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年8月23日 「いのちは恩寵のうちに」詩篇 30篇1−12節 ダビデの賛歌 家をささげる歌
Ⅰ 1-5節 詩人の賛美への招き
1 「主よ。私はあなたをあがめます。あなたが私を引き上げ、私の敵を喜ばせることはされなかったからです。」
「あがめます」は、動詞「上げる」からきており、「持ち上げる」という意味です。ダビデは最近患いました。その体験から賛美を主にささげている。真の礼拝には、満ちあふれた喜び、楽しんでいる心からでる賛美があります。賛美をするには、はっきりした理由があるのです。その理由は「あなたが私を引き上げられたから。主が持ち上げてくださったから」です。井戸の中から、水を汲むためバケツを持ち上げるようにしてくださった。ダビデを患いから取り上げてくださった。敵たちがはしゃぎ回るのを許されなかった。「主よ。」恵みの契約関係にあるお方。祈りと賛美における確信の根拠は契約にある。
2 「私の神、主よ。私があなたに叫び求めると、あなたは私を、いやされました。」助けを求める死にものぐるいの祈り。絶叫。それは、主に届いて、聞かれた。主が私をいやされました。「いやす」「文字通り病気から回復した。」主は不幸なたましいをいやし、体の病をいやし、何か危険と悲しみとの状況から引き上げることによって、ダビデを問題から解放された。
3 「主よ。あなたは私のたましいをよみから引き上げ、私が穴に下って行かないように、私を生かしておかれました。」
ダビデは過ぎ去った過去の試練を、「よみ、穴=墓」になぞらえています。
彼が、神から賜った恵みの大きさを表現するために、
4 「聖徒たちよ。主をほめ歌え。その聖なる御名に感謝せよ。」
耐え難い破滅を思ったことから主が救ってくださった。賛美をささげます。
「聖徒たちよ」 敬虔なうやうやしい者たち。忠誠で神礼拝に没頭した民たち。「ほめうたえ」この原語は、「切る、刈り込む、むしる」という動詞。これが、強意形になると「歌う、賛美する」に変わります。「聖なる御名」=へブル語「彼の聖の記念に対して」です。ダビデの体験は、すべての人々の神を賛美するに値する記念となる。
5 「まことに、御怒りはつかの間、いのちは恩寵のうちにある。夕暮れには涙が宿っても、朝明けには喜びの叫びがある。」
旧約聖書中の大聖句の一つ。神の神らしい、懲戒と比較された神の愛についてのダビデの美しい総括です。悲しみが喜びを生み出すという霊的な深みを示す詩篇である。悲しみはつかの間、喜びは永遠、この対象は新約聖書に採用されている。この節を、パウロが心にとめながら次の聖句を書いたと考えられています。「今の時の軽い患難は、私たちのうちに働いて、測り知れない、重い永遠の栄光をもたらすからです。 私たちは、見えるものにではなく、見えないものにこそ目を留めます。見えるものは一時的であり、見えないものはいつまでも続くからです」(コリント第二4:17−18)。へブル人への手紙の記者も、この詩篇を思って12章5−14節を書いたと察せられます。読んでみましょう。
ダビデの主に対する信仰は、神のとこしえの愛や恩寵と比べれば、彼の生涯のさまざまな艱難さえも、ほんの一瞬間のものでしかないことを、彼に知らせた。「もし冨栄えておれば、わたしたちはそれらが神のものであるとは感じずに、神の祝福をむさぼる。あるいは、少なくとも、わたしたちはものうげに、それらを滑りさらせてしまう。しかしもし、何か悲しいことや、不運なことがわたしたちを見舞うと、あたかも神が決して親切にあわれみ深く、わたしたちを扱ってくれたことがなかったかのように、たちどころに神の厳しさをつぶやくのです。要するに、患いの下に、わたしたち自身の腹立ちやすさと、せっかちとが、一瞬間をあたかも一時代であるかのようにさえしてしまうのです。他方、わたしたちの愚痴っぽさと恩知らずとが、神の御愛顧は、たとえどんなに久しく我々に働きかけ続けても、ほんの一瞬でしかないかのごとく、空想させるに至るのです。」(カルバンの注解)神の御怒りはほんの一瞬、その前での懲戒の間に、神の前で号泣し、悔い改め懺悔し苦悩しても一瞬でしかない。悲しみは一夜の宿りに入ってくる巡礼者。けれども朝には、神の愛情深い御好意のたちかえりと共に、輝かしい、喜びが永久に宿ります。文字通りのへブル語文体は「なぜなら、一瞬彼の御怒りに、生涯彼の御愛顧に、夕に宿るは涙、朝には歓呼」と訳せます。
以上がダビデの賛美への招きに対する理由です。今度は彼自身の謙虚な告白、人の主なる目的が神をたたえるとこしえに神を喜ぶことであるのを、一瞬忘れた善き人の証言が始まります。
Ⅱ 6−7節 賛美の喪失
6 「私が栄えたときに、私はこう言った。私は決してゆるがされない。」
この高慢な詩「私は決してゆるがされない。」は、詩篇に三回でてくる。
一度は不信者達のむなしい誇り10:6。
次はこの30:6、この誇りは一時的にうぬぼれすぎた信者の心から出てくる。
第三は、16:8ペテロによりペンテコステの日に主イエス・キリストの復活によって成就されたものとして引用されているメシャ的な詩篇である。使徒の働き2:25−28。
ダビデは、自分が栄えたために、安易に脱して怠り始めたことを告白しています。彼はルカ12:19「そして言った。『こうしよう。あの倉を取りこわして、もっと大きいのを建て、穀物や財産はみなそこにしまっておこう。そして、自分のたましいにこう言おう。「たましいよ。これから先何年分もいっぱい物がためられた。さあ、安心して、食べて、飲んで、楽しめ。」といって愚か者になった。繁栄がもたらした、霊的な欠乏。「ゆるがされない」つまずく、揺れ倒れる。
