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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年3月20日 礼拝 説教(日本語文、韓国語文)マルコ14章26-31節 音声あり

 

 

2016年3月20日 招詞 ルカ22:31   聖書朗読 マルコの福音書14章26−31

聖書の話 「なお、愛したもう主」

序)今年の受難週の聖書日課はマルコの福音書を読みます。今朝は14:26-31の学びをします。あすから受難週祈祷会を土曜日まで毎日9:00−10:00に行い、イースターまでマルコ福音を続けてまなびます。

Ⅰ  マルコの福音書14章26−31

1 「イエスは弟子たちに言われた。{あなたがたはみな、つまずきます。わたしが羊飼いを打つ。すると、羊は散り散りになる。と書いてありますから。}しかしわたしは、よみがえってから、あなたがたより先に、ガリラヤに行きます」(14:27-28)。弟子たちが会う試練が,旧約聖書に預言されているとおりに、これから、起こるとイエス様は言われました。

驚かせただけでなく、ご自分のよみがえりの希望もちゃんと添えておっしゃいました。

救い主との関係のために、信仰者はこの世で信仰の試練に会います。み国での完成に向かって真実に歩む者を主は訓練して、神のご栄光に結びつけ、役立つものに変えようとされるのです。その時、神様の側では善意(神の子たちを覚えて益となすようにすべてのことを計らい執り成されるお心)を示して、試練にあっている者の心を練り鍛え、主イエス・キリストへの信頼が増し加わるようにと働かれます。み子イエス様はご自分が十字架を目前にしている危機の時に、なお、愛する弟子ペテロのために示された善意が、ここに記されています。私たちは自分が危機的状態の時でも、他の人に向かってなお善意を示しうる存在であることを教えられるのです。それは復活の希望があるからです。

 

2 私たちが信仰の試練の時に罪に陥る原因は、おおよそ三通りあります。

① 自分たちの内に残っている、罪の腐敗の優勢さのために罪を犯す(ローマ7:19-25)。

② 自分を保持する恵みの外的手段、みことば・祈り・礼典をないがしろにすること。

③ 今日のみことばにあるようにサタンがしかけてくる誘惑です。

主イエス様が弟子たち全員に警告されたのに応答して、筆頭弟子であったペテロは、勇敢にも、「たとえ全部の者がつまずいても、私はつまずきません」(29節)、と断言しました。さらに31節のこれ以上はないと言うほどの信仰の表明をしました。

しかし、ルカの福音書22:31には、イエス様の警告のことばが次のように記してあります。「 シモン、シモン。見なさい。サタンが、あなたがたを麦のようにふるいにかけることを願って聞き届けられました。 しかし、わたしは、あなたの信仰がなくならないように、あなたのために祈りました。だからあなたは、立ち直ったら、兄弟たちを力づけてやりなさい。」

サタンは襲いかかろうとしていました。麦のようにふるいにかける。ペテロがかけられたふるいは、主イエスの逮捕と十字架の死と迫害への恐怖です。またこの世の誘惑です。「まことに、あなたに告げます。あなたは、きょう、今夜、鶏が二度鳴くまえに、わたしをしらないと三度言います。」

私たちを主イエスから引き離し、永遠の滅びに引き込もうとする、現実的、人格的な存在であるサタンは信仰者たちを挫折させようと活動しているのです。ただ信仰者をふるうことは本来、神様のお働きであって、それによって信仰者の信仰をためし、強く打ちなおしするために起こるのです。銀を精錬するように信仰を精錬されるのです。神が私たちをためされるときは、神から捨てられたように感じます。これはその信仰が不死のものであるかどうかをためす一つの道です。

喜びだけが信仰のすべてではありません。主は時には主が恐るべき方であることを示そうとして信仰をためされます。また時には、アブラハムのように最愛の者を差し出すようにとためされます。そのような中で、信じ従いとおすことが唯一の逃れる道となっていることを見せられるのです。

本来は神の働きであることをサタンは丁度、旧約時代のヨブにたいして行ったようにペテロにしようとして許可を求めました。神はこの求めを聞かれました。ペテロのことは最終的に神の確かな手の中にあったのです。ペテロは性格的な弱さを徹底的に焼きつくされ、自我を砕かれてキリストの内に円熟した人物へと変えられて復活の主の前に残りの生涯を全力で歩み通す機会として神は、サタンのちょっかいをゆるしました。この通りのことが14:66-72に起こりました(この箇所の詳しい説明は24日の祈祷会で取り扱います)。その背後に主イエスの究極の善意(good will)が溢れていました。

 

