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年5月24日 創立14周年記念礼拝 「神の交わりの中へ」
創世記1章26-27節 ヨハネ17:21〜23
序文)2001年5月27日「海浜幕張めぐみ伝道所」は、日本長老教会東関東中会の承認のもと、暫定小会によって治められる第二種地区教会として、創立会員5名によって設立式をしました。2010年5月30日には、長老二名、牧師一名からなる第一種地区教会を設立しました。今年のイースター礼拝で洗礼式、転入式をしましたが、会員番号は100〜102番でした。教会の主の導きとめぐみにより、福音に生きる信徒を集わせて、神様との交わり、信徒相互の交わりを経験させてくださっており感謝をこめて御名を褒め称えます。もとより地上に立てられている教会は、人の移動がある故に、出入りもあることですが、その中心に臨在される神様との交わりをますます大切にして、海浜幕張めぐみ教会が、福音宣教を進展してゆけますように祈り求めてまいりましょう。今日の記念すべき日の説教として、「神の交わりの中へ」と題して聖書からお話しします。
Ⅰ 三位一体の神の交わりとその映しとしての人間の交わり
私たちが信じる聖書の神は、きのうも、きょうも、とこしえまでも、三位一体という永遠の愛の交わりの中に存在しておられます。創世記1章1節から始まるみことばに、「神」と日本語で翻訳されているヘブル語が26節まで続いてでてきます。これは神のヘブル語単数形エルの複数形エロヒームという語です。そのことばが26節で、神は「われわれに似るように」と仰せられた、と展開しています。エロヒーム(複数形)は「われわれ」と複数形になっています。「わたしに似るように」ではありません。ですから聖書は始まりから、聖書の神は三位一体であることを表明しており、それは、のちにつづくかずかずの聖句によってますますはっきりと証明されているのです。すなわち「本質において唯一である神が、父なるパーソン・子なるパーソン・聖霊なるパーソンという三人格をおもちで、それぞれ独自性をもっておられる。しかも、父・子・聖霊なる神が完全な人格的な交わりのなかにおられる。お互いにパーソンとしての交わりを保ち続けておられる。その神が「われわれに似せて人を創造しよう」と決意され、「われわれのかたちに」創造し、男と女に創造されました。
この状態は、聖書の三位一体の神との交わりの中に、罪に堕落する前の男と女は完全に居たことをしめします。ですから、人間は本質的に神との交わりを求めます。また、人と人の交わりの中で、互いに他を必要としているのです。人間は神との交わりと、同類の他者との交わりの中に存在する者として基本的に創られたのです。その最小単位が、男と女が父母を離れて互いに結び合うという結婚の聖定にあり、それは家庭と言われています(創世記2:18、2:24)。
この家庭が集まり社会となり、部族、民族、国となり、国際となっていくのです。自由意志を善のために積極的にもちいて神と人間同士の交わりを楽しみ喜び、栄光を顕すように創造された特権を、人間は、後ろ向きに、悪魔の誘惑に乗ることによって悪のために発揮してしまったのです。これが、「人間はアダムにおいて、神に反逆し、罪をおかした」と言われていることです。すなわち神のたった一つのいましめを破ったのです。その結果は創世記3章23-24節に書かれています。「そこで神である主は、人をエデンの園から追い出されたので、人は自分がそこから取り出された土を耕すようになった。神は人を追放して、いのちの木への道をまもるために、エデンの園の東に、ケルビムと輪を描いて回る炎の剣を置かれた。」
聖書の神は、その完全なすばらしい人との間にできていた交わりを断ち切られました。エデンの園から追放した。人は互いの交わりをも破壊し、互いに相手に原因があると非難し責任をなすりつけあい、ついには、その息子たちは殺人罪を犯してしまうにいたりました。兄弟としての交わりの破壊、家庭の崩壊が伴っていった。歴史を通じて、現代もこの罪のもたらす傾向は受け継がれており、様々な悲惨が仮定に、社会に、部族に民族に国に、交際関係にまき散らされているのです.
