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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10月1日 礼拝 説教(日本語文、韓国語訳)


 
2017年10月1日 「義に飢え渇く者の幸い」 マタ5:6 ガラテヤ2:15-16
 

序文)「義に飢え渇く者」について主イエス様は「幸いだなあ」と話されました。
 

このことを聞いていた群衆の先祖たちは、出エジプトの後の荒野の40年間に「飢えること、渇くこと」を耐えがたいほどに経験しました。飢え渇きが原因で、イスラエルは神につぶやき続けて、モーセは神樣に訴え、苦い水が飲める水に変化し、毎日マナが天から降り、突然ウズラの群が宿営に飛んできて民はむさぼり食して、神の遣わされた天使たちにより裁かれました。

いつの時代でも、どのような環境の中でも、人間の生存意欲を著しく阻害するのが飢え渇きです。実に耐えがたい苦しみです。特に戦乱は一番人々を悲惨な目に遭わせます。難民が行く先々で直面する飢え渇きが、幼子から順番に飢餓のために死に追いやられています。国際連合の食料農業機関(FAO)の発表によると世界人口の9人に一人8億500万人が飢餓の中にあります。サハラ砂漠以南では4人に一人が飢餓の中にいます。日本国際飢餓対策機構(Japan International Food for the Hungry: 略してJIFH)は、飢餓・貧困と闘いながら懸命に生きようとする人々に協力し、飢餓のない世界の実現のために「ハンガーゼロ」運動を推進して、世界にある物心両面の飢餓撲滅に取り組んでいます。日本国際飢餓対策機構は3つのパートナー団体と協力して、緊急食料パックや小麦粉の配給、予防接種などの緊急援助活動を行います。毎月活動状況がニュースレターとして、掲示板に掲載しています。救済活動は常に継続的に必要です。私たち日本という国に住んでいる者たちも世界大戦の敗戦後経験したところです。

飢え渇きは、満たされるまで続くもので、満たされなければ死を覚悟しなければならない。つかのまのものでなく、生きる限り続く、深く、激しい必要なのです。放蕩息子は、ブタ飼いになって、飢えのあまり、ブタの餌であるイナゴ豆を食べて満たそうとしました。そして飢え死にを予想したとき、本心に立ち返って父親のもとに帰りました。飢えと渇きが重なると、人は死にものぐるいになります。人間の心の欲望の中でも最も強力ものです。

飢えは食べ物だけとはかぎりません。渇きも水の渇きだけとはかぎりません。人間のさまざまな必要、欲望についても言えます。知識に、友情に、愛に、名誉にさまざまな必要と、欲望に対して飢えます、渇きます。

 

Ⅰ 主イエスさまが 幸いだなあ!と言われて取り上げられた飢え渇きは、「義」についてだったのです。正しい人になれるようにとか、あるいわ正義が守られる生活がなされたらよいのにという願いは、誰もが心の中に持っている。クリスチャンを迫害し多くの暴挙を働いたローマ皇帝ネロは死刑の許可のサインする時「こんなことなら、俺は文字を習わなかった方がよかった」と独り言を言ってため息をついたそうです。それならサインをしなければ良かったのにと思うけれど、そこが罠でのがれられない。罪の絆にがんじがらめにされた姿がここにあります。凶暴な手段で人類を恐怖に追い込んだ人も、その反面、義にたいするうづきがあったのです。

ただ、この義にたいする飢えと渇きを、本当にどれほど渇望しているかによって悪い人と良い人の区分が分かれるようです。愛に飢え渇いていて、その解決のために昼も夜も眠られないで悩んでいる人々が大勢います。地位とか権力とかに対する飢え渇きにより、日常的にいろいろと策を企てる者がいます。金銭にたいする飢え渇きが、地の果てまで人々を駆け巡らせています。しかし、本心から義のために飢え渇いている人々がはたしてどれほどいるでしょうか。聖書の神樣の前で義、人々との関係の中で義、社会での義、を実現させるために飢え渇いている人がどれほどいるでしょうか。残念ながら罪深い私たちは、義に飢え渇いてはいません。

