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7.3 エペソ1:22〜23 「教会はキリストのからだ」
序文)キリストは全被造物の上に主である事を21節まで述べたパウロは、ここから、キリストが特に教会との関係ではかしらであり、教会はキリストのからだである事を宣言しています。それは父なる神がなさったことでした。
Ⅰ 「教会」という用語の語義
22節「教会に」エペソ人への手紙で、ここに初めて「教会」(エクレーシア)という言葉が出てきました。この語は、つづいて3:10、21、5:23〜25、27、29、32にでてきます。エペソへの手紙の中心主題となっています。
この語義は「呼び出された者の集い」です。この語は、もともとギリシャの都市国家で、廷吏により召集されたギリシャ市民の合法的集会などを意味して用いられていた。召集された市民が、日常生活や業務から分離、区別された者である事を意味しました。後になって発展的に単純に群衆・集団を意味するようにもなった。エペソで銀細工人デメテリオを中心にキリスト教に対する暴動が起こり、「偉大なのはエペソ人のアルテミスだ」と叫び、「集会は混乱状態に陥り、大多数の者は、なぜ集まったかさえ知らなかった。」(使徒19:32)という記事の「集会」がエクレーシアです。
しかし、この語は、新約聖書では圧倒的多数で、「キリスト教会」を指すように使われました。その場合、キリストにより、またキリストにあって互いに霊的に結ばれていること(霊的交わり)、現実に具体的に各個教会であること、具体的な形で礼拝をしていること、一定の統治機構(小会・中会・大会など)を持っていることを意味するようになりました。22節の「教会」はまさに、そのような意味であります。イエス様が、マタイ18:17で「それでもなお、言うことを聞き入れようとしないなら、教会に告げなさい。教会の言うことを聞こうとしないなら、彼を異邦人か取税人のように扱いなさい」と言われました。ここで教会が違犯者を赦したり、裁いたりする「鍵の権能」(マタイ16:18-19)を行使することを教えられました。22-23節の教会は、具体的な各個教会をさすよりは、時代と場所を超えた普遍的な実在として使われています。
Ⅱ このエペソ1:22-23を根拠にして、ウェストミンスター信仰告白25章「教会について」第一項は次のように告白しています。
1「公同または普遍の教会は、見えない教会であり、そのかしらなるキリストのもとに、過去・現在・未来を通じてひとつに集められる選民の全員から成る。それは、すべてのものをすべてのもののうちに満たしているかたの配偶者、からだ、また満ちみちているものである。」
2 見えない教会(普遍的)と見える教会(各個教会)について、アール・ビー・カイパー「聖書の教会観」より紹介します。
見えない教会と見える教会の区別は、キリストの教会が二つあるということではありません。キリストをかしらとした教会は唯−つです。キリストは唯一つの体しかもっておられません。しかし、この一つの教会は異った色々な面をもっていて、その中の二つが見えない教会と見える教会というのです。
見えない教会一公同または普遍の教会はもっぱら聖霊の恵みによって再生した者から成っています。過去・現在・未来を通じてひとつに集められる選民から成り立っております(エペソ1:10)。なぜ見えないといわれているかというと、誰が再生したもので、だれが未再生のものか、私たちは確実に告げることができないからです。全知の神だけがおできになるのです。教会のこの面は、それがもっぱら新生した人によってだけ成り立っているので栄光に輝いています。
その会員はひとりひとり、暗黒の権力から救い出されて、神の愛する御子の国に移されています(コロサイ1:13)。彼らは「生ける石となって、神の家に築きあげられ、聖なる祭司となって」います(Ⅰペテロ2:5)。彼らは「主イエス・キリストの名によって、また神の霊によって、洗われ、きよめられ、義とされ」ています(Ⅰコリント6:11)。彼らが完全にたっしていないのはたしかです。しかし現在でも、彼らは主イエス・キリストによって、罪とサタンに対する勝利を得ています。主にあって、彼らは全き者です。
見える教会一見える教会は、教会員として名簿に載っているすべての人から成っています。誰が教会員か、決めるのは難しくありません。正確に計算できます。厳密には、見える教会の教会員は、見えない教会の教会員と符号します。新生した者だけが見える教会に属しているのです(Ⅰヨハネ2:19)。といっても、見える教会の中に新生していない者がありえますし、事実いることを否定できません。このため真のクリスチャンである信者と、口で告白しただけの、名目だけのクリスチャンである不信者とからなる混合といえるでしょう。
イスカリオテのユダの存在や、アナニヤとサッピラなどが、このことを裏付けています。見える教会の会員であるというだけでは、決して永遠の命を保証してはいないのです。
3 では、見える教会の栄光はどんなものでしょうか。信者と不信者の混合であるとすれば、当然見えない教会よりずっと低い栄光のはずです。それは残念ながら事実です。それが、非常に悩ましい事実であったことも歴史が示しています。教界人は、見える教会の汚辱を救うための方策は考えられないものか、もし考えられないとしたら、それに対してどうしたものかと、死闘して来ました。今にいたるまで、その悩みについて一致した意見といったものは何一つありません。異った三つの見解をあげてみましょう。
キリスト教会の中に<純粋教会>思想と呼ばれる主張をするグループが、歴史を通じてありました。彼らは教会員を、新生の自覚をもち、改心をはっきり告白できるものだけに限定しました。再生していないものをすべて教会の外へおしだすことが必要であり、また出来ると考えています。彼らは、新生者とそうでない者との判定に対する、人間の無能力を見過ごしています。他の人々は、逆に走りました。「放任」政策をとり、問題を放置・無視します。彼らは教会戒規を執行しません。彼らは自分たちの立場を支持するために、毒麦のたとえばなしを利用します。そのたとえは、教会はその内にある麦と毒麦とを分けようとしてはならないと教えていると解釈します。いや誤解します。この考えを支持する人々は今も非常に大勢います。そのために、彼らは見える教会の純粋という栄光を失わせてしまいます。神の言葉は繰り返し悪い者を除くように命じており、聖書のどの言葉も、全体としての聖書の光の中で、解釈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です。
