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年5月22日 エペソ1:1−2 「教会とは何であるか」廣橋嘉信
序文)海浜幕張めぐみ教会が創立されて15周年を迎えようとしています。この機会に「教会とは何であるか」をエペソ人への手紙から詳しくまなび、現存の兄弟姉妹の一致した理解を得ていただくことを小会会議一同は願っております。すでに講壇交換の時にクレイグ・コーバン牧師が1:1−2を説教してくださっていますが、再度、私なりにお勧めをしたいと考えました。
Ⅰ 手紙の冒頭は、挨拶と祝祷になっています。
1:1「神のみこころによるキリスト・イエスの使徒パウロから、キリスト・イエスにある忠実なエペソの聖徒たちへ。」
1 この手紙の著者は使徒パウロです。「使徒」(原語:アポストロス)は新約聖書で三種類の意味があります。イ 基本的な意味はメッセンジャー(伝える者)です。例として次の聖句などに遣われています。ヨハネ13:16「遣わされた者は遣わした者にまさ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ピリピ2:25「あなたがたの使者として私の窮乏のときに仕えてくれた人エパフロデトは」
ロ 福音を伝えるために教会によって送られた者たち,宣教者。使徒14:14「これを聞いた使徒たち、バルナバとパウロは」。
ハ キリストの全権大使、キリストから個人的召命を受け、キリストの名前によって教え治める十分な権威を受けて送り出される。「使徒たち」「12人」「主の使徒」といわれています。
「神のみこころによる」パウロが「使徒」と自称しているのでない。
2 パウロが使徒とされた経緯は使徒の働き(9章1〜9、15~16)に記されています。パウロ、元の名は迫害者サウロ、彼は自分の言葉でその様子を記しています。「すべての会堂で、しばしば彼らを罰しては、強いて御名をけがすことばを言わせようとし、彼らに対する激しい怒りに燃えて、ついには外国のまちまちにまで彼らを追跡してゆきました。」(使徒26:11)迫害者のあまりの激しさに、逃げる者たちは、遠く、徒歩で一週間はかかるダマスコの街にまで落ち延び、さらにはキプロスの島に渡ったりしました。
その彼が、ダマスコの街の入り口に待ち構えていた復活の主イエス・キリストに捕らえられたのでした。ダマスコのクリスチャンたちは風前の灯火であった。共におられると約束された主イエスを、今こそ必要としていた。サウロの迫害をとどめ得るとしたら、このお方以外にはいない。主イエスは今まで忍耐に忍耐を重ねて引き絞っておられた弓矢を一気にサウロの心めがけて放たれた。迫害者は倒れた。突然天からの光が彼を巡り照らした。彼は倒(たお)れた。「突然、天から光が彼を巡り照らした。彼は地に倒れて、サウロ、サウロ。なぜわたしを迫害するのか。という声を聞いた。」(使徒9:3-4)主イエスはサウロが考えていたように死んだままではなかった。主は生きておられる。復活して天に帰られた。今も生きておられる。すべてキリストに敵対する者たちの決定的な弱点は、主イエスが生きておられるという事実を計算に入れていないことです。それゆえにすべての出来事に、決着が着く日が来ると、生きておられる主イエスが決済をくだされるのです。誰も主イエスに勝つことはできません。
サウロは自分が迫害している者たちの頭目、死んだはずのイエスをはっきりと見(み)た。第一コリント15:8で「月足らずに生まれた者と同様な私(わたし)にも、現れてくださいました。」と証言している。サウロは耳に聞き、目に見ることのできる形で、主イエスのご人格に出会った。
彼はイエスの言葉を理解した。真昼の太陽をしのぐ輝きの光の中に、彼は栄光の主イエスを見た。その瞬間、彼自身の目は盲目となった。彼は自分に現れてくださった方(かた)が、栄光輝く方でありながら、「あなたが迫害しているイエスである」と言われたことを聞いた。
キリストは主イエスであることを圧倒的な方法でサウロに示された。あれほど残虐な方法で荒れ狂っていた彼、この野獣性が、主の前にへりくだらされるために、本性から打ち砕かれ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それは神としての圧倒的な臨在を示すことであった。天の栄光に触れさせることであった。神は本当に、私(わたし)たちをご自分の者とするために、その栄光ある臨在をしめされます。それはかたくなで自己主張につぐ自己主張によって神ご自身に逆らい、自分の能力や、教育や、地位や財産を誇る者たち、イエスに刃向かい続けるものたちを、様々な摂理によって恐れさせられる。圧倒的に臨まれるのです。その事は人生の最大の転換となります。サウロの場合には、単に彼の転機にとどまらなかった。それはキリストの教会の一大転機となった。主はアナニヤに「 こう言われた。「行きなさい。あの人はわたしの名を、異邦人、王たち、イスラエルの子孫の前に運ぶ、わたしの選びの器です。 彼がわたしの名のために、どんなに苦しまなければならないかを、わたしは彼に示すつもりです。」サウロに神様が与えられた新しい使命すなわち、世界宣教の使命をはっきりと示してアナニヤを安心させて遣わしました。