 

Ⅱ 主イエスさまが何よりも第一のことを第一として人間が求めなければならない義は、神の前での義であることをここに示して、そうしている人は幸いだなあ、と祝福しておられるのです。すでに満たされていると思っている人の義とは違うのです。例えば、パリサイ人の義 自己義認 律法による義ピリピ3:6パウロがサウロ時代に求めていた義。飢え渇いているのでなく、義に満ちていると自負していた義、これとは違うのです。

 

『すべての人は、罪を犯したので、神からの栄誉を受けることができず、ただ、神の恵みにより、キリスト・イエスによる贖いのゆえに、価なしに義と認められるのです』(ローマ人ヘの手紙3章23、24節)。「不敬虔な者を義と認めてくださる方を信じるなら、その信仰が義とみなされるのです」(ローマ人ヘの手紙4章5節)。『しかし、人は律法の行ないによっては義と認められず、ただキリスト・イエスを信じる信仰によって義と認められる、ということを知ったからこそ、私たちもキリスト・イエスを信じたのです。これは、律法の行ないによってではなく、キリストを信じる信仰によって義と認められるためです。なぜなら、律法の行ないによって義と認められる者は、ひとりもいないからです』(ガラテヤ人への手紙2章16節)。

 

イエス様が言われた義は、神の前に飢え渇いて求めている義のことです。

神が人間を創造し、ご自身のみ姿に似せてつくられたとき、義なる存在としてつくられたのです。このことは「神様との正しい関係にいる者」としてつくられたからです。

ところが人間はこの神様との正しい関係を保つことを放棄して、この関係を嫌い、逆らって立つ者となったのでした。「ローマ1章18-32」にあるとおりです。

このような生き方は、私たちが本当のいのちに生きる歩みとは違い、生きているとは名ばかりで、本当は死んでいる(エペソ2:1)歩みなのでした。

義に飢え渇いている人とは、このことに気付いて神様との本来の正しい関係に立ち立ち戻りたいと願っている人のことなのです。いわば、罪と反逆が自分を神から引き離していることを知っている人、そして、再び神との義の交わりに立ち返らせていただきたいと切望している人です。さらに、そのように願っても、どうしても自分をがんじがらめにしている罪の力があって、自分で制御できなくなっていることに気付いて、そのちからから解放されたいと願っている人です。「私には、自分のしていることがわかりません。私は自分がしたいと思うことをしているのではなく、自分が憎むことを行っているからです」(ローマ7章15節)。「私は、自分でしたいと思う善を行わないないで、かえって、したくない悪を行っています」(19節)。

聖書の言葉の光に照らして、自分の生活を検討する人は、自分が罪の力のもとにあり、時には、自分が罪を好んでいる、罪を犯したがっているという心もあることを発見します。悪いことだと分かっていながら、なお、罪を慕う。これは罪の欲望です。そこから逃れたい人、これが義に飢え渇いている人です。

 

Ⅲ そのような人は幸いです。祝福されるべき人です。その人は満ち足りるからです。義に飢え渇く人、神との正しい関係が無ければ、生きているとは言っても死んだも同然と気付く人は、本当のいのちを求めて、どうしても満たされるように義を求める。その人は祝福されます。

その人の心に新しいいのちが芽生え始め、働き、成長しているからです。義に飢え渇く人には義の糧が与えられます。イエス・キリストは言われた。「わたしがいのちのパンです。わたしに来るものは、決して飢える事がなく、私を信じる者はどんなときでも決して渇くことがありません」(ヨハネ6章35節)。

主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る者は、義を得て満たされるのです。不義を離れて、その力から解放され、心の中に平安な新しいいのち、力をうけます。それが私に必要なのですと、祈ることにつきます。イエス・キリストが満たして下さるのです。

