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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年8月21日 礼拝 説教(日本語文、韓国語文)エペソ3章8-10節

 

2016年8月21日 エペソ 3:8〜10    「一番小さな私」

「すべての聖徒のうちで一番小さな私に、この恵みが与えられたのは,私がキリストの測りがたい富を異邦人に宣べ伝え、」

序文) 神の測りがたい恵みによって、救いを受け、神の復活の力に支えられて、福音に仕える者とされた。全身全霊をこめて仕えている。クリスチャンであることの光栄と特権は、いずれはキリストとともに共同の相続人として、神の国を治めるものとして一人一人を完成させる事まで含みます。しかし、そのことが、クリスチャンの特権意識を生み出すのではなくて、むしろ、人を謙遜に導くものである事を忘れないようにしよう。神の恵みと力のまし加わるところに、まことの謙遜が育つ。

Ⅰ エペソ 3:8前半 パウロの自己評価

1 パウロは8節で自分の事を「聖徒のうちで一番小さな私」と言っている。第一コリント15:9では「すべての使徒たちのうちで最も小さな私」と言っていた。「使徒と呼ばれる値打ちのない者です。なぜなら、神の教会を迫害したからです。」と言っていた。神の聖霊と有能な知恵の人ステパノを葬り去ろうとして示した迫害者パウロの熱心さは、ついにユダヤ議会からキリスト教徒撲滅の任務をさずかった。パウロにとってキリストの教えは、唯一の救いの道である律法を廃棄させ、そのかわりに十字架につけられたメシヤを信じるという事を持ち込む邪教で、イスラエルの最も聖なる望みに対する冒涜であった。彼は会堂から会堂へ家から家へ飛び歩き男女かまわず引きずり出し、牢屋にぶちこんで処罰し、死刑にし、主の御名をけがす言葉をはかせたりした。エルサレム教会はずたずたにされ、四散した。

こうした悲しむべき所行の中から、善を導きだしたもう神は、栄光の主の恵み深いお働きによって、パウロの心のうちに徹底したへりくだりと、自分がひどい仕打ちにあわせた兄弟たちには、どのような卑しい人々と以前は思っていた方々にも仕えようという決意が生まれた。また、残されたときを一瞬たりとも無駄にする事なく用い尽くして、失われたときをあがなおうとする熱心さが生まれた。月足らずに生まれた者、このような私を使徒としてくださった驚き、おのれの暴挙、暴慢を赦されたとはいえ、かつてそのような者であったという意識は消されずに残っていた。

 

2 使徒たちの中で最も小さい」といった数年のちに「すべての聖徒のうちで一番小さなわたし」と書いた。「すべてのクリスチャンのうちで最も小さい者よりもちいさい」と自分を見つめている。そして、10年後になると第二テモテ1:13、15で「私は以前は神をけがす者、迫害する者、暴力を振るう者でした。キリスト・イエスは罪人をすくうためにこの世に来られた。私は罪人のかしらです。」と全クリスチャンの枠を外して、全人類の間でも、最も罪深いと自分の胸を打っています。

この謙遜へとパウロを導いた原因は、ひとえに「神の恵み」なのです。神の恵みが彼を救いました。神は彼の罪をもはや思い出す事をしないお方です。しかし彼は決して自分がかつて犯した罪深い行為のすべてを忘れる事はありませんでした。彼が神の救いを喜べば喜ぶほど、恵みの深さをさらに思い経験し続けたのでした。救われた罪人である事をさらに感謝し主を誉めたたえ、自分をへりくだらせているのです。救われた罪人という意識をあがなわれた私たちすべては保ち続けなればなりません。恵みによって救われた罪人であると告白する喜びを最高の喜びとしているパウロを見習いましょう。

まことの謙遜は、福音に仕える積極性を生みだします。パウロの自己評価は彼の働きの妨げにはなりません。かえって前向きに福音に仕えつづけさせました。キリストの輝きを第一とするとき自分は最低であるとの謙遜を主はおもちいになるのです。「ですから、あなたがたは、神の力強い御手の下にへりくだりなさい。神が、丁度良い時に、あなたがたを高くしてくださるためです」(第一ペテロ5:6)。

 

Ⅱ  エペソ 3:8後半 パウロの任務

1 ここで 神の前にへりくだるパウロに与えられた任務が記されています。まずパウロが宣べ伝えようとしている福音は「キリストの測りがたい富である」と言い換えられています。これは福音の素晴らしさを、なんとかして人間のことばで表現しようとしているのです。実は福音のすばらしさは人の言葉で表現しきれないのです。そのために聖書の中でいろいろに呼ばれています。「神の福音」(第一テサロニケ2:2、9)、「キリストの福音」(第一コリント9:12)、「み子の福音」(ローマ1:9)、「キリストの栄光の福音」(第二コリント4:4)、「神の恵みの福音」(使徒20:24)、「平和の福音」(エペソ6:15)、「救いの福音」(エペソ1:13)、等です。どれも福音のもつ特色をよくあらわしています。とりわけパウロがここで「キリストの測りがたい富」というとき、そのすばらしさは極まっています。