第三の見解は、神のみ言葉に基いたものです。一方で見える教会が完全に純潔でありえないことを認めます。最も信心深く、最も賢明な役員たちでも、麦と毒麦とを区別しようとする場合、到底、誤りを犯さないとはいえません。しかし他方では、教会が最善を尽くして純潔を守り、そのために除名が必要となっても、戒規を行使することは聖なる義務であると主張します。罪を犯した兄弟が教会の懲らしめを無視するならば、「異邦人、取税人と同じ者」と考えられるべきであると主イエスは命じておられるからです。(マタイ18:17)
見える教会は見えない教会に似ているという意味で、栄光に輝いているというのが結論です。可見性と不可見性とは、イエス・キリストの教会の二面です。従って見える教会が、見えない教会を具現し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は言うまでもありません。相互の類似が完全でないのは確かですが、見える教会が見えない教会の戯画でしかないような場合があります。そのときそれは栄光を失っています。まことに多くの場合、見える教会は見えない教会を映しだすことに無気力そのものです。そのとき、その栄光はかすんでしまいます。とは言え、神の恵みにより見える教会が見えない教会に懸命に近づこうとつとめている例もあります。そのような教会こそ、真に栄光に輝いています。
見える教会の栄光は、その教会員たちに映しだされ、彼らのイエス・キリストにささげる忠誠のうちに光を放ちます。キリストをかしら・救い主と告白し、自らキリストのからだとして具現する教会こそ、栄光に輝きます。
Ⅲ 「かしらであるキリスト」
1 神様は、全被造物の上に主であるキリストを、教会のかしらとされました。
詩篇8:6〜8節「 あなたの御手の多くのわざを人に治めさせ、万物を彼の足の下に置かれました。すべて、羊も牛も、また、野の獣も、空の鳥、海の魚、海路を通うものも。」
神が人に与えられた被造物を治めよとの最初の命令を詳しく書いています。家畜、野の獣、空の鳥、海と川の魚、這うものを含んでいます。人間は極小さな昆虫から、巨大な鯨に到るまで神に創造された動物一切の上に支配権をもつようにと定められているのです。
しかし次ぎにきた堕落がこれら全てを破壊しました。罪の奴隷となり、悪魔の虜となったのです。恥ずべき奴隷の身分に縛られてしまったのです。
詩人は、神の創造された自然の悠久宏大のまえに、卑小である人間の土に帰る弱い姿を歌うだけではなく、神に似る者としての被造物の使命の高さを歌います。その上で、罪の奴隷となりはてた私たちを、神が憐れみ、贖い、救い出して、神の子として生まれ変わらせてくださった光栄を思わせます。
ヘブル人への手紙2:9〜10節「ただ御使いよりも、しばらくの間、低くされた方であるイエスのことは見ています。イエスは、死の苦しみのゆえに、栄光と誉れの冠をお受けになりました。その死は、神の恵みによって、すべての人のために味わわれたものです。神が多くの子たちを栄光に導くのに、彼らの救いの創始者を、多くの苦しみを通して全うされたということは、万物の存在の目的であり、また、原因でもある方として、ふさわしいことであったのです。」
ここで、詩篇8篇6節を実現する人間は、人間となられたイエス・キリスト様だということがわかります。 現状として、惨めな状態にある人間のところに、神の御子は天から降られて、人となってくださったのです。詩篇8篇にある、人間へのすばらしい約束は、このお方によって成就したのです。イエス様は苦しみと死を通して栄光を受けられました。そして、この苦しみと死と栄光は、人間をあるべき本来の状態に引き戻すためでした。人間を捕らえていた死でさえも、イエス・キリストの身体のよみがえりによって打ち砕かれたのです。
人間としてイエスさまの勝利が勝ち取られことで、来るべき世界で、まことに主となるのです。人間は挫折、屈従、束縛、無気力な状態から、解放されて、神の永遠のご計画どおり、この世を治めるものとして、造りかえられるのです。このように主イエス・キリスト様を見ると、ここに栄光の先駆者としての姿がはっきりと表れています。先駆者は他の人の為に道を最初に開く人です。誰にもなしえなかった事、神に達する道を開いてくださった方はイエス様です。
このお方が「教会のかしら」として教会に与えられました。
2 教会はキリストのからだです。天上の復活の主、神の右の座に着いておられる主、イエス・キリストと、地上の教会(信徒)との連続性、一つ(一体)であることは、頭と体がつながっているように、つながっているのです。「御子はそのからだである教会のかしらです。御子は初めであり,死者の中から最初に生まれた方です。こうして、ご自身がすべてのことにおいて,第一のものとなられたのです。なぜなら、神はみこころによって、満ち満ちた神の本質を御子のうちに宿らせ、その十字架の血によって平和をつくり、御子によって万物を、ご自分と和解させてくださったからです」(コロサイ1:18〜19)。復活の御子の内に満ち満ちた神の本質がやどっており、その御子が教会のかしらであるので、教会には「いっさいのものを、いっさいのものによって満たす方の満ちておられるところです」(1:23節)。
ここには、キリストと信徒の主従関係がいわれています。からだは、かしらに従うのです。
生きたからだの特徴は、その発達や成長にあります。キリストの贖いにより、復活のいのちに結びつけられている私たちは、霊的な発達や成長を、自ずから受け与えられるのです。
人体は、目や耳や鼻、足や手、などさまざまな肢(えだ)からなっています。そのように頭につながる体である信徒は、一人一人が賜物を受けており、相互に帰属しあい、扶助し、自己規制などにより、教会という共同団体を形成してゆくのです。それはキリストの満ち満ちた所を現して、神に栄光を帰してゆきます。
結び)各個教会の一つである海浜幕張めぐみ教会は、地上に存在しているあいだ、かしらである主にしたがいます。主が与えられた福音宣教の使命に生きることです。主イエス・キリストが使命を果たすために地上で歩まれたように、宣教のわざのために、私たちも苦難を負って、この世の抵抗・攻撃を経験しつつ、より聖化されつづけ、栄化される日を待ち望みましょう。
2016년 7월 3일 에베소서 1:22-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서문) 그리스도는 모든 피조물위에 주 되심을 21절까지 진술한 사도바울은 이곳에서부터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되시며,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된 것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되신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
