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年4月24日 「聖礼典をどのように受け、与え、養われるか?」その一
マタイ28:18-20 ローマ6:1-11
序文)主イエス・キリスト様の救いの恵みが、私たちに届けられる恵みの外的手段として「聖礼典」があげられています。三回にわたって考えましょう。
Ⅰ ウェストミンスター信仰告白 第27章 「礼典について」
1 第一項は礼典の定義と目的を告白します。「礼典は、神が直接制定された恵みの契約のきよいしるし、または印証であって、キリストとその祝福とを表わし、キリストにあるわたしたちの権利を確認し、また教会に属する者とこの世の他の者との間に見える区別をつけ、かつまた神のみ言葉に従って、キリストにあって神への奉仕におごそかに彼らを従事させるためのものである。」
礼典の意義 礼典は神の言葉に何かを加えるものではない。み言葉に含まれていないで、礼典にだけ含まれているといったものは何もありません。教会が礼典を執行するとき、説教において聴覚に訴える福音と同じ福音を、視覚に訴えるのです。み言葉の説教は耳の門に福音を示し、礼典の執行は同じ福音を目の門に示します。しかし、このことは、礼典がその尊さにおいて劣ることを意味しません。むしろ礼典が神の言葉の高い尊さにあずかっていることを意味しています。礼典は恵みの手段です。それによって聖霊が信者に神の恵みを伝える手段です。それ以上のものでないことを主張することは大切です。またそれ以下でもないことを主張することも大切です。
救いの恵みを与えるのは教会の儀式ではなく、神です。神は自らがそのために定められた教会の宗儀という手段を用いて、そのことをなさるのを良しとされました。聖書は幾度となく「救いは主のものです」(詩篇3:8)と教えており、救いは神が自ら保持しておられる大権であると教えています。ペテロは「あなたがたひとりひとりは罪のゆるしを得るために、イエス・キリストの名によって、バプテスマを受けなさい」(使徒2:38)、と聴衆に勧めています。その時、彼は、洗礼をキリストが罪人のために死なれた死の記念以上のものと、はっきり確信していました。アナニヤがサウロに「すぐ立って、み名をとなえてバプテスマを受けあなたの罪を洗い落としなさい」(使徒22:16)、と言った時も同様でした。
礼典は、恵みの契約のしるしと保証と言われてきました。それは、それらがキリストのあがないの恵みを契約のうちにある人々に表示し、保証し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礼典は、救いを表示しているだけでなく、丁度、虹が自然存続のノア契約の証印とされたように、神の救いの約束を確証するために、証印としてその約束に付されているものです。そればかりか、証印としての礼典は、実際にそれが表象している恵みを与えます。それは、鍵が入場を認め、証書が財産の権利を意味し、結婚式が結婚の権利を認めるのと同じです。
2 第二項では礼典を構成する二要素の関係を告白します。「すべての礼典には、しるしと表象されているものとの間に霊的関係または礼典的一致がある。それで、一方の名称と効果が、他方に帰せられることになる。」
第三項は礼典の効力についてです。「正しく用いられる礼典の中で、またそれによって、表示される恵みは礼典の内にあるどのような力によって与えられるのではない。また礼典の効果は、それを執行する者の敬虔あるいは意図によるのでもない。それはただ、みたまの働き、および礼典の使用を権威つける命令と、ふさわしい陪餐者に対する祝福の約束とを含む礼典制定のみ言葉とによるのである。」
礼典の効力 礼典が神の恵みを与えるのはいつ、どのようにしてでしょうか。神が、礼典を祝福されるときに効力があります。恵みを与える効力は、聖礼典それ自体にあるのか、それとも聖礼典にあるのかということです。礼典はいかなる内在的動力も有しておらず、み旨を行なうために主権的に礼典を用いる聖霊によってのみ有効とされるのです。私たちの、救いの一切は、初めから終わりまで神の大権によるからです。礼典によって恵みが与えられるためには、礼典に与かる側に信仰が必要か否か、ということについては、信じるものだけが礼典によって恵みを受けるのです。初代教会において信仰が洗礼の欠くことのできない条件でありました。「そこで、彼の言葉を受け入れた者は、バプテスマを受けた。その日三千人ほどが弟子に加えられた」(使徒2:41)。また、主の晩餐にふさわしくない方法であずかるものは、自らに裁きを招くという、使徒の警告も信仰が先であることを確証します(Ⅰコリント11:29)。
