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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年4月3日 礼拝 説教(日本語文、韓国語文)エレミヤ33章2-3節、詩篇25篇 音声あり

 

2016年4月3日 祈りの仕方 その一「神との交わり」 エレミヤ33:2-3、詩篇25:1

序文)主イエス・キリスト様の救いの恵みが,私たちに届けられる恵みの外的手段としてみことばと礼典と祈りです。今朝は「祈り」についてまなびます。祈りは「神との交わり」です。正確には、神様からの呼びかけにたいする、わたしたちの側からの応答です。基本的には、そのようなパーソナルな(人格的な)やりとりを交わりと言います。

Ⅰ 祈りは神様との交わり(コイノニア)

1 人が創造されたときに、神様との間に豊かな交わりができたのです。神様はアダムに話しかけます。するとアダムは答えます。その交わりは、瞬時にどこからでも、どのような状況下でも可能だったのです。この神の話しかけに応じる人間からの応答を、私たちは「祈り」と呼びます。祈りとは三位一体の神様が、ご自身に似るものとして、人格的存在として人を創造してくださったときに仕込んでくださった自然的本能なのです。人が存在するところには、必ず祈りがあります。アダムは、いちいち祈らなければなどと意識しなくても良かったのです。神様が彼にふさわしい助け手として女性イブを創造してくださったときに彼は言いました。{こうして神である主は、人から取ったあばら骨を、ひとりの女に造り上げ、その女を人のところに連れて来られた。 すると人は言った。「これこそ、今や、私の骨からの骨、私の肉からの肉。これを女と名づけよう。これは男から取られたのだから。」}(創世記2:22-23)これは最初のいのりです。神様のお働きに関して人として喜びと感動を込めて応答しているのです。ごく自然に祈っているのです。

祈りは、まず神様を見上げます。詩篇25篇1節「主よ。私のたましいは、あなたを仰いでいます。」あなたにむかって、主よ、私のたましいを,私は上げる。祈りの第一の姿勢が、ここにあります。すべてこの世の、罪ある、むなしい思いを捨て去り、私たちは信仰によって、至高の方、永遠の「わたしはある」といわれるお方の前に上ります。「たましい」をあらわす原語には、たくさんの意味が他にもあります。「息」「人」「動物」「自己」「死骸」「感情」または「願望」などです。ここでは、肉体の死後にも生き延びる者としての霊魂という意味よりも、祈っている人の全存在が、救い主である神様に意識的に向けられていることを示します。全存在をかけて見上げるのです。祈りは礼拝です。ダニエルが一日に三度、祈りと感謝をささげていました。まさに礼拝です。

次に、ことばで応答します。応答することばが見つからないときはただ沈黙して見上げるか、アダムが罪を犯してからは、ただうめいていたりすることもあります。そこに父なる神パーソンと、子なる神パーソンと、聖霊なる神パーソンがおられるからです。アダムは人パーソンとしてこの神様との豊かな交わりを当たり前のこととして日々に全時間楽しみました。何も妨げる者は他にいなかったのです。

 

2 アダムが罪を犯して以来の人間は、聖書が成立するまでは、直接的に語りかけられたり、預言者を通してみこえを聞いたりしました。また、神様の書き記させられたみことばとしての聖書が成立したときからは、読むことでみ声を聞ます。真理の聖霊様の啓明をえて読んでいる私たちは、みことばの示しに応じて、それぞれ応答をします。そこに交わりが生じます。その結果、主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て、聖書の神様との罪のもたらした断絶から救われて、和解をえて豊かないのちの交わりを回復していただきました。神様との交わりが全存在の基礎となったのでした。以来、人間が生きるために、呼吸を欠かすことができないように、クリスチャソ生活にとって、み声を聖書に聞くことと、それへの応答としての祈りは欠かすことのできないものです。

 

