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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5月28日 16周年記念礼拝 説教(日本語文、韓国語文)マタイ1章18〜25節


 
2017年5月28日 マタイの福音書 1:18-25 「イエス・キリストの誕生」

序文)イエス様の系図から始まったマタイの福音書は、 BC2000年前のアブラハムにまで歴史が遡り旧約聖書に預言されていた誕生であったことを証明しようとしています。今朝の箇所では、イエス様の誕生が処女降誕であったことを証明します。マタイはこの出来事が預言者を通して言われてたことの成就であると説明し、「インマヌエル」の誕生を裏付けました。

 

工.18-19 節

イエスの母マリヤはヨセフの妻と決まっていた、と書き出しています。ヨセフとマリヤの婚約中にイエスを身籠もることが起こった。この事実をマタイ福音書もルカ福音書もはっきりと書いています。ユダヤの社会では「婚約をすることは」重大なことでした。法律的には、夫であり妻であるとして扱われました。それで婚約者が死ぬとおとめの側は「やもめ」とみられました。当然、婚約中にその貞潔を破るようなことが起こると、姦淫の罪で死罪となったのです。

ですから、19節で夫ヨセフは婚約解消を考えたときに「離縁」しようときめたのです。そのように重大な関係にあったマリヤがみごもった。二人が一緒にならないうちにです。マリヤがみごもっているということがヨセフにはっきりと分かった。ヨセフにとってギョッとする発見でした。なぜならヨセフはそれが聖霊によると知らなかったのです。もちろん自分の身にもおぼえのないことだったからです。もし二人が挙式前にはやまったことをしたとか、婚約したがサラリーもやすいし、家もないので、一緒にすめないでいるうちに女性のお腹が大きくなってあわてているということであったら、何もヨセフとマリヤがショックを覚える必要はなく、ユダヤの法律では正式な夫婦だから同居すればすむことでした。事態はそういうことでは全くなかった。

マタイは「聖霊によって」という一語で説明しようとしました。これはマリヤに加えられる不当な誹謗やしまおくそくをゆるさないかのように書かれています。直接の原因は聖霊である。「夫ヨセフは正しい人であったので、」正しいとは律法を重んじそれを遵守する実直な人」の意味です。律法はいいなづけの妻の姦通は「石で打殺す」死罪をめいじていました。しかし同時に彼は彼女をさらしものにしたくなかった。それは彼女への愛と誠実さのゆえでありました。ついにマリヤを密かに去らせようと決心しました。これは公の裁判にかけずに最小限二人の証人の前で離縁状に離縁の理由をかかずに離縁すること。これによりマリヤは許嫁の妻としての律法から解かれる。

 

Ⅱ 20-21節

ヨセフはこのことを思い廻らしていた。どれ程苦しみ、悩み、沈んでいたかしれない。しかし、神からの助けが夢の中で丁度良いときに彼にきた。20−21節「タビデの子ヨセフ」天の使は日頃大工として生活していたヨセフに、ダビデの子と呼び掛けた。これは世が世ならば、ヨセフに王位継承権があることを差しているのです。天の使いはダビデの子として生まれる救い主のおとずれを伝えようとしていた。「おそれないであなたの妻マリヤを迎えなさい。内密に去らせようとした考えを捨てて、迎え入れなさい。なぜなら、その胎に宿っているものは「聖霊による」のです。神の力によって身籠もったのです。天の位を離れて救い主として地上に来られたイエスは、マリヤを母とし、天の神を父とする神の子である。彼はダビデに約束された来るべき救い主として、ダビデの末として生まれ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それでマリヤを母とする正真正銘の一人の人間として、しかもダビデの王位継承権をもつヨセフを法律上の父とする夫婦関係の中で生まれた。しかも「処女」マリヤからである。聖霊によって清められつつ、罪の世に罪無くしてうまれた。ルカの福音書では「それゆえに生まれ出る子は聖なるものであり、神の子ととなえられるでしょう」と天使はマリヤに言ったとかかれています。組織神学者ベルコフ博士が次のように説明しています。「イエスの処女降誕はこの聖霊の超自然的活動があったからこそ可能だった。この活動は二重であった。(−)聖霊はマリヤの胎に宿ったものの有効原因であった。かくてその有効原因である男性の活動を排除した。この点は生れたかたが人的人格でなく神的人格であられ、それゆえに、その方は業の契約の当事者の一人でなく、したがってアダムの罪の咎を負いたまわぬことと完全に調和する。(二)聖霊はキリストの人性をその根底から聖化したもうた。それによって、その人性は全く罪の汚れを含まぬものでありえた。われわれは、聖霊がこのような聖化の働きをどのようになしたもうたかについては何も知らない。あたかも、それは両親からその子にどうして罪の汚れが遺伝するのかを知らないのと同じである。唯、明らかなことは、聖霊の特別豊かな聖化活動は、ただイエスの受胎出産の時だけでなく、その地上の全コースにおいても継続したのであると言うことだけだ。」