Ⅰ 「교회」라는 용어의 뜻
22절 「교회는」 에베소서의 이곳에 처음으로 「교회」(에크레시아)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곳에 이어서 3:10,21, 5:23-25, 27, 29, 32에도 나오고 있습니다. 에베소서의 중심 주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불러내어 따로 모인 무리」라는 뜻입니다. 본래 이것은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법원의 부름을 받은 그리스시민의 합법적 집회등을 의미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소집된 시민은 일상생활이나 업무에서 떠난 구별된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후에는 단순히 군중∙집단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에베소에서 은세공인 데메드리오를 중심으로 크리스트교에 대한 폭동을 일으켜,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라고 외치며,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사도행전19:32) 라는 기록에 쓰여있는 「모인 무리」가 에크레시아입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이 말은 압도적으로 「그리스도 교회」를 가리키는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경우, 그리스도로,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가 영적으로 맺어지는 것(영적 교제), 구체적으로 각 교회에 현실로 있음을, 구체적 형태로 예배하고 있는 것, 일정의 통치구조(소회, 중회, 대회 등)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22절의 「교회」는 바로 이 의미로 쓰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18:17에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곳에 교회가 위범자를 용서하거나, 정죄하는 「열쇠의 권능」 (마태복음18-19)을 행사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22-23절의 교회는 구체적으로 각교회를 가리키는 것보다,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보편적 실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Ⅱ 이 에베소서1:22-23을 근거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25장 「교회에 관하여」 제1항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1「공동 또는 보편 교회는 보이지 않는 교회로, 그 머리되신 그리스도로 과거∙현재∙미래에 걸쳐 하나로 모이게 된 선민 전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모든 것을 모든 것으로 가득 채워주시는 분의 배우자, 몸인 것이다.」
2 보이지 않는 교회(보편적)와 보이는 교회(지역교회)에 관한 아브라함∙카이파 「성경의 교회관」을 소개하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교회와 보이는 교회를 구분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두개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교회는 단 하나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의 몸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 하나의 교회는 다른 여러면을 가지고 있어서, 그 중에 두가지가 보이지 않는 교회와 보이는 교회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교회 – 공동 또는 보편교회는 오로지 성령의 은혜로 거듭난 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과거∙현재∙미래에 결쳐 하나로 모여진 선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에베소서1:10) 어째서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지는 누가 거듭난 자인지, 누가 거듭나지 않았는지 우리는 확실하게 알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아시는 것입니다. 교회의 이러한 면은 오로지 거듭난 자들 만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영광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
