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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年10月2日 礼拝 説教(日本語文、韓国語文)エペソ3章17-19節

 

2016年10月2日 「三つの祈り」第二、三  エペソ 3:17〜19

「こうしてキリストがあなたがたの信仰によって,あなた方の心のうちに住んでいてくださいますように」(エペソ3:17)。

Ⅰ 祈りの内容の第二は「キリストの内住」です。

使徒パウロは、1:20でキリストが栄光の天の御座に着かれたことをしるしました。私たちの信仰の目を天上に向けさせたのです。その上で、ここでは、栄光の主が、私たちの心のうちに玉座を設けておられるというのです。このすばらし現実に心を向けよというのです。彼方のキリストについで、私たちの最も深いところに住まいを定められるキリストが祈られている。なんという驚きでしょうか。

かつて、天よりくだりマリヤの体内に宿り,人として生まれたもうたキリストは、今や、飼い葉桶にひとしき私たちの心のうちに住んでくださるのです。最初の誕生のインマヌエルは,今や一切の苦しみの後、復活の栄光をえて、世のおわりまでインマヌエルであるとの約束をはたすために、私たちの内に住まわれるのです。

主イエスさまのお約束は「だれでも私を愛する人は、私のことばを守ります。そうすれば、わたしの父は、その人を愛し、わたしたちはその人のところに来て、その人とともに住みます」(ヨハネ14:23)。「それはあなたがたが私を愛してくださったその愛が彼らの中にあり、またわたしが彼らの中にいるためです」(ヨハネ17:26)。むすびのことばは「彼らの中にいる」。「見よ。わたしは,世の終わりまで、いつも、あなたがたとともにいます」(マタイ28:20)。

イエス様が弟子達といっしょに生活をしておられたときに与えられた約束のことばです。

これらの約束は、わたしたちの「いのち」になってくださるという約束なのです。キリストが信じる者のすべてのすべてになってくださるという意味です。いのちの結びは霊のむすびです。「わたしたちは」と言われた主は、み父も含めておられるのです。さらに言うならば聖霊さまもです。三位一体の神様が私たちのうちに住む。それはまさしく「いのち」そのものになってくださるというほどの深さをもっています。

これは最高の神秘です。交わりの神秘です。

使徒パウロの体験です。彼が迫害者であったときに、復活の主は現れて彼におっしゃいました。「なぜわたしを迫害するのか」彼はクリスチャン達を迫害する事が、主イエスを迫害することと同じであるとのイエス様の主張に驚いた事です。これはクリスチャンの内に住んでおられる故に当然のおことばなのです。

「わたしはキリストとともに十字架につけられました。もはや、私がいきているのではありません。キリストが私のうちにいきておられるのです。」「いま私が、この世に生きているのは、私を愛し、わたしのためにご自身をお捨てになった、神の御子を信じる信仰によっているのです」(ガラテヤ2:20)。ここにパウロの自己体験があります。

「住んでいてくださいますように。」一時的滞在ではなくて、恒久的定着、つまり永住を意味しています。ギリシャ語の用法からいえば、キリストがわたしたちの心の中に住んで下さるのは、一回限りの出来事ではあって、住むとそれ以降はずーっと恒久的に住み続けておられるのです。それはあなた方の信仰によってなのです。私たちのうちにお入りくださいと祈る事により、すべてのすべてをなってくださるのです。当然、内なる人は強められます。感謝

Ⅱ  祈りの内容の第三は「キリストの愛を理解する」ことです。

「また、愛に根ざし、愛に基礎をおいているあなたがたが、すべての聖徒とともに、その広さ、長さ、高さ、深さがどれほどであるかを理解する力を持つようになり、人知を越えたキリストの愛を知る事ができますように。」(エペソ3:17〜18)。

使徒パウロは、エペソのクリスチャンたちの日常生活を「愛に根ざし、愛に基礎をおいているあなたがた」と表現しています。「根ざし」とは植物が地中深く根をおろす様子を覚えさせます。何ものにも揺すぶられても倒れないまでに、深く根をおろすのです。クリスチャン生涯に予測される困難、犠牲、「あなた方はわたしのゆえに世に憎まれます。」とイエスさまが予告された大嵐にぶつかっても、倒れないだけの根をおろす。根が深いほど養分を沢山吸い上げて多くの実を結びます。

「愛に基礎をおいている」とはクリスチャン生涯を建てる時の土台が、キリストの愛にあるというのです。どのような様式の家を建てるにしても、土台は愛!あなたの生涯が日本式家屋に例えられる場合にも西洋式の鉄筋コンクリート建てであっても、とにかく土台にはキリストの愛を据えます。そうすれば途中で地震にあって倒壊したりすることがないのです。また、寛容とか親切とか、コリント人への手紙第一13章にある愛の実りの部屋を増し加える事ができるのです。

クリスチャンの生涯はキリストの愛を離れては、すべて意味がないのです。ここで、次の点に移る前に注意しておきたいことがあります。それは「愛」という言葉は常に名詞ですが、そのことばがしめしている中身、実質は「動詞」であるということです。愛は動くのです。働かない愛というものはありません。