マリヤは男の子を生みます。その名を「イエス」となづけなさい。親が生まれてくる子どもにどういう名をつけるのか。いつの時代でも関心のまとです。ヨセフは男の子が生まれると前もって告げられ名前まで神が示された。「イエス」なぜ「イエス」なのか。それは「この方こそ、ご自分の民を罪から救ってくださる方です。」「イエス」とは当時のイスラエルではごくありふれた名前であった。ヘブル語では「ヨシュア」で、両親が救い主としての神を告白する意味で名付けた。意味は「エホバは救いである。」天の使いはヨセフにこの男の子によって「エホバは救いである」ということが現実に成し遂げられる、と伝えた。

この方こそ、その聖さによって「民をもろもろの罪から救う」ことができる。ご自分の民−それは神が永遠に選んでその民となしたもうた契約の民、ユダヤ人も異邦人も区別なく、信仰によるアブラハムの末たちのことです。イエスは罪人たちのために来てくださった。死と滅びのうちにある者たちのために来てくださった。わたしたちは自分を救うことはできない。私たちは救われなければならない。イエスは救いを備えられるだけではなく、ご自分で救うことができる方です。イエスという名前のもつ意味のすべてを成し遂げるためにこられた。イエスは私たちが自分を救うのを助けるためにきたのではない。自分を救うようにと勧め、励ますためにきたのではない。わたしたちを罪からその結果である死と滅びから、救うためにきてくださった。主イエスは成人してから「私がきたのは世を裁くためではなく、世を救うためである」とおっしゃった。これが福音です。

24節ヨセフは眠りから目をさますと、ただちにまじめに天使による神の命令に服して、マリヤを自分の家に迎え入れて、彼女と結婚した。これによりマリヤの胎にやどるもの、マリヤから生まれる者は法律上ヨセフの子となり、旧約聖書の預言のとおりダビデの王位継承者となった。マリヤはこの世の不当な取り扱いから保護された。

ヨセフがどうしてこのように決定的に天使の告げるところを信じ服従しえたのか、神が彼の心に備えをあたえられたからである。キリストの処女降誕は歴史的事実である。私たちはこの事実を聖霊の賜物を受けた福音書の記者の権威ある証言によって、また、同じ聖霊が私たちの内に働きかけられることによって事実として信じうけいれるのである。

 

Ⅲ.22節 「インマヌエル」

1.旧約聖書時代に、神は預言者ミカ(紀元前740年代から686年ごろまでの活躍))を通して「主はあなたに告げられた。人よ何が良いことなのか。主は何をあなたに求めておられるか。それは、ただ公義を行い、誠実を愛し、へりくだって、あなたの神とともに歩むことではないか。」(6:8)と私たちに語りかけておられます。

何がよいことか知らない時代に、何が求められているか知らない人々に、いつも神が人に求めたもうことは終始一貫して変りなく、「へりくだって神とともに歩むこと」なのです。「ともに歩む」神とともに歩むことです。人とともに歩むことに反対しているわけではありません。神とともに歩むことなしに、正しい方向へと人々とともに歩むことはできないのです。

「ともに歩む」これはただ「一緒にいる」とか、「群れと離れない」という形の上のことではない。「ともに歩む」そこに深い交わりがある。歩むこと自体が喜びである。心の交わり、人格の交わりがある。

「神とともに歩む」=人格的交わりがある。神がこの道を歩めとか、この道には進むなといわれるとき、普段に神とともに歩むことが前提になっている。このことなしにすべてのいましめを聞いてもむなしい。

