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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年5月3日 礼拝 説教(日本語文、韓国語文)

2015年5月3日 礼拝音声

 

2015年5月3日  詩篇 24篇1-10 「栄光の王がはいってこられる」

(主イエスキリストの昇天の詩篇)

*詩篇24篇の背景 第二サムエル記6章「12 主が神の箱のことで、オベデ・エドムの家と彼に属するすべてのものを祝福された、ということがダビデ王に知らされた。そこでダビデは行って、喜びをもって神の箱をオベデ・エドムの家からダビデの町へ運び上った。13 主の箱をかつぐ者たちが六歩進んだとき、ダビデは肥えた牛をいけにえとしてささげた。14 ダビデは、主の前で、力の限り踊った。ダビデは亜麻布のエポデをまとっていた。15 ダビデとイスラエルの全家は、歓声をあげ、角笛を鳴らして、主の箱を運び上った。16 主の箱はダビデの町にはいった。」 契約の箱がエルサレムを目指して運ばれた凱旋入城のために、あるいはその出来事の記念として歌われた詩篇と考えられている。   *ダビデの賛歌 【第一部分 1-6節】 契約の箱を担ぎながらシオンの山近くに来たとき、行進する行列によって歌われる。 合唱 1.2節 1 地とそれに満ちているもの、世界とその中に住むものは主のものである。 2 まことに主は、海に地の基を据え、また、もろもろの川の上に、それを築き上げられた。 独唱 3節 3 だれが、主の山に登りえようか。だれが、その聖なる所に立ちえようか。 独唱 4節 4 手がきよく、心がきよらかな者、そのたましいをむなしいことに向けず、欺き誓わなかった人。 合唱 5.6節 5 その人は主から祝福を受け、その救いの神から義を受ける。 6 これこそ、神を求める者の一族、あなたの御顔を慕い求める人々、ヤコブである。セラ   【第二部分 7-10節】 主の箱をかつぐ行進中の行列は、今やシオンの閉ざされた門の前に立っています。 合唱 7節 7 門よ。おまえたちのかしらを上げよ。永遠の戸よ。上がれ。栄光の王がはいって来られる。 独唱 8節イ  栄光の王とは、だれか。 独唱 8節ロ・9節 強く、力ある主。戦いに力ある主。 9 門よ。おまえたちのかしらを上げよ。永遠の戸よ。上がれ。栄光の王がはいって来られる。 独唱 10節 その栄光の王とはだれか。万軍の主。 最後に 全員が合唱する  これぞ、栄光の王。セラ   この契約の箱は、長さ約1メートル、幅約60センチの内外を純金で覆われた大きな箱でした。それは、律法の板すなわち十戒を入れてありました。それは民のための贖いをするよう犠牲の血が注がれた金の板が乗せられていました。この上に、二つのケルビム、贖罪所の上に立っていました。この空間、つまり二つのケルビムの間と贖罪所の上に、神の御臨在が雲の形をして現れました。大祭司は年に一度、贖いの日に、この至聖所に入り、贖罪所の上に血をそそぎ、イスラエルのために贖いをしました。彼は垂れ幕を開いて入り、贖罪所に血を捧げる時、香料の煙の雲でおおわれるように、一壺の燃える香料を携えなくてはなりません。 このように、契約の箱はイスラエルにとって、主がこの民と共におられることのシンボルだったのです。箱の中にある律法は、彼らの生活に対する神の御心を啓示するとともに、彼らの罪に対する裁きと怒りとを物語りました。しかし、律法の頂点に注がれた血は彼らの違反を包み、神は、大祭司が血をもって民のために贖いを行っている間、ケルビムの間のあのあいた空間で彼らと交わりつつ会うことをお喜びになりました。これこそ、私たちの大祭司キリストの流された血によって赦しと平和とがある、というキリスト教の福音を、予型的事物と行動よって明白に預言なさった神のなさり方だったのです。それで私たちにとっては、あの契約の箱とは、十字架につけられ昇天され仲保者イエス・キリストなのです。   【第一部分 1-6節】 1 地とそれに満ちているもの、世界とその中に住むものは主のものである。 この第一節は、「主のもの」ではじまります。地は地球を意味します。世界は人の住んでいる地上を表します。主が中心です。主こそ賛美の根本的基礎です。万物は主ご自身の持ち物であり、彼だけがひとり、この宇宙の主権的な主なのです。   2 まことに主は、海に地の基を据え、また、もろもろの川の上に、それを築き上げられた。 詩篇はこの点でモーセの創造記事(創世記1:9-10)と洪水記事(創世記7:11)を念頭において記しています。この詩篇は、神が地の基を海から分け、海が一定の地点をこえて踏み込む力のない堅固な地面の大陸を形作られた、という創世記1章に啓示されている事実についてしるしています。私たちが雨や溶け行く雪や氷や地を取り巻く茫漠たる海などを皆考え合わせますと、私たちが完全に沈められていないことは本当に神の恵みです。洪水物語はまた、地下の大きな流れか奔出したこと物語っております。これが本節の意味なのです。 神は、この地球全体の主権的統御力をお持ちです。彼は地殻を海の上に、地下水の流れの上に堅くすえらました。私たちの身体的存在全体は、土地と水とのあるバランスに依存しているのです。誰がそれを統御し、お蔭でわたしたちは生きておられるのでしょう。主です、この地球の歴史の発端に乾いた地を作られた創造者なる神です。彼が、それを定められたのです。     一番目の問い 3 だれが、主の山に登りえようか。だれが、その聖なる所に立ちえようか。 この箱の中身と性質を考えると、いったい誰が値するだろうか。誰が神の前に立ち得ようか。 答えはどうでしょうか。 4 手がきよく、心がきよらかな者、そのたましいをむなしいことに向けず、欺き誓わなかった人。 神の聖なる御前に入るための道徳的適格性についての問いに対する24篇の解答は、全て倫理の領域内にあります。ここには信仰とか礼拝について一言も述べられておりません。人々の間における振舞いが、神に近づく私たちの適格性の試験として提示されているのです。

