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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年8月7日 礼拝 説教(日本語文、韓国語文)エペソ3章1-6節 

 

2016年8月7日 エペソ 3:1〜6 「奥義とは」

序文)使徒パウロは、この手紙をかきだすときに「神のみこころによるキリスト・イエスの使徒」と自己紹介をしました。それが、この3章に入って自分のことを「あなたがた異邦人のためにキリスト・イエスの囚人となった私」と筆を改めています。

Ⅰ キリスト・イエスの囚人  1節

パウロは異邦人の使徒(1:1)としての職務を神から授けられた。そして今、キリストの囚人となっている。彼はローマ皇帝カイザルの囚人であるが、そうは理解していない。福音のために捕らえられているからである。ローマの獄中で鎖につながれて、この手紙を今書いている。この縄目は「あなたがた異邦人のため」である。あなた方が神の国の民となるためである。「のために」(ギ)は「〜に味方して、の側について」という前置詞です。異邦人伝道の故に捕えられた(使21章)という以上に、異邦人伝道へと主に捕えられたのであります(参照ガラ2:8)。

私たちに福音が伝えられるために初めはパウロが、そして多くの宣教者たちが、この縄目を負ってくださった。死の危険を冒してくださった。囚人とまでいかなくてもおおくの労苦を貧しい異文化の中で担ってくださった。異邦人を神の国の市民とする働きは、今日も続いている。

あなたがた(異邦人)のために〉、ここの「のために」は〈ギ〉エイス「〜へ」という前置詞.異邦人へ伝達する・もたらす務め(参照使22:21、ガラ2:7).

そもそも福音を備えられたイエス・キリストご自身は、ヘロデ王、ピラト・ローマ総督の縄目を受け、ついには十字架の苦難を忍んでくださった。このことを決して忘れてはならない。自分たちの救いのためにも、今も、危険と苦難をうけているクリスチャンたちがいることを覚え続けましょう。

パウロは、だからといって自分の苦心をあげて云々しているのはなく。私はキリスト・イエスの囚人であると自覚している。彼はキリストがすべてのすべて、その宣教のために囚人となった。カイザリヤで2年間、ローマですでに2年間を経過している。普通なら、不平、不満、つぶやき、も生まれてくるところです。しかし彼は、キリストの囚人と言って、キリストの名を栄光あらしめています。キリストを信じる信仰の本質のために、困難や不評や、物質的損失をこうむるとき、私たちは自分を犠牲者であると考えるか、キリストの闘士と考えるかのいずれかをとる。それは日常生活に大きな相違を生み出します。犠牲は嫌だと考える者は、いろいろの理由を付けてキリストから離れようとします。闘士と考える者は、パウロの模範に見習います。それができればすばらしいですね。

 

Ⅱ 2-13節   実は大脱線をしているのです。

手紙の本筋を展開する前の再確認です。本当は14節をすぐに言おうとしていたのですが、1節で「あなたがた異邦人のために」と書いて、そのことばから連想が起こって「あなたがたのために私がいただいた、神の恵みによる私の務め」とつい手紙を書き付けてしまったのでした。

エペソに3年も滞在していたときは、自分のつとめについて、使徒性等を語る必要がなかったのです。今や、異邦人の使徒としての任務、召命について議論が起こり、パウロの使徒性が疑われたり、否定されたりしてきたのを聞いて、自分の務めの再確認を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のです。「たしかに、彼は好き好んで余計な議論をしているわけではない。ただ反対者たちの悪意と執拗さとに強いられて、やむをえず自己の任務を弁護しているのである」(カルバン)。

「神めぐみによって」この務めについている。自分勝手にではないのです。8節でも「すべての聖徒たちのうちで一番小さな私に、この恵みが与えられたのは、私がキリストの測りがたい富を異邦人に宣べ伝え、」と言っている。ダマスコ途上で復活された主イエス・キリストにお目にかかり、そこで主から異邦人への使徒としての任命を受けた。これこそ恵みによる任命である。

 

3 ここでパウロの「恵み」についての使用法を簡単に紹介しましょう。

a 人を救いに導く神のご愛顧 私たちが救いに与ったのは、神の愛と憐れみ恵みなのです。

b キリスト者として生きるに必要なすべてを賦与される神のご愛顧 クリスチャンとして地上で歩むため心身のすべての必要を与えて下さる恵み。

c 人がキリストのためになす仕事に与えられる特権を意味し、その格別な仕事を表すものに使う。私たちが身体である教会のために仕えている働きを恵みと言っている。

 

2節 「あなたがたはすでに聞いたことでしょう。」手紙の読者はパウロとその働きについて、直接見たのではなく、間接的に伝え聞いたであろう、と理解するのが自然でしょう。この手紙はある地域の諸教会への公同書簡か回状であった。

 