Ⅱ ルカ22:31  イエス様のペテロへの善意の中身

1 主イエス様はペテロの信仰がなくならないようにと祈りました。ペテロの信仰は、なくなる危険性がありました。私たちはどうでしょうか。立ち直ったらといわれたのは、つまずく危険性もあったからです。事実ペテロはつまずきました。マルコ14:29のペテロの断言「全部がつまずいても、自分だけはつまずかない」は、ペテロの信仰が自分の力により頼む信仰であった証拠です。他の人のために親切や善意を示したペテロを見ることはほとんどないのです。自分の勢いだけで生きているのです。自負心や気負い、がんばりから解放されていないのです。信仰がないのではありません。ただ自分のための信仰なのです。気分や感情が信仰を支配しているのです。信仰が気分や感情を支配しなければ、とても他の人を長く力づけることなどできないのです。善意の行動を示すことはできないのです。それでも主イエスはペテロのこのような信仰をあなたの信仰といってくださったのです。

 

2 その上で、つきはなさず、あきらめず、取りなしの祈りというペテロへの善意の行動をなさいました。「あなたのために祈りました。」主イエスさまは今日もわたしたちに「あなたのために祈りました」といって下さっているのです。善意は人間の問題に目をつぶることではありません。目をそらすことでもありません。弱さは何か、欠点は何か、罪は何かをごらんになっています。はっきりと指摘されます。しかし問題だといって終わらせるのでなく、心から祈って下さったのです。これが善意です。ペテロの現実に失望することなく、あなたのために祈りました、といって下さるのです。

 

3 それは、私たちが「立ち直る」という明るい未来を見て下さっているからです。立ち直り兄弟たちを力づけているペテロを見て下さっているのです。青年の危うい信仰の未来に、初代教会の指導者となるペテロを見ておられるのです。つまずくけれども立ち直る姿をみておられる。それで本当の意味で人を力づけるペテロをみておられるのです。ペンテコステ以来のペテロを覚えましょう。迫害を受けて、主と同じように十字架につけられて死ぬことを選んで栄光を神に帰したペテロを見ておられたのです。ペテロの手紙を第一、第二と二巻ものこして、多大な霊的恵みを,いまも届け続けているペテロです。

 

Ⅲ ペテロのために神の力に期待された。

私たちが主イエス様のこの模範に習って善意(信仰の仲間たちを覚えて、益となすようにすべてのことを計らい執り成しする心)を発揮するとき、それは神の力に一番期待するということを覚えましょう。

人に対する期待には限界があります。しかし神に対する期待には限界がないのです。そこに祈りが生まれます。

神は罪深い私たちをご自身に振り向かせ、救われました。罪人を神の聖徒に変えられました。弱気な者を励まし、福音のために勇士にする力があります。怠惰な者を信仰溢れる者に変えて、見違えるほどの働きをさせるお方です。地獄の淵に沈むものを、御国の門守に変える力があります。

主イエスの善意は、私たちを変えました。私たちの他の人への善意は、神への期待により、他の人を変えるのです。それぞれの過去に捕らわれることなく、現在の姿がすべてではないと思うことに善意が働くとき、創造主・救い主・完成者イエスのごらんになっている、あなたと他の人にたいするすばらしい神の子たちとしての未来があるのです。

 

結び)当事者であったペテロが、人生の成熟期に自分の経験をもとにして、私たちに奨励した信仰の言葉を味わいましょう。「ですから、あなたがたは、神の力強い御手の下にへりくだりなさい。神が、ちょうど良い時に、あなたがたを高くしてくださるためです。あなたがたの思い煩いを、いっさい神にゆだねなさい。神があなたがたのことを心配してくださるからです。」Ⅰペテロ5:6-7

若い頃のペテロと違って、成熟した彼は神の前での謙遜を身につけています。神の前での謙遜は真の知恵です。他のさまざまな事柄の中で、これは神の知恵にこうべを垂れ、神の摂理の曲折を受け入れ、私達のすべての心配事を神に任せる事を含みます。これはこの人生では個人的な損失を意味するかも知れないが、自ら神の前にへりくだることは、「神が、ちょうど良い時に、あなたがたを高くしてくださる」ので、常に信者の利益になるのです。「高くしてくださる」特別の時も特別の種類も特定されていないので、一般的な言明です。この世であろうと来るべき世であろうと神が最善と思われる時に、あなたがたのへりくだった状態から引き上げて、あなたがたを神にとって最善と思われる方法で「高くしてくださる」でしょう。おそらく豊かにされた霊的祝福と神ご自身との深い交わりとの関連において、他の人たちにも見られる責任、報酬、栄誉との関係においても。「キリストとともに千年の間王となる」(黙示録20:4)。