この節は、聖さに対する四重の試験を提示します。手、心、魂、舌です。

「手がきよく」はダビデの一般的行動を指します。そこには何ら血痕がありません。彼の両手にはなんら不正の流血がありません。他人に対する邪悪な振る舞いの無い者のこと。

「心がきよらかな者」とは、邪まから隔離された心、純粋にされた心のこと。

「そのたましをむなしいことに向けず」その最も奥深い望みと企てとが、偶像崇拝なり他の何なり、人を彼の唯一真の愛なる神から引き離す執着に没頭してしまわない人のこと。

「欺き誓わなかった人」隣人に偽証を立てるために唇を用います。多くの人がいってきたように誰一人として、イエス・キリスト以外の誰一人も、この道徳的試験に完全に一致することはできない。こうして私たちは、ただイエス・キリストにあり、また、通してしか、父なる神様のみもとにくることができません。

  5 その人は主から祝福を受け、その救いの神から義を受ける。 「うける」という動詞は7.9節にある「上げよ」と同じです。このヘブル語は「あげる」「取る」 「うける」の三つの意味があります。ここでは私たちの持ち物として、「取り上げ持ち去る」ことを意味します。4節の試験に合格する人は、神から報いを受けます。彼の救いの神からの義という贈り物です。私たちは、ここでは新約聖書の時代にまだいませんから、モーセの律法の範囲での答えを得ます。ここのヘブル語「救い」には、神の救いの方法とか範囲を制限するものは何らありません。生活や敬虔に必要なあらゆるものは、旧約においてすら、神の子のために主において手に入れるのです。義は、神からの贈り物、彼の救いの一部分としてきます。   6 これこそ、神を求める者の一族、あなたの御顔を慕い求める人々、ヤコブである。セラ この節で、本文上の難題が起ります−「ヤコブ」をどう扱うべきか、と。 二つの解決が一般に翻訳者たちによってとられております。日本語の文語、口語訳は、ギリシャ語七十人訳、ラテン語ブルガタ訳、その他の古代訳にとられた撰択を採用して、「ヤコブの神」とします。ヘブル語には、ここに神を表す何の言葉もありません。それは、困難を救ぅために挿入されているのです。 新改訳聖書の立場。もう一つの工夫、そしてそれの方が「神」という語を挿入するより良いと思えるのですが、それは、デリッチや他の大勢もやった通り、ヤコブの前に何か解説句を挿入することです、つまり「あなたの御顔を慕い求める人々、要するにこれがヤコブである」。または改訂英訳が訳しているように「あなたの御顔を慕い求める者、即ちヤコブ」。 こういう解決の論拠は、詩人が人々はヤコブの顔を求めるなどと予期するはずがない、かえって、ヤコブとは熱心に神を求める者の歴史上のイスラエル的な型だ、ということです。   ヤボクの渡し場における彼の格闘は、創世記32章に描かれています。彼は後程、その場所を「ペニエル」と呼びましたが、これは「神のみ顔」を意味するのです。こうしてダビデは、正しい道によって神のみもとに来る忠実なイスラエル、神を求める民のすえ或いは選ばれた部族である者たちのことを語りつつ、ヤコブのことを考えて言うのです。「あなたのみ顔を求める民―正にヤコブそっくりの人々」と。 