3 第四項は礼典の数についてです。「福音のうちに私たちの主キリストが命じられた礼典は、ただ二つ、すなわち洗礼と主の晩餐だけである。そのいずれも、合法的に任職されたみ言葉の教役者以外の誰によっても執行されてはならない。」
第五項では旧約と新約の礼典の関係の告白です。「旧約の礼典は、それによって表象され表示される霊的な事柄に関しては、実質的に新約の礼典と同一である。」
礼典は洗礼と晩餐式とですが、それらは神聖なことであります。
礼典(サクラメント)という用語は、聖書の中にはありませんが、この宗儀のことを正確に表わしています。また、その用語は、礼典を<聖なるもの>として示しています。このため、クリスチャンは一般的に、<聖なる>洗礼、<聖>晩餐と呼んでいます。主によって礼典をゆだねられた教会が、それをきよく守るということは、たいへん重要なことです。
それゆえ礼典は教会によってのみ守られるべきものです。たとえクリスチャンであっても、教会として組繊されていない人たちの群れは、礼典を祝う権利を持っていません。み言葉とともに、それは任職された教師によって執行されるべきです。また、彼は、それを神の民の集会においてのほか、執行すべきではありません。例外的な場合として、教会に来ることができない人に礼典を執行することが正当に考えられるとしても、教会が彼のところに行かねばなりません。たとえば、それは、教会の長老たちを伴って、病気の信者に聖餐式を執行する場合に起こります。
洗礼や聖餐式を聖く守ることは、教会の聖さときわめて密接に関係があります。そのことは教会の義務であり特権なのです。礼典の神聖性のゆえに、これが聖くなく汚されることは、戒規の対象となります。このこともあって、執行者は教師で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たんなる説教免許者は、戒規の執行権を有していません。
Ⅱ ウェストミンスター信仰告白 第28章 「洗礼について」
1 一項「洗礼は、イエス・キリストによって定められた新約の礼典であって、受洗者をおごそかに見える教会に加入させるためだけでなく、彼にとって、恵みの契約、キリストに接ぎ木されること、再生、罪のゆるし、イエス・キリストによって自分を神にささげて新しい命に歩くことのしるし、また印証となるためである。この礼典は、キリストご自身の指定によって、世の終りまでキリストの教会のうちに継続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
二項「この礼典において用いられるべき外的な品は、水であり、当事者はそれをもって、合法的にその職に召された福音の教役者によって、父と子と聖霊のみ名において洗礼を授けられなければならない。」
三項「その人を水に浸すことは、必要ではない。だがその人に水を注ぎ、あるいは水をふりかけることによって、洗礼は正しく執行される。」
一項〜三項をめぐって。
イ キリスト教の洗礼は、その制定の起源をキリストご自身に負っている。新約の礼典であります。洗礼は人間の考えで必要とか必要でないとか云々できることではなく、キリストがこれを定めたという事実を認めることから始まるのです(マタイ28:19〜20)。
ロ 洗礼は「父と子と聖霊のみ名において」授ける。マタイの福音書のみことばでは「名によって一直訳、の中に(into)」とあります。ここで大切なことは、その名の中へ、洗礼を授けるという関係です。キリストとの統合、一致結合、継ぎ木という考えが教えられています(ローマ6:3−6,Ⅰコリント12:13,ガラテヤ3:27−28,コロサイ2:11−12)。
洗礼はキリストの死、葬り、復活に受洗者が結び付いていることをあらわすのです。それで信者はキリストにあってひとつ身体であり、キリストの死の有効性、復活の力、恩恵の交わりにおいて共に与かっているのです。この結合のしるし、証印が洗礼です。