이 회원 한사람한사람은 암흑의 권세으로부터 구속받아,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 나라로 옮겨지게 됩니다. (골로새서1:13) 그들은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 입니다. (베드로전서2:5)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고린도전서6:11) 그들이 완전하지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현재에도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죄와 사탄에 대한 승리를 얻고 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그들은 완전한 승리자 입니다.
보이는 교회 – 보이는 교회는 교회원으로써 교적부에 기록되어있는 모든 사람으로 구성됩니다. 누가 교회원인지 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습니다. 엄밀하게는 보이는 교회의 교회원은 보이지 않는 교회의 교회원으로 봅니다. 거듭난 자 만이 보이지 않는 교회에 소속됩니다.(요한일서2:19) 하지만, 보이는 교회속에는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 있으며, 실제로 존재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참된 크리스챤인 신자와, 말로만 고백한 이름뿐의 크리스챤의 혼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롯유다나, 아나니아와 삽비라 등이 이것을 증명합니다. 보이는 교회에 속한 회원만으로는 영원한 생명을 약속받았다는 보증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3 그렇다면 보이는 교회의 영광은 어떠한 것일까요? 신자와 불신자의 혼합이면, 당연히 보이지 않는 교회보다 훨씬 낮은 영광일 것입니다. 그것은 유감스럽게도 사실입니다. 이것이 대단히 걱정스러운 사실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교계인은 보이는 교회의 오욕을 씻기 위해 방책을 세울 수 없는지, 만일 방책이 없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사투를 벌여왔습니다. 현재까지도 이 문제에 대한 일치된 의견은 단 한가지도 없습니다. 서로 다른 세가지 의견을 살펴봅시다.
그리스도 교회의 중심에 <순결교회> 사상이라 불리우는 주장을 하는 그룹이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원을 거듭난 자각을 갖고 있으며, 개심을 분명하게 고백할 수 있는 자만으로 한정시켰습니다. 거듭나지 않은 자들은 모두 교회밖으로 내보내야 하며, 또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거듭난 자에 대한 판단을 하는데 인간의 무능함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반대로 달렸습니다. 「방임」 정책을 취해, 문제를 방치∙무시합니다. 그들은 교회계율을 집행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유지하기 위해 가라지의 예화를 이용합니다. 예를 들면, 성경에서 교회는 교회안의 보리와 가라지를 구분하려 하면 안될것을 가르치고 있다고 해석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해입니다. 이 생각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보이는 교회의 순수함이라는 영광을 잃어버리게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듭해서 악한자를 제거할 것을 명하시고 있으며, 성경의 어떤 곳도 전체를 통해 성경의 영광속에 해석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제 3의 견해는 하나님 말씀에만 근거하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보이는 교회가 완전하게 결백할 수 없음을 인정합니다. 아무리 깊은 신앙심을 가지고 있거나, 아무리 현명한 임원이라 할지라도 보리와 가라지를 구별하는데 절대로 실수 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교회가 최선을 다해 순결을 지키고, 그러기 위해 제명을 하게 되더라도 계율을 행사하는 것이 성스러운 의무임을 주장합니다. 범죄한 형제가 교회의 징벌을 무시한다면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는 주 예수님의 명령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18:17)
보이는 교회는 보이지 않는 교회를 닮고 있다는 의미로써, 영광에 빛나고 있는 것이 결론입니다. 가견성과 불가견성은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두가지 다른 면입니다. 따라서 보이는 교회가 보이지 않는 교회를 구현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는 사실입니다. 이 두가지가 완전하지 않은것은 분명하지만 보이는 교회가 보이지 않는 교회의 방해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때에 그것은 영광을 잃습니다. 많은 경우, 보이는 교회는 보이지 않는 교회를 반영하는 일에 무기력합니다. 그 때, 그 영광이 가려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보이는 교회가 보이지 않는 교회에 열심히 가까이 하려 노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교회야말로 참된 영광을 발하게 됩니다.