このヤコブの言及は、私共に大きな慰めを与えてくれます。彼の手はきよくありませんでした。彼の心はいさぎよくなく、画策と不正直な野望とに満ちていました。彼の魂は虚しい望みを仰ぎみさえし、偽りもまた彼の過去の歴史に根深く含まれていました。しかしヤコブは信仰によって神の使いと格闘し、祝福をうけたのです。彼は、神と顔と顔とを合わせてまみえました。こうして私たちも、主の丘にのぼり、その聖き所に宿ろうと求める時、神の義は罪人、ヤコブそっくりの罪人にも与えられるのだ、という同じ信仰に到達するのです。   【第二部分 7-10節】 7 門よ。おまえたちのかしらを上げよ。永遠の戸よ。上がれ。栄光の王がはいって来られる。 「永遠の戸」とは、神の都としてのエルサレムの型は、私たちを神の御国のあのとこしえの展望へと連れてゆきます。宮殿や大邸宅はそれ相当の訪問客が来るまでは閉じられています。門番がいて、確認して、大きく開くのです。東洋の風習です。普通は玄関の脇にある潜り戸を用います。栄光の客人はそのようにしてはいるのです。   二番目の問い 8 栄光の王とは、だれか。 答え 強く、力ある主。戦いに力ある主。 9 門よ。おまえたちのかしらを上げよ。永遠の戸よ。上がれ。栄光の王がはいって来られる。 10 その栄光の王とはだれか。万軍の主。これぞ、栄光の王。セラ 栄光の王は主なる神です。燃える芝の中でモーセに現れたあの偉大な「わたしはある」といわれたお方です。イスラエルの契約の主であり、契約の箱に臨在を表してくださる贖い主です。民を救うためにこられたお方です。 けれども、契約の箱は、今までダビデの町の外にありました。集会の幕屋の至聖所は空っぽでした。しかし今や箱は帰ったのです。王の町の正当な位置に置かれたのです。全イスラエルも、彼をその当然の場所にお連れしたので、喜び歌い叫んでいるのです。   結 論) 24篇はメシヤ詩篇です。20篇から始まったメシヤ詩篇はそれぞれに深い霊的意味を持っていました。 20篇は、イスラエルの民が主の敵達を戦うために王が軍隊を率いて出てゆくのに先立ち、勝利を求めて主に祈ったものでした。 21篇は、救いを祈ったのを聞いてくださったことに対して、王と民とが主に賛美をするに当たって、その勝利が祝われております。 22篇は、十字架の上のキリストに関する大メシヤ預言ととり、その中に私たちは十字架と冠とをともに認めました。主の忠実なしもべが受難し、その受難から、代々に影響力を及ぼすメシヤ王国の世界に、つきることのない報いが由来したことでした。 23篇は、静かな水と緑の牧場のほとりで安らかに交わる羊飼いと羊との平和な情景 24篇は、その最高頂点です。ここで私たちは栄光の王キリストがその正当な力の場に入られるのを見ます。これは、キリストの昇天の預言詩篇です。最も、これは同時に御力をもって最後の再臨にも関係を有しています。私たちにとって、イエス・キリストは栄光の王です。   2015 5 3   시편241-10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 예수 그리스도 승천의 시편)