さて、ともに歩みはじめるときにはきっかけがある。それは人間どうしの場合、微妙なものがある。二人が同じ方向に愛しあってともに歩みはじめるとき、皆さんの始まりはどこで、何がきっかけでしたか。

そのように「神とともに歩む」のもきっかけがある。その交わりに始まりがあります。今、生れつきのままの人間は、神から離れていて、神のご存在も知らずに独りで歩んでいる。実際は神の側から見ると、逆らっている状態である。それで、神は、わたしたちに、ご自分の方からきっかけを与えられた。それがクリスマスである。神が人のいる場に天からおりてくださった。使徒ヨハネが言っているように「ことばは人となって、私たちの間に住われた。私たちはこの方の栄光をみた。父のみもとから来られたひとり子としての栄光である。この方は恵とまことに満ちておられた。」神様は人とのあいだの平和と交わりを回復するためにおいでくださった。 天の神が、イエス・キリストをこの罪と汚れにみちた地上に降らせ、住わせられた。仮に現われたのでもなく、ちょっと立ち寄ったのでもなくて、人間の中にはいって、人となってくださることにより、すべてを味わい尽くしてくださった。このようにしてご自身の愛を私たちに示してくださった。

「わたしたちとともにいます神となってくださるために。」

人が、この神とともに歩めるようになるために、イエスを遣わされた。それで、この方の名はインマヌ工ル=神がわたしたちとともにおられる=である。イエス・キリストに従おうとして果たせないものに、すべてをゆるして導いてくださる愛の神がインマヌエルを遣わされた。人は、このイエスのもとに行き、ともなる主を自分の心に宿らせねばならない。

インマヌ工ルの主は「見よ、わたしは世の終りまで、いつもあなたがたとともにいるのである。」(マタイ28:20)といわれた。わたしたちが礼拝するとき、学ぶとき喜びのとき、悲しみのとき、健やかなとき、病めるとき、手術の床にも、回復の日々もともにいますのである。ご自身の血を流して痛み、苦しみを味わわれた主、誤解にも、あざけりにもともにいます主、十字架を負って歩まれた主は、わたしたちのどんな状態にも対応してくださる、ともにいます主であります。もちろん勝利にもともにおられる。一度死なれた主、墓に葬られた主は、わたしたちの死と葬りにもともにおられる。そして、復活の主はわたしたちを栄光の御国にともなってくださるのです。インヌエルの主こそ、すべてのすべて! ヨハネの黙示録21章3−4節

「見よ。神の幕屋が人とともにある。神は彼らとともに住み、彼らはその民となる。また、神ご自身が彼らとともにおられて、彼らの目の涙をすっかりぬぐい取ってくださる。もはや死もなく、悲しみ、叫び、苦しみもない。なぜなら、以前のものが、もはや過ぎ去ったからである。」

 

結び)イエスの誕生にさいして神はヨセフの信仰、従順、決断、勇気、思慮深さを供えておかれた。私たちの罪を救うために世に下られた主イエスを、ヨセフのような心で受け入れる者はだれでしょうか。あなたがその一人であることをいのります。

 

2017 5 28 마태복음1:18-25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서문) 예수님의 계보로 시작된 마태복음은 B.C. 2000년 전 아브라함까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 구약성경에 예언된 탄생에 관한 일을 증명하려 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의 말씀은 예수님의 탄생이 동정녀로부터의 탄생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이 일은 선지자를 통해 예언되었고, 성취되었으며, 「임마누엘」의 탄생임을 증거했습니다.

 