「こういうわけで、今は、キリスト・イエスにある者が罪に定められることは決してありません。なぜなら、キリスト・イエスにある、いのちの御霊の原理が、罪と死の原理から、あなたを解放したからです」(ローマ8章1−2節)。「すなわち、私たちの主イエス・キリストを死者の中からよみがえらせ方を信じる私たちも、その信仰を義とみなされるのです。主イエス・キリストは、私たちの罪ために死に渡され、私たちが義と認められるために、よみがえられたからです。ですから、信仰によって義と認められた私たちは、私たちの主イエス・キリストによって、神との平和を持っています。(4章24-25節、5章1節)。

キリストが私の不義を取り除いてくださった。私たちのつみのために十字架の上で身代わりとして死を遂げてくださった。このことを受け入れる者は、直ちに神の前で義と認められます。

 

そして、神は義に飢え渇いている者を満たし続けてくださるのです。義と認めた者に相応しい生活をするように、一人一人の心の中に神の助け主聖霊を送って働き続けられます。日常生活において義の力を身をもって現してゆくことを求める者に、その力を与えられます。聖霊は、信じる者の中に入り、働き、神に喜ばれることをしたいと願いを起こさせ、それを実現に至らせます。

 

結び)このような、歩みはキリストを信じてすべての人が欠けなく、しみなく、しわなく、神のみ前に立つ日がくるとき完成するのです。

 

「しかし、私たちは、神の約束に従って、正義の住む新しい天と新しい地を待ち望んでいます。そういうわけで、愛する人たち、このようなことを待ち望んでいるあなたがたですから、しみも傷もない者として、平安をもって御前にでられるように、励みなさい」(第二ペテロ3章13-14節)。

 

2017 10 1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5 6 갈라디아서2:15-16

 

서문)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 대하여 주 예수님은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던 군중의 선조들은 출애굽을 한 후 광야에서 40년간 「굶주림과 갈증」을 견디기 힘들 정도로 경험했습니다. 그 주리고 목마름이 원인이 되어 이스라엘은 하나님에 대한 불평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에 모세는 하나님께 요청했으며, 하나님은 쓴 물이 마실 수 있는 물로 변하고, 매일매일 만나가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갑자기 메추리떼가 날아와 백성들은 마음껏 먹게 되었지만,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들로부터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떤 시대에도 이러한 환경속에 인간의 생존욕구를 저해하는 것이 주리고 목마름입니다. 실제로 견디기 어려운 괴로움이기도 합니다. 특히 전란때에는 사람들이 가장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난민들이 가는 곳마다 직면하게 되는 주림과 목마름은 어린아이부터 먼저 목숨을 읽어버리게 되곤 합니다. 국제연합의 식료농업기관(FAO)의 발표에 의하면 세계인구 9명중 한 명 꼴의 8억 500만명의 사람이 기아상태에 있다고 합니다. 그 중 사하라사막의 남부지역은 4명중 한 명이 기아상태에 있다고 합니다. 일본국제기아대책기관(Japan International Food for the Hungry: 생략해서 JIFH)는, 기아, 빈곤과 빠우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협력하고, 기아없는 세계를 실현하기 위해 「방카 제로」운동을 추진하며, 물심양면으로 기아제한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본국제기아대책기관은 3가지 파트너 단체와 엽력하여, 긴금식량 팩이나 밀가루 배급, 예방접종 등의 긴급원조활동 하고 있습니다. 매월 활동현황이 뉴스레터로 게시판에 게제되고 있습니다. 구제활동은 언제나 계속적으로 필요합니다. 우리 일본이라는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세계대전 참패 후 경험한 일들 입니다.

주리고 목마름은 만족될 때까지 계속 되는 것으로, 채워지지 못하면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잠시동안이 아닌, 살아있는 한 계속되고, 깊으며, 격하게 필요한 것입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탕자가 돼지치기가 되어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돼지의 주엄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굶주려 죽게 될지 모르는 자신을 깨닫고, 아버지에게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주리고 목마름이 계속되면, 사람은 죽은 사람과 같게 됩니다. 인간의 마음속 욕망도 이와같이 강력합니다.

주림은 먹는 것만이 아닙니다. 목마름도 물 만이 아닙니다. 인간의 수많은 필요, 욕망도 이와 같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식에, 우정에, 사랑에, 명예에 대한 필요와 욕망으로 주리거나 목말라 합니다.