Ⅱ 主イエス・キリストにより、神の交わりの中へ入れられたわたしたち
人間により、交わりを破壊された聖書の神は、これを回復する道を父・子・聖霊の交わりの中で相談されて、人を救う道を用意され、歴史の中で実行に移されました。「ことば(み子)は人となって、私たちの間に住まわれた。私たちはこの方の栄光を見た。父のみもとから来られたひとり子としての栄光である。この方は恵みとまことに満ちておられた」(ヨハネ1:12)。すなわち、父なる神は、最愛のひとり子イエスを、私たちの地上に送り込まれ住まわせられた。「神は、実に、そのひとり子をお与えになったほどに、世を愛された、それは御子を信じる者が、ひとりとして滅びることなく、永遠のいのちを持つためである」(ヨハネ3:16)。み子は、わたしたちにいのちを与えられた。罪のもたらす報酬である死を、ご自身の身をもって支払うために十字架の呪いを受けてくださった。み子は人となってくださったことにより、私たちの罪を全部身代わりとして背負って十字架の上に持っていってくださり、みずから払ってくださった。そこに神の深い限りないはかることのできない愛があります。信じる者は、父により罪が赦され、聖霊により、罪が聖められ、神の子として新しく生まれかわり、神との交わりの回復を与えられました。主イエス・キリストさまの死に打ち勝たれた永遠のいのちが信じる者の内に流れ始めることで、永遠のいのちに生かされ、神との交わりを回復し、信じるもの同士(聖徒たち)の交わりを聖霊によって与えられ、罪により、断ち切られていた交わりが、神の内に回復したのです。ですから主イエス様は私たち信じる者たちが、父とイエスさまが一つであるように、それを土台として、信じる者同士も一つになることをいのられました。主イエスはすべてのクリスチャンが一つとなることを望んでおられます。「聖なる父。あなたがわたしに下さっているあなたの御名の中に、彼らを保ってください。それはわたしたちと同様に、彼らが一つとなるためです。またわたしは、あなたがわたしに下さった栄光を、彼らに与えました。それは、わたしたちが一つであるように、彼らも一つであるためです。 わたしは彼らにおり、あなたはわたしにおられます。それは、彼らが全うされて一つとなるためです。それは、あなたがわたしを遣わされたことと、あなたがわたしを愛されたように彼らをも愛されたこととを、この世が知るためです」ヨハネ17:11、22〜23)。一つになるとは交わりの完全な回復を言っています。
Ⅲ 聖徒の交わりを信ず。
1 教会の主イエス・キリストに呼び集められその救いに与り、神のものとなった人々は聖徒と言われています(ローマ1:7、Ⅰコリント1:2、Ⅱコリント1:1、エペソ1:1、コロサイ1:1)。自分たちは神に召された聖徒であるという自覚を失わないようにしたいものです。パウロがコリントの教会の人々のことでも聖徒と呼んでいる。聖徒という呼びかたで、クリスチャンとしての本来のあり方が自覚されるように、神に召された者、聖別された者としての自覚を深めて、日々に罪の赦しと聖霊による聖めに与ってゆ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エペソ4:15〜16、コロサイ2:19を読んでみましょう。
教会の成長は、かしらであるキリストに、からだである教会がしっかりと結び付き、キリストから流れ出るいのちがからだの肢々にまで行き渡り、相互の助け合いと協力という形で活発に働くとき、初めて健全に行われます。
「交わり(コイノニア)」という言葉は、ギリシャ語で最も美しい語の一つといわれており、根本的な意味は「ともにいる」ことです。そこから人々が「一緒になる」ことの何らかの協力、仲間、活動、経験関係を表す言葉となりました。この様な背景のある語が新約聖書に用いられました。人生のあらゆる領域においてともにあることを意味します。
「みたまにより、また信仰によってかしらなるキリストに結合されているすべての聖徒は、イエス・キリストの恵み・苦しみ・死・復活・また栄光において彼との交わりにあずかる。また彼らは、愛において互いに結合されて、相互の賜物と恵みを分かち合い、また内なる人においても外なる人においても、共に相互の益に貢献するような彼らの公私の義務の実行を義務付けられる」(ウェストミンスター信仰告白第26章聖徒の交わりについて一項)。
2 このような交わりの実践の場はセルグループにある。
