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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年2月21日 礼拝 説教(日本語文、韓国語文)ヨハネの福音書、使徒の働き 音声あり

 

2016年2月21日 「どのように聖書を読むといいのか?」その一

ヨハネ14:26、使徒の働き17:11

序文)今朝から、主イエス・キリスト様が、贖いの祝福を私たちに伝えるのに用いられる外的な手段、「みことばと礼典といのり」(ウェストミンスター小教理問答88問)について、どうのように読み、どのように受け、どのように祈るかについて、しばらく連続して学びをいたします。

ウェストミンスター小教理問答:問90 御言葉が救いに有効となるには、御言葉をどのように読み、また聞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か。

答 御言葉が救いに有効となるには、私たちは、勤勉、準備、祈祷をもってこれに傾聴し、信仰と愛をもって受けいれ、私たちの心のうちに蓄え、私たちの生活の中で実践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洗礼準備クラスや転入準備クラスで、理論的なことを話しておりますが、この「どのようにして」(How to)を詳しく話しておりませんので、補いとしたいと存じます。

御言葉が救いに有効となるには、私たちは、勤勉、準備、祈祷をもってこれを傾聴しと、まずあります。読むことは傾聴することだといわれています。主イエス様がルカ8:18で「だから、聞き方に注意しなさい。」と注意されました。さらに10:26「律法には、何と書いてありますか。あなたはどう読んでいますか。」と問われました。「どのように理解しているか」が問われました。そのうえで、傾聴しているか、です。勤勉、準備、祈祷をもって読み、聴くのです。それは信仰と愛をもって受け入れ、心の内に蓄え、生活の中で実践するという読み方、聴き方であるといわれています。

 

Ⅰ まず、聖書を理解する上で、私たちの真の教師は誰でしょうか?

A「聖書を読んでいる時、解釈している時、私たちが信じるべきことがらで、重要なことは、聖霊の内的啓明(イルミネーション)ということです。聖書が神の言葉であることは、客観的な「聖書の霊感」(インスピレーション)によって聖書の中に示されていますが、私たちが神の言葉として確信するときに聖霊の内的な啓明があるのです。さらにみことば理解に際して、真理の聖霊が読む者に働かれることを信じています。」(ジョン・ストット)

では聖霊は、どのような者を照らされるかを学びましょう。

1 聖霊は新生した者を照らされます。「人は、新しく生まれなければ、神の国を見ることはできません」(ヨハネ3:3)。第一コリント2:14では、「生まれながらの人は、神の御霊に属することを受け入れません。・・御霊の事は御霊によってわきまえるものだからです」とあります。

2 聖霊はへりくだる者を照らします。誇りほど理解の妨げとなるものはありません。へりくだる以上に重要な条件は他にありません。マタイ11:25-26「天地の主であられる父よ。あなたをほめたたえます。これらのことを、賢い者や知恵のある者には隠して、幼子たちに現してくださいました。そうです、父よ。これがみこころにかなったことでした。」知的に誇っている者には神がご自身を隠されるのです。理解させてくださいと祈ることは、神にへりくだって待ち望む態度の表明であります。それで大切なことは、聖書を読む前に祈ることです。

3 聖霊は従順な者の心を照らします。

聖書を用いる神様の目的は、一般的に「教える」ことでなく「救いを得させる」ことです。神は御言葉を読む者の反応に関心を持っておられるのです。どれぐらい敏感に、また喜んで傾聴し、従うかが理解の程度の決め手となります。

4 聖霊は、他の人に伝達しようとする者の心を照らします。               神が私たちに与えられる理解は、ただ私たちの楽しみのために与えられているのではありません。私たちがそれを分け与える為に与えられるのです。どのように聴くかは、どのように伝えるかと深く関係しています。弟子達が主イエス・キリスト様にどのように聴いたかによって、伝える福音の中身が決まりました。彼らが人々に伝達するために、主に聴いたときに、豊かに受けたのです。マルコ4:24。

B 聖霊に全く信頼しながら、私たち自身もまた自分を教えなければならなりません。つまり私たちは神の教えを受ける中で、完全に受け身の立場にあるわけでなく、私たち自身の理性を責任をもって使うことを期待されています。聖霊の啓明があれば人間の努力はいらないというわけではありません。謙遜に神からの光を求めつつ、学びの時にも勤勉に規律ある学び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弟子達が理解力のなさと良識を働かせないでいることを主は責められました。「なぜ、自分から進んで、何が正しいかを判断しないのですか。」ルカ12:57