使徒としての公的権威。自分自身の無価値。神からの恵みによって使徒とされた。高慢さはない。神の業に自分が参加させて頂いていることの不思議な驚きがあります。「神の召命のみが奉仕者を正統なものたらしめる」と宗教改革者カルバンは説明しています。
3 エペソ人への手紙の宛先は「聖徒たちへ」です。聖人、君子の意味とは違います。クリスチャンをさします。一人をさすのではなく、常に複数形でもちいられる。神によってこの世から聖め分かたれた者たち。神にささげられた民。キリストの血により聖められ、聖霊の一新により聖められ、世から聖め別たれた者たちです。
「忠実な信じている人々」キリスト・イエスを信じている人々、忠実な人々のことです。
使徒パウロはエペソの教会の人々を「あなたがたは、以前は暗やみでしたが、今は、主にあって、光となりました。光の子どもらしく歩みなさい。」(5:8)と書いています。暗やみの業に浸っていたエペソの人々が、パウロの伝道によって聖徒に変えられたのでした。「使徒の働き」の著者ルカは、パウロが行ったエペソ伝道の特色として、悪霊や魔術や悪魔崇拝との激しい戦いであったと記しています。神の国が目覚ましく進展するときは、抵抗も激しいのです。そこで神様ご自身が力を顕著に表され、普段滅多におこらない奇跡を次々と示されました。それは使徒「パウロが身につけていた手ぬぐいや前掛けをはずして病人に当てると、その病気は去り、悪霊は出て行った。」ことです。この驚くべき奇跡はパウロがしたというよりは「神はパウロの手によって驚くべき奇跡を行われた。」と注意深く書かれているとおりでした。神がなさったわざだったのです。パウロが天幕つくりをするときに使っていた汗ふきタオルや前掛けが用いられたのでした。神の力が発揮されたわざでした。
パウロは、まずユダヤ人の会堂に入って伝道しました。「神の国」について、三ヶ月のあいだ、大胆に語り続けました。メシヤであるイエスによって神の国が近づいたことを宣べ伝えました。しかし三ヶ月経って、いつものお定りのことがおこりました。心をかたくなにして聞き入れない者たちが、この道をあしざまにののしった。パウロは、説教を続けてゆける状況でないと判断して、身を引き会堂を捨てて、弟子たちとともにツラノの講堂で働きを継続しました。
ツラノとは、人の名前です。ツラノ自身が講堂を使わない時間帯に、パウロは借りる事ができて、毎日伝道をしました。ある写本によるとパウロが使用したのは、午前11時から午後4時と書かれています。ツラノは朝早く講義をしていたと考えられます。ギリシャの植民都市では、朝11時にあらゆる仕事が活動をやめ、午後遅くなると再開しました。それは苦しく熱い時間帯で、体がだるくて仕事にならなかったので、皆が休息を取る時間でした。昼寝の時間帯は、他の人が借りる事ができたのです。パウロは朝早くから、天幕造りの労働で汗を流し、11時になるとこの講堂で伝道をしました。さぞ心身疲れがたまったことと推察します。しかし、伝道への熱心と精力は、聞いている者たちを同じ勢いに引き入れて、多くの者たちがパウロの話を聞くために昼寝の時間を犠牲にして集まってきたのでした。それが毎日二年間も続いたのでした。
とくに手紙を書くときに「忠実なエペソの聖徒たち」と言ったのは、彼らが信仰に入るにあたって、この背景があったからだとおもいます。
Ⅱ 祝祷 1:2「私たちの父なる神と主イエス・キリストから、恵みと平安があなた方の上にありますように。」
1 パウロの手紙は、多くは書き出しと終わりに祝祷がささげられています。ローマ人への手紙、コリント人への手紙、ガラテヤ人への手紙、ピリピ人への手紙、コロサイ人への手紙、テサロニケ人への手紙、テモテへの手紙、テトスへの手紙、ピレモンへの手紙では、序文の中に共通した内容で、「父なる神と主イエス・キリストから、恵みと平安」を祈っています。これらはキリスト教の神髄とも言うべき意味内容を伴っているのです。
①「父なる神と主イエス・キリストから」父と主イエスは同格です。祝福の唯一の共同の源泉から、クリスチャンたちの上にありますように。