キリストの福音を実行する場として、セルグループを私たちは実施しています。それは、セルグループにおいて、イエス・キリストの福音を実行する交わりがあるからです。セルグループは成功します。私たちには、キリストのメッセージの模範と祈りを経験するのですグループの中において真のクリスチャンの交わりが展開する時に、セル。真のクリスチャンの交わりとは、一個人が自分一人で学び、祈る時に起こ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互いに」ですから最低二人いるのです。「しかし、もし神が光の中におられるように、私たちも光の中を歩んでいるなら、私たちは互いに交わりを保ち、御子イエスの血はすべての罪から私たちをきよめます。」(Ⅰヨハネ1:7)真のクリスチャンの交わりが起こるのは、私たちがお互いに自分の生活の霊的次元をキリストに開いて頂くことを許可する時です。神の光のうちにいる結果、自分と同じように神の光のうちにいる人々と交わりをもちます。言い換えると、私たちが自分の内面のありのままの姿を神に見せることに心を開く時にです。その後で私たちは自分の生活や生き方を、自分と同じように神様に心を開いている人たちに分かち合うことができるのです。イエス・キリストが交わりの基本的な次元なのです。キリストがいなければ、真の交わりは起こりません。さらに言えば、正直に心を開くことがなければ、真のクリスチャンの交わりは存在し得ないのです。従って、交わりとは少なくとも二人のすでに神に心を開いて歩んでいるクリスチャンが集まる時に存在する三角形の関係です。その人たちの内に住んでおられるキリストが、グループの中に特別な信頼要素を創り出します。このような交わりは、福音を力強く証しします。セルグループで、福音のあかしが良く伝わり、信じる者がおこされます。
3「使徒の働き」に記録されている、初代の教会は、「共にあること」を求めて、そう生活し、集まり、祈り、さまざまなことを共有していたのです。使徒2:42。聖徒の交わりを信じる私たちは、その表現として「一緒に集まる」のです。「ふたりまたは三人が、私の名によって集まるところには、私もその中にいるのです。」とのイエスの約束を信じて、聖徒の集まりは神との交わりの場であることを信じているのです。教会はお互いが一緒にキリストと交わる場となるのです。礼拝を献げ、聖餐式に与り、自分を献げ、みことばに聞く、互いに執り成し、信仰と賜物と恵みを分かち合い、補い合うのです。
キリストについての知識、経験を分かち合い、助け合う。個人のあかしや経験の分かち合いは、みたまの導きを祈り、喜んで、自分の勝利や試みや失敗や課題を告白します。「だから互いに罪を告白し合いなさい。またいやされるためにお互いのために祈りなさい。」ヤコブ5:16
お互いが交わりを破壊するような悪を何らかのかたちで行ったなら、わたしたちはそれを告白して、仲間の赦しを求めなければなりません。私たちの分かち合いで重要なことは、キリストに共に与ることです。そのために聖書を中心にして、教えと実践を分かち合う事で豊かなものを提供し合うのです。
さらに仕える面では、互いにてんでにではなくて、共に仕える。組織的に働くことによりキリストの身体が成長し、成熟して行くのです。この様な交わりを支え奨めるために、互いは聖霊の助けを必要としているのです。これは自動的に成立す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から、人間の不従順によって、実際に損なわれもすれば、破壊されることもあるのです。初代教会はそのことを経験済みで「平和の絆で結ばれて、聖霊による一致を守りなさい。」とすすめられているのです。
結び)神と聖徒たちとの交わりを成立させて行くのに必要な徳は、唯一です。三位一体の神のご人格の間にある愛「アガペーの愛」です。その愛は主イエス様を信じた時に私たちに与えられた愛です.交わりの実践を霊的な面と物質的な面の両方において、聖徒相互の助け合いの実践をとおして、神の交わりの中へ聖徒たちと一緒にいれていただき、経験できるのです。このような交わりは、広がりがあり、高く豊かなものであります。セルグループ活動、聖徒の交わりの神髄を体験させるよすがであります。日常的な主にある霊の家族意識をさらに養いつつ、福音の恵みと憐れみと赦しの体感出来る場として、聖霊が豊かに働き続けて下さることを祈り求めて参りましょう。
2015년 5월 24일 창립 14주년 기념예배 「하나님과 교제안에」
창세기 1:26-27, 요한복음 17:21-23
서문) 2001년 5월27일 「카이힝마쿠하리 은혜 전도소」는 일본장로교회 관동동중회의 승인을 받아 창립회원 5명으로 설립식을 거행했습니다. 2010년 5월30일에는 장로2명 목사 1명이 갖추어져 제1종 지역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올해 부활절예배에 침례식, 전입식이 있었는데 그 회원번호는 100∼102번이었습니다. 교회의 주되신 분의 인도와 은혜로 복음으로 사는 신도가 모여, 하나님과의 교제, 성도 상호간의 교제를 경험하게 해 주신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드립니다. 이 지상에 세워진 교회는 사람의 이동이 있는 데다가 출입도 있지만, 그 중심에 임재하시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먼저 소중히 여기고, 카이힝마쿠하리 은혜교회가 복음선교에 전진해 가도록 기도해 나아갑시다. 오늘 이 기념할 만한 날의 설교로 「하나님과 교제안에」라는 제목으로 성경에서 배워봅시다.