「私が言っていることをよく考えなさい。主はすべてのことについて、理解する力をあなたがたに必ず与えてくださいます。」第二テモテ2:7

 

C 教会の教え

聖書を理解して個人的に教えられることの重要性はどこまでも正しいのです。と同時に教会はみことばの正しい理解を神の民に与えるべき役目をあたえられています。過去にローマカトリック教会がそれを独り占めして甚だしい誤謬に教会を導き入れたことがあるからといって、神が本来教会に与えられた役目まで否定してはならないのです。聖霊は、個人的に教えられる、と同時に間接的に他の信者を通しても教えられるからです。聖書の真理は一人に現されたのでなく、多くの預言者、使徒たちに示されました。啓明のみわざもまた同じです。「すべての聖徒とともに」「キリストの愛の広さ、長さ、高さ、深さがどれほどであるかを理解する力を持つようになり」エペソ3:18-19。聖霊は霊感を与えられた最後の使徒が死んだ後に、「啓示から啓明」へと働きを転じられて、聖書全体に与えられた啓示を、よりよく理解し、より明白にし、より体系化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とされました。

過去の信仰の遺産を軽んじてはならないのです。特に宗教改革によって再発掘された真理を失ってはならないのです。もちろん過ちを犯さない人間はいないのです。主イエス・キリストご自身が私たちの完全な教師です。尊敬と謙遜と熱心をもって彼らに耳を傾け、彼らが忠実に解きあかすとき、その唇を通して神のことばの養いを受け、同時に自分自身で、彼らが語る事が真実かどうかを知るために「毎日聖書を調べる」(使徒17:11)ことは、私たちの義務であります。

 

Ⅱ 聖書は神のことばであると信じて、読む始めるときに、最も重要な課題は、聖書の解釈の原則、法則、方法に関して理解することです。ウェストミンスター信仰告白では、1章聖書について9項で「聖書解釈の無謬の規準は、聖書自身です。従って、どの聖句の(多様でなく、一つである)真の完全な意味について疑問のある場合も、もっと明らかに語る他の箇所によって探求し、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告白しています。

A 聖書自体が明らかにしていることに、まず注意を向けることが、最も確かな道です。

1 文脈を読む 読み調べている聖書箇所が、どのような思想の流れの中に位置しているかを知ることです。前後を読むともいいます。なるべくすぐ前、すぐ後を読むのが基本です。場合によってはその書巻全体の特徴を読むことが必要です。もっと明らかに語る他の箇所も読む。著者が序文や(ルカの福音書など)結論(ヨハネ20:31)などがある場合、それを探すこと。

前後を読むと、途中で挿入があったりする場合もある。コリント第二2:13。14節からは別の事柄、7:5再開している。脱線があることを確かめよう。

また単純に時間的な経過で続けられる場合もある。「使徒の働き」など多い。歴史的続き方。さらに、ルカの福音書3:22まで時間的に来て、23節-38節までは、出来事と関連した教理的な内容を教える部分が入っている。歴史的・教義的つづき。あるいはまたローマ書のように論理的順番で展開してゆく。論理的続き。他に心理的続きもある。サムエル第二18:

2 並行文 パラレル  同じ事柄を書いている別の箇所を読む。「列王記」と「歴代誌」、「マタイ」と「ルカ」と「マルコ」補いあって、著者がわざと抜かしたところが分かる場合がある。例:ルカ5:14と15とくらべマルコ1:44-45、サムエル第二7:11.13と歴代誌第一22:8

3 段落 日本語の聖書にある章・節、段落を最初は無視して読むこと。行が一段下がっていてもです。それらは全て後から読むやすくするためや、印刷屋さんが便宜上つけたのが習慣的に残った物であったりするからです。旧約聖書は1571年に全部に章、節がついたのです。新約聖書はフランスの印刷屋がつけたのです。学問的に研究して付けたわけではないので、自分で章・節をつけ段落を付けるぐらいに研究されることが良いのです。それですから説教する場合、この段落、章、節を無視して、思想的な流れで区切りをすることがあるのです。

イザヤ52:13から53:はひとまとめです。53章になって区切りがあるのではないのです。さらに、読んでいる聖書の箇所で、何回も同じ言い回しがでてくるところは、その都度チェックしてみることです。例:レビ記7:終わり、11章終わり、13章終わり、14章終わり、15章終わり、26章終わり、27章最後、良くでてきた結びの言葉は何でしたか。

 

4 接続詞、前置詞などのような言い回しの似たものを捜す。

コリント第一 7:1、8:1、12:1、16:1、16:12 「何々について」の繰り返しテーマの変化をしる。

 

