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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年1月24日 礼拝 説教(日本語文、韓国語文)詩篇38篇 音声あり


 
2016年1月24日 詩篇38篇1-22節 「深い嘆きの詩篇」

 序文)記念のためのダビデの賛歌

表題の「記念のため」は70篇にも見られる。悔い改めの詩篇(6,32,38,51,102,130,143篇)の3番目。 真の悔い改めは苦しみの中にありながら,なお神に向かってあわれみと赦しを求め続ける。肉体的、道徳的な鋭い苦痛に迫られてささげられたものです。「神」に対する呼び方が3通りで表現されており,15節には3つともそろって出て来る(原語:ヤハウェとアドーナーイとエロハーイである)

Ⅰ 罪から起こる不安と動揺 1-8節
 「1 節 主よ。あなたの大きな怒りで私を責めないでください。あなたの激しい憤りで私を懲らしめないでください。」
「あなたの大きな怒りで」。8節までの部分でダビデは苦痛の原因が自分の罪にあると自覚し告白する。主が現在自分に対してとっておられる態度は、怒りと不快の態度であると推論する。主の力は鋭く突き刺さる矢、重くのしかかる手のようである。

 「2節 あなたの矢が私の中に突き刺さり、あなたの手が私の上に激しく下って来ました。」
「あなたの矢」「あなたの手」とは苦痛が神のさばきであるという自覚の表現(32:4)

 「3節 あなたの憤りのため、私の肉には完全なところがなく、私の罪のため私の骨には健全なところがありません。」
「〜のため」という表現が繰り返されていることから、この病気は疑いの余地なく、刑罰であるとわかる。「私の肉」「私の骨」とは罪の意識によって内的な平安が失われてしまって、病気になっている状態。
 病気について、注意すべきことがある。病気は決して神の刑罰ではないというのは,間違っている。イエス様の教えを見ましょう。ベテスダの池の畔で38年間病気だった人が、イエス様から直りたいのかと呼びかけを受けて,いやしてもらった。その後に、イエス様が彼に出会ったときの言葉が「イエスは宮の中で彼を見つけて言われた。{見なさい。あなたはよくなった。もう罪を犯してはなりません。そうでないともっと悪いことがあなたの身に起こるから}」(ヨハネ5:14)。
 しかし、病気はいつでも刑罰であるというのも同じぐらい間違っている。生まれつきの盲人にであったイエス様の取り扱いとおことばがそれを教えている。「この人が罪を犯したのでも、両親でもありません。神のわざがこの人に現れるためです」(ヨハネ9:3)。
 情欲や不摂生から病気になるのと同じように、ここでの病気が罪の当然の結果であるかどうかは、知るてだてはない。はっきりしているのは、病気がダビデの目を自分の霊的な窮状に向けさせたことである。

「4節 私の咎が、私の頭を越え、重荷のように、私には重すぎるからです。5節 私の傷は、悪臭を放ち、ただれました。それは私の愚かしさのためです。」
 罪の自覚と精神的な苦しみが長引き,それが更に腐敗を生み出して,自力での回復は望めないという告白である。「愚かしさ」とはダビデの罪の姿である。罪は愚かさの結果であるという自覚と告白が悔い改めへと導く(69:5)。

 「6節 私はかがみ、深くうなだれ、一日中、嘆いて歩いています。7節 私の腰はやけどでおおい尽くされ、私の肉には完全なところがありません。」
 「腰」とは姿勢を左右する部分であり,ヘブル語には「確信する」「信頼する」という意味がある。その腰が痛みに覆われた状態では,真すぐに歩けない

「8節 私はしびれ、砕き尽くされ、心の乱れのためにうめいています。」
 「しびれ」は「心の乱れ」を表す言葉で,創45:26「父はぼんやりしていた」と同じ状態を意味する

Ⅱ 神に帰る決心 9-17節
「9節 主よ。私の願いはすべてあなたの御前にあり、私の嘆きはあなたから隠されていません。」
 「主よ」は原語:アドーナーイが用いられていて「私の主よ」である。ダビデは一切を主に隠さず申し上げ,主なる神からの答を期待する。それは人の助けや慰めがむなしいことを知ったからである

 「10節 私の心はわななきにわななき、私の力は私を見捨て、目の光さえも、私にはなくなりました。」
「心」「力」「目の光」の喪失によって罪に打ちひしがれた状態が述べられる