Ⅱ 神の側の交わりへの備え

1 祈りを通して神様への交わりが成り立つのは、何よりも神様の側の積極的な交わりへの働きかけがあるからです。創造者が被造物に向かってへりくだってくださって交わりを呼びかけておられるのです。アダムが罪を犯して神様との交わりから隠れようとしたときのことです。「そよ風の吹くころ、彼らは園を歩き回られる神である主の声を聞いた。それで人とその妻は、神である主の御顔を避けて園の木の間に身を隠した。 神である主は、人に呼びかけ、彼に仰せられた。「あなたは、どこにいるのか。」彼は答えた。「私は園で、あなたの声を聞きました。それで私は裸なので、恐れて、隠れました。」(創世記3:8-1。)この神様のお心がわたしたちの祈りを成り立たせています。救いへの道は、神様の一方的な恵によって備えられたのです。恵によって救われ、恵によって生かされ、導かれ、恵によって完成します。その恵への祈り応答のすべての局面で聞かれるのは、神様の側の交わりをしようとしてくださる働きかけがあるからです。それは新約聖書でも変わりません。

2 主イエス・キリスト様は、神の御子であるにもかかわらず、しもべのすがたをとって人となってくださった。その謙卑(ヒュミリエーション)が、わたしたちに直接応答できるようにとの道をひらきました。わたしたちは三位一体の神との交わりを、ヨハネが「見たもの、聞いたこと、手でさわったもの」というふうに、全生活の中で体験させられてゆくわけです。そして「主ともにいます」、ということをさらに強く信じて歩むわけです。信仰のスタートにおいてこのような人格的な神との交わりを大切に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曖昧にしてはなりません。それは全生活がインマヌエルの主との交わりであり、まさに全生活は祈りなのです。生きている一呼吸、一呼吸すべてが祈りといえます。吸う息で祈り、吐く息で祈っているのです。

3 神の側の、私たちの祈りへの備えは、主イエス・キリスト様による永遠のとりなしの備えです。へブル7:24-25「しかし、キリストは永遠に存在されるのであって、変わることのない祭司の務めを持っておられます。したがって、ご自分によって神に近づく人々を、完全に救うことがおできになります。キリストはいつも生きていて、彼らのために、とりなしをしておられるからです。」聖書の示す主イエス・キリストは救い主です。完全に救うことが出来る救い主です。このお方にすべての鍵が与えられているのです。ヘブル8:2「私たちの大祭司は天におられる大能者の御座の右に着座されたかたであり」としるされています。

 

Ⅲ 交わりへの態度

1 私たちが友人と交わりをもつ時、いつも堅苦しい形式的なものに縛られてはいないでしょう。個人的な、友達らしいやり方があるはずです。ハレスビーは次のように言っています。「交りは個人的であればあるほど、深く生命が生命に対して語りかける思想の相互交換である」と。ロザリンド・リンカーは、祈りは神様との会話であると書いています。普通のことばで親しく神様にお話しするのです。「天のお父様おはようございます。」「イエス様おはようございます。」といって一日を始めます。実に自由に応答をします。交わりの心でお話するのです。

 

2 ある人は「私は神と語り合うのには不十分な者です」と言うかもしれません。確かにそうです。私たちは誰ひとりとして、神と語り合うのにふさわしい者はいません。私たちはすべて、イェス・キリストを受け入れて、神に義なる者としていただくまでは、ふさわしくないのです。私たちは、なぜ神様が私たちに祈ることを要求しておられるのかを理解できないかもしれませんが、神はそうすることを求めておられるのです。

「どうか、私たちのうちに働く力によって、私たちの願うところ、思うところのすべてを越えて豊かに施すことのできる方に」(エペソ3:20)という聖句があります。私たちは祈りを通して神を知ります。祈りによって、神に私たちの人生の導きを示していただきます。祈りによって、私たちは神の御旨を求め、それに従うのです。また、祈りを通して、自らの必要を神に求めます。祈りは、神がご自身の忠実さ、愛、そして恵みを私たちに表示してくださる機会となるのです。祈りを通して、神は不可能を可能とされる御力を現わすことがおできになるのです。

3 新約のマタイ7:7、8を見てみましょう。「求めなさい。そうすれば与えられます。捜しなさい。そうすれば見つかります。たたきなさい。そうすれば開かれます。 だれであれ、求める者は受け、捜す者は見つけ出し、たたく者には開かれます。」これらの聖句は、私たちが有益な祈りをするために、どうすべきだと言っていますか。「私たちは、求め、捜し、たたく」べきです。