ハ さらに、洗礼は父と子と聖霊の中への洗礼でもありますから、このことは三人格との結合という関係が意味されている(ヨハネ14:16〜17、23、17:21〜23)。このことにより洗礼は三人格が共有する名との一致とともに、各人格との特定の間係との結び付きをも意味するのです。
ニ 水を用いる洗礼には、潔めの意味がある。汚れからの潔めと、罪のとがからの潔めが行なわれる。新約聖書において、洗礼が罪の汚れからの潔め、すなわち再生をあらわすものである、と明言している箇所はどこにもないようである。しかし、洗礼は水による洗いであり、それは水の宗教的用法を含んでおりまた再生は他の箇所で(ヨハネ3:5,Ⅰコリント6:11)洗いに間係ある用語で表わされている。洗礼に含まれる水の洗いは、キリストとの結合の前提と考えられ、これなしには神の国に入ることができない潔めを表わしている、と考えることができる。
ホ 罪の咎めからの潔めを表わすことについては、何も問題はない(使徒2:38、22:16、Ⅰぺテロ3:21)。洗礼は罪のゆるし、キリストの血のそそぎによる罪の咎めからの潔めをあらわす。
ヘ 洗礼の様式については、主のご命令のなかに、浸礼、滴礼、冠水礼などの指定はない。キリストとの霊的な結合は表わされておればよい。
ト 見える教会に加入させるため。Ⅰコリント12:13。洗礼は信仰者とキリストの関係、信仰者と神との関係だけでなく、信仰者と信仰者の関係(聖徒の交わり)、信仰者と教会の関係を確立する。神の家庭である教会への加入を意味する。キリストに結び付くことは、キリストを主とするからだに結び付くことであり、それは教会(エペソ5:23〜30)に結び付くことである。洗礼は受洗したひとが教会員であることのしるし、証印です。
Ⅲ 四項—七項 詳しい説明は次回にいたします。
四項「実際にキリストヘの信仰と服従を告白する人々だけでなく、信者たる両親または片親の幼児らも、洗礼を授けられなければならない。」
五項「この規定を侮り、あるいはなおざりにすることは、大罪であるが、それなしにはだれも再生させられ、あるいは救われることができないとか、受洗者はみな疑いもなく再生させられているといったように、恵みと救いがそれに不可分に付加されているのではない。」
六項「洗礼の効果は、洗礼が執行されるその時だけのものではない。けれどもこの規定の正しい使用によって、約束されている恵みはただ提供されるだけでなく、神ご自身のみ旨の計画に従って神が定められた時に、老幼を問わずその恵みが属している者に、聖霊によって現実に表示され授けられるのである。」
七項「洗礼の礼典は、だれに対しても、ただ一度だけ執行されるべきである。」
結び) ウェストミンスター大教理問答問
167問 わたしたちの洗礼は、わたしたちの手で、どのように良く用いられなければならないか。
答 わたしたちの洗礼を良く用いるという、必要でありながら大いに無視されている義務は、わたしたちの手で、全生涯にわたり、特に試みの時と、他人に洗礼が執行される場に臨席する時に、行なわれなければならない。
それは、洗礼の性質・キリストがこれを制定された目的・洗礼によってもたらされ保証される特権と利益・その時にしたわたしたちのおごそかな誓いを、真面目に感謝に満ちて思いめぐらすことにより、また洗礼の恵みとわたしたちの約束とを罪深く汚していること・それに敵対して歩んでいることのために、へりくだらされることにより、またこの礼典でわたしたちに保証された罪の許しと他のすべての祝福との確信に成長することにより、またわたしたちが洗礼によって入れられているキリストの死と復活から、罪に死に恵みに生きるための力を引き出すことにより、また洗礼に際して自分の名をキリストに捧げ切った者らしく、信仰によって生き、聖と義によって振舞うよう努力し、一つの体となるように同じ みたまによって洗礼を施された者らしく、兄弟愛のうちに歩むよう努力することによってである。
2016년 4월 24일 「성례전은 어떻게 받으며, 거행하고, 유지되는가?」 첫번째
마태복음28:18-20 로마서6:1-11
서문)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가 우리에게 전해지는 수단으로는 「성례전」이 있습니다. 세번에 걸쳐 생각해 보겠습니다.