2 私たちの主は「測りがたい富」を持っておられます。キリストの福音は、その測りがたいものを私たちに与えるのです。それは人間の計算や理性の枠を超えて想像やたくみなことばの説明を超えています。測りがたいのです。私たちはキリストの福音を見たり、研究したり、熟考したり,思いめぐらしたりしますが、キリストご自身は私たちの思想を超えて偉大な救い主なのです。主は、あなた方の必要の一切を、訴える前からご存知で、欠乏を満たされます。測りがたいために多くに人々はかえって躓きます。しかし、この福音を低く見積もってはいけません。キリストのかしらには王の王、主の主という金の冠がふさわしいのです。しかるに私たちが、それを十字架刑にふしたローマの兵隊たちのように、今なお、いばらの冠に変えてしまっていいのでしょうか。今、主はあなたを祝福する金の冠をかぶっておられます。測りがたい富を持っておられるのです。主はあなたをみどりの牧場に伏させ憩いの水のほとりに伴われる方です。主が牧者で私たちが羊だからです。主の愛は地上でも天上でも比べることができません。その愛は私たちに注がれているのです。福音の無尽蔵の富は永遠の世界で知られる事でしょう。その祝宴に招きに与れる特権をいただいているのです。

3 このキリストの福音を宣べ伝える光栄を深く覚えます。伝える事、紹介する事の喜びがあります。伝えられた相手が信仰を持って受け取るなら、それは彼の永遠の祝福になるのですから。このような素晴らしい務めは、他にありません。パウロが何もかも損と思うようになって、ひたすらこのキリストを伝え続けたのも無理はありません。

 

Ⅲ エペソ3:9〜10  パウロの務めの重大さ

1 宣べ伝える務めの重大さが9節にかたられます。パウロは福音を宣べ伝える働きを通して神の御目的を明らかにする働きがあることを示します。

万物を創造された神の中に、世々隠されていた奥義を明らかにする働きです。それは神の永遠のご計画に沿った働きであって、神は、よくよく全知恵を傾けて熟考されたものです。それは神が私たちを救おうとされた計画は、不動のものであり、かつ慎重な計画でした。奥義として世々隠されていたが、今や、世に表されキリストによって実現、達成されたのです。

これは一被造物にすぎないパウロやクリスチャンの私たちが考えだしたものではない。万物を創造された神ご自身のご計画である。創造の初めから用意されていた。当然のこととして全被造物の救いが考慮されていたので、異邦人と今までは呼ばれている私たちも、その永遠のご計画の中には当初から入っていた。

ですから、異邦人に宣べ伝える働き、私たちの隣りの人に伝えるはたらきは、教会が急に思い立って始めたわけではない。昨日、今日のアピールではなくて、世々にわたって隠されていたが、創造の初めから神によって備えられていたものである。その重大さははかりしれない。

測りがたいキリストの福音、これを受け取る一人一人をすべての卑屈や臆する心から解放し厳粛な確信へと導くものです。救いに与った一人一人が「わたしのようなものだから救われた」とか「神様に救ってもらわなければ、どうなったか分からないような者だったから」救われたと自己を中心に救われた事を考えている限り、卑屈になったり、いいかげんな心になったりするのです。

そうではなくて、神の永遠のご計画にそったこと、今の時代にあきらかにされた救いに神が入れてくださっているという厳粛さに思いを至らせるとき、もはや永遠に滅びさることはないという確信と神中心の救いの力強さに日常がしゃんとしてくるのです。しかも、自分が受けたこの救いを他の人にも明らかにしてゆくことの重大さ、その責任の重さを自覚するにいたるのです。

 

2 宣べ伝えることの重大さという点で、見過ごしにできないことばは、10節にあることばです。「天にある支配と権威」とは「すべての支配、権威、権力、主権の上に」(エペソ1:21)からも分かるように、天使たちを指しています。宣べ伝える働きは異邦人に奥義を明らかにするだけではなく、天使たちにも神の豊かな知恵を示すことにある、というのです。ここに神の「豊な知恵」といわれていることは「多種多様な」とか「多彩な」を意味することばです。「人間は神の知恵を一種類と誤って測っていた。ユダヤ人は、神の知恵はこれまで律法のもとにあって行われてきたような,自分たちの知っている、あのいつもの配分の仕方に限られているものだと考えていた。しかし、神は、福音を無差別にすべての人々に表すことによって、それとは違った形で、その知恵を証明され、証言されたのです。それは新しい知恵ではなく、その知恵が私たちの理性の力では理解できないほどに十分で多様だからです。パウロのことばの意味は、ユダヤ人も異邦人も集めた教会は、天使たちがこれまで知らなかった神の驚くべき知恵を映し出す鏡のようなものだ。」