そのようにキリストの愛も動詞です。私たちを愛して下さっているのです。それはどのような愛でしょうか?「人知を遥かに越えた愛」とパウロが言っています。「人知を越えた」とは人間が知り得ないといっているのでしょうか。「神は愛です」(第一ヨハネ4:16) 。神様を知り尽くすことはできません。キリストの愛を知り尽くすことはできません。しかし、パウロはここで「人知を遥かに越えたキリストの愛を知ることができますように」と祈っています。その広さ、長さ、高さ、深さがどれほどであるかを理解する力を持つようになれるというのです。すなわち、神様が人に知らせようとされた範囲内なら、いかに人知を越えていても知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ですからクリスチャンとしての、涯を愛に根ざして愛を基礎としておくって行く事に、私たちはますますキリストの愛の広さ、長さ、高さ、深さを知ってゆくことになるのです。

Ⅲ ではどのようなキリストの愛を私たちはうけたのでしょうか。

1  先行する愛  キリストがまず私たちを愛してくださった。神の愛は一方的である。先行する愛である。第一ヨハネ4:10 ローマ5:8

わたしたちは自分から人を愛するというよりも、他の人からまず愛してもらいたいという気持ちが強くあります。条件付きの愛です。しかしキリスト様の愛は一方的で先行する愛です。自分がどのような状態のときも変わりなく、いつも真実な愛で先んじてくださるのです。クリスチャンとしての歩みが調子が良くても悪くても、神の愛に変わりはありません。受け取る私たちが素直でさえあるならばこの神の愛の中に生き続けることができます。この神の一方的な先行する愛を拒絶している限りはそれにあずかる事はできません。

2 大きな愛 「私たちがまだ弱かった時に、キリストは定められた時に不敬虔な者のために死んでくださいました。」弱かったときも、不敬虔であったときも、キリストは愛してくださった。とてつもなく大きな愛です。弱い人間を愛しうることは、容易なことではありません。キリストは無条件で愛し、救いのためにいのちを投げ出されたのです。役に立たない人間、どんどん捨てられおきざりにされてしまう者の為に愛を注がれました。体が弱く、意志もよわく頭も弱い、というとこの世では相手にしてもらえません。キリストの愛はそのような私たちを愛し、生きる望みを与え新しく作り替え、かえって重要なものとして用いてくださるのです。受け入れ愛し生まれかわらせるのです。

  • 強い愛 はずべき人間を恥さらしとされないで、愛する。罪人であるわたしを愛していると言明される。強い愛です。自分につばきし、ののしる者を愛するのです。自分を十字架につけた者を相知るのです。このような愛は、強い、というより高い愛というべきでしょう。敵対する者をさえ愛してくださった。ご自分の脇腹に槍を突き刺したもの、手や足に釘を打ち付けた者、いまもなお、激しく打ち込んでいる者たちを愛してくださったほどに高い愛です。このような愛をキリストは一歩づつ歩み続ける私たちに今も注ぎ続けてくださっているのです。

 

結び)海浜幕張めぐみ教会の使命とビジョンを覚えて、信徒の一人ひとりが実現のために祈りましょう。「どうか、私たちのうちに働く力によって、私たちの願うところ、思うところのすべてを越えて豊かに施すことのできる方に、教会により、またキリスト・イエスにより、栄光が、世々にわたって、とこしえまでありますように。アーメン」

(エペソ3:20-21)。

 

2016 10 2세가지 기도두번째 에베소서3:17-19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에베소서3:17)  

 

Ⅰ 기도 내용의 두번째는그리스도의 내주입니다.

사도바울은 1:20에서 그리스도께서 영광의 하늘 보좌에 앉아계심을 말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눈을 천상에 두도록 말입니다. 그런 다음 이곳에서는 영광의 주께서 우리 마음속에 왕위를 두셨다고 말했습니다. 이 놀라운 현실에 마음을 향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에 관해서는, 우리들 가장 깊은 곳에 살고 계시며, 기도하신다고 말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일까요?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마리아의 몸을 통해 사람으로 태어나신 그리스도께서 지금은 말구유와 같은 우리 마음속에 거주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 탄생의 임마누엘이, 모든 괴로움을 겪으신 후, 부활의 영광을 얻으시고, 세상 끝날까지 임마누엘의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우리들 속에 살고 계시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의 약속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하리라」(요한복음14:23)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요한복음17:26) 마지막 말은 「저희 안에」 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복음28:20)

이것들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셨을 때 주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 약속들은 우리들의 「생명」이 되어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믿는자들의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어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생명의 연결은 영의 연결입니다. 「우리가」라고 말씀하신 주님은, 아버지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더욱 자세히 말하면, 성령님도 함께 해 주십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우리들 속에 살아주십니다. 이것은 「생명」 자체가 되어주신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깊은 의미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최고의 신비입니다. 교제의 신비입니다.