 「11節 私の愛する者や私の友も、私のえやみを避けて立ち、私の近親の者も遠く離れて立っています。」
 「えやみ」とは原語:ネガで,「打ち傷」「懲らしめ」「疫病」という意味(参照レビ13:3,イザ53:4)。「神によって打たれた印」を見て近親者も遠く離れ,敵対者は「破滅を告げ」「苦しむ者をさらに苦しめる」
 まことの助けは主イエス様からだけくる。唯一、福音から助けはくる。

 「12節 私のいのちを求める者はわなを仕掛け、私を痛めつけようとする者は私の破滅を告げ、一日中、欺きを語っています。13 節 しかし私には聞こえません。私は耳しいのよう。口を開かないおしのよう。」
 敵対する者たちの饒舌、一日中,欺きを語っている。それにたいするダビデも沈黙。「聞こえません」「耳しい」とはダビデが人々に弁解をせず,すべてを神にゆだねて神からの慰めと指示を求めるという態度。

 「14節 まことに私は、耳が聞こえず、口で言い争わない人のようです。」
ダビデの沈黙は一部分信仰からでている。しかし一部分自分の罪を認めている事柄から来る沈黙である。これとよほどちがっているのは、主イエス様が裁判にあったときの沈黙である。その時の沈黙についてペテロは,私たちの理解を助けるために解説をしている。「人がもし,不当な苦しみを受けながらも、神の前における良心のゆえに、悲しみをこらえるなら、それは喜ばれることです。罪を犯したために打ちたたかれて、それを耐え忍んだからと言って、何の誉れになるでしょう。けれども、善を行っていて苦しみを受け、それを耐え忍ぶとしたら、それは、神に喜ばれることです。あなたがたが召されたのは,実にそのためです。キリストもあなた方のために苦しみを受け、その足跡にしたがうようにと、あなた方に模範を残されました。キリストは罪を犯したことがなく、その口に何の偽りも見いだされませんでした。ののしられても、ののしり返さず、苦しめられても、おどすことをせず、正しくさばかれる方にお任せになりました。そして自分から十字架の上で、私たちの罪をその身に負われました。それは,私たちが罪を離れ、義のために生きるためです。キリストの打ち傷のゆえに、あなたがたはいやされたのです」(ペテロ第一2:19-24)。

Ⅲ ただ一つの望み 15-22節
 「15節 それは、主よ、私があなたを待ち望んでいるからです。わが神、主よ。あなたが答えてくださいますように。16節 私は申しました。「私の足がよろけるとき、彼らが私のことで喜ばず、私に対して高ぶらないようにしてください。」
「それは」と理由を述べる。そして「主」(ヤハウェ),「わが神」(エロハーイ),「主」(アドーナーイ)と異なった呼び方によって,どうにかして主からの応答を得ようとする。ここに信仰者の希望が見られ,神への期待が見られる。ダビデほどいろいろの危機に直面して神を「待ち望む」信仰を表して人はいないのではないかと思われるほどである。

 16節では、罪を悔いた者が神からの赦しと助けを与えられたことが人々にはっきりとわかるようにして下さいという祈りである。

 「17節 私はつまずき倒れそうであり、私の痛みはいつも私の前にあります。」 
 罪を自覚し神の前に自分を低くし善を求める信仰者の姿勢と,主に従わない悪しき者たちの勢いの強さとを対比させている。しかし大切なのは,20節の「私は善を求める」という態度である。悪者の力やあざけりに負けて,悪を追い求めることがあってはならない。

 「18節 私は自分の咎を言い表わし、私の罪で私は不安になっています。19節 しかし私の敵は、活気に満ちて、強く、私を憎む偽り者が多くいます。20節 また、善にかえて悪を報いる者どもは、私が善を追い求めるからといって、私をなじっています。」  詩人は自分の罪と認め、これこそ彼の悲しみと心労の原因だということを認める。それにもかかわらず彼の敵は活動的で、大勢で、彼の心の変化には一向動かされていないように見える。それどころか、彼らは彼の与えた寛大さに忘恩をもって報いている。なぜこれほどまでに、敵対する者たちはイライラとするのか。それは,罪をおかしたとはいえ、神にたちかえり、希望を神に置き、善をもとめているからである。この態度が神を信じない者たちをいらだたせるのである。