5 書かれたねらいがわかれば、そのねらいに沿って読む。ヨハネ20、21章「イエス様を信じてもらうため」とある。それなら1章から読みなおして、「あなたはこれを信じますか」という箇所で区切ってゆくと、そこが山だとよく分かる。

 

6 語意を読む 著者が用いていることばの意味を知る。定義や説明がある場合はそれを発見し、その意味通りによむ。比喩である場合は何の比喩であるかを文脈で捕らえる。詩篇、ヨブ記、黙示録などは比喩が圧倒的に多い。文学的センスが必要である。

比喩の中で単純なのは、明喩(simile)「何々のようだ」比較したことが歴然として分かる。「雅歌」に多くでてくる7:1。隠喩(metaphor)「ようだ」と言わないでたとえてしまう7:2。ルカ13:32「あの狐」ヘロデのこと。換喩(metonymies)「名を入れかえる」という意味の語。本体と属性を入れかえる。先祖の名前と子孫の名前を入れかえる。器と中身を入れかえる。コリント第一10:21「主の杯」とは杯の中のぶどう酒のこと。代喩あるいは提喩(synecdoche)換喩と似ているが、もっと物理的な関係のこと。部分と全体を入れかえる。単数形と複数形を入れかえるというふうなものです。詩篇32:3骨とはからだ全体のこと。イザヤ2:2-5剣や槍は「戦争」の代喩。

誇張(hyperbole)説明の必要がないほど明白。

誇張の正反対は「婉曲法」(euphemism)、「曲言法」(litotes)、「緩叙法」(meiosis)などある。「婉曲法」は、どぎつい表現を少し押さえて「美しく表現する」使徒7:60。「曲言法」は否定文を使って実は肯定を表したい。詩篇51篇「さげすまれません」重んじると言うことを言いたい。イザヤ42:3積極的なことを言いたい。「緩叙法」非常に小さなことをつつましく言いながら、実はもっと大きなことを言っている。テサロニケ第二3:2「すべての人が信仰をもっているのではないからです。」とは「全ての人が信仰を持っていないのです。」と言いたい。

 

結び)聖書は、世界で最も偉大な書物である。信じる者に段階的に啓示することをよしとされた神のみこころと目的を明らかにしている。解釈する者の祈りは、啓示の全体を十分に見渡すことができるように、さらに知的能力が強められ、それで木を見て森を見ないようにならないようにということである。神の啓示の様式に十分注意を払い、神が啓示される霊的目的に対して心を開く必要があります。

 

次回は、聖書の背景理解、旧約聖書をどのように理解するかを話します。

 

2016 2 21 어떻게 성경을 읽으면 좋은가? 첫번째

요한복음14:26, 사도행전 17:11

서문) 오늘부터는 주예수 그리스도가 대속의 축복을 우리에게 전해주시기 위해 사용하신 외적수단, 「말씀과 예배와 기도」(웨스트민스터 소교리 문답 88문)를 어떻게 읽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당분간 공부하겠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교리 문답:문90 말씀이 구원에 유효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어떻게 읽고 또한 듣지않으면 안됩니까?

 

: 말씀이 구원에 유효하기위해서는 우리는 근면, 준비, 기도로 이것에 귀를 기울이고, 믿음과 사랑으로 받아들이며, 마음속에 채우며 우리 생활속에 실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세례준비 과정이나 전입준비 과정에서 이론적인 것은 설명했지만, 이 「어떻게」 (How to)에 관해서는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으므로 보충하려 합니다.

 

말씀이 구원에 유효하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근면, 준비, 기도로써 이것에 귀를 기울이고, 라고 처음에 쓰여 있습니다. 읽는 것은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누가복음8:18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라고 주의하셨습니다. 더욱이 10:26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라고 물으셨습니다.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런다음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입니다. 근면, 준비, 기도로 읽고, 듣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과 사랑으로 받아들여, 마음속에 채우며, 생활속에서 실천하게되는 읽는법, 듣는법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Ⅰ 먼저, 성경을 이해하는데, 우리들의 참된 교사는 누구입니까?

A 「성경을 읽고 해석할 때, 우리가 믿어야 할 중요한 것은 성령의 내적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객관적 「성경의 영감」 (인스피레이션)에 의해 성경중에 나타내고 있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신할 때에 성령의 내적 계명(인스피레이션)이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말씀을 이해할 때는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읽는 자에게 일하신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존 스토트)

그렇다면 성령은 어떠한 자에게 깨닫게 해 주시는지를 배웁시다.

 

1 성령은 새롭게 자를 깨닫게 해주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한복음3:3) 고린도 전서 2:14에는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라고 나와있습니다.