4 聖書は、祈りの失敗についても教えています。ヤコブ4:2-3を見てください。「あなたがたは、ほしがっても自分のものにならないと、人殺しをするのです。うらやんでも手に入れることができないと、争ったり、戦ったりするのです。あなたがたのものにならないのは、あなたがたが願わないからです。 願っても受けられないのは、自分の快楽のために使おうとして、悪い動機で願うからです。」私たちは、どうして手に入れることができないのでしょうか。3節には、失敗のもう1つの理由が述べられています。何が失敗の理由ですか。

5 イエスの弟子たちは、主とともに生活することによって、主について多くの事を学びました。イエスは神であったにもかかわらず、人となられたので、ご自身が多くの時を父に向かっての祈りに用いるべきであると知っておられました。ある時、主が祈りを終えられると、弟子たちは1つの事をお願いしました。ルカ11:1「さて、イエスはある所で祈っておられた。その祈りが終わると、弟子のひとりが、イエスに言った。「主よ。ヨハネが弟子たちに教えたように、私たちにも祈りを教えてください。」彼らは何を願いましたか。彼らは、どのように祈るかということではなく、祈ることを教えてくださいと求めたのです。彼らは、主が祈られたように祈りたいと願ったのでした。天国に行ってから残念に思うことが、もしあるとしたら、それはおそらく、なぜもっと祈らなかったのかということでしょう、とよく言われます。

また私たちは、「神は、私たちの求める先に必要をご存知なのに、どうして祈るのでしょうか」と考えるかもしれませんが、ここに家出をした少年の話があります。家を出た少年は、空腹と寒さに震え、次の日、寂しく家に戻って来ました。家にはいった少年は、テーブルの上に食物があるかどうかには目もくれず、ただ、まっすぐに母親の腕の中に飛び込んで行きました。神もこれと同じです。神は、私たちが、神からいただく物よりも、まず神ご自身を必要としていることをご存知なのです。ですから、私たちが祈りを通して、神と聖い交わりをもつことができるようにご計画されたのです。

 

結び)祈るということは、信心深そうな声を出したり、美辞麗句を並べたり、特別な型に従うことではありません。祈りについてのいろいろなテクニックを知ることはできるでしょうが、真に神に語りかけるのでなければ無意味です。私たちは、祈りの技巧に専心するあまり、祈りの根本精神を見失うかもしれないのです。私たちは祈るために技巧を必要としないのです。

「私たちは、祈ったあとで祈り以上の事ができます。しかし、祈らないならば、祈り以上の事はできない」のです。祈りを学ぶ最善の方法は、祈ることです。ストソウォール・ジャクソン元帥はクリスチャンでした。彼は救われて間もなく祈祷会で、牧師から祈りを求められました。彼はどもりながら、つかえながら祈ったので、出席者は皆、彼を気の毒に思いました。終わってから、牧師は彼に「君に恥ずかしい思いをさせてすまなかった。今度から、君が恥ずかしいなら祈れとは言ゎない」と言いますと、ジャクソンは「私は祈りを通してのみ祈ることを学ぶ事ができるのですから、これからもたびたび言ってください」と答えたそうです。

この祈りについての目的は、私たちの生活の中に、祈りがさらに重要な部分となり、毎日神と交わりをもつ願いを起こさせ、ただ、どのように祈るかではなく祈ることを学ぶことです。エレミヤ33:3で、神は「わたしを呼べ。そうすれば、わたしは、あなたに答え、あなたの知らない、理解を越えた大いなる事をあなたに告げる」と言っておられます。

「神よ、私に祈ることを教えてください」と求めようではありませんか。

祈りには証拠が必要なのではなく、実行が必要なのです。

 

 

2016 43 기도의 방법 첫번째  하나님과의 교제

예레미야33:2-3, 시편 25:1

서문)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가 우리에게 전해지는 외적수단은 말씀과 기도와 예배입니다. 그 중에서 오늘 아침은 「기도」에 대하여 배우겠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정확하게는 하나님의 부름에 우리가 응답하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이런 퍼스널(인격적인) 의 주고받음을 교제라고 합니다.