보이는 교회의 영광은 그 교회원들에게 반영되어, 그들의 예수 그리스도에게 바치는 충성속에 빛을 발합니다. 그리스도를 머리∙구세주로 고백하고, 그리스도의 몸으로써 구현시키는 교회야말로 영광으로 빛나게 됩니다.
Ⅲ 「머리되신 그리스도」
1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 위에 주인되신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
시편8:6-8「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부여하신 피조물을 다스리게 하도록 명령하신 내용이 자세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가축, 땅의 모든 짐승,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있어 땅에 기는 모든것, 모든 푸른 풀, 식물, 바다와 강과 물고기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아주 작은 곤충에서부터 거대한 고래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창조하신 동물 모두를 지배할 권위를 부여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이것들 모두 파괴되고 맙니다. 죄의 노예가, 악마의 포로가 된 것입니다. 수치스러운 노예로 매이게 된 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창조된 자연의 영원광대함 앞에 작고 천하며, 흙으로 돌아가게 되고마는 인간의 약한 모습을 노래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닮은자로써의 창조물의 고귀한 사명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 죄의 노예가 된 우리를 하나님의 자비, 대속, 구속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써 다시 태어나게 해 주신 영광을 떠올리게 합니다.
히브리서 2:9-10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이곳에 시편8편6절을 실현하는 인간은, 인간되신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비참한 상태로 있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아들은 하늘에서 내려 오셔서 사람이 되어주신 것입니다. 시편8편에 나온, 인간을 향한 놀라운 약속은 이분으로 성취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고통과 죽음을 통해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고통과 죽음과 영광은 인간이 본래 있어야 할 상태로 되돌려 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을 결박하고 있던 죽음조차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부활로 해방된 것입니다.
인간으로써의 예수님이 승리하심으로 다시 오게 될 세상에서 참된 주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인간은 좌절, 굴종, 속박, 무기력한 상태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대로 이 세상을 치리하시는 분으로 새롭게 창조되시는 것입니다. 이곳에 주 예수님의 영광의 선구자로써의 모습이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선구자는 다른 사람을 위해 처음으로 길을 개척한 사람입니다.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한 일,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을 열어주신 분은 예수님입니다.
이 분을 「교회의 머리」로 교회에 부여해 주셨습니다.
2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천상의 부활의 주,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계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지상의 교회(성도)와의 연속성, 하나(일체)됨, 머리와 몸이 연결되어있는 것처럼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골로새서1:18-19) 부활의 아들 속에 하나님의 본질이 가득 차 있으므로,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1:23)
이곳에는 그리스도와 성도의 주종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몸은 머리를 따르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몸의 특징은 발달이나 성장을 합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부활의 생명에 접붙혀진 우리는 영적 발달이나 성장을 얻게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은 눈이나 귀, 코, 발이나 손 등 수많은 기관(가지)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머리에 연결되는 몸인 신도는 한사람한사람이 은사를 받고 있어서, 서로간에 속하고, 도우며, 자제함으로 교회라는 공동단체를 형성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로 가득찬 곳을 나타내는 것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맺음) 지역교회의 하나인 카이힝마쿠하리 메구미교회는 지상에 존재하는 동안 머리되신 예수님께 순종합니다. 예수님께서 맡기신 복음선교의 사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명을 완수하시기 위해 지상에서 살으셨던 것처럼, 선교의 업적을 위해 우리들도 고난을 지고 이 세상의 저항∙공격을 경험하면서 더욱 성화되어가면서 영화로운 날을 기대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