2 성령은 겸손한 자를 깨닫게 해주십니다. 자랑만큼 성령의 이해를 방해하는 것은 없습니다. 겸손보다 더 중요한 조건은 없습니다. 마태복음11:25-26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지적으로 자만해 있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감추십니다. 이해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도는 하나님께 겸손하게 기다리며 구하는 태도의 표명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성경을 읽기전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3 성령은 순종하는 자의 마음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성경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은 일반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읽는 자의 반응에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얼마나 민감하게 기쁨으로 경청하고 순종하는지가 이해의 정도를 알게되는 것입니다.

 

4 성령은 타인에게 전하려는 자의 마음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밝혀주신 진리는 그저 우리들의 즐거움을 위해 주고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것을 나누도록하기 위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들을것인지는 어떻게 전할 것인지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전한 복음의 내용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들은 말씀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들이 사람들에게 전하기위해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때에는 풍요롭게 받아들인 것이었습니다. 마가복음4:24

B 성령을 완전하게 신뢰하며, 우리도 자신을 가르치지 않으면 안됩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고있는 도중으로 완전하게 받기만 하는 입장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이성에 대해 책임을 갖고 사용할 것을 기대받고 있습니다. 성령의 계명만 있으면 인간의 노력은 필요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하게 하나님의 빛을 구하며 배울때에도 근면하게 배우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이해력 없슴과 양식을 발휘하지않는 것에 대하여 예수님은 꾸중하셨습니다.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치 아니하느냐」 누가복음12:57

「내 말하는 것을 생각하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디모데후서2:7

C 교회의 가르침

성경을 이해하고 개인적 가르침을 받는것에 대한 중요성은 아무리 얘기해도 과한 것이 아닙니다. 동시에, 교회는 하나님 백성이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로마 카톨릭교회가 이것을 독점하여 대단한 오류를 교회가 범했다 하여, 하나님께서 본래 교회에 부여하신 역할까지 부정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개인적으로 가르쳐 주십니다. 동시에 간접적으로 다른 신자를 통해서도 깨닫게 하십니다. 성경의 진리는 한사람에게만 나타내시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선지자, 신도들에게도 나타내십니다. 계명의 업적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성도와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에베소서2:18-19 성령은 영감을 부여하신 마지막 신도가 죽은 후에는 「계시에서 계명」으로 바꾸어 일하시고, 성경전체에 기록하신 계시를 더욱 잘 이해하고, 더욱 명백하게 하고, 더욱 체계화 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과거의 믿음의 유산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특히, 종교개혁을 통해 재발굴된 진리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물론 잘못을 범하지 않는 인간은 없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들의 완전한 교사이십니다. 존경와 겸손과 열심으로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충실하게 말씀을 밝힐 때, 그 입술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의 양육을 받는 동시에, 그들이 전하는 말씀이 진실인지 어떤지를 알기위해 스스로 「매일 성경을 읽는」 (사도행전17:11) 것은 우리들의 의무입니다.

 

Ⅱ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고 읽기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과제는 성경 해석의 원칙, 법칙, 방법에 대하여 이해하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에서는 1장 성경에 관해 9항에서 「성경해석의 무류의 기준은 성경 자신입니다. 따라서 어떤 성경구절의(다양함이 아닌, 하나) 진실로 완전한 의미에 대해 의문이 있는 경우에도, 더욱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다른 곳을 통해 탐구하고, 깨닫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A 성경자체가 밝히고 있는 것에 먼저 주의를 살피는 것이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1 문맥을 읽는다   살펴보고 있는 성경구절이 어떠한 사상의 흐름속에 있는지 깨닫는 것입니다. 전후를 읽는것도 그러합니다. 할 수있다면 직전, 직후를 읽는것이 기본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서 전체의 특징을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더욱 확실하게 말하고 있는 다른 구절도 읽어봅니다. 저자가 서문이나(누가복음 등) 결론(요한복음20:31)등이 있는 경우, 그것을 찾아봅니다.

전후를 읽으면 도중에 개입이 있는경우도 있습니다. 고린도후서2:13, 14절부터는 다른 사건, 7:5재개하고 있습니다. 탈선이 있슴을 확인해 봅시다.