이것은 사도바울이 체험한 일입니다. 그가 박해자였을 때, 부활의 주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사도바울이 크리스챤을 박해한 것이 주 예수님을 박해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놀란 것입니다. 이것은 크리스챤 안에 살고 계시므로 당연한 말씀이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라디아서 2:20) 사도바울은 이곳에서 자신의 체험을 말했습니다.

「너희 마음에 계시게」 일시적으로 계시는 것이 아니라, 영구적 정착 즉, 영주를 의미합니다. 그리스어 용법으로 말하자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들 마음속에 살아주시는 것은 단 한번만 일어나는 일로써, 한번 사시면 언제까지나 영구적으로 살아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신앙에 의한 것입니다. 우리들 속에 들어와 주실 것을 기도함으로써, 주님은 모든 것의 모든것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당연히 속사람은 강하게 됩니다. 감사드립니다.

 

Ⅱ 기도의 내용 세번째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에베소서3:17-18)

사도바울은 에베소의 크리스챤들의 일상생활을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뿌리가 박히고」란 식물이 땅 속 깊이 뿌리박은 모습을 상상하게 합니다. 어떤 것에 흔들리더라도 쓰러지지 않도록, 깊게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크리스챤 생애에 예측되는 곤란, 희생,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이 예고하신 태풍을 만나더라도, 쓰러지지 않도록 뿌리를 내립니다. 뿌리가 깊이 박힐 수록 양분을 많이 빨아올리고 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사랑에 터가 굳어져서」란 크리스챤 생애를 세울 때, 그 토대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모양의 집을 세우더라도 그 토대는 사랑입니다! 여러분 생애를 일본식 가옥으로 만들더라도, 서양식 철근 콘크리트로 만들더라도, 그 토대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만들어 집니다. 그렇게 하면 지진이 일어나도 붕괴되는 일은 없게되는 것입니다. 또한 관용이나 친절 등이 고린도전서13장의 사랑의 열매의 방을 더욱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떠나서는 크리스챤 생애 모든 것에 의미가 없습니다. 이곳에 다음의 주제로 옮기기 전,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말은 보통 명사이지만, 이 말이 포함하고 있는 실질적인 내용은 「동사」 입니다. 사랑은 행동하는 것입니다. 행동하지 않는 사랑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랑도 동사입니다. 우리들을 사랑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사랑일까요? 「지식에 넘치는 사랑」이라고 사도바울은 말했습니다. 「지식에 넘치는」이란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요한일서4:16) 하나님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다 알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곳에서 사도바울은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넓음, 높음, 깊음이 얼마만한 것인지 이해하는 능력을 갖도록 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알려주시려는 범위안에서라면, 아무리 지식에 넘치더라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챤으로써, 사랑에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감에 따라서 우리는 점점 더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음, 높음, 깊이를 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Ⅲ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았을까요?

1 선행되는 사랑 그리스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일방적입니다. 선행된 사랑입니다. 요한일서4:10, 로마서5:8

우리는 자신이 먼저 상대를 사랑하기보다, 상대로부터 먼저 사랑받고 싶어 합니다. 조건있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은 일방적으로 선행된 사랑입니다. 자신이 어떤 상태에 있더라도 변함없이, 언제나 진실한 사랑으로 대해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크리스챤으로써 삶이 좋을 때나, 나쁠 때에도 하나님의 사랑에 변함은 없습니다. 사랑받는 우리가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인다면 이 하나님 사랑속에 언제까지나 머물 수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일방적 선행된 사랑을 거부하는 한 이것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2 큰 사랑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연약할 때에도, 경건치 않았을 때에도 그리스도는 사랑해 주셨습니다. 엄청나게 커다란 사랑입니다. 연약한 인간을 사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무조건으로 사랑하시며, 구원을 위해 생명을 버려주셨습니다. 쓸모없는 인간, 점점 버려지고 소외된자들에게 사랑을 부어주셨습니다. 몸이 약하거나, 의지가 약하고, 머리가 나쁜 사람을 세상은 상대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은 이런 우리를 사랑하시며, 살아갈 수 있는 소망을 주시며, 새롭게 만들어주시고, 소중한 존재로써 사용해 주시는 것입니다. 받아들여주시는 사랑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 주십니다.

  • 강한 사랑 수치스러운 인간을 수치스럽게 두지않고 사랑하십니다. 죄인된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강한 사랑입니다. 자신에게 침을 뱉고, 욕한 자들을 사랑해주셨습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매 단 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이러한 사랑은 강하다는 말보다 지고한 사랑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적대자들 조차도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 분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른 자도, 손과 발에 못박은 자, 지금도 격렬하게 못박고 있는 자들을 사랑해주실 정도로 높고 고귀한 사랑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그리스도는 한발자국 한발자국 걸어가는 우리에게 지금도 부어주시고 계십니다.

 

맺음) 카이힝마쿠하리 메구미 교회의 사명과 비젼을 기억하고, 성도 한사람 한사람이 실현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에베소서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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