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27장 「예전에 대하여」
1 제1항에서는 예전의 정의와 목적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전은 하나님이 직접 제정하신 은혜의 계약의 정결한 증표이자 인증으로, 그리스도와 그 축복을 나타내며,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우리들의 권리를 확인시키며, 교회에 속한자와 이 세상에 속한 자들사이의 눈에 보이는 구분을 하고, 더욱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봉사를 엄숙히 행함으로 그들을 순종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예전의 정의 예전은 하나님 말씀에 무언가를 첨가하는 것이 아니다. 말씀에 포함되어있지 않고 예전에만 포함되어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교회가 예전을 집행하는 것은 설교를 통해 청각에 호소하는 복음처럼, 복음을 시각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한 설교는 귀에 들리는 복음을 나타내며, 예전의 집행은 같은 복음을 눈에 보이게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전이 그 존귀함에 있어서 떨어지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예전이 하나님 말씀의 높은 존귀함을 맡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전은 은혜의 수단입니다. 이것으로 성령은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전합니다. 이것 이상의 것이 없음을 주장하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또한 이것 이하의 것도 아님을 주장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구원의 수단을 전하는 것은 교회의 의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통해서 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정하신 교회의 종의라는 수단을 통해 예전을 거행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성경은 몇번이나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시편3:8) 라고 가르치고 있으며, 구원은 하나님께서 보유하고 계신 큰 권리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사도행전2:38)라고 청중에게 권하고 있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세례를 그리스도가 죄인들을 위해 죽으신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 이상임을 분명하게 확신했습니다. 아나니아가 사도 바울에게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희 죄를 씻으라」(사도행전22:16)라고 말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은 은혜의 계약의 증표와 보증이라 말합니다. 그것은 이것들이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계약속에 있는 자들에게 표시하며, 보증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예전은 구원을 표시하는 것만 아니라, 무지개가 노아의 약속의 증표가 된 것처럼,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확증하기 위한 증표로써 그 약속에 첨가되어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증표로써의 예전은 실제 이것이 표상하고 있는 은혜를 우리에게 부여합니다. 이것은 열쇠가 들어가는 것을 인정하고, 증서가 재산의 권리를 의미하며, 결혼식이 결혼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2 제2항은, 예전을 구성하는 두가지 요소의 관계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모든 예전에는 증거와 표상되어 있는 것 사이에 영적관계 또는 예전적 일치가 있다. 이것은 한쪽의 명칭과 효과가 다른 한편으로 바꾸어지는 것이 된다.」
제3항은 예전의 효과에 대해서 입니다. 「바르게 거행되는 예전중에 또한 그것으로 나타나는 은혜는 예전속에 있는 어떤 능력으로 받게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예전의 효과는 그것을 집행하는 자의 경건한, 또는 의도에 의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유일하게 성령의 일하심, 또한 예전 사용을 권위있게 하는 명령과, 예전에 걸맞는 배찬자에 대한 축복의 약속을 포함한 예전제정의 말씀에 의한 것이다.」
예전의 효과 예전이 하나님의 은혜를 부여하는 것은 언제, 어떻게 해서 일까요? 하나님이 예전을 축복하실 때 효과가 있습니다. 은혜를 주시는 효과는 성례전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주권적으로 예전을 사용하시는 성령에 의해서만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모든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대권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의해 은혜를 부여받기 위해서는 예전에 참여하는 쪽에 믿음이 필요한지 어떤지에 대해서는, 믿는 자들만이 예전을 통해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 믿음은 세례받는데에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조건이었습니다. 「그 말을 믿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사도행전2:41) 또한 예수님의 만찬에 걸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참여하는 자는 자신의 죄를 먹고마시는 것이라는 사도의 경고도 믿음에 관련된 것임을 확증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1:29)
3 제4항은 예전의 종류입니다. 「복음에 거하는 우리들에게 주님 그리스도가 명하신 예전은 두 가지뿐입니다. 세례와 만찬입니다. 그 어느쪽도 합법적으로 임명된 말씀의 교역자 이외에 누구도 집행해서는 안되다.」
제5항은 구약과 신약의 예전의 관계에 대해서 입니다. 「구약의 예전은 이것으로 표상되고 있는 영적 일들이 실질적 신약의 예전과 동일하다. 」
예전은 세례와 성찬식이지만, 이것들은 신성한 것입니다.