Ⅰ 삼위일체의 하나님과의 교제와 그 반영체로써의 인간의 교제
우리가 믿고 있는 성경의 하나님은 어제도, 오늘도 언제까지나 삼위일체라는 영원한 사랑의 교제안에 존재하고 계십니다. 창세기1장1절부터 시작된 말씀은, 「하나님」이라고 일본어로 번역된 히브리어가 26절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히브리어 단수형 엘르의 복수형으로 엘로힘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26절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엘로힘(복수형)은 「우리」라는 복수형입니다. 「나의 형상을 따라」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처음부터, 성경의 하나님은 삼위일체임을 표명하고 있으며, 그것은 나중에 이어지는 수많은 성경구절에서 더욱더 분명하게 증명되고 있습니다. 즉, 「본질에 있어서 유일하신 하나님이, 아버지되신 존재, 아들되신 존재, 성령되신 존재로써 2인격을 가지고, 각각이 독자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아버지, 아들, 성령의 하나님은 완전한 인격적인 교제속에 계십니다. 서로가 각각의 존재로써 교제를 하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결심하시고, 「우리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셔서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
이 상태는 죄로 타락하기전의 남자와 여자가 성경의 삼위일체 하나님과 완전한 교제속에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람과 사람의 교제중에 서로가 타인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과의 교제와, 같은 인간사이의 교제안에 존재하는 자로써 창조된 것입니다. 그 최소한의 단위가 남자와 여자가 부모를 떠나 서로가 하나가되는 결혼의 성정에 있으며, 그것을 가정이라 부릅니다. (창세기2:18, 2:24)
이 가정이 모여 사회가 되고, 부족, 민족, 국가가 되어 국제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선을 위해 소극적으로 자유의지를 이용해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교제를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영광을 드러내도록 창조된 특권을 인간이, 반대로 악마의 유혹을 따른 것으로 악을 발군하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인간은 아담에서부터 하나님을 반역하고 죄를 범했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단 한가지 약속을 어긴 것입니다. 그 결과는 창세기3장 23-24절에 쓰여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성경의 하나님은 그 완전하고 훌륭한 인간과사에의 교제를 거두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추방하시고, 인간은 서로의 교제를 파괴하여 서로가 상대에게 원인이 있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결국에는 그 아들들은 살인죄를 범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형제간의 교제의 파괴, 가정의 붕괴가 생겨난 것입니다. 역사를 통해, 현대에도 이 죄를 범하는 경향은 이어지고 있으며, 수많은 비참한 사건이 가정에서, 사회에서 부족간에, 민족간에, 국가간에 교제관계 속에서 퍼져있는 것입니다.