この地上でキリストの福音の奥義が、あきらかにされて行くに従って、天使たちも神の知恵の多様さ豊さを見せられ、全被造物が神をほめたたえるにいたるのだというのです。

 

結び)わたしたち人間が福音を宣べ伝えることがなければ、全被造物は救いに関して神の知恵の豊かさに気づかないままで終わってします。この点からも、重要な任務であるといいうるのです。

 

2016 8 21 에베소서3:8-10

지극히 작은 자보다 작은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서문)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은혜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가며, 복음에 쓰임받는 자로 되었습니다. 전심을 다해 쓰임받고 있습니다. 크리스챤이라는 영광과 특권은 언젠가는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의 상속인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는 자로써, 한사람한사람을 완성시켜 주시는 것까지 포함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크리스챤의 특권의식을 갖게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겸손하게 사람을 인도해야 할 것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더하는 곳에 참된 겸손이 성장하게 됩니다.

 

Ⅰ 에베소서3:8 전반부  사도바울의 자기평가

 사도바울은 8절에서 자신을 두고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라로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5:9에서는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라고 말했습니다. 「사도라 불리울만한 자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과 유능한 지혜를 갖고 있던 스데반집사를 죽도록 명령한 박해자 바울의 열심은 결국 유대인 의회로부터 크리스트교도를 멸절하도록 임명받았습니다. 사도바울에게 있어서 크리스트교의 가르침은 유일한 구원의 길인 율법을 폐기하고, 십자가에 달린 메시아를 믿도록 하는 자악한 종교로써, 이스라엘의 가장 성스러운 소망에 대한 모독이었습니다. 그는 이곳저곳의 회당이나 집을 두루다니며 남녀를 끌어내고, 감옥에 넣어 처벌하고, 사형시키며, 주의 이름을 더럽히는 말을 하게 했습니다. 때문에 예루살렘 교회는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슬픈 소행에서 선을 만들어내신 하나님은 영광의 주, 깊으신 은혜로 사도바울의 마음속에 철저한 회개와, 이전에는 하잘것 없는 존재로 여겨 가혹한 행위를 저지른 형제들을 섬기고자 하는 결심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또한 남겨진 시간을 한순간도 무용하게 쓰지 않고, 잃어버린 시간을 보상하려는 듯, 열심으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이런 자신을 사도로 불러주신 것에 대한 놀라움, 자신의 난폭함, 거만함을 용서받았을지라도 예전의 그러한 모습은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습니다.

 

 「모든 사도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이라고 말한 수년 후에는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라고 쓰고 있습니다. 「모든 크리스챤중에서 가장 작은 자보다 더 작은」이라고 자신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0년 후에는 디모데후서1:13,15에서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라고 전 크리스챤의 범위를 넘어 전 인류중에서 가장 깊은 죄인이라고 자신의 가슴을 치고 있습니다.

이런 겸손으로 사도 바울을 인도한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를 구원했습니다. 하나님은 더이상 그의 죄를 묻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이전에 저지른 깊은 죄를 모두 잊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구원을 기뻐하면 기뻐할 수록 깊은 은혜를 더욱 경험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구원받은 죄인임을 더욱이 감사하고 주를 찬양하며, 자신을 더욱 낮추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구원받은 죄인이라는 의식을 우리들도 언제나 갖고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은혜로써 구원받은 죄인임을 고백하는 기쁨을 최고의 기쁨이라고 말하고 있는 사도바울을 본받읍시다.

참된 겸손은 복음에 쓰임받는 적극성을 낳게 됩니다. 사도바울의 자기평가는 그의 행동에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긍정적으로 복음을 위해 일하게 해줍니다. 그리스도가 영광받으실 것을 제일로 여길때에 자신은 가장 낮은 자라는 겸손을 예수님은 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베드로전서5:6)

 