Ⅲ 「キリストの奥義」エペソ 3:3〜6

「先に簡単に書いた通り、この奥義は、啓示によって私に知らされたのです。それを読めば、私がキリストの奥義をどう理解しているかがよくわかるはずです。この奥義は、今は、御霊によって、キリストの聖なる使徒たちと預言者たちに啓示されていますが。前の時代には、今と同じような人々に知らされていませんでした。その奥義とは、福音により、キリスト・イエスにあって、異邦人もまた共同の相続者となり、ともに一つからだに連なり、ともに約束にあずかる者となるということです。」

「この奥義は先に簡単に書いた。」先にとは、1:9〜10、2:13〜22です。キリストの人格とその御業についてのことです。奥義は聖霊によってキリストの聖なる使徒たちと預言者たちに啓示されている。旧約聖書時代はそうでなかったが、新約聖書時代は、すべての人々にこのことが知らされた。旧約にも異邦人の救いは教えられています。しかし、今と同じようではない。今は、キリストが使徒たちに全く明らかに啓示されて「あなたがたは、行ってあらゆる国の人々を弟子としなさい」と命じておられる。ですからこの奥義は、パウロの個人的な主張ではなく、「キリストの聖なる使徒と預言者たちに啓示されたものである。」

ではその奥義とは何か。ここで繰り返し述べると次のようになると、パウロは全人類がキリストにあって達することを、三つのことばでまとめている。

1 異邦人もまた共同の相続者になる。

ユダヤ人たちの相続について異邦人は同じ権利を持つ。神の国の栄光に富んだすばらしい霊的富を受け継ぐには、どうしても、神の国の民として生まれなければなりません。つまり、信仰を通して聖霊によって生まれ変わる必要があるのです。そして新生した者はもはやユダヤ人も異邦人も区別無く、ともに神の国を継ぐ者となるのです。何も差別は無いのです。これはアブラハムを通してはっきりと示された恵みの契約のすべての益を含むものです。1:18「聖徒の受け継ぐものが、どのように栄光に富んだものか」と嘆声を上げたほどの天的な富を受けるのです。

 

2 ともに一つ体に連なり

キリストのからだの構成部分を占めます。親密に関連し、ユダヤ人の兄弟たちのように、キリストの生命を担います。手は目をいらないと言えず、目も手はいらないといえない。異邦人もユダヤ人も一つからだとなる。かしらなるキリストにつながってともによりよき生命に成長する。

 

3 ともに約束にあずかる者となる

かつては約束について異邦人2:12、死んでいたもの2:1が、今は契約の恵みの約束にすべて浴する。「共にあずかる」キリストにあってその信仰の故に、みながみな、一つ神の家族である。このような歴史的変革は、ことごとく福音によってキリスト・イエスにあってなされたのである。この根拠はローマ9:24-26「神はあわれみの器として、私たちを、ユダヤ人の中からだけでなく、異邦人の中からも召してくださったのです。それは、ホセア書でも言っておられるとおりです。“

わたしは、わが民でない者をわが民と呼び、愛さなかった者を愛する者と呼ぶ。{あなたがたは、わたしの民ではない}と、わたしが言ったその場所で、彼らは、生ける神の子どもと呼ばれる。“

 

 

結び)パウロは、この福音の宣教に生涯をささげる事を喜びとした。キリスト・イエスにあって異邦人であったわたしたちは、このようにすばらしい変革を受けたのです。彼こそ、すべての祝福の根拠であり、また鍵です。ローマ11:33-35「ああ、神の知恵と知識との富は、何と底知れず深い事でしょう。そのさばきは、何と知り尽くしがたく、その道は,何と測り知りがたいことでしょう。なぜなら、だれが主のみこころを知ったのですか。まただれが主のご計画にあずかったのですか。また、だれが、まず、主に与えて報いをうけるのですか。」

 

2016 8 7 에베소서 3:1-6 비밀이란

 

 서문) 사도 바울은 이 편지 첫부분을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3장에 들어가면서 자신을 두고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라고 다시 말하고 있습니다.

 

Ⅰ 그리스도 예수의 포로 1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이방인 사도(1:1)로써의 임무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리스도의 포로가 되어 있습니다. 그는 로마황제 가이사랴의 포로이지만 그렇게 이해하지 않고 있습니다. 복음을 위해 붙잡혀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옥중에 쇠스랑에 묶여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이곳에 「너희 이방을 위하여」라고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백성이 되기위해서 입니다. 「을 위하여」(그)는 「의 편으로, 의 쪽에」라는 전치어입니다. 이방인전도를 위해 붙잡힌(행21장) 이상으로, 이방인 전도를 위해 예수님께 붙잡혔던 것입니다. (참조: 갈라디아서2:8)

우리들에게 복음이 전해지기 위해 사도바울이, 그리고 수많은 선교사들이 묶인것입니다. 죽음의 위험을 감수해 주었습니다. 죄인까지는 되지 않았어도, 빈곤한 이질문화속에서 수많은 고통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방인을 하나님나라의 시민으로 하려는 것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방인)을 위해, 이곳의 「을 위하여」는 <그> 이에수 「에」라는 전치사. 이방인에게 도달하는∙ 갖게하는 임무(참조: 행22:21, 갈2:7)

복음을 준비하신 예수 그리스도도 헤롯왕, 로마 총독 빌라도에 묶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이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들의 구원을 위해 지금도 위험과 고통을 받고 있는 크리스챤들이 있음을 기억합시다.