7 「主よ。あなたはご恩寵のうちに、私の山を強く立たせてくださいました。あなたが御顔を隠され、私はおじ惑っていましたが。」
ダビデは地上的祝福の源を正しくみとめていました。不信者ではありません。
しかし、彼の愛着を地上の物に集中しすぎました。「私の山」ダビデの王位、冨、人気、勝利、シオンの山。名状しがたい自己愛によって、ダビデは「私の山」と語ります。神を忘れて与えられた物に気をとられすぎたのです。
突如神はその愛を持って、ダビデの世俗的喜びを打ちのめしました。ダビデはもはや、神を近くにおられると体験しなくなりました。患難と病と死のぎりぎりの点まで、それらは彼を悩ましました。「おじ惑う」「恐怖に満ちた混乱と絶望」をしめす。さんびは失われ、暗黒の中にうめいています。
Ⅲ 8—12節 悔い改めの祈りによって回復された賛美
「8節主よ。私はあなたを呼び求めます。私の主にあわれみを請います。9節私が墓に下っても、私の血に何の益があるのでしょうか。ちりが、あなたを、ほめたたえるでしょうか。あなたのまことを、告げるでしょうか。10節聞いてください。主よ。私をあわれんでください。主よ。私の助けとなってください。」
8—10節はダビデの緊迫した祈りです。危急の叫びです。ダビデは主と論じています。訴えています。自分の救いを。神の契約に基づいた信仰の大胆さをもって祈り求めます。ダビデの死から、主は一体どのような益を受けるのかと問います。神が怒りの内にダビデを墓の穴に押しつぶし、一体どのような収穫、利益があるのでしょう。もちろん答えは明白です。ダビデは祈ります。あわれみを求める祈り、悔い改めの祈りです。神が御顔をかくしておられるときでも、怒っておられるときでも、実質的に敵となられたときでも、彼は契約の主に訴えています。「私の助けとなってください。」
2015년 8월 23일 「하나님의 은총은 평생」 시편 30:1-12
다윗의 시, 곧 성전 낙성가
Ⅰ 1-5절 시인의 찬양에 대한 초대
1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 내 대적으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높일」은 동사 「올리다」에서 온것으로, 「들어 올리다」라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최근 병을 앓았습니다. 그 체험으로부터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참된 예배에는 넘치는 기쁨, 즐거워하는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찬양이 있습니다. 찬양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당신이 들어올려 주셨으므로. 여호와께서 들어올려 주셨기 때문에」입니다. 우물속에 있던 자를 물통을 끌어 올리는 것처럼 들어올려 주셨습니다. 다윗을 병마로부터 들어올려 주셨습니다. 적들이 기뻐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여호와여」 은혜의 계약속에 계시는 분. 그분께 기도와 찬양을 드리는 확신은 이 계약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2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죽음으로부터 도움을 구하는 미칠것 같은 심정의 기도. 절규. 그것은 하나님께 이르러 들어주셨다. 하나님께서 나를 낫게 해 주셨습니다.
「고치셨나이다」 「문자 그대로 병에서 회복시켜 주셨다.」 하나님은 불행한 영혼을 낫게 해주시고, 육체의 병을 낫게 해주시고, 어떤 위험과 슬픔속에서도 들어올려주심으로 다윗은 어려움에서 해방되었습니다.
3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다윗은 자신이 겪은 과거의 시련을 「음부, 무덤」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커다란 은혜를 표현하기위해.
4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찌어다」
하나님은 견딜 수 없는 파멸을 상상한 것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찬양 드립니다.
「성도들아」 경건하며 정중한 자들. 충성된 마음으로 예배에 참여하는 백성들. 「찬송하며」 이것의 원어는 「자르다, 깎아 다듬다」라는 동사. 이것이 강의형이 되면 「노래하다, 찬미하다」로 변합니다. 「거룩한 이름」=히브리어「그의 거룩함을 기념하여」 입니다. 이러한 다윗의 체험은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을 찬양할만큼 기념할 만한 일이 되고 있습니다.
