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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年9月25日 礼拝 説教(日本語文、韓国語文)エペソ3章14-19節

 

2016年9月25日 「三つの祈り」第一  エペソ人への手紙 3章:14−19節

序文)創立15周年記念誌にアウトラインを掲載した箇所です。もうすこし詳しくお話しましょう。私たちの信仰の成熟のために、今日の箇所にある三つの祈りは欠かすことができません。「内なる人を強くしてくださるように。」「キリストが心の内に住んでくださるように。」「キリストの愛を理解する力をもてるように」。

パウロはひざをかがめて祈ります。「ひざをかがめる」祈りの姿勢。ローマの獄中で膝をかがめているパウロの姿を思い浮かべましょう。パウロは教え訓戒し勧告するばかりではなく、自分の働きが実を結ぶようにと祈り求めています。自分たちの宣教のための労苦も、主が祝福を与えてくださらないかぎりは、何の益ももたらさない、どのような心配も、どれほどの苦労をしようとも無為におわるほかはない。ひざをかがめて熱心に懇願している。

「天上と地上で家族と呼ばれるすべてのものの名の元である父の前に祈ります。」

家族はギリシャ語でパトリア、父はギリシャ語でパテール。家族は「父より出た者」という意味を含んでいます。ユダヤ人社会では「家族」は父の名前で呼ばれています。「ダビデの子孫」「アブラハムの子」「アロンの子」とゆうふうにです。私たちは、元はといえば偉大な天上と地上の家族と呼ばれるすべてのものの名の元である父から出た者である、とパウロは言っています。唯一の父から出たのだ。ですから私たちは、この意味でも「神の子」と呼ばれるのです。ユダヤ人は「アブラハムの子」「イサクの子」「ヤコブの子」ですが、異邦人である私たちは、今や彼らとともに「神の子」なのです。

 

Ⅰ 祈りの内容の第一は「内なる人を強くしてくださるように」です。

「どうか父が、その栄光の豊かさに従い、御霊により、力をもって、あなたがたの内なる人を強くしてくださいますように」(エペソ3:16)。2016年度元旦礼拝で詳しく説教しました。「内なる人」栄光の豊かさに従い、これは神の完全さ、豊富さのことです。憐れみを除外した力ではなく、力を除外した憐れみでもない。神に帰するすべてのもの、めぐみと力の充ち満ちるに従って、強くしてください。御霊が神の新しいいのちの力を私たちに与えます。聖めます。強めます。成長させてくださるのです。「内なる人」たましいの霊的生活に関するすべて、新しい人の活躍する理性的、道徳的、良心、意志のすべて。「外なる人」肉体とそれに関係するものをさします。からだ、健康、名声、富、信用などなど。いわば、生まれつきに関係することです。「外なる人は滅びても、内なる人は日ごとに新しくされていく」(第二コリント4:16)。神の力により、魂が、神の国に関係して強くされる。聖化の祈りです。

 

ウェストミンスター信仰告白 第十三章 聖化について の裏付け聖句として、今日の箇所が用いられています。一節『有効に召命され、再生された者たちは、自身のうちに創造された新しい心と新しい霊を持っているので、み言葉と彼らに内住するみたまで、キリストの死と復活の力よって、実質的に人格的に、さらに聖とされる。罪の全身にわたる支配が破壊され、そのいろいろな欲情は段々に弱められ、殺されていくし、また彼らは、それなしには、だれも主を見ることができないところの真の聖潔の実践にむかって、すべての救いの恵みに段々生かされ強くされていく。』

『聖化というのは、神の恵みによって、わたしたちの内に働く罪のカがうちくだかれて、罪によって汚れたわたしたちの本性がきよめられ、神のかたちが次第にわたしたちの内に形づくられていくということです。そういう意味では、聖化はわたしたちの全生涯にわたって続けられ、死において初めて完成される聖霊のみわざです。それで義認や養子の恵みが関係や身分の変化という意味で、一瞬間の、一回限りの神の恵みの行為であるのに対して、聖化はわたしたちの全生涯にわたって、わたしたちの内になされる神の恵みの継続的なみわざだと言われるのです。また、しかし、聖化の発端、出発点を考えると、それはまことに決定的な、一回限りのみわざです。