예전(새크라멘토)이라는 용어는 성경중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이 종의를 정확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한 이 용어는 예전은 <성스러운 것>으로 나타내고 있습ㄴ니다. 때문에 크리스챤은 일반적으로 <성스러운> 침례, <성>만찬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예전을 맡게 된 교회가 이것을 정결하게 지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더욱이 예전은 교회를 통해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크리스챤이라도 교회에 속하지않는 사람들은 예전을 거행할 권리를 갖고있지 않습니다. 말씀과 함께 이것은 임직받은 교사를 통해 집행되어져야 합니다. 또한 교회에 소속되지 않은 자들은 이것을 하나님의 백성의 집회 이외에 거행해서는 안됩니다. 예외적 경우로 교회에 올 수 없는 자들에게 예전을 집행하는 것이 정당하게 여겨지면 교회가 그들에게 가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교회의 장로들이 병든 신자들에게 성만찬을 거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례나 성만찬을 성결하게 지키는 것은 교회의 정결함과 대단히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의무이기도 하며 특권입니다. 예전의 신성성에 있어서 이것이 더럽혀지는 것은 계규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므로 집행자는 교사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단순한 설교면허자는 계규의 집행권을 갖고있지 않습니다.
Ⅱ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28장 「세례에 대하여」
1 1항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신약의 예전이며, 세례받는 자를 엄숙한 교회에 가입시키기 위한것만 아니라, 그들에게 은혜의 계약, 그리스도에게 직접 접붙혀짐으로써 재생, 죄의 용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하나님께 바쳐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가게되는 증표, 또한 인증 되기위한 것이다. 이 예전은 그리스도가 직접 제정하심으로 세상 끝날까지 교회가 거행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2항 「이 예전에 사용되는 외적 도구는 물로써, 합법적으로 그 직무에 쓰임받는 복음의 교역자로부터 당사자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지않으면 안된다.」
3항 「이 사람을 물 속에 잠그는 것은 필요하지 않다. 이 사람에게 물을 붓거나 물을 뿌리는 것으로 세례는 바르게 집행된다.」
1항∼3항에 관하여
- 그리스도교의 세례는 그 제정의 기원을 그리스도에 의하고 있다. 신약의 예전입니다. 세례는 인간에게 필요한지 불필요한지에 따라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것을 제정하셨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28:19-20)
- 세례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받습니다. 마태복음의 말씀에 「이름으로-직역, ∼의 속에(into)」라고 나와있습니다. 이 곳의 중요한 점은 그 이름 속에, 세례를 받는다는 관계입니다. 그리스도와의 통합, 일치결합, 접붙혀진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6:3-6, 고린도전서12:13, 갈라디아서3:27-28, 골로새서2:11-12)
세례는 그리스도의 죽음, 장사, 부활에 세례 받는자가 연결되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것으로 믿는자는 그리스도 안에 하나의 지체가 되며, 그리스도의 죽음의 유효성, 부활의 능력, 은혜의 교제에 함께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결합의 증거, 증거가 세례입니다.
- 더욱이 세례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안의 세례이기도 하므로, 이것은 3인격과의 결합이라는 관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4:16-17,23,17:21-23) 이것으로 세례는 3인격이 공유하는 이름과의 일치와 함께 각 인격과의 특정 관계와의 결합을 의미합니다.