ペテロは6節の「へりくだりなさい」という文脈につづけて,どのように実行されるべきかをしめすために、7節を分詞句でつないでいます。へりくだりは思い煩いを一切神にゆだねることで、適切な謙遜が達成されると言っています。それは「思い煩い」が、神がすべてを知り、治めておられる力と真実とを考えるならば、その日々の導きのたしかさを認めるなら、神にゆだねる心が起こるはずであるが、そうしないで,自分で何とかしようと考えることからくる。しかし、一切を神様にゆだねるなら、すなわち、へりくだって神を神とするならば、神があなたのことを心配してくださることに気づき、また事実そのすべてを栄光のために最善になるようにと支配されることがわかる。これがペテロが主イエス樣から語られて、信仰生涯で体験したことでした。

わたしたちは、主にある兄弟姉妹のためにより重要な存在としてみとめ配慮することが求められているが、それができない障害は、「ではいったい誰が自分のことを心配してくださるのか」という人間の正当な心配であると知っている。それで、神ご自身が、私たちの必要について心配してくださっていると答えている。神は主イエス様の救いによって、ご自身の「子とした」ひとりひとりのために絶えず心配しておられるからです。このことは、自分の絶えまない心配から解放されて、他の兄弟姉妹のために配慮できることを可能にする。

「ゆだねる」とは、何かをほかのだれか、他の何かの上に投げかけることです。私たちのいっさいの不安を神にゆだねることは、神を神とすること、救い主を救い主とすることです。詩篇55:22「あなたの重荷を主にゆだねよ。主は、あなたのことを心配してくださる。主は決して正しい者がゆるがされるようにはなさらない。」詩篇68:19「ほむべきかな、日々、私たちのために重荷を担われる主、私たちの救いであられる神」 だから、主は「明日のことを思い煩うな。」と言われました。神が、あなたのことを心配してくださる。私たちのために重荷を負ってくださる。この主のおこころに思いいたるようにいのりましょう。

 

2016 3 20 초대의 누가복음22:31

성경말씀 마가복음14 26-31

이전보다 더욱 주를 사랑함

 

서문) 올해의 고난주간 성경일과는 마가복음을 읽겠습니다. 오늘 아침은 14:26-31을 배우겠습니다. 내일부터는 고난주간 기도회가 매일 아침 9:00-10:00에, 토요일까지 있으며, 부활주일까지 마가복음을 연속해서 공부하겠습니다.

 

Ⅰ  마가복음1426-31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14:27-28) 제자들이 겪게 될 시련은 지금부터 구약성경에 예언되어 있는 대로 이루어 질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저 놀라게만 하신것이 아니라 그분의 부활에 대한 소망도 주셨습니다.

구세주와의 관계를 위해서 믿는자는 이 세상에서 믿음의 시련을 맞게 됩니다. 하늘나라에서의 완성을 향해 진실하게 살아가는 자를 예수님은 훈련시키시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로 변화시켜주십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선의(하나님의 자녀를 기억하시고, 모든것을 선으로 바꾸어주시기 위해 계획하시고 이루어주시는 마음)를 나타내시고, 시련을 겪고있는 자들의 마음을 단련하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신뢰가 더하게 해주십니다. 아들 예수님은 그분께서 십자가를 목전에 두셨을 때도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를 위해 보이신 선의가 이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위기적 상황에 있을 때에도 타인에게 더욱 선의를 보이는 존재가 되도록 가르치고 계십니다. 이것은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2 우리들이 믿음의 훈련을 겪을 때 범죄하게되는 원인은 크게 세가지가 있습니다.

  •  자신 속에 남아있는 부패한 죄의 우세로 죄를 범합니다. (로마서7:19-25)
  •  자신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은혜의 외적 수단, 말씀∙기도∙예배를 소홀히 하는 것.
  •  오늘 말씀에 나와있는 것처럼 사탄이 걸어오는 유혹입니다.

주예수님께서 제자들 모두에게 경고하셨지만 수제자 베드로는 용감하게도 「다 버릴찌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29절)라고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더욱이 31절에서는 예수를 부인하지 않겠다는 맹세의 신앙고백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22:31에, 예수님의 경고의 말씀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사탄이 유혹에 빠뜨리려 합니다. 밀 까부르듯 하려 합니다. 베드로가 빠진 유혹은 주 예수님의 체포와 십자가의 죽음, 박해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또한 이 세상의 유혹입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주 예수님으로부터 우리를 떼어내고, 영원한 멸망으로 끌어가려는 현실적, 인격적 존재의 사탄은 믿는 자들을 좌절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믿는자를 시험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로, 이것을 통해 믿는자의 믿음을 시험하고, 더욱 강하게 하시려고 합니다. 은을 단련하는 것처럼, 믿음을 단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시험하실 때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처럼 느끼기도 합니다. 이것은 그 믿음이 불멸한 것임을 시험하는 방법중 하나입니다.