有効召命によって神がわたしたちを救いに召される時、〃だれでもキリストにあるならば、その人は新しく造られた者である。古いものは過ぎ去った。見よ、すべては新しくなったのである。〃コリント第二5:17、とあるように、すべては一変します。この再創造の恵みを再生とか新生とか呼びます。この時わたしたちは、「生ながらの罪のもとにある奴隷のくびきから解放」(ガラテヤ5:1)され、わたしたちの「全身にわたる罪の支配が破壊され」ます。わたしたちの霊魂と肉体の全部を支配していた原罪のカはこの時打ち砕かれ、全人に行き渡る聖化が一挙に行なわれます。

なお本性の腐敗は残存しており、全人に行き渡る聖化は、この世にある間は未完成ですけれども、とにかく決定的な第一歩が踏み出されたわけです。この神の全能の、一回限りの、決定的なみわざがあって、普通いわれる聖化のみわざが初めて意味を持ってくるのです。わたしたちの原罪の支配は一挙に打ち破られました。こうして〃神はわたしたちをやみの力から救い出して、その愛する御子の支配下に移して下さった〃コロサイ1:13のです。敵は全領土にわたる主権と支配権を失いましたが、なお敵は全領土にわたって活動しています。原罪の決定的な力からは自由にされましたが、信徒の中にはなお本性の腐敗の有り、内住する罪があります。この罪からわたしたちをきよめてくださるのが聖化の恵みです。』(矢内昭二著告白講解より引用147、149P)

この聖化はキリストの死と復活に結び付けられることにより(洗礼はこのことのしるしである)与えられるものであり、みことばを手段とし、みたまの活動によって生じる。キリストの死と復活の力はわたしたちの全生涯を通じて関係し、キリストのかたちが形成されていく。わたしたちは、みことばに聞き従うことにより、聖霊が不断の活動をつづけてくださることを期待しなければならない。

二節『この聖化は、全人に行き渡るけれども、この世にある間は未完成である。どの部分にもなお腐敗の残部が残っている。そこから、絶え間のない和解できぬ戦いが生じ、肉の欲がみたまに反し、みたまもまた肉に反するのである。』

ここはクリスチャンの全生活にわたる戦いの真相が告白されている。堕落が全的腐敗であるように、聖化も全的聖化である。人間を構成するすべての部分に聖化は及ぶ。しかし、それは地上の生活での瞬間的な、あるいは、地上だけでの完全聖化ではない。だからクリスチャンの生活には、常に霊と肉との戦いが絶え間なく続くのである。悔い改めの必要も絶え間なくある。そこには、進歩はあっても休戦はない、あってはならない。

ローマ人への手紙7章はクリスチャンの聖化途上の戦いを書き表わしている。生活の中で罪の告白と許しを求める祈りは必然的なものである。

三節『この戦いにおいて、残っている腐敗が、一時、大いに優勢になることもあるが、それでもキリストの聖化のみたまからくる継続的な力の補給によって、再生の側が勝利を得る。それで聖徒達は、恵みに成長し、神をおそれて聖化を完成して行く。』

この聖化の増進はかならずしも、一定の速度で進展するのでなく、場合によっては、一時的に停滞または後退を示すかもしれない。しかし、最後には神の始められた業がついに勝利するのである。戦いは勝か負けるかわからないようなものでなく、ついには勝利を得る戦いである。一度救いに選ばれた者は決して恵みから漏れるようなことはない。聖化は根本において神の意志の現れであるから、神を畏れて聖化が成就するように祈り(Ⅰコリント7;1)畏れおののきつつ自分の救いの成就することを祈り(ピリピ2;12)、信者自身の意志の力によるのではなく、自己の祈りと努力を自由意志的第二原因として用いることにより、神ご自身がわたしたちのうちに完成してくださるみわざである。(岡田稔著83P)