- 물을 이용한 세례에는 정결의 의미가 있습니다. 부정한 것으로부터 정결에, 죄의 허물로부터 정결하게 됩니다. 신약성경에 세례가 죄로부터의 정결, 즉, 재생을 나타내는 것임을 밝히고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세례는 물로 씻는 것으로, 이것은 물의 종교적 용법을 포함하고 있으며, 또한 재생은 다른 곳에서 (요한복음3:5, 고린도전서6:11) 씻음에 관계되는 용어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세례에 포함된 물의 씻음은 그리스도와의 결합의 전제로 생각하고, 이것이 없다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정결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 죄의 허물의 정결을 나타내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문제도 없습니다. (사도행전2:38, 22;16, 베드로전서3:21) 세례는 죄의 용서, 그리스도의 피를 붓는 것으로 죄의 허물로부터 정결함을 나타낸다.
- 세례의 양식에는 예수님의 명령속에 침례, 적례, 관수례등의 지정은 없다. 그리스도와의 영적 결합이 나타나고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 눈에 보이는 교회에 가입하기 위해. 고린도전서12:13 세례는 믿는자와 그리스도의 관계, 믿는자와 하나님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믿는자와 믿는자의 관계(성도의 교제), 믿는자와 교회의 관계를 확립한다. 하나님의 가정인 교회에 가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에 결합되는 것은 그리스도를 주로 인정하여 몸에 결합되는 것이며, 이것은 교회(에베소서5:23-30)에 결합되는 것이다. 세례는 세례를 받는자가 교회원임을 나타내는 증표, 증거이다.
Ⅲ 4항-6항 자세한 설명은 다음에 하겠습니다.
4항 「실제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순종을 고백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신자의 부모, 자녀도 세례를 받지 않으면 안된다.」
5항 「이 규정을 가볍게 여기거나 소홀히 여기는 것은 커다란 죄가 되지만, 이것이 없이는 누구도 재생, 구원받을 수 없거나 세례를 받은자는 틀림없이 재생받는다는 은혜와 구원이 세례에 불가분 첨가되어있는 것은 아니다.」
6항 「세례의 효과는 세례가 집행되는 그 순간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 규정의 바른 사용으로 약속되어 은혜는 그저 제공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그 분의 계획에 순종하여 정하실 때에 노소관계없이 그 은혜가 속한 자들에게 성령으로 현실에 표시되어 전해지는 것이다.」
7항 「세례의 예전은 누구도 단 한번만 집행되는 것이다.」
맺음)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
167문 우리들의 세례는 우리들 손으로 어떻게 사용하지않으면 안되는가
답 우리들의 세례를 바르게 행하는 것에대한, 필요하지만 대단히 무시되고 있는 의무는, 특히 시험 때나 타인에게 세례가 집행되는 곳에 참석할 때 전생애에 걸쳐 우리들 손으로 하지 안으면 안된다.
이것은 세례의 성질∙그리스도가 이것을 제정하신 목적∙세례로 얻게되는 보증된 특권과 이익∙ 그때에 우리들이 한 엄숙한 맹세를 감사로 가득찬 마음을 다시 떠올리는 것으로, 또한 세례의 은혜와 우리들의 약속을 깊은죄로 더럽히고 있는 것∙이것에 대적하여 살아가기 때문에 더욱 낮아져, 또한 이 예전을 통해 우리에게 보증된 죄의 용서와 다른 모든 축복과 확신으로 성장하는 것으로,또한 우리가 세례를 통해 하나님께 받아들여져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부터 죄에 죽음에 은혜에 살아가기 위한 능력을 발휘함으로, 또한 세례를 받을 때 자신의 이름을 그리스도에게 바친 자 답게 믿음으로, 영과 의로 생활하도록 노력하며, 일체의 몸이 되는것처럼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자 답게 형제자매속에 갈아가도록 노력하는 것에 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