コメントはまだありません

2016年10月23日 礼拝 説教(日本語文、韓国語文)エペソ3章20-21節


 
2016年10月23日 エペソ3:20~21節 「 頌 栄 」

「どうか私たちのうちに働く力によって,私たちの願うところ、思うところを越えて豊かに施すことのできる方に、教会により、また、キリスト・イエスにより栄光が代々にわたってとこしえまでありますように。」

序文)頌栄で始まったエペソ人への手紙は教理部分をしめくくるにあたり、頌栄をもって閉じられます。パウロは主イエスを信じるものとして生涯を歩みはじめて、この手紙を書く頃には現実生活の中に働く神への信頼がゆるがない絶大なものになっていました。

聖書の生きておられる、まことの神様は、私たちが願うところ、思うところの全てを越えて豊かに施すことができる方です。願うところ、想像できるところまででも素晴らしいですが、それを越えてです。パウロの祈りの範囲を越えているのです。

日本長老教会・設立趣意書の結びにこのみことばが引用されています。私たちの祈りは「神様はどれくらいのことがお出来になるだろうか。」ではなく「私たちはどのぐらいまで願い、思い、期待しているだろうか」ということです。「神様に将来について願い求めるということだけでなく、むしろ神様が私たちの人生や海浜幕張めぐみ教会に何をなさろうとしておられるかということを知って、それを思う(想像する)こと」なのです。「おもうところ」は心に止め置かれているものをも越えてなのです。自分で躊躇してしまうようなことがらです。声に出して願わない段階です。神はそれが神の栄光をあらわすことであるならば、思いをはるかに越えてかなえてくださるのです。

神の力の世界には限界がないのです。全能、無限の力がはたらくからです。神の力は二つの方向ではたらきます。創造や奇跡や直接啓示や霊感において、また私たちの新生に働く力です。今一つは摂理に働く力です。すでに存在している第二原因が秩序正しく作用してゆくように働く力です。この頌栄は摂理信仰の極みのような祈りです。

 

1 「願うところを越えて」20節

さて使徒パウロは「私たちの願うところを越えて」と申しております。彼は主イエスをキリストとして信じる生涯を、憐れみにより歩みはじめてから、このエペソ人ヘの手紙を書くころには、生活の中に豊かに働いておられる、まことの神への信頼が絶大なものになっていました。「願うところを越えて」とは、パウロの祈りの範囲を示します。私たちが口にだして神の願う範囲はおのずと限られたものです。しかし、神はその願いを越えてくださる方であります。否な、祈りのことばにもならない「思うところ」にとどめおかれているものをも越えてくださる方であります。わたしたちが神への信頼が薄いために、こんな思いは祈っても聞かれないと躊躇してしまいそうなことを指します。

しかし神はそれがご自身の栄光を顕すことでさえあるなら、思いをはるかに越えてかなえてくださ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

2「神の全能について」20節

「わたしたちのうちに働く力」とは神の全能の力をさします。神の力の世界は限りないのです。神の全能・無限の力ヘの確信はパウロのかってな創作ではなく、聖書がはっきりと教えているところであります。「わたしは全能の神である」(創世記17:1)「あなたには、すべてができること、あなたは、どんな計画も成し遂げられることを、私は知りました。」(ヨブ42:2)「神にとって不可能なことは一つもありません」(ルカ1:37)。

神が全能だという意味は何か?神は、その欲することを何でもすることができる。「光あれ」と仰せられた、すると「光があった。」とあるとおり、神はただ意志したもうことにより全地を創造された。主イエス・キリストが「嵐よ、静まれ」と意志したもうことにより大嵐はなぎになった。

盲人はなおり、ライ病人はいやされ、死人のラザロはよみがえらせられた。これらは力に関するわたしたちの考えを越えたことである。全能とは力についての最高の概念である。神ご自身の完全さと調和することなら、どのようなことでもなしうるのです。

逆に神はご自身の性質に反することや、自己矛盾になることはできません。悪を放置しておくことや、ご自分を否定すること、偽りを言うこと、罪を犯すことはできません。また、四角な円を造ることはできません。それらは力の対象でありませんから、わたしたちはそのようなことを祈っても聞か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