さて、聖化がこの世では未完成である、との告白は、私たちの日々に「どうか父が、その栄光の豊かさに従い、御霊により、力をもって、あなたがたの内なる人を強くしてくださいますように」祈りをおおいに必要としているのです。

 

 

 

2016 9 25 세가지 기도첫번째 에베소서3:14-19

 

오늘 말씀은 창립 15주년 기념지의 개요에 기재한 내용이지만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우리들 믿음의 성숙을 위해 오늘 말씀의 세가지 기도는 없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사도바울이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무릎을 꿇다」 기도의 자세. 로마의 옥중에서 무릎을 꿇고있는 사도바울의 모습을 상상해 봅시다. 사도 바울은 말씀을 가르치고, 훈계하며, 권고만 하는것 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이 열매를 맺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선교를 위한 수고도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시지 않는다면 어떤 좋을 결과도 맺을 수없다는, 어떠한 걱정이나 수고를 해도 무익한 것임을, 무릎꿇고 열심으로 청원하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족속은 그리스어로 파토리아, 아버지는 그리스어로 파텔입니다. 족속은 「아버지보다 먼저 나온 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유대사회에서 「족속」이란 아버지의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 「아브라함의 자녀」 「아론의 자녀」 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들은 본래 위대한 천상과 지상의 가족이라 불리우는 모든 것들의 근본이 되는 아버지로부터 나온 자들입니다. 라고 사도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유일한 아버지로부터 나왔으므로 이런 의미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불리우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은 「아브라함의 자녀」 「이삭의 자녀」 「야곱의 자녀」이지만, 이방인인 우리도 그들과 같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기도의 내용 첫번째는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입니다.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에베소서3:16) 2016년 신년예배에서 자세하게 설교한 곳입니다. 「속사람」 영광의 풍성함에 순종하고, 이것은 하나님의 완전함, 풍성함을 가리킵니다. 자비를 제외시킨 능력이 아니라, 능력을 제외시킨 자비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들을 은혜와 능력으로 가득차며 강하게 해 주십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새로운 생명의 능력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정결케 됩니다. 강하게 됩니다. 성장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속사람」 영혼의 영적생활에 관련된 모든 것, 해로운 사람이 활약하는 이성적, 도덕적, 양심, 의지의 모든 것. 「겉사람」 육체, 육체와 관련된 것들을 가리킵니다.몸, 건강, 명성, 부, 신용 등등… 말하자면, 탄생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고린도 후서4:16) 하나님의 능력으로 영혼이, 하나님 나라에 관계되어 강건하게 됩니다. 성화의 기도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3장 성화에 관하여를 뒷받침하는 성구로 오늘의 구절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3장 1절 『유효에 불리움을 받아 재생된 자들은 자신속에 창조된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영혼을 가지고 있으므로, 말씀과 그들안에 계신 성령으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능력으로 실질적으로 인간적으로 점점 성화되어 갑니다. 전신에 걸친 죄의 지배가 파괴되어 그 수많은 정욕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사라져, 이것이 없이는 누구라고 주님을 볼 수 없는 곳의 참된 정결의 실천을 향해 모든 구원의 은혜로 살아가며 강건하게 되어져 갑니다.』

 

『성화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들 속에 일하는 죄의 능력이 깨어지고, 죄로 인해 더럽혀진 우리의 본성이 정결케 되며, 하나님의 모습이 점점 우리들 속에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로, 성화란 우리의 전 생애속에 만들어져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로 성화는 우리들 전생애에 걸쳐 지속되며, 죽음에 있어서는 처음으로 완성된 성령의 업적입니다. 이것으로 의인이나 양자의 은혜가 관계나 신분의 변화라는 의미로써, 일순간의, 한번뿐의 하나님의 은혜의 행위인 것에 비해, 성화는 우리들 전생애에 걸쳐 우리들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계속적인 업적이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화의 발단, 출발점을 생각하면 그것은 참으로 결정적인, 단 한번의 업적입니다.