②「恵み」は、何よりも第一に、三位一体の神さまの本性を言い表しているのです。恵みはイエス・キリストを通して世界における主権と支配と活動の表しているのです。通常は「神の恵み」と表現しています。第二に、恵みを受け取るキリストを信じる者たちの生涯において起こる事柄をさしています。恵みによるキリスト者生活といえます。
エペソ人への手紙に「恵み」は12回出てきます。神がおしみなく私たちにそそがれる好意。美しさ、秩序を意味していた。次にすばらしいものと他の人に与えようとする願望を意味し、ついには、すばらしいものを他の人に与える働きをさすようになった。恵みは賜物である。
③「平安」(この手紙に7回出てくる)神との平和、個人、個人との平和、無事。
神の救いの恵みの結果与えられるものです。生まれながらには怒りの子(エペソ2:3)争い、憎しみ、不和を内に持っている者、そのような敵意を神は十字架の上につけて滅ぼされた。神との平和を回復。内に与えられる平和、外部の環境に左右されないものです。ですからここで祈られている「平安」は、単純に何事もなく平穏無事と言うような心の状態を言っているのではありません。神との平和を与えられ、心のうちに罪が許された平安を与えられ、その結果、隣人との間に平和を作り出すことができる者とされたのです。「平安」と「平和」は同じ原語です。使いかたは違っていますが、中身は同じです。
2 これは祝祷です。キリストの教えの神髄。これさえあれば後はいらないといえるほどのものです。パウロは、手紙の冒頭だけではなく、終わりにも「私たちの主イエス・キリストを朽ちぬ愛をもって愛するすべての人の上に、恵みがありますように」(6:24)と祝祷をしています。これは、神の民への祝福の宣言として、神からの行為となります。
祝祷は、大祭司、使徒によって与えられたものですから、神の教会においてみ言葉の説教者として正式に立てられた者が、公的な資格で、会衆の公的な集会に対して与えられるべきものとされており、今もその重要な行為として,各教会では礼拝の終わりに祝祷をしているのです。
最もよく用いられる祝祷は、大祭司的祝祷(民数記6:24〜28)と使徒的祝祷(Ⅱコリント13:13)です。しかし、祝祷にはいろいろ変わった型があります。(Ⅰコリント16:23、ガラテヤガ6:18、ピリピ4:23、黙示緑22:21、ピリピ4:7、Ⅰテサロニケ5:23)。
結び) 16周年に向かって歩みを始める、私たちにとって一番大事で必要なことは、神から注がれ続ける[恵みと平安]です。ともに祈り求めて前進してまいりましょう。
2016년 5월 22일 에베소서1:1-2 「교회란 무엇인가?」 廣橋嘉信
서문) 이제 곧 카이힝마쿠하리 메구미 교회가 창립된지 15주년을 맞게 됩니다. 이 기회에 「교회란 무엇인가」에 관하여 에베소서를 참고로 하면서, 지금 형제자매간의 일치된 이해를 갖기를 소회회의 일동은 바라고 있습니다. 이미, 강단교환 예배 때에 크레이그 목사가 1:1-2를 설교해 주셨지만, 다시 한번 제 나름대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Ⅰ 에베소서의 처음은 인사와 축복으로 되어 있습니다.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1 이 에베소서의 저자는 사도바울입니다. 「사도」(원어:아포스트로스)란 신약성경에서 세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ㄱ. 기본적 의미로 멧센져(전하는 자)입니다. 그 예로, 다음의 말씀이 사용되고 잇습니다. 요한복음13:16「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빌립보서2:25「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
ㄴ. 복음을 전하기 위해 교회에서 파견된 자들, 선교자. 사도행전14:14「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ㄷ. 그리스도의 전권대사, 그리스도로부터 개인적 사명을 받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르치고 다스리는데 충분한 권위를 받고 파견된 자. 「사도들」「12명」「주의 사도」라고 불리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사도바울은 「사도」라 자칭하고 있지 않습니다.