Ⅱ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과의 교제안에 들어가게 된 우리들.
인간으로부터 교제를 파괴당한 성경의 하나님은 이것을 회복시킬 길을 위해 아버지, 아들, 성령의 교제로 상담하셔서 인간을 구할 길을 준비해, 역사속에서 실행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1:14)
그 아들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죄의 댓가인 죽음을 그분 자신께서 그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의 저주를 받아주셨습니다. 아들은 사람이 되어주심으로 우리의 죄를 모두 대신 지시고, 십자가위에 가지고 가셔서, 몸소 그 값을 치뤄 주셨습니다. 이곳에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끝없이 깊은 사랑이 있습니다.
믿는 자는 아버지로부터 죄를 용서받고, 성령에 의해 죄가 깨끗케 되고, 하나님의 아들로써 새롭게 태어나,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이기신 영원한 생명이 믿는자들속에 흘러나가기 시작하면서 영원의 생명으로 살아가게 되며,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되어 믿는자들 사이(성도들)의 교제를 성령으로 받게되어 죄로 인해 끊어져있던 교제가 하나님속에서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은 우리 믿는자들이 아버지와 예수님께서 하나이신 것처럼, 그것을 토대로 믿는자들도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주 예수님은 모든 크리스챤이 하나가 될것을 원하셨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내게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요한복음 17:11, 22-23) 하나가 되는 것은 교제의 완전한 회복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Ⅲ 성도의 교제를 믿음.
1 교회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아 모여져 그 구원에 참여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을 성도라 합니다.(로마서1:7, 고린도전서1:2, 고린도후서1:1, 에베소서1:1, 골로새서1:1) 자신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성도가 된 것임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 사람들을 성도라 부르고 있습니다. 성도라 부름으로써, 크리스챤으로써의 참된 자세를 자각하도록,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자, 성별된 자로써의 자각을 깊이하고, 매일매일 죄의 용서와 성령에 의한 성결함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에베소서4:15-16, 골로새서2:19를 읽어봅시다.
교회의 성장은 머리되신 그리스도에 몸된 교회가 단단히 붙어서, 그리스도로부터 흐르는 생명이 몸 구석구석에 이르고, 서로가 도우며 협력하는 모습으로 일할 때, 처음으로 건전하게 됩니다.
