2015년 5월 10일 초대의 글 요한복음14:27 빌립보서 4:4-7
「성령의 열매는 평안」
서문) 「성령의 열매는 평안」을 오늘 아침 생각해봅시다. 일본어공부부터 시작하겠습니다.
평안: 平은 于와 八를 합한 글자로, 于는 기운이 위로 오르려 받혀있는 상태, 八는 갈라진 것. 平는 기운이 올라 두개로 갈라져서 쑥 빠져나가는 것으로, 말은 부드럽게, 모두 평탄한 것을 가리킴.
安은 宀와 女를 합한 글자. 宀은 집, 安은 집안에 여자가 있는 것으로 가정이 조용하게 안정되어있는 의미로부터, 편안한 것을 가리킨다.
덧붙여, 원어의 에이레네는 평안과 평화를 설명하겠습니다. 和는 禾와 口입니다. 禾는 벼의 이삭을 나타내며, 口은 형태를 나타냅니다. 부드럽고 둥그러운 이미지는 가진 글자입니다. 和는 목소리를 합해 노래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과, 부드럽고 조용하다는 의미를 가리고 있습니다. 또한 禾는 힘이라는 음으로써 加로 통하며, 和는, 하나의 소리에 또 다른 소리를 더하는 것으로 사람의 소리에 마춘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일 오늘 여러분에게 하루의 평안과 영원한 평안 둘 중 어느쪽을 줄 것인지 묻는다면, 어느쪽을 고를겠습니까? 대부분의 보통사람은 영원이라는 말을 제대로 상상할 수 없으므로, 이 마음이 어지러운 세상속에서, 적어도 하루의 평안이라도 갖고 싶다고 생각할 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하루의 평안이란 어떤 것일까요?
Ⅰ 하루의 평안
그것은 누가복음12:16-20에 나와있는 「어떤 부자에대한 예화」로 알수 있듯이, 평안∙안심을 말합니다. 주 예수님은 탐욕에 빠지지 않도록 가르치셨지만, 이 말씀중에 부자가 말했습니다.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루의 평안을 말하고 있습니다. 몇년분의 평안을 많이 수확한 곡물로 보증받고 싶어하는 마음. 그러나 하나님의 판단은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그가 손에 넣은 평안은 하루밖에 지속받지 못합니다. 세상은 현세적, 육적인 만족과 자극을 주고,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인간의 정욕과 애정과 자랑을 만족시켜주는 하루의 평안을 줍니다. 저축이나 친구나 집은, 유산으로 남길 것의 상위에 언제나 오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바램은 어리석다, 몇년분이라는 것은 말도 안된다라고, 생명을 만드시고,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Ⅱ 영원한 평안
주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유언의 말씀으로 가르치셨습니다. 그중에서 제자들에 대한 유산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의 주 예수님은 그분의 영혼을 「아버지께 맡기었습니다.」 그 분의 시체는 「아리마대 요셉」에게 맡기셨습니다. 입고있던 옷은 로마병정들에게 빼앗겼습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요셉에게 부탁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무엇을 남기시면 좋을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남길만한 돈도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섬겨왔으므로 우대사, 좌대사의 명예를 주시겠다는 말씀도 없었습니다. 그것을 부정하셨습니다. 반대로 종이되라 하셨습니다. 실제로도, 하나님의 아들이 지상에 오셨을 때 아무것도 가지지 않으셨습니다. 남길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중대한 유산을 그들에게 주실것을 유언으로 남기셨습니다. 「나의 평안을 주노라」라고. 십자가를 앞에 한 제자들은 실제로 무슨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몰랐습니다. 마음이 소동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평안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음에 십자가 사건이 일어나고, 예수님은 죽으셔서 무덤에 장사되셔서, 자신들이 어떻게 될지 두려워 종적을 감추고 집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곳에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셔서 「평강이 있을찌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평안」이란, 어떤 특별한 고유의 것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주 예수님이 구세주로써 걸으시며 경험하신 모든 위험과 고통과 슬픔과 배반과 비참함중에서도 잃어버리지 않았던 평안입니다.
예수님이 평안을 잃으셨던 것처럼 보인적이 있었다면, 그것은 인간의 죄의 결과와 대결하신 때입니다. 사랑하는 나사로가 죽어서, 그 친족, 친구들이 슬픔에 빠져있었을 때에 「민망히 여기사」 나사로를 다시 살리셔서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분의 피로, 우리들 죄인을 위해 대속물이 되어 십자가 위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고통스러워 하셨을 때, 그것은 모든 인간의 죄의 총합계가 전인격 위이 내려진 때였습니다. 죄는 언제나 심판과 고독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현실로 거둬지게 됩니다. 주 예수님은 그 전부를 지셨으므로, 하나님의 아들의 평안은 빼앗겨, 죄를 져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패배의 외침이 아니라, 결국에는 평안을 얻게 되셨습니다. 그의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맡긴다고 말씀하시며, 평안을 표명하셨습니다.
이러한 평안, 그것은 멸망해 가는 이 세상에 그것을 나누어주도록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평안입니다. 주 예수님을 성령의 도움으로 구세주로 믿는 자들에게 영원히 주시는 것으로써, 다시는 빼앗기지않는 평안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화해받은 자들이 얻게되는 안으로부터의 평안, 양심의 휴식을 얻게되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이 남기신, 제자들에게 주게되신 평안은 형이상학적, 유상적인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 진정한 마음의 안식을 실감할 수 있는 평안입니다. 성령은 믿는자들 속에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 평안을 열매맺게 해 주십니다.
Ⅲ 크리스챤으로써 자손들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남겨야 할 것은, 자신들이 얻은 「그리스도의 평안」입니다. 자신이 이 「평안의 열매」를 맛보지 않으면, 자손에게 남길만한 가치를 하나님이 인정하고 계실만큼 중요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생명을 바쳐 얻으실 정도로의 「예수의 평안」을, 이 세상이 주는 하루의 평안과 바꾸어버리는 것이 되고 맙니다. 돈을 벌고, 좋은 친구를 만들고, 큰 집에 사는 것만으로, 인생의 모두를 소비하는 인생이 아니라, 주 예수님의 평안을 기르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을 목적으로 살아가도록 권하기를 바랍니다. .
지금부터라도 결코 늦지않습니다. 진리는, 발견해서 받아들이는 때부터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약속의 능력을 발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지금부터라도 열매를 믿는 여러분 속에 맺게됩니다.
예를 들어 빌립보서4:6-7「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게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이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라는 말씀을 맛보고 있습니까?
골로새서3:15「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이들 말씀의 약속은 「주 예수의 평안」울 실체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마음이 동요되는 때만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주여 감사합니다. 지금 이런 경우에도 제가 당신의 자녀임을 감사드립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으로, 주 예수님의 평안에, 마음과 생각을 지킵시다.
맺음) 이 평안을 맛본다면, 자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으로 여기며, 주 예수님의 평안에 촛점을 마추어 전하고, 함께 기도하는 것으로 전해져 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