 

Ⅰ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코이노니아)

1 사람이 창조되었을 때. 하나님과의 사이에는 풍요로운 교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말을 건네셨습니다. 그러면 아담은 대답했습니다. 이런 교제는 즉시, 어느곳에서라도, 어떤 상황에서도 가능했습니다. 이 하나님의 부름에 대한 인간의 응답을 우리는 「기도」라고 합니다. 기도란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그분을 닮은 인격적 존재로써 인간을 만드셨을 때, 넣어주신 자연적 본능입니다. 사람이 존재하는 곳에는 반드시 기도가 있습니다. 아담은 일일이 기도해야한다고 의식하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어울리는 배필로써 여자 하와를 만드셨을 때 그는 말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하니라} (창세기2:22-23) 이것은 최초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인간의 기쁨과 감동을 담아 대답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주 자연스러운 기도인 것입니다.

기도는 먼저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시편25편1절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당신을 향해, 주여 나의 영혼이 우러러봅니다. 기도의 첫 자세가 이곳에 나와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범죄한, 헛된 생각을 버리고 우리는 믿음으로 지고한 분, 영원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고 말씀하신 분앞에 나아갑니다. 「영혼」을 표현하는 원어에는 이 밖에도 다른 의미가 많이 있습니다. 「숨」 「인간」 「동물」 「자기」 「시체」 「감정」 또는 「소원」등 입니다. 이곳에서는 육체가 죽은 후에도 살아남는 자로써의 영혼이라는 의미보다, 기도하고 있는 사람의 모든 존재가 구세주이신 하나님께 의식적으로 향하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전 존재를 바쳐 우러러 보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는 예배입니다. 다니엘은 하루에 세번씩 하나님께 기도와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다음으로 말로 응답합니다. 응답하는 말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그저 침묵하며 우러러 보든지, 아담은 죄를 범한 후에는 그저 신음하기만 하는 때도 있습니다. 이곳에 아버지되신 하나님의 인격과 아들되신 하나님의 인격, 성령의 하나님의 인격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담은 인간의 인격으로써 이 하나님과 풍요로은 교제를 당연하게 매일매일 모든 시간을 통해 즐겼습니다. 그 어떤 방해하는 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2 아담이 죄를 범한 후, 인간은 성경이 성립될 때까지는 직접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듣거나, 선지자를 통해 말씀을 들었습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으로 기록된 성경이 만들어진 후부터는 성경을 읽는 것으로 음성을 듣게 됩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계명을 읽는 우리는 말씀에 대하여 각각 응답을 합니다. 이곳에 교제가 생깁니다. 그 결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된 처지에서 구원받아, 화해를 얻고 풍요로운 교제를 회복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인간 전존재의 기초가 된 것입니다. 그 후, 인간이 살기위해 호흡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처럼, 크리스챤생활에 있어서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응답하는 기도는 결코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된 것입니다.

 

Ⅱ 하나님 편에서의 교제의 준비

1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교제가 성립되는 것은 그 무엇보다 하나님께서의 적극적으로 교제를 위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창조주께서 피조물을 향해 낮아져주셔서 교제속으로 들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죄를 범해 하나님과의 교제로부터 숨으려 했을 때의 일입니다.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에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세기3:8-10)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의 기도를 성립시키십니다. 구원에의 길은 하나님의 일방적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은혜로 구원받아, 은혜로 살아가며, 인도받고, 은혜로 완성됩니다. 이 은혜에의 기도, 응답의 모든것을 들어주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과 교제하시려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신약성경에도 마찬가지입니다.

2 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종의 모습으로 인간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 겸비(휴미리에이션) 가 우리들에게 직접 응답되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우리들은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교제를, 요한이 「본 것, 들은 것, 손으로 만진 것」과 같이 모든 생활 중에 체험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와 함께 있노라」라는 사실을 더욱 강하게 믿게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시작에 있어서 이러한 인격적 하나님과의 교제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안됩니다. 애매모호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전 생활이 임마누엘의 주님과의 교제이며, 이것이야말로 전생활이 기도인 것입니다. 한호흡, 한호흡 모두가 기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들이 쉬는 숨으로 기도하고, 토해내는 숨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3 우리들의 기도를 위한 하나님의 준비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중보기도의 준비입니다. 히브리서7:24-25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성경에서 말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는 구세주이십니다. 완전히 구원해주시는 구세주이십니다. 이 분에게 모든 열쇠가 주어져 있습니다. 히브리서8:2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게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라고 나와 있습니다.