기쁨만이 믿음의 전부가 아닙니다. 때로는 예수님은 두려운 분임을 나타내시려 믿음을 시험하십니다. 또한 때로는 아브라함처럼 가장 사랑하는 자를 바치도록 시험하시기도 합니다. 그러한 중에도 믿고 순종하는 것이 유일한 길임을 보이시려는 것입니다.

본래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사탄은 구약성경의 욥에게 한 것처럼 베드로에게 하려고 허가를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요청을 들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분명하신 손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성격상 약함을 철저히 느끼고, 자아를 깨고 그리스도 안에서 원숙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부활의 주 앞에서 남은 생애를 전력을 다해 걸어가는 기회로 하나님은 사탄의 시험을 허락하셨습니다. 이 일이 14:66-72에 일어났습니다. (이곳의 자세한 설명은 24일 기도회에 하겠습니다.) 그 배경에는 주 예수님의 궁극적 선의(good will)가 가득차 있었습니다.

Ⅱ 누가복음22:31 베드로에 대한 예수님의 선의의 내용

1 주 예수님은 베드로가 믿음을 잃지 않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어쩌면 믿음을 잃어버리게 될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돌이킨 후에라고 말씀하신 것은 넘어질 위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베드로는 시험에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마가복음14:29에 베드로가 「다 버릴찌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 라고 한 말은 베드로의 믿음이 자신의 힘에 의지한 믿음이었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타인을 위해 친절함이나 선의를 나타낸 베드로를 거의 볼 수 없습니다. 자신의 혈기만으로 살아온 것이었습니다. 자부심이나 패기, 열심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믿음이 없었던 것이 아니엇습니다. 그저 자신을 위한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기분이나 감정이 믿음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이 기분이나 감정을 지배하지 못하면 오랜 시간을 타인을 위해 격려할 수 없습니다. 선의의 행동을 나타낼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주 예수님은 베드로의 이런 믿음을 네 믿음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2 그런 후에도 버리지 않으시고, 포기하지 않고, 베드로에 대한 선의의 행동으로 중보기도해 주셨습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나니」 주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내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나니」라고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선의는 인간의 문제에 눈감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약한지, 결점이 무엇인지, 무엇이 죄인지를 보고 계십니다. 분명하게 지적해주십니다. 그러나 문제라고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기도해 주십니다. 이것이 선의입니다. 베드로의 현실에 실망하지 않고 너를 위해 기도하였나니 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3 이것은 우리가 「돌이킨 후에」라는 밝은 미래를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돌이킨 형제들을 격려하는 베드로를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청년의 위태한 믿음에서 장래에 초대교회의 지도자가 될 베드로를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넘어질찌라도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참된의미로 타인을 격려하게되는 베드로를 보고 계십니다. 성령강림 이후의 베드로를 생각해 봅시다. 박해를 받으며,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달려 죽을 것을 선택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베드로를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후서를 남겨 수많은 영적 은혜를 지금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베드로입니다.。

 

Ⅲ 베드로를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하셨습니다.

우리가 주 예수님의 이 모범을 배워 선의(믿음의 동료들을 기억하고, 모든 것을 선으로 바꾸도록 하는 마음)을 발휘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가장 기대하는 것임을 기억합시다.

사람에 대한 기대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기대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그 곳에는 기도가 생깁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우리를 그분에게 향하게 하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죄인을 하나님의 성도로 바꾸어주십니다. 약한 자를 격려하시고, 복음을 위해 용사로 만드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태만한 자를 믿음 가득한 자로 바꾸시며, 몰라볼 정도로 일하는 자로 만드시는 분입니다. 지옥의 구렁에 빠진 자를 하늘나라 문지기로 바꾸어주시는 능력있는 분입니다.

주 예수님의 선의는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타인에 대한 우리들의 선의는 하나님을 향한 기대를 통해 더욱 타인을 바꾸어 주십니다. 각자의 과거에 붙잡히지 않고, 현재의 모습이 전부가 아님을 기억하는 것으로 선의가 일할 때, 창조주∙ 구세주∙ 완성자 예수님께서 보고 계십니다. 당신과 타인에 대한 하나님의 자녀로써 놀라운 미래가 있습니다.

 

맺음) 당사자였던 베드로가 인생의 완숙기에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우리에게 장려한 믿음의 말씀을 읽고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베드로전서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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