Ⅰ.18-19

예수의 모친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하고, 라고 쓰여 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의 약혼 기간중에 예수님이 잉태된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실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사회에서는 「약혼」은 대단히 중대한 일이었습니다. 약혼은 법률상으로 남편과 아내로 취급받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약혼 기간중에 약혼자가 죽게되면 그 배우자는 「과부」의 대우를 받습니다. 당연히, 약혼중에 순결을 깨는 일이 일어나면 간음죄로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19절에 남편 요셉이 약혼해소를 생각할 때, 「이혼」하려 정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중대한 관계의 마리아가 임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두사람이 함께 지내기 전에 임신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요셉은 분명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요셉에게 있어서 엄청나게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요셉은 이것이 성령에 의한 것임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신이 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만일 두사람이 결혼식 전에 함께 지냈다면, 함께 살 집이 마련되지 못한 동안에 여성의 배가 점점 커지게 되는 일이 있더라도 그것은 그다지 충격적인 일도 아니고, 유대 법률상으로는 정식의 부부이므로 함께 살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셉과 마리아에게 일어난 일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마태는 「성령으로」 라는 한마디로 설명하려 했습니다. 이것은 마리아에게 안겨질 부당한 비방이나 억측을 제거하기위해 쓰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수태의 직접 원인은 성령입니다.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의로운이란 「율법을 중히 여기고, 그것을 준수하는 사람」 이라는 의미입니다. 율법에는 정혼한 여자의 간통은 「돌로 쳐서 죽인다」 사형을 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그녀의 일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마리아에 대한 사랑과 성실함에 인한 것이었습니다. 결국에 요셉은 마리아와의 정혼을 가만히 끊으려 결심했습니다. 이것은 공적 심판에 내걸지 않고 최소한 두사람의 증인 앞에서 이혼서에 이혼의 이유를 쓰지 않고 이혼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이것으로 마리아는 약혼한 여자로써 지켜야 할 율법으로부터 면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Ⅱ 20-21

요셉은 이 일을 몇 번이나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고민하고, 낙담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움이 가장 좋은 때, 꿈 속에 나타냈습니다. 20-21절 「다윗의 자손 요셉아」 천사는 목수였던 요셉에게 다윗의 자손이라 불렀습니다. 만일 그 당시의 이스라엘이 다른 세상이었다면 요셉은 왕위계승권을 가지고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천사는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날 구세주의 탄생을 전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으려던 생각을 버리고 마리아를 데려오라, 왜냐하면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잉태된 것이었습니다. 하늘 보좌를 떠나 구세주로써 지상에 오실 예수님은 마리아를 어머니로써, 하나님을 아버지로 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는 다윗에게 약속하신 다시오실 구세주로써, 다윗의 자손으로써 태어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이것으로 마리아를 어머니로 하는 한사람의 인간으로써, 그것도 다윗의 왕위계승권을 가진 요셉을 법률상 아버지로 한 부부관계 사이에 태어나셨습니다. 그것도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입니다. 성령으로 정결하게 죄없이 태어나셨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라고 천사가 마리아에게 말했다고 쓰여 있습니다. 조직신학자 벨코프박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동정녀 강림은 이 성령의 초자연적 활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활동은 이중의 것이었다. (1) 성령은 마리아에게 잉태된 것의 유효원인이었다. 본래의 유효원인이 되는 남성의 활동을 배제시켰다. 이 점은 태어난 방법이 인간적 인격이 아닌, 신적 인격이 되며, 더욱이 그 분은 계약의 당사자 중 한 사람이 아니라, 즉 아담의 죄를 물려받지 않고, 완전하게 조화되고 있다.

(2) 성령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그 근본부터 성화시켰다. 이것으로 그 인성은 그 어떤 죄의 더러움을 포함하고 있지 않은 것이었다. 우리는 성령께서 이러한 성화에 관해 일하시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부모로부터 자녀에게 어떻게 해서 죄의 더러움이 유전되는지 조차 알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유일하게 분명한 것은 성령의 특별하고 넘친 성화활동이 그저 예수의 수태출산의 경우만이 아니라, 그 지상의 모든 일에 있어서도 계속된 것임을 말할 뿐이다.」

 

마리아는 남자아이를 낳습니다. 그 이름을 「예수」라 합니다. 부모는 장차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어떻게 지을지, 이것은 어떤 시대에도 대단한 관심을 갖는 일입니다. 요셉은 남자아이가 태어날 것을 이미 전해 들었고 이름까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어째서 「예수」일까요? 그것은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예수」란 당시 이스라엘에는 아주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히브리어로 「여수아」로써, 부모가 구세주로써의 하나님을 고백하는 의미로 붙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것의 의미는 「여호와는 구원이라」 라는 것이 실제로 성취되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분이야말로 그 성결함으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분의 백성-그것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선택하셔서 그

백성으로 정하신 계약의 백성, 유대인도 이방인도 구별없이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자들을 말합니다. 예수는 죄인들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죽음과 멸망속에 있는 자들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지 않으면 안됩니다.