 

Ⅲ 교제에 임하는 태도

1 우리가 친구와 교제 할 때 언제나 거북하고 형식적인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개인적이며, 친한 친구와의 사귐이 있을 것입니다. 할레스비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교제는 개인적이면 개인적일수록 생명이 생명에 대하여 깊게 대화하는 사상의 상호교환이다.」 로잔린드∙링커는 기도란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했습니다. 평범한 말로 친하게, 하나님께 대화하는 것입니다. 「하늘 아버지 안녕하세요?」 「예수님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참으로 자유롭게 응답합니다. 교제의 마음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2 어떤사람은 「저는 하나님과 대화하는데는 불충분한 자입니다.」 라고 말할 지 모릅니다. 그것은 맞는 말입니다. 우리중 어느누구도 하나님과 대화할 자격있는 자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받아주시고, 하나님앞에 의로운 자로 만들어주시기 까지는 걸맞는 자가 없는 것입니다. 어째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할 것을 요구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도록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에베소서3:20)의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됩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의 인생을 인도받게 됩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것에 순종합니다. 또한 기도를 통해 자신의 필요를 하나님께 구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성실함, 사랑, 은혜를 우리에게 나타내주시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능력을 드러내실 수 있는 것입니다.

3 신약의 마태복음7:7,8을 읽어 봅시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이 성구는 우리가 유익한 기도를 하기위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할 것입니다.

4 성경은 기도에 실패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4:2-3을 읽어봅시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 못 구함이니라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우리는 어째서 손에 넣을 수 없을까요? 3절에는 실패의 이유를 한가지 더 말하고 있습니다. 실패의 이유는 무엇일가요?

5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생활함으로 주님께 더욱 배우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심이도 불구하고 사람이 되셨으므로, 그분은 하나님을 향해 많은 시간을 기도로 보내야 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께 기도를 끝마치셨을 때 한 제자가 한가지 일을 청했습니다. 누가복음 11:1「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그들은 무엇을 구했습니까? 그들은 어떻게 기도하는 방법을 물어본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것을 알려달라고 구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기도하신 것처럼 기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천국에 가서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만일 있다면, 그것은 어째서 더욱 기도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일 것입니다. 라고 말하곤 합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은 우리의 구하는 것을 먼저 알고 계시는데 어째서 기도해야 합니까?」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한 가출한 소년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가출한 소년은 굶주림과 추위에 떨어, 다음 날 쓸쓸하게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집에 돌아간 소년은 식탁위에 음식이 있는지 어떤지는 살피지 않고, 먼저 어머니의 품속에 뛰어들었습니다. 하나님도 이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것보다 먼저 하나님 자신을 필요로 하는 것을 알고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성결한 교제를 갖도록 계획해 주시는 것입니다.

 

맺음) 기도하는 것이란 깊은 믿음 있는 것 같은 목소리를 내거나, 미사여구를 나열하거나, 특별한 형태로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에 대해 여러 기술을 배울 수는 있지만, 진실로 하나님을 향해 말하지 않는다면 이것들은 쓸모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의 수법에 전념한 나머지, 기도의 근본정신을 잊고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는 기도를 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도한 후, 기도 이상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는다면 기도 이상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기도를 배우는 최선의 방법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스트소월∙잭슨 원수는 크리스챤이었습니다. 그는 구원받고 얼마 안된 후, 기도회에서 목사에게 기도를 부탁받았습니다. 그는 더듬거리며 기도했으므로 출석한 사람 모두가 그를 불쌍하게 생각했습니다. 기도가 끝난 후, 목사는 그에게 「당신에게 창피한 일을 당하게 해서 미안했습니다. 다음부터 당신이 창피하다고 생각한다면 기도해달라고 부탁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자, 잭슨은 「저는 기도를 통해서만 기도를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종종 부탁합드립니다.」라도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 기도에 대한 목적은 우리의 생활중에 기도가 더욱 중요한 부분이 되어 매일매일 하나님과의 교제를 원하며, 기도하는 방법이 아닌 기도하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예레미야33:3에서 하나님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여 저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주십시요」라고 구하지 않겠습니까?

기도에는 증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실행이 필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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