  시편24편의 배경  사무엘하6장 「12혹이 다윗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를 인하여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쌔 13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의 여섯 걸음을 행하매 다윗이 소와 살진 것으로 제사를 드리고 14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때에 베 에봇을 입었더라 15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부르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오니라16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법궤가 예루살렘을 향해 운반되는 개선입성을 위해, 또는 그 일어난 일을 기념하여 노래한 시편으로 생각할 수 있다.   다윗의 【제1부분 1-6절】 법궤를 지고 시온산 가까이 올 때 진행하던 행렬이 부른 노래 합창 1,2절 1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2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독창 3절 3 여호와의 간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독창 4절 4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합창  5,6절 5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6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셀라)   【제2부분 7-10절】 여호와의 궤를 지고 진행하던 중, 행렬은 시온의 닫혀있는 문앞에 서 있습니다. 합창 7절 7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찌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찌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독창 8 ㄱ 영광의 왕이 뉘시며 독창 8 ㄴ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9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찌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찌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리다 독창 10 영광의 왕이 뉘시요 만군의 여호와께서 마지막에 전원이 합창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셀라) 이 법궤는 길이 1m, 폭 60cm로 안팎을 순금으로 입힌 큰 상자였습니다. 이곳에 율법의 판, 즉 십계를 넣었습니다. 이것은 백성들을 위해 흘린 희생의 피를 부은 금의 판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이 위에 두개의 케르빔이 속죄소위에 서 있었습니다. 이 공간, 즉 두 케르빔 사이와 속죄소 위에 하나님의 임재가 구름같이 나타났습니다. 대제사장은 일년에 한번 속죄제에 이 지성소로 들어가 속죄소 위에 피를 뿌리고 이스라엘을 위해 대속했습니다. 그는 늘어뜨린 막을 열고 들어가 지성소에 피를 올릴 때 향료의 연기로 둘러싸이도록 타는 향료를 넣은 단지를 가지고 가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때문에 이스라엘에 있어서 법궤는 여호와께서 백성과 함께 계시는 상징이었습니다. 벱궤안에 있는 율법은 그들 생활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계시하시는 것은 물론 그들이 저지른 죄의 심판과 노여움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정점에 부어진 피는 그들의 위반을 감싸고,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이 피로써 백성들을 위해 대속을 하고 있는 동안, 케르빔과의 공간에서 그들과 교제하고 만나는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대 제사장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로인해 용서와 평화가 있는 것이라는 그리스도교의 복음을 예형적 일과 행동을 통해 하나님게서는 명백하게 예언하신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들에게 있어서 이 법궤는 십자가에 달리셔서 승천하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1 1-6 1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이 제 1절은 「여호와의 것」으로 시작됩니다. 땅은 지구를 의미합니다. 세계는 사람이 살고있는 지상을 말합니다. 여호와가 중심입니다. 여호와야말로 찬미의 근본적 기초입니다. 만물은 그분의 것이며, 그분만이 한분, 이 우주의 주권적 주인인 것입니다.   2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시편은 이곳에서 모세의 창세기지(창세기1:9-10)와, 홍수기지(창세기7:11)을 유념하며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은 하나님께서 땅의 터를 바다에서 나누시고, 바다가 일정의 지점을 넘어 들어설수 없는 강건한 지면의 대륙을 만드셨다는 창세기 1장에 계시된 사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비나 녹고 있는 눈이나 얼음이나 땅을 둘러싼 망망한 바다를 떠올린다면, 땅이 완전하게 가라앉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홍수사건은 또한 지하의 커다란 흐름이 방출되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본래의 의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지구 전체의 주권적 통제력을 가지고 게십니다. 그는 지면을 바다위에, 지하수 위에 강건하게 두셨습니다. 우리의 신체적존재자체는 지상과 물과의 어떤 바란스에 의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그것을 통제하고, 덕분에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요? 여호와 입니다. 이 지구 역사의 발단에 땅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그가 이것을 정하신 것입니다. 첫번째질문 3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이 법궤안에 들어있는 것과 그 성질을 생각할 때, 그 합당한 자가 도대체 누구일까요? 누가 하냐님앞에 설수 있을까요? 대답은 어떻습니까? 4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하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성스러운 하나님앞에 나아가기 위해 도덕적 적격성에 대한 물음에 답하는 24절은 모든 윤리의 영역내에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믿음이나 예배에 대한 말은 한마디도 나와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사이의 행동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우리들의 적격성에 대한 시험이라고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절은 정결함에 대한 4중의 시험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손, 마음, 뜻, 혀입니다.

「손이 깨끗하며」는 다윗의 일반적 행동을 가리킵니다. 이곳에는 아무런 피 흔적도 없습니다. 다윗의 손에는 어떠한 부정의 피를 흘리지 않았습니다. 타인에 대한 자악한 행동을 한 적이 없는 자를 가리킴.