「교제(코이노니아) 」라는 말은, 그리스어로써 가장 아름다운 단어중 하나로 불리우며, 이것의 근본적 의미는 「함께있다」입니다. 사람들은 이 말에서 「함께되다」라는 의미를 가진 여러 형태의 협력, 동료, 활동, 경험관계를 나타내는 단어가 생겨났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말이 신약성경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인생의 다양한 영역에 있어서 함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또한 믿음으로 머리되신 그리스도에 결합된 모든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고통, 죽음, 부활 또는 영광에 있어서 그와 함께 교제하는데 참여합니다. 또한 그들은, 사랑으로 서로가 결합되어, 상대의 은사와 은혜를 서로가 나누며, 또한 내적인 면에 있어서, 외적인 면에 있어서도 함께 서로의 이익에 공헌하도록 그들의 공사적 의무를 실행하도록 의무지어졌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 26장 성도의 교제에 대하여. 1항)
2 이러한 교제를 실전시킬 수 있는 장소로 셀 그룹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실행하는 장소로써, 우리는 셀그룹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셀그룹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실천하는 교제가 있기때문입니다. 셀그룹안에서 참된 크리스챤의 교제가 전개된다면 셀 그룹은 성공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말씀의 모범과 기도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참된 크리스챤의 교제란, 한사람이 자신 혼자서 공부하고, 기도할때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간에」이므로, 최소한 두명이상이 됩니다.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한일서1:7)
크리스챤의 참된 교제는 우리가 서로에게 자기 생활의 영적차원을 그리스도를 통해 열어주시도록 허락 할 때 생겨납니다. 하나님의 빛안에 들어있으므로, 자신과 같은 하나님의 빛안에 있는 사람들과 교제를 갖습니다. 바꿔말하면, 우리가 자기 내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하나님께 보이는데 마음을 열 때입니다. 그런 후에 우리는 자기생활이나 삶을, 자신처럼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있는 사람들과 교제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교제의 기본적 차원이십니다.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는다면, 참된 교제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정직하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면 참된 크리스챤의 교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제란 적어도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있는 두명의 크리스챤이 모이는 때에 존재하는 삼각형의 관계입니다. 그들 안에 살고 계시는 그리스도가 그륩안에 특별한 신뢰요소를 창조해주십니다. 이러한 교제는 강하게 복음을 증거합니다. 셀그룹에서 복음을 중거하는 것이 전해지고 믿는 자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3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는, 초대교회는 「함께하는 것」을 구하며, 생활하고, 모여 기도하면서, 여러가지 것들을 공유했습니다. 사도행전2:42. 성도의 교제를 믿는 자들은 그 표현으로써 「함께 모이다」가 됩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라는 예수의 약속을 믿으며, 성도의 모임은 하나님과의 교제의 장소임을 믿는 것입니다. 교회는 서로가 함께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장소가 됩니다. 예배를 드리고, 성찬식을 거행하며, 자신을 바치고, 말씀을 들으며, 서로가 중보하고, 믿음과 은사와 은혜를 나누고 보충하는 곳입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과 경험을 나누며 서로가 돕습니다. 개인의 간증이나 경험을 나누는 것은 성령의 인도를 기도하며, 기뻐하고, 자신의 승리나 시험이나 실패나 과제를 고백하게 됩니다.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라는 힘이 큼이니라」(야고보서5:16)
교제를 방해하는 악을 서로가 어떤 형태로든 행하게 되면, 우리는 그것을 고백하고 함께했던 자들의 용서를 받지않으면 안됩니다. 우리들의 교제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성경을 중심으로 가르침과 실천을 나누는 것으로 풍요로운 교제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더욱이 섬기는 데 있어서도 서로간에 섬기는 것입니다. 조직적으로 일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몸이 성장하며 성숙해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제를 장려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성령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자동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불순종으로 인해 잃어버리거나 파괴되는 일도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이 일을 이미 경험하여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라고 권했습니다.
맺음) 하나님과 성도들과의 교제를 성립시키는데 필요한 덕은 단 한가지입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 그분의 인격속에 있는 사랑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주 예수님을 믿는 순간 우리들에게도 주어지는 사랑입니다. 교제의 실전을 영적인 면과 물질적인 면 양쪽에 있어서, 성도 상호간에 도음을 주고받는 실전을 통해, 하나님과의 교제속에 성도들과 함께 들어가는 경험을 하게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제는 퍼져나가며, 고귀하며 풍요로운 것입니다. 셀그룹의 활동, 성도간의 교제의 참된 의미를 경험하게 해줍니다. 언제나 하나님 속에서 영적 가족의식을 더욱더 키워가며, 복음의 은혜와 자비와 용서를 체험하는 장소로써, 성령께서 넘치게 일해주시도록 기도하며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