「21節 私を見捨てないでください。主よ。わが神よ。私から遠く離れないでください。22節 急いで私を助けてください。主よ、私の救いよ。」
 再びヤハウェ,エロハーイ,アドーナーイという呼びかけと,「見捨てないで」「遠く離れないで」「急いで……助けて」という叫びによって主の恵みと力と助けを信じ求める信仰者の姿が記される(40:13,51:14)。

  結び)私たちも、神を聖なるお名前によって知り(ヤハウエ)、恵みの契約によって知り(エロハーイ)、救い主イエス・キリストさまによって知って(アドーナーイ)いる。信じている。それで、このようなダビデがしていると同じほどの、切実な嘆願を主にささげて祈りましょう。

2016년 1월 24일 시편 38편 1-22절 「깊은 비탄의 시편」

서문) 다윗의 기념케 하는 시
표제의 「기념케 하는」은 70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회개의 시편 (6,32,38,51,102,130,143편) 중 세번째. 참된 회개는 고통중에 있으면서도 하나님께 더욱 자비와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육체적, 도덕적 날카로운 고통에 쫓겨 바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명칭이 세가지로 표현되고 있으며, 15절에서는 세가지 모두 나오고 있습니다. (원어:여호와와 아도나이와 엘로하이입니다.)

Ⅰ 죄로인해 생기는 불안과 동요 1-8절
 「1 여호와여 주의 노로 나를 책하지 마시고 분노로 나를 징계치 마소서」
「주의 노로」 8절까지의 부분으로, 다윗은 고통의 원인이 자신의 죄로인한 것임을 자각하며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현재 자신에게 취하시는 태도는 노여움과 불쾌의 태도라고 추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힘은 날카롭게 찌르는 화살로, 무겁게 누르는 손과 같습니다.

 「2 주의 살이 나를 찌르고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시나이다」
「주의 살」「주의 손」은 다윗이 겪는 고통은 하나님의 심판임을 자각하는 표현(32:4)

 「3주의 진노로 인하여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인하여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
「인하여」의 표현이 반복되는 것으로, 이 병은 의심할 여지없이 형벌임을 깨닫습니다. 「내 살」「내 뼈」란 죄의 의식으로 내적 평안을 잃어버리게 되어 병에 걸린 상태.
 병에 관하여 주의 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병이란 반드시 하나님의 형벌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봅시다.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간 병을 앓고 있던 사람이 예수님으로부터 병이 낫기를 원하는가 라는 질문을 받아 병고침을 받았습니다. 그 후, 예수님께서 그를 만났을 때 하신 말씀이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요한복음5:14)
 그러나 병이 언제나 형벌이라는 생각도 잘못된 것입니다. 태어나면서 맹인이던 사람에게 예수님의 기적과 말씀이 그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요한복음9:3)
 정욕이나 건강에 주의하지 않음으로 병에 걸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병이 범죄의 결과라는 것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이곳에는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병이 다윗의 눈을 영적 궁지로 몰게 한 것입니다.

「4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 5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오니 나의 우매한 연고로소이다」
 죄의 자각과 정신적 고통이 길어져, 그것이 점점 부패를 낳고, 자신의 힘으로는 회복될 수 없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매한」이란 다윗의 범죄한 모습입니다. 죄는 우매함의 결과임을 자각하고 고백한 것이 회개로 인도하게 합니다. (69:5)

 「6 내가 아프고 심히 구부러졌으며 종일토록 슬픈 중에 다니나이다 7 내 허리에 열기가 가득하고 내 살에 성한 곳이 없나이다」
 「허리」란 몸을 좌우로 움직이게 하는 부분으로, 히브리어로는 「확신하다」 「신뢰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 허리가 고통에 싸여있다면 똑바로 걸을 수 없습니다.

「8 내가 피곤하고 심히 상하였으매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하나이다」
 「피곤하고」는 「마음의 동요」를 나타내는 말로써, 창세기45:26「기색하더니」와 같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Ⅱ 하나님께 돌아갈 결심 9-17절
「9 주여 나의 모든 소원이 주의 앞에 있사오며 나의 탄식이 주의 앞에 감추이지 아니하나이다」
 「주여」는 원어:아도나이로부터 쓰인것으로, 「나의 주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모든 것을 주께 감추지않고 고백하고, 주되신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도움이나 위로가 공허한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0 내 심장이 뛰고 내 기력이 쇠하여 내 눈의 빛도 나를 떠났나이다」
「심장」「기력」「눈의 빛」의 상실로 죄에 눌려있는 상태가 쓰여있습니다.