또한 단순하게 시간적 경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역사적 연결법

더욱이 누가복음 3:22까지 시간적으로 기록되어 있고, 23절-38절까지는 일어난 사건과 관련된 교리적 내용을 가르치는 부분이 들어있습니다. 역사적∙교의적 연속. 또는 로마서처럼 윤리적 순서로 전개되어가기도 합니다. 윤리적 연속. 그 외에 심리적 연속도 있습니다. 사무엘하18:

 

2 병행문 패럴렐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다른 곳의 말씀을 읽습니다. 「열왕기」과 「역대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과 「마가복음」 서로가 보충하여, 저자가 일부러 생략한 곳을 알 수 있습니다. 예:누가복음5:14와 15:와 마가복음1:44-45을 비교한다. 사무엘하7:11,13과 역대상22:8을 비교한다.

 

3 단락 일본어 성경에 있는 장∙ 절 ∙단을 처음은 무시하고 읽습니다. 열이 한줄 내려가 있어도 입니다. 이것들은 읽기 쉽게하기 위해서나, 인쇄하는 데 편리상 붙인것이 습관으로 남아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1571년에 구약성경은 장과 절이 붙여졌습니다. 신약성경은 프랑스의 인쇄소에서 붙인것입니다. 학문적으로 연구해서 붙인것이 아니므로 자신이 장∙절을 붙에 단락을 나눌 정도로 연구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교하는 경우, 이 단락, 장, 절을 무시하고, 사상적 흐름으로 구분하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52:13부터 53:은 일괄되어 있습니다. 53장에 단락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더욱이 읽고 있는 성경구절 중에 몇번이나 같은 표현이 나오고 있는 곳은 그 때마다 확인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예:레위기7: 마지막, 11장 마지막, 13장 마지막, 14장 마지막, 15장 마지막, 26장 마지막, 27장 마지막, 자주 나오고 있는 맺음의 말씀은 무엇이었습니까?

 

4 접속사, 전치사등과 같은 표현의 비슷한 곳을 찾는다.

고린도전서7:1,8:1,12:1,16:1,16:12 「…것에 대하여」의 반복

주제의 변화를 알게됩니다.

 

5 쓰여진 의도를 알면, 그 의도를 따라 읽는다, 요한복음20,21장은「예수를 믿게 하기 위한」것입니다. 그렇다면 1장부터 다시 읽어보면, 「너는 이것을 믿느냐」라는 구절을 구분해 가면, 그곳이 중요한 장면임을 잘 알 수 있습니다.

 

6 어의를 읽는다. 저자가 사용하고 있는 말의 의미를 생각합니다. 정의나 설명이 있는 경우에는 그것을 발견하고, 그 의미대로 읽습니다. 비유의 경우에는 무엇의 비유인지를 문맥속에서 파악합니다. 시편, 욥기, 요한계시록 등은 압도적으로 비유가 많이 나옵니다. 문학적 감각이 필요합니다.

비유중에서 단순한 것은 명유(simile) 「…과 같다」 비유된 것임을 명백하게 알 수 있습니다. 「애가」에 자주 나옵니다. 7:1. 은유(metaphor)「…과 같다」라고 말하지 않고 예를 듭니다. 7:2. 누가복음13:32「저 여우」 베드로를 가리킵니다. 환유(metonymies)「이름을 바꾸어 말하다」라는 의미의 말. 본체와 속성을 바꿉니다. 선조의 이름과 자손의 이름을 바꿉니다. 그릇과 내용물을 바꿉니다. 고린도전서 10:21「주의 잔」이란 잔 속에 있는 포도주를 말합니다. 대유 또는 제유(synecdoche) 환유와 비슷하지만, 더욱 물리적인 관계입니다. 부분과 전체를 바꿉니다. 단수형과 복수형을 바꾸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시편32:3뼈란 몸 전체를 말합니다. 이사야 2:2-5칼이나 창은 「전쟁」의 대유.

과장(hyperbole)설명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 명백.

과장의 반대로는 「완곡법」(euphemism), 「곡언법」(litotes)、 「완서법」 (meiosis) 등이 있습니다. 「완곡법」은 강렬한 표현을 억누르고 「아름답게 표현합니다.」 사도행전 7:60 「곡언법」은 부정문을 사용하여 긍정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시편51편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42:3적극적인 것을 말합니다. 「완서법」 극히 작은 것을 조심스럽게 말하지만 실제는 더욱 큰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3:2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란 「모든 사람이 믿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맺음) 성경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서적입니다. 믿는자에게 단계적으로 계시하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의 마음과 목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해석하는 자의 기도는 명시 전체를 충분하게 둘러 볼 수 있도록, 더욱이 지적능력이 강화되며, 그러므로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못하는 일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시의 양식에 주의하며, 하나님께서 명시하시는 영적 목적에 마음을 열어야 할 것입니다.

다음주에는 성경의 배경해석, 구약성경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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