Ⅱ  에베소서3:8후반부  사도바울의 임무

 이곳에서 하나님앞에 엎드러진 사도바울에게 부여된 임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사도바울이 전하려는 복음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이라도 바꾸어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복음의 훌륭함을 어떻게든 인간의 말로 표현하려는 것입니다. 본래, 복음의 훌륭함은 인간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중에는 여러 말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 (데살로니가전서2:2,9), 「그리스도의 복음」 (고린도전서9:12), 「아들의 복음」(로마서1:9),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 (고린도후서4:4),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사도행전20:24), 「평안의 복음」(에베소서6:15), 「구원의 복음」 (에베소서1:13)등 입니다. 모두가 복음이 가지고 있는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도바울이 이곳에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이라 말한 것은 그 훌륭함이 절정에 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주님은 「헤아릴 수 없는 풍성」을 갖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 헤아릴 수 없는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계산이나 이성의 범위를 뛰어넘어 상상이나 훌륭한 말로 설명하는 것을 초월합니다. 측량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보거나 연구하거나, 숙고하거나 다양하게 생각하지도 하지만, 그리스도 자신은 우리들의 생각을 뛰어넘은 위대한 구세주이신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필요를 모두 알고 계시고, 여러분이 호소하기 전부터 알고 계시며, 그 부족함을 채워주십니다. 주님의 헤아릴 수 없는 크심으로 많은 사람들은 반대로 넘어집니다. 그러나 이 복음을 낮은 수준으로 봐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의 머리에는 왕의 왕, 주의 주라는 금면류관이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면류관을 십자가에 매단 로마 병정들처럼 가시 면류관으로 바꾸어서는 안됩니다. 주님은 지금 여러분을 축복하시는 금면류관을 쓰고 계십니다. 헤아릴 수 없는 풍성을 갖고 계십니다. 주님은 여러문을 푸른 초장에서 쉬게 하시고 물가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주님이 목자시며 우리는 양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지상에도 천상에도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 사랑은 우리들에게 부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의 무한한 풍성은 영원의 세계에서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축연에 초대된 특권을 맏고 있는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영광을 깊이 기억합시다. 전하는 일, 소개하는 일의 기쁨이있습니다. 복음을 들은 상대가 믿음을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그의 영원한 축복이 되는 것이므로. 이러한 놀라운 임무는 다른 어느곳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이 모든것이 어리석게 느껴지고, 오로지 그리스도를 전하게 된 것도 타당한 것입니다.

 

Ⅲ 에베소서3:9-10  사도바울의 임무의 중요성

 복음을 전하는 임무의 중요함이 9절에 적혀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목적을 분명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진 비밀을 밝히는 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따라 일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지혜가 깊이 숙고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구하시려 세우신 계획은 변하지 않는 것이며, 신중한 계획이었습니다. 비밀로써 대대에 걸쳐 감추어진 것이었지만, 지금은 그리스도를 통해 실현, 달성된 것입니다.

이것은 피조물에 불과한 사도 바울이나 크리스챤인 우리들이 생각해낸 것이 아닙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계획힙니다. 창조의 때부터 이미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당연한 일로써 전 피조물의 주권이 고려되어 있었으므로, 이방인이라 지금도 불리워지고 있는 우리도 그 영원한 계획속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에게 전하는 일, 우리들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은, 교회가 갑자기 떠오른 생각으로 시작하는 일이 아닙니다. 어제, 오늘의 주장이 아니라, 대대에 걸쳐 감추어져 있었지만 창조의 시작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준비되어있던 것입니다. 그 중대함은 측량할 수 없습니다.

측량할 수 없는 복음은 이것을 받은 한사람한사람이 모든 비굴이나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어 엄숙한 확신으로 인도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한사람한사람이 「나 정도 되니까 구원받을 수 있었다」라든지 「하나님께 구원받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는 존재였기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한, 비굴하거나, 무책임한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않고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에 따른 일, 지금 시대에 밝혀진 구원에 하나님께서 들여보내 주신것이라는 엄숙한 생각에 도달할 때, 더이상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 다는 확신과 하나님 중심의 구원의 강력함으로 일상을 바르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받은 이 구원을 다른 사람에게 분명히 밝히는 중요함, 그 책임의 중요함을 자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의 중요성을 가볍게 지나칠 수 없다는 말씀이 10절에 나와있습니다.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 (에베소서1:21)라고 쓰여있는 것처럼 천사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이방인들에게 비밀을 밝이는 것만 아니라, 천사들에게도 하나님의 풍성한 지혜를 밝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곳에 하나님의 「각종 지혜」라는 것은 「여러 종류, 여러 형태」라든지 「다채로운」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지혜를 한 종류라고 잘못 이해하고 있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지혜가 지금까지의 율법에 근거하여 행하여 온, 자신들이 알고 있는, 분배의 법칙도 언제나 정해진대로의 방법대로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복음을 무차별로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내심으로 그것과는 다른 형태로 그 지식이 증명되고 증언되어 왔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지혜가 아닌, 그 지혜가 우리들의 이성의 눙력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다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의 이 말의 의미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모인 교회는 천사들이 지금까지 알 수 없었던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를 밝혀내는 거울과 같은 것이다.」

이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의 비밀이 밝혀져 나아갈 때 천사들도 하나님의 지혜의 다양함과 풍성함이 보게 되며, 전피조물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맺음) 우리들 인간이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전피조물은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지혜의 풍요로움을 깨닫지 못한 채 끝나고 말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것은 중요한 임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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