5 「그 노여움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찌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구약성경의 유명한 성경구절 중의 하나. 하나님의 하나님 다운, 징계와 비교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다윗은 아름답게 총괄하고 있습니다. 슬픔이 기쁨을 만들어 낸다는 영적깊이를 나타내는 시편입니다. 슬픔은 잠깐, 기쁨은 영원, 이것은 신약성경에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구절을 염두하며 다음의 구절을 썼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린도 후서4:17-18) 히브리서의 기자도 이 시편을 생각하며 12장 5-14절을 기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함께 읽어봅시다.
하나님에 대한 다윗의 믿음은 그의 생애에 경험한 수많은 곤란조차도 하나님이 영원한 사랑과 은총에 비하면, 잠시 잠깐의 일순간 뿐임을 다윗은 알려주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부하게되면 그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깨닫지 못한채, 하나님의 축복에 더욱 욕심부릴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눌쩍지근하게 무심코 사용해 버릴 것이다. 더욱이 만일 어떤 슬픔이나 불행한 일이 우리에게 닥치면, 하나님이 친절하고 깊은 자비로 우리를 구해주신 일이 없었던 것처럼 당장이라도 하나님의 엄하심을 투덜거린다. 말하자면, 심한 염려로 인해, 바로 화를 내거나 서두루는 우리들의 성격은 한순간 있었던 일을 한시대에 걸쳐 있었던 일처럼 여기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 우리들의 어리석음과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무지로인해 하나님의 사랑이 오랫동안 우리에게 베풀어졌음에도, 그 사랑이 잠깐 동안의 것처럼 헛된 생각에 이르기도 하는 것이다.」 (칼뱅의 주해)
하나님의 노여움은 일순간, 징계를 받아 하나님 앞에 울며, 회개하고, 참회하며 고뇌하는 것은 한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슬픔은 하룻밤을 묵기위해 들어가 나오는 순례자와 같습니다. 날이 밝으면 슬픔은 하나님의 깊은 사랑의 호의로 변하고, 찬란한 기쁨이 다시 임하게 됩니다. 문자 그대로의 히브리어 문체는 「일순간의 그의 노여움과 생애에 결친 그의 사랑으로 저녁에는 눈물, 아침에는 환호」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상이 다윗의 찬양에 대한 초대의 이유입니다. 다음은, 다윗의 겸허한 고백, 인간의 주된 목적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원히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임을 잠시 잊어버렸던 선한 사람의 증언으로 시작됩니다.
Ⅱ 6-7절 찬양의 상실
6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이 거만한 시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라」는 시편에 세번 나오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불신자의 공허한 자랑 10:6
두번째는, 이곳 30:6, 이 자랑은 일시적으로 자만한 신자의 마음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세번째로는, 16:8 베드로로 인한 성령강림 사건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성취된 것이라 인용하고 있는 메시야적 시편입니다. 사도행전2:25-28.
다윗은 자신의 번영으로, 안이에 빠지고 태만하기 시작한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누가복음12:18-19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속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라고 말한 어리석은 자가 되었습니다. 번영이 초래한 영적 결핍. 「요동치 아니하리라」 넘어지다. 흔들려 쓰러지다.
7 「여호와께서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다윗은 지상적 축복의 근원을 바르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불신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지상의 것들에 너무 집착했었습니다. 「내 산」 다윗의 왕위, 부, 인기, 승리, 시온산.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자기 도취로 다윗은 「내 산」이라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부여받은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버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가지고 다윗의 세욕적 기쁨을 치셨습니다. 다윗은 더이상 하나님께서 가까이 계심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환란과 병과 죽음이 임박할 정도로 이것들은 그를 괴롭혔습니다. 「근심하다」 「공포로 가득찬 혼란과 절망」을 가리킵니다. 찬미를 잃고 암흑속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Ⅲ 8-12절 회개의 기도로 회복된 찬미
「8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9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어찌 진토가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10여호와여 들으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8-10절은 다윗의 긴박한 기도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논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구원을. 하나님의 계약에 근거하여 대담한 믿음의 기도로 간구합니다. 다윗의 죽음이 하나님께 무슨 유익이 있는지? 물론 그 대답은 명백합니다. 다윗은 기도합니다. 자비를 구하는 기도, 회개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그 얼굴을 감추실 때에도, 노여워하실 때에도, 실제로 적이 되셨을 때도, 그는 계약의 주께 호소하고 있습니다. 「나의 돕는 자가 되소서」
맺음) 11-12절 은혜의 응답
「11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12이는 잠잠치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케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영히 감사하리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회개하는 자녀들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다윗에게 교제와 기쁨으로 말씀하시는 예전의 계약의 축복을 되돌려 주셨습니다. 이제 다윗은 한번 더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원히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