2 사도 바울이 사도 된 경위는 사도행전 (9장1-9절, 15-1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바울, 이전 이름은 사울, 자신이 직접 그때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저희를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하였고」(사도행전26:11) 심한 박해자였던 나머지, 도망친 자들을 쫓아 멀리까지, 걸어서 일주일이나 걸리는 다메섹까지 따라가, 결국엔 기프로스 섬까지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그런 그가 다메섹의 입구에 기다리고 계신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잡히게 되었습니다. 다메섹의 크리스챤들은 풍전등화같은 상태였습니다. 함께 해 주신다는 주 예수님의 약속을 지금이야말로 필요로 하던 순간이었습니다. 사울의 박해를 멈추게 하는 데는 이 방법뿐이었습니다. 주 예수님은 지금까지 참고계시던 화살을 사울의 마음 중심에 쏘셨습니다. 박해자는 쓰러졌습니다. 갑자기 하늘로부터 빛이 비추었습니다. 그는 쓰러진 것이엇습니다.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사도행전9:3-4) 주 예수님은 사울이 생각하던 죽은자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신 분이었습니다. 부활하셔서 하늘로 돌아가신 분이었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그리스도를 적대하는 모든 자들의 결정적 약점은 주 예수님께서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염두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에 모든 일들이 끝나는 날이 오면 살아계시는 주 예수님께서 결제 해주실 것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주 예수님을 이길수 없습니다.
사울은 자신이 박해하고 있던 자들의 두목인, 틀림없이 죽었다고 생각하던 예수를 똑똑히 보았습니다. 고린도전서15:8에서 「맨 나중에 만삭 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귀로 듣고, 눈으로 볼 수 있는 형태로 주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했습니다. 대낮의 태양과 같은 빛나는 광채 속 영광의 주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그의 눈은 멀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나타나신 분이 영광의 광채 속에서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라고 말씀하신 것을 들었습니다.
주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압도적인 방법으로 사울에게 제시되었습니다. 얼마나 잔인하게 크리스챤을 박해하던 그가, 이 야수성이 주님앞에 엎드러지기 위해서는 그의 본성이 깨어지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써의 압도적 임재를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하늘의 영광에 접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진실로 우리들을 그분의 자녀로 삼기위해 그 영광의 임재를 보이시기도 합니다. 이것은 강팍한 마음으로 자기주장을 하고 하나님을 반역하고 자신의 능력이나 교육이나, 지위나 재산을 자랑하는 자들, 예수님께 계속해서 칼을 향하는 자들을 수많은 섭리로 그분의 능력을 보이십니다. 압도적 능력으로 임하시는 것입니다. 이 일은 인생 최대의 전환점이 됩니다. 사울의 경우, 단순히 그의 전환으로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교회에 있어서도 일대 전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나니아에게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하시니」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부여하신 새로운 사명, 즉 세계선교의 사명을 분명하게 말씀하셔서 아나니아를 안심시킨 후 사울에게 보내셨습니다.
사도로써의 공적 권위. 자기자신의 무가치. 하나님의 은혜로 그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에게 거만함은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신이 참가할 수 있게 된 것을 놀랐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만이 정통성 있는 봉사자가 된다.」 라고 종교개혁자 칼뱅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3 에베소서의 편지는 「성도들」에게 보낸 것이었습니다. 성인, 군자의 의미와는 다릅니다. 크리스챤을 가리킵니다. 한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복수형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과 구별된 자들. 하나님께 바쳐진 백성.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케되고, 세상으로부터 성별된 자들입니다.