그렇다고 해서 사도 바울이 자신이 받고 있는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의 포로 되었음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가 모든 것이며, 그 선교를 위해 포로가 되었습니다. 가이사랴에게서 2년간, 로마에서 2년간을 감옥에 잡혀 있습니다. 보통이라면, 불평, 불만, 하소연도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의 포로라 하며,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려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본질을 위해 곤란이나 부당한 평가, 물질적 손실을 입을 때, 우리는 자신을 희생자라고 생각하거나, 그리스도의 전사로 생각합니다. 그것은 일상생활에 있어서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전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도바울의 모범을 따릅시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훌륭한 일입니다.

 

. 2-13  실은 대단히 탈선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 편지의 중요한 내용을 시작하기 전에 다시 확인합시다. 본래는 14절을 당장에 얘기하려 했지만 1절에서 「이방인을 위하여」라고 쓰고, 그 말로 연상된 것이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이라고 적은 것입니다.

에베소에 3년간 머물렀을 때는 자신의 직무에 관하여 사도성 등을 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방인 사도로써의 직무, 사명에 대하여 논의가 일어나, 사도바울의 사도성을 의심하거나 부정하는 자들이 있음을 듣고, 자신의 직무의 재확인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가 원해서 이 무용한 논의를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반대자들의 악의와 집요함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직무를 변호하고 있는 것이다.」(칼뱅)

「하나님의 그 은혜의」 직무에 관해서 입니다. 자신이 맘대로 한 것이 아닙니다. 8절에서도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메섹을 향하던 중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곳에서 예수님께 이방인 사도로 임명받았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은혜의 경륜입니다.

 

이곳에 사도바울의 「은혜」에 관한 사용법을 간단하게 소개하겠습니다.

a 인간을 구원에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애호 우리가 얻은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의 은혜로 인한 것입니다.

b 크리스챤으로써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부여해 주시는 하나님의 애호 크리스챤으로써 지상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심신의 모든 것을 주시는 은혜.

c 인간이 그리스도를 위해 쓰임받을 특권을 의미하며, 그 각별한 일을 나타내는데 사용합니다. 우리가 지체로써 교회를 섬기기위해 하게되는 모든 활동을 은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절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편지의 독자는 사도바울과 그의 일에 대하여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전해 들었을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이 편지는 어떤 지역의 각 교회에 공동 서간이거나 회문이었습니다.

 

Ⅲ 「그리스도의 비밀에베소서3:3-6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이미란, 1:9-10, 2:13-22의 내용입니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 업적에 대한 것입니다. 비밀은 성령으로 그리스도의 성결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계시되어 있습니다. 구약시대는 그렇지 않았지만, 신약시대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것이 알려졌습니다. 구약에도 이방인의 구원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내용은 아닙니다. 지금은 그리스도가 사도들에게 모두 분명하게 계시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 비밀은 사도바울 개인의 주장이 아니라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비밀은 무엇일까요? 이곳에서 반복해서 말하자면, 사도바울은 전인류가 그리스도를 통해 도달하게 되는 것을 세가지 말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1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유대인들이 상속받는 것에 이방인들도 같은 권리를 갖게 됩니다. 하나님나라의 영광에 풍요롭고 놀라운 영적 부를 물려받기 위해서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안됩니다. 즉, 믿음을 통해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 변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다시 태어난 자는 더이상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구별없이 함께 하나님나라를 이어받는 자가 된 것입니다. 어떤 차별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을 통해 분명하게 나타난 은혜의 계약으로 모든 이익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1:18「성도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라고 탄성을 지를 정도의 엄청난 부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2 함께 지체가 되고

그리스도의 몸의 구성부분이 됩니다. 친밀함으로는 유대인의 형제처럼,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게됩니다. 손은 눈을 불필요하다고 말할 수 없으며, 눈도 손이 필요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방인도 유대인도 하나의 몸이 됩니다. 머리되신 그리스도에 함께 붙어서 선한 생명으로 성장합니다.

 

3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이전에는 약속에 있어서 이방인 2:12, 죽은자2:1이었지만, 지금은 계약의 은혜의 약속에 함께 참예합니다. 「함께 참예하다」그리스도를 통해 그 믿음으로 모두가 하나님의 가족이 됩니다. 이러한 역사적 혁명은 그리스도 예수로 인해 완성된 것입니다. 이일의 근거는 로마서9:24-26「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주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호세아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란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으리라」

 

맺음) 사도바울은 이 복음선교에 자신의 생애를 바치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로 이방인이었던 우리는 이러한 훌륭한 혁명을 받은 것입니다. 이야말로 모든 축복의 근원이며 열쇠입니다.

로마서11:33-35「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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