예수님은 구원을 준비해주시는 것만 아니라, 그 분 자신께서 구원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의미 모두를 성취하기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자신을 구하는 것을 돕기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구하도록 권하고, 격려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을 죄로부터 그 결과인 죽음과 멸망으로부터 구해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주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4절 요셉은 잠에서 깨어나자 즉시 천사를 통한 하나님의 명령

순종해서 마리아를 데려와 결혼했습니다. 이것으로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마리아에게서 태어날 자는 율법상 요셉의 아들이 되어, 구약성경의

예언대로 다윗의 왕위계승자가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이 세상의 부당한

취급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어째서 이렇게 결정적으로 천사의 말을 믿고 순종할 수 있었을까?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준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동정녀 강림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성령의 은사로 받아 복음서의 기자의 권위있는 증언으로, 또한 같은 성령께서 우리들에게도 일하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지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Ⅲ.22 임마누엘

 1.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선지자 미가(기원전740년부터 686년경 까지 활동)를 통해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 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우리들에게 말씀해 오셨습니다.

무엇이 선한 것인지 모르던 시대, 무엇을 구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일관되게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구하도록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을 원하셨습니다. 「함께 행하는 것」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과 함께 걸어가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걸어가지 않고는 바른 방향으로 사람과 함께 걸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함께 행하는 것」이것은 그저 「같이 있는 것」이나, 「무리와 떨어지지 않는 것」이라는 형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행하는 것」 그 곳에는 깊은 교제가 있습니다. 행하는 것 자체가 기쁨이 됩니다. 마음으로부터의 교제, 인격적인 교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인격적 교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길을 걷지 않도록 말씀하시거나, 이 길을 걷도록 말씀하실 때는 일반적으로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전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없이는 모든 계명을 지킨다 할찌라도 헛된 것이 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함께 행하는 것에는 계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사이의 경우, 미묘한 것이 있습니다. 두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사랑하여 걸어가기 시작할 때, 대부분의 시작은 어디에서 무엇이 계기가 될까요?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에도 계기가 있습니다. 그 교제의 시작이 있습니다. 지금 막 태어난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있어서, 하나님의 존재로 모르는 채 혼자서 걸어갑니다. 하나님쪽에서 본다면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분 쪽에서 먼저 기회를 주십니다. 그것이 크리스마스 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 하늘에서 내려와 주셨습니다. 요한이 말한 것처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나님은 사람과의 사이에 평화와 교제를 회복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와 주셨습니다. 하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죄와 더러움에 가득찬 지상에 보내셔서, 살게하셨습니다. 잠시 내려오신 것이 아니라, 잠깐 들르신 것이 아니라, 인간들 속에 계시며, 사람이 되어주심으로 모든 것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분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 되어주시기 위해」

사람이 이 하나님과 함께 행할 수 있도록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분의 이름은 임마누엘=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는 자들에게 모든 용서와 인도로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이 임마누엘을 보내주셨습니다. 인간은 이 예수님 앞에 나아가 함께 행하시는 주님을 자신의 마음속에 거하시도록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임마누엘의 주님은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복음28:2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예배할 때, 말씀을 공부할 때, 기뻐할 때, 슬퍼할 때, 건강할 때, 병들 때, 병상에 누워있을 때에도, 회복의 날들에도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의 피를 흘려 아픔과 고통을 겪으신 주님, 오해도, 비웃음도 함께 해 주시는 주님,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시는 주님, 우리들의 어떤 상태에도 대응해주시고 함께 있어주시는 주님이십니다. 물론 승리의 때에도 함께 하십니다. 한번 죽으신 주님, 무덤에 장사지내신 주님은 우리들의 죽음과 장사지낼 때에도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부활의 주님은 우리들과 영광의 나라에서도 함께 해 주십니다. 임마누엘의 주님이야말로 모든 것의 모든 것 되시는 분이십니다. 요한계시록21장3-4절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게 서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맺음) 예수님의 탄생에 있어서 하나님은 요셉의 믿음, 순종, 결단, 용기, 사려 깊음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우리들의 죄를 구하기 위해 세상에 내려오신 주 예수님을 요셉과 같은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는 누구입니까? 여러분이 그 중 한사람일 것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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