유효사명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구원해 주실 때,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5;17라고 쓰여있는 것처럼, 모든 것은 단숨에 변했습니다. 이 재창조의 은혜를 재생, 또는 신생이라도로 합니다. 이 때 우리들은 「죄 아래서 태어났지만 종의 멍에로부터 해방되어」, 우리들의 「전신에 퍼져있는 죄의 지배가 파괴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영혼과 육체를 모두 지배하던 원죄의 능력은 이 때 부서져, 단숨에 몸 전체의 성화가 이루어집니다.

본성의 부패는 남아있으며, 인간의 전부분에 퍼져있는 성화는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미완성이기는 하지만 결정적인 첫걸음을 내딛게 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전능의 한번 뿐인 결정적 업적으로 성화의 업적의 첫 의미를 갖게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원죄의 지배는 단한번에 부서졌습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골로새서1:13 적들은 전영토에 걸쳐 주권과 지배력을 잃었지만, 전영토에 걸쳐서 더욱 더 활동하고 있습니다. 원죄의 결정적 능력으로부터 해방되었지만, 성도의 안에는 본성의 부패가 있으며, 내주하는 죄가 있습니다. 이 죄로부터 우리를 정결케 해주시는 것이 성화의 은혜입니다.』(矢内昭二저 고백강해에서 인용 P147,149)

이 성화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결부되어 (세례는 이것의 증표입니다.) 얻게되는 것으로, 말씀을 수단으로, 성령의 일하심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능력은 우리의 전생애를 통해 관련되며, 그리스도의 몸이 형성되어 갑니다.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으로 성령께서 쉬지않고 일해주실 것을 기대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2절 『이 성화는 인간의 모든 부분에 미치는 것이지만,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미완성입니다. 어떠한 부분에 있어서도 부패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 곳에서 쉬지않고 화해할 수 없는 싸움이 생기며, 육체의 욕정이 성령을 거스리며, 성령도 육체를 거스리기 때문입니다.』

이곳에 크리스챤의 전생활에 걸친 싸움의 진상이 고백되어 있습니다. 타락이 전적 부패인 것처럼, 성화는 전적성화입니다. 인간을 구성하는 모든 부분에 성화는 미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상생활에 있어서 순간적이거나, 지상에서만 일어나는 완전성화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챤의 생활에는 언제나 영과 육과의 싸움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회개의 필요성도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곳에는 진보는 있지만 휴전은 없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로마서7장은 크리스챤의 성화 도중에 겪게되는 싸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생활 속에서의 죄의 고백과 용서를 구하는 기도는 필연적인 것입니다.

3절 『이 싸움에서 남아있는 부패가 일시적으로 우세한 때도 있지만, 그렇다해도 그리스도의 성화의 성령에서 오는 계속적인 능력의 보급으로 재생이 승리하게 됩니다. 이것으로 성도들은 은혜로 성장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성화를 완성해 나갑니다.』

이 성화의 증진은 반드시 일정의 속도로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 일시적으로 정체되거나 후진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은 승리를 거둡니다. 이길지 지게될지 모르는 싸움이 아니라, 최후에는 승리하는 싸움인 것입니다. 일단 구원으로 선택된 자는 결코 은혜에서 빠지는 일이 없습니다. 성화에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의지가 나타나 있으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도록 기도하며(고린도전서7:1),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도록 기도하며(빌립보서2:12), 성도자신의 의지가 아닌, 자신의 기도와 노력을 자유의지적 제2원인으로 여기는 것보다, 하나님 자신께서 우리들 속에서 완성해 주시는 업적입니다. (岡田稔 저 P.83)

 

이 세상에서 완전하게 성화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어떠한 고백도 우리들의 매일매일에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라고 전심으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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