神はご自分の力を支配する力をもっておられる。だから神はしようと決意されたことをなしうるが、必ずしも常に何かをしようと決意されるわけではありません。そうでなければ、神は必然的に行動することになって自由な存在ではなくなってしまうのです。また、神の全能牲は自己限定の力を排除するものでなくむしろそれを含むのです。理性をもった被造物に自由意志を与えることによって神はある程度までご自身を限定された。神が、その力を一度に顕して、この宇宙から罪を追放してしまわないのは、その為であります。また、強制的に力をもって、すべての人間を救ってしまわないのも、同じ理由によるのです。神の全能の力は、創造や奇跡や直接啓示や霊感や、わたしたちの新生に働く力として必要な時に直接に絶対的に働きます。また、摂理のみわざとして、すでに存在している第二原因が秩序正しく作用してゆくように働きます。

パウロはこのような神の力の存在を生活の実践の中で知っていたのです。神は、いまも私たちの中に同様に働かれます。人の救いのためにはみことばを用いて聖霊が働かれます。主のみからだである教会のためには、摂理的な第二原因をも大いに用いて働かれます。即ち信仰にあるお一人お一人の祈り・賜物・能力・時間・身体・財産などを用いて働かれるのです。第二コリント9:8「神はあなたがたを常にすべてのことに満ちたりて、すべての良いわざにあふれる者とするために、あらゆる恵みをあふれるばかり与えることのできる方です。」

「アーメン」21節 教会も聖徒たちも、このお方を仰ぐとき、日常生活の中で「教会により、キリスト・イエスにより栄光が、世々にわたって、とこしえにまでありますように。アーメン」と祈りを閉じるのです。

 

3 栄光とは神の比類なきすばらしさの現われです。神の輝きです。神の聖さ、神の義、神の力、神の善、神の真実さの輝きです。

教会は、この神の栄光を神に帰するために存在しているのです。「神の栄光を現し永遠に神を喜ぶこと」がすべての存在の目的であるのです。

神は選びの民の礼拝をとおし、また教会員の聖い生活をとおし、福音宣教をとおし、助けを必要としている人々に対する愛の奉仕をとおし、また、教会の霊的な性質をとおして、その満ち満ちたところを、如何なく現してくださるのです。

そして、これはキリスト・イエスによっても行われるのです。教会はキリストのからだであり、教会のかしらはキリストだからです。

「栄光が世々にわたってとこしえまで」永遠に栄光が神に、という祈りです。神こそ永遠にたたえられるべきおかたです。

今日、すべてのことが転倒して、神の栄光が足のしたに踏みにじられ、おのれの栄光を、しかもたかだか数十年しかもたないような栄光を追い求める人間に向かって、クリスチャンたちは、神こそ永遠にたたえられるべき方と祈ってやまないのです。

 

それ故、アーメンは、パウロのアーメンであり、わたしたちのアーメンであります。

 

2016 10 23 에베소서 3:20-21 송영

 

서문) 송영으로 시작된 에베소서는 교리부분을 끝맺는데도 송영을 다시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주 예수님을 믿는 자로 생애를 걷기 시작해, 이 편지를 쓸 즈음에는 현실생활 속에 일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흔들림없이 절대적인 것이 되어 있었습니다. 살아계시는 참된 하나님은 우리가 소원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모두를 뛰어넘어 풍요롭게 베풀어 주시는 분입니다. 원하는 것, 상상하는 것까지도 놀라운 것이지만, 그것을 뛰어 넘으십니다. 사도바울의 기도의 범위를 초월하시는 것입니다.