「신실한 자들」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있는 사람들, 충실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교회 사람들에게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5:8) 라고 적었습니다. 어둠에 빠져있던 에베소사람들이 사도바울의 전도로 성도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이 저자 누가는 사도바울이 간 에베소 전도의 특색을 악령이나 마술이나 악마숭배와의 격한 싸움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빠르게 진전될 때에는 저항도 심하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먼저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 전도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삼개월동안 담대하게 전했습니다. 메시아되신 예수님의 은혜로 하나님 나라가 가까와 졌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삼개월이 지나도 상황은 그리 변하지 않았습니다. 강팍한 마음으로 말씀을 들으려 하지않던 자들은 이 말씀을 심하게 비난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설교할 상황이 아님을 깨닫고, 회당을 버리고 몸을 피해 제자들과 함께 두로의 강당에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두로란 사람의 이름입니다. 두로가 강당을 사용하지 않는 시간, 사도 바울은 강당을 빌려 매일 전도했습니다. 어떤 사본에 의하면 사도바울은 아침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로는 이른아침 강의를 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 식민도시에서는 아침11시에 모든 활동을 멈추고 늦은 오후가 되어 다시 일을 시작했습니다. 더운 시간대에 일을 할 수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낮에 휴식을 취한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사도바울은 사람들이 낮잠자는 이 시간대에 강당을 빌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른 아침부터 땀을 흘리며 천막치는 일을 한 후, 11시가 되면 이 강당에서 전도했습니다. 피로에 싸여있었음에 틀림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도에대한 열심과 정력은 듣고있던 자들을 같은 열심으로 끌어들여, 수많은 사람들이 사도바울의 말을 듣기위해 휴식시간을 포기하고 모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2년동안 매일매일 게속되었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이 편지에 「신실한 자들」이라고 쓴 것은 성도가 된 그들에게 이러한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Ⅱ 축도1:2「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
1 사도바울의 편지는 첫부분과 마지막 부분에 축도로 되어있는 것이 많습니다.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에는 서문의 공통된 내용으로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크리스트교의 정신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 「하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아버지와 주 예수님은 동격입니다. 축복의 유일한 공동 원천으로부터 크리스챤위에 은혜가 임하기를.
- 「은혜」는 제일로 무엇보다도 삼위일체의 하나님의 본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전세계에 주권과 지배와 활동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제 2는 은혜를 받은 그리스도를 믿는자들의 생애에 일어나는 일들을 가리킵니다 은혜를 입은 크리스챤의 생활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에 「은혜」는 12번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낌없이 우리들에게 부어 주시는 호의. 아름다움, 질서를 의미합니다. 다음으로 놀라운 것과 타인에게 주려는 원망을 의미하며, 마침내, 놀라운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려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은혜는 선물입니다.
- 「평안」 (에베소서에는 7번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평화, 개인, 개인간의 평화 무사.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대한 결과로 얻게되는 것입니다. 태어날때부터 노여움의 자녀(에베소서2:3) 싸움, 미움, 불화를 속에 가지고 있는 자, 이러한 적의를 하나님은 십자가 위에 매달아 멸망 시키셨습니다. 하나님과의 평화를 회복. 마음속에 얻게되는 내적 평화, 외부환경에 좌우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곳에 기도하고 있는 「평안」이란 단순히 아무일도 없는 것 같은 마음상태를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평화를 얻고, 마음속 죄가 용서받아 평안을 얻어, 그 결과 이웃과의 평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평안」과 「평화」의 원어는 같은 것입니다. 사용방법은 다르지만 내용은 같은 것입니다.
2 이것은 축도입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정신. 이것만 있다면 다른 어떤 것도 필요없다고 할 정도입니다. 사도바울은 편지의 첫부분만이 아니라 마지막에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찌어다」(6:24)라고 축도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백성에 대한 축복의 선언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얻게되는 것입니다.
축도는 대제사장이나 사도에게 받는 것이므로 교회에서는 말씀의 설교자로 정식적 세움을 받은 자가 공적 자격으로, 회중의 공적 집회에서 부여해야 할 것이며, 지금도 그 중요한 행위로 각교회에서는 예배의 마지막에 축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축도는 대제사장적 축도(민수기6:24-28)와 사도적 축도 (고린도후서13:13)입니다. 그러나 축도에는 여러형태가 있습니다.(고린도전서16:23, 갈라디아서6:18, 빌립보서4:23, 요한계시록22:21, 빌립보서4:7, 데살로니가전서5:23)
맺음) 이제 창립16주년을 향해 걸어갈 때,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평안〕 입니다. 함께 기도하며 전진해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