 「11 나의 사랑하는 자와 나의 친구들이 나의 상처를 멀리하고 나의 친척들도 멀리 섰나이다」
 「상처」란 원어로 네가로써, 「타박상」「징벌」「역병」이라는 의미 (참조 레위기13:3, 이사야53:4) 「하나님께 받은 징벌」로 여기고 근친자들도 멀리 떠나고, 적대자들은 「궤악한 일을 하고」 「고통받고 있는 자를 더욱 괴롭게 합니다」
 참된 도움은 주예수님으로부터 옵니다. 복음에 유일한 구원이 있습니다.
 「12 내 생명을 찾는 자가 올무를 놓고 나를 해하려는 자가 괴악한 일을 말하여 종일토록 궤계를 도모하오나 13 나는 귀먹은 자같이 듣지 아니하고 벙어리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오니」
 적대자들의 혀는 하루 종일 거짓말을 합니다. 그것에 대하여 다윗은 침묵합니다. 「듣지 아니하고」 「귀먹은 자」란 다윗이 사람들에게 변명하지 않고, 모든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위로와 지시를 구하고 있는 태도.

 「14 나는 듣지 못하는 자 같아서 입에는 변박함이 없나이다」
다윗의 침묵은 일부분 신앙에서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부분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있는 것에 대한 침묵이기도 합니다. 이것과 전혀 다른 것으로, 주 예수님께서 재판을 받으셨을 때의 침묵이 있습니다. 그때의 침묵에 대하여 베드로는, 우리가 쉽게 이해하도록 설명하고 있습니다.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맏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아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베드로전서 2:19-24)

Ⅲ 단 한가지 소망 15-22절
 「15 여호와여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 내 주 하나님이 내게 응락하시리이다 16 내가 말하기를 두렵건대 저희가 내게 대하여 기뻐하며 내가 실족할 때에 나를 향하여 망자 존대할까 하였나이다」
「바랐사오니」라고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야훼), 「내 주 하나님」(아도나이)라고 다른 명칭으로 부름으로써 어떻게해서든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믿는자의 소망이 나타나고 있으며, 하나님에 대한 기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다윗만큼 수많은 위기에 직면하면서도 하나님을 「바라는」 믿음을 나타낸 자가 없을 것입니다.
 16절은, 죄를 회개한자가 하나님의 용서와 도움을 받았음을 사람들이 분명히 알도록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17 내가 넘어지게 되었고 나의 근심이 항상 내 앞에 있사오니」
 죄를 깨닫아 하나님앞에 자신을 낮추어 자비를 구하는 믿는자의 자세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악한자들의 위세 당당함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20절의 「내가 선을 좇는」태도입니다. 악한자의 힘이나 비웃음에 넘어가 악을 좇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18 내 죄악을 고하고 내 죄를 슬퍼함이니이다 19 내 원수가 활발하며 강하고 무리하게 나를 미워하는 자가 무수하오며 20 또 악으로 선을 갚는 자들이 내가 선을 좇는 연고로 나를 대적하나이다」
시인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이것이 나의 슬픔과 마음의 고통의 원인임을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적들은 활발하며, 다수로, 그들의 마음이 변화될 기색이 조금도 보이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다윗이 보여준 관대한 은혜를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어째서 이토록 적대자들은 대적하는가? 그것은 다윗이 죄를 범했지만, 하나님께 되돌아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자비를 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태도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을 안절부절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21 여호와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22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다시 야훼, 엘로하이, 아도나이라고 부르며, 「버리지 마소서」「멀리하지 마소서」「속히 나를 도우소서」라고 부르짖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도움을 믿고 구하는 믿는자의 자세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40:13,51:14)

  맺음) 우리들도 하나님을 성스러운 이름을 통해 알고(야훼), 은혜의 계약으로 알게되고(엘로하이),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알게(아도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과 같이 절실한 탄원을 하나님께 기도드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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