 

일본 장로교회∙설립취의서 마지막 부분에 이곳의 성구가 인용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의 기도는 「하나님은 얼마만큼의 일을 하실 수 있을까?」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만큼 생각하고 기대할 것인가?」라는 것입니다. 「장래에 대하여 하나님께 구하고 원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인생이나 카이힝마쿠하리 메구미교회에 무엇을 하시려 하시는지 알고, 그것을 생각(상상)하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것」은 마음에 정한것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주저해버리는 일들입니다. 소리를 내어 바라는 단계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하나님은 우리들의 생각을 훨씬 뛰어넘어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세계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전능, 무한의 능력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두가지 방향에 일하십니다. 창조나 기적이나 직접계시나 영감에 있어서, 또한 우리들이 새로 태어나는 것에 관련된 능력입니다. 지금 그 한가지는 섭리에 관련된 능력입니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두가지 원인이 질서정연하게 작용하도록하는 능력입니다. 이 송영은 섭리신앙의 최고의 극치와도 같은 기도입니다.

 

1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20

사도바울은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생애를 하나님의 자비로 시작되어 이 에베소서를 쓸 즈음에는 생활중에 풍성하게 일하시는, 참된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절대적인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이란 사도 바울의 기도의 범위를 나타냅니다. 우리가 입으로 하나님께 원하는 범위는 대략 한정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기도를 넘치게 해 주시는 분입니다. 게다가 말로 하기 이전 「생각하는 것」에 그쳤을지라도 그 생각에 넘치도록 응답해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줄어들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은 기도해도 들어주시기 않을거라고 주저해 버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응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2 「능히 하실 이에게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이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세계는 무한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능∙무한의 능력에 대한 확신은 사도바울이 마음대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성경이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창세기17:1) 「주께서는 무소 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욥기42:2)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누가복음1:37)

 

반대로 하나님은 그분의 성질에 반하는 것이나 자기 모순이 되는 일을 하실 수 없으십니다. 악을 방치하는 것이나 그분 자신을 부정하는 일, 거짓말하는 것, 범죄하는 것은 하실 수 없습니다. 또한 사각형의 원을 만드실 수 없습니다. 이것들은 능력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러한 일을 기도해도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분 자신의 능력을 지배하는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시려고 결정하신 것을 하실 수 있지만, 반드시 언제나 무언가를 하려고 결심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은 필연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자유의 존재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전능성은 자기 한정의 능력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것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이성을 가지고 피조물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하는 것으로 하나님은 어느정도 그분을 제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능력을 한번 발휘하셔서 이 우주에서 죄를 추방하시지 않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또한 강제로 모든 인간을 구하시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은 창조가 기적이나 직접계시는 영감이나 우리들의 신생에 관련된 능력으로써, 필요한 때에 직접적으로 절대적으로 일하십니다. 또한 섭리의 업적으로써 모든 존재하고 있는 제2원인이 질서 정연하게 작용하도록 일하십니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의 존재를 생활의 실전 속에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들 속에 똑같이 일하십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는 말씀을 사용하셔서 성령께서 일하십니다. 예수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는 섭리적 제2원인을 크게 사용하셔서 일하십니다. 믿는 자 한사람한사람의 기도∙ 은사∙ 능력∙ 시간∙ 신체∙ 재산 등을 사용하셔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9: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21절 교회도 성도도 이 분을 바라볼 때 일상생활 중에서 「교회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이라고 기도를 맺는 것입니다.

 

3 영광이란 하나님의 비할 수 없는 놀라움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찬란함입니다. 하나님의 성결함,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선, 하나님의 진실함의 빛입니다.

교회는 이 하나님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기 위해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 영원히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 이 모든 존재의 목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택하신 백성의 예배를 통해, 교회원의 정결한 생활을 통해, 복음선교를 통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봉사를 하는 것을 통해, 또한 교회의 영적 성질을 통해, 넘치도록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영원히 영광이 하나님께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이야말로 영원히 찬양받으실 분이십니다.

 

오늘 모든일이 쓰러져 하나님의 영광을 발밑으로 짓밟고, 기껏해야 수십년밖에 가질 수 없는 영광을 찾아 헤매는 인간을 향해 크리스챤은 하나님이야 말로 영원히 찬양받으실 분이라고 그치지 않고 기도합니다.

 

아멘은 사도바울의 아멘이며 우리들의 아멘이기도 합니다.

 

 

 

 

 

 

 

コメントを投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