「마음이 청결하며」란, 악한 마음으로부터 격리된 마음, 순결한 마음을 말한다.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마음속 깊은 욕망이가 계획이 우상숭배나 다른 어떤 것으로 사람을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뜨리게 하려는 집착에 침몰당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거짓맹세하지 않는 자」이웃에게 거짓 증언하기위해 입술을 사용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말해온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이외에 어떤 사람이라도, 이 도덕적시험에 완전하게 일치하는 자는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버지 하나님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5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얻으리니」의 동사는 7,9절에 나오는 「들찌어다」와 같은 것입니다. 이 히브리어는 「주다」 「얻다」 「얻으리니」에는 세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건으로써, 「받아서 가지고 사라지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4절의 시련을 이긴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보상을 받게됩니다. 그의 구원의 하나님으로부터 의라는 선물을 받게됩니다. 이곳은 아직 신역성경의 시대가 아니므로, 모세의 율법의 범위안에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곳 히브리어 「구원」에는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이나 범위를 제한하는 것은 없습니다. 생활이나 경건에 필요한 모든 것은,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의 아들을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의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선물, 그의 구원의 일부분으로 얻게되는 것입니다.   6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셀라) 이 절에서 본문상 문제가 있습니다. 「야곱」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こ 통역자들에 의해 두가지의 관점으로 해결하고 있습니다. 일본어의 문어, 구어역은, 그리스어 70인역, 라틴어 브루가타어, 그외의 고대어입장에서는 「야곱의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로는, 이곳에 하나님을 나타내는 어떤 말도 없습니다. 그것은, 곤란을 면하기 위해 도입된 것입니다. 신개역성경의 입장. 또 다른 입장쪽이 「하나님」이라는 말을 도입하는 것보다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데릿치나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말한대로, 야곱앞에 어떤 해설구를 도입하는 것입니다. 즉, 「당신의 얼굴을 구하는 자들, 즉 이것이 야곱이라」도는 개정영역이 번역한 것처럼 「당신의 얼굴을 구하는 자, 즉 야곱」 이러한 해결의 논거는, 사람들이 야곱의 얼굴을 구할리가 없다는, 더욱이 야곱이란 열심히 하나님을구하는 자로 역사상 이스라엘의 전형이라는 이유에 있습니다.   얍복강에서의 그의 격투는 창세기32장에 나와있습니다. 그 후 그는 이곳을 「브니엘」이라 불렀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이와같이 올바른 길로 하나님앞에 돌아오는 충실한 이스라엘, 하나님을 구하는 민족, 또는 선택받은 부족임을 말하면서, 야곱을 떠올린 것입니다. 「당신의 얼굴을 구하는 백성-야곱과 같은 사람들」 이 야곱에 대한 언급은 우리들에게 커다란 위로를 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손은 깨끗치 않았습니다. 그의 마음은 청결하지 않고, 계략과 부정직한 야망에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의 영혼은 허무한 욕망을 바라보고, 거짓도 또한 그의 과거의 역사에 뿌리깊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믿음을 하나님의 천사와 격투하여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하였습니다. 이렇게 우리도 하나님의 언덕에 올라 그의 정결한 성소에 쉴것을 구할 때, 하나님의 의는 죄인, 야곱을 닮은 죄인들에게도 주신다, 라는 야곱과 같은 신앙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2부분 7-10】  7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찌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찌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원한 문」이란, 하나님의 하나님의 수도로써의 예루살렘은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전망에 데려가 줍니다. 궁전이나 대저택은 그에 어울리는 방문객이 올때 까지 문이 닫혀져있습니다. 문지기가 와서 확인한 후에 커다란 문을 여는 것입니다. 동서고금의 풍습입니다. 보통은 현관 곁에 있는 작은 문을 사용하지만, 영광의 손님은 그런곳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두번째질문 8 영광의 왕이 뉘시요 대답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9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찌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찌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기시리로다. 10 영광의 왕이 뉘시요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셀라) 영광의 왕은 여호와되신 하나님입니다. 떨기 나무의 불꽃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그 위대한 「스스로 있는 자」라 말씀하신 분입니다. 이스라엘의 계약의 하나님이시며, 법궤에 임재를 보여주신 대속의 주이십니다. 백성을 구하기 위해 와주신 분입니다. 하지만, 법궤는 지금까지 다윗의 마을 밖에 있었습니다. 집회의 장막 안의 지성소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법궤가 돌아왔습니다. 왕의 마을의 정당한 위치에 놓여지게 된 것입니다. 모든 이스라엘도 그가 당연한 장소에 모셔왔으므로, 기쁨의 노래를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  24편은 메시아 시편입니다. 20편부터 시작된 메시아 시편은 각각 깊은 영적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20편은 이스라엘백성이 여호와의 적들과 싸우기 위해 왕이 군대를 끌고 나아가는데 먼저 서서 승리를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21편은 구원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에 대해 왕과 백성이 여호와께 찬양하며, 그 승리가 축복되고 있습니다. 22편은, 십자가 위에서의 그리스도에 대한 대메시아 예언으로 보고, 그 중에 우리는 십자가와 왕관을 함께 인정했습니다. 여호와의 충실한 중이 수난을 받고, 그 수난으로 대대에 미치는 영향력은 메시야의 세계에 끊치지않는 보상으로 유래되었습니다. 23편은, 쉴 말한 물가와 푸른 초장에서 평안하게 쉬는 양치기와 양과의 평화로운 정경. 24편은, 지금까지의 최고 정점입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영광의 왕 그리스도가 그 정당한 능력의 장소에 들어가는 것을 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승천의 예언시편입니다. 동시에 이것은 그 능력으로 최후의 재림에도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에수 그리스도는 영광의 왕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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