 

  예수님이 복이 있나니, 라고 말씀하시며 언급하신 주리고 목마름은 「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나, 정의가 보호받는 생활을 보내도록 원하는 것은 누구나 마음속에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스챤을 박해하며, 수많은 폭권을 휘두른 로마 황제 네로는 사형 허가의 사인을 할 때, 「이럴바엔 문자를 배우지 않는 것이 좋았다」라며 혼잦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사인을 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덫으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었습니다. 죄에 둘러싸여 움직일 수 없게 된 모습이 이곳에 있습니다. 폭력적 수단으로 인류를 공포에 싸이게 한 사람도, 반면, 의에 대한 괴로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의에 대한 주림과 목마름을 진심으로 얼만큼 갈망하는 가에 따라서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이 구분되는 것 같습니다. 사랑에 주리고 목말라, 그 해결을 위해 낮이나 밤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위나 권력에 대한 주림과 목마름으로 인해 언제나 방법을 궁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금전에 대한 주림과 목마름이 땅 끝까지 헤메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요? 성경의 하나님 앞에 의, 사람들 관계속의 의, 사회속에서의 의를 실현하시 위해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유감스럽지만 우리 죄인들은 의에 주리고 목마르지 않고 있습니다.

 

Ⅱ 주 예수님이 무엇보다도 제1의 일을 1일로써 인간이 구하지 않으면 안되는 의를 이곳에 알려주시고, 그렇게 하고 있는 사람은 복이 있는 자라고 축복하고 계십니다. 이미 채워짐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의와는 다른 것입니다. 예를 들면, 바리새인의 의, 자기의인, 율법을 통한 의 빌립보서3:6 사도바울이 사울이었을 때 구하던 의. 주리고 목마른 것이 아니라, 의에 가득차 있다고 자부하는 의, 이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로마서3장23-24절

「일을 아니할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로마서4장5절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라디아서2장 16절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는 하나님 앞에 주리고 목마름을 구하는 의 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 분을 닮도록 만드셨을 때, 의로운 존재로써 만드신 것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있는 자」로써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포기하고, 이 관계를 싫어하고, 거역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로마서1장18-32절」에 쓰여있는 대로 입니다.

이러한 삶은 우리가 참된 생명으로 살아가는 삶과는 전혀 다른, 살아있지만 진실로 죽어있는 (에베소서2:1) 삶인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란, 이것을 깨닫고, 하나님과 본래의 올바른 관계로 돌아가고자 원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죄와 반역이 자신을 하나님으로부터 떼어놓고 있음을 알고 있는 사람, 그리고, 다시 한 번 하나님과 의의 교제에 돌아가도록 원하는 사람입니다. 더욱이 마음으로는 원하지만 자신을 두루고 있는 죄의 능력으로 자신을 제어 할 수 없는 것을 깨닫고, 그 능력으로부터 해방되도록 원하는 사람입니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로마서7장15절) 「내가 원하는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도다」(19절)

성경 말씀의 빛에 비추어 자신의 생활을 검토하는 사람은 자신이 죄의 능력 하에 있으며, 때로는 자신이 죄를 기뻐하고 있으며, 죄를 범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발견합니다. 악한 일임을 알고 있으면서, 더욱 죄를 원합니다. 이것이 죄의 욕망입니다 이곳으로부터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 그것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입니다.

 

Ⅲ 이러한 사람에게는 복이 있습니다. 축복받을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만족하게 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없으면, 목숨은 붙어있지만 죽어마땅한 자라고 깨닫는 자는, 진심으로 생명을 구하고, 어떻게 해서는 채워지도록 의를 구합니다. 그 사람은 축복받게 됩니다.

그 사람의 마음에 새로운 생명이 싹트기 시작하여, 움직이고, 성장해가기 때문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의의 양식을 얻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6장35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의를 얻어 만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불의를 떠나, 그 지배로부터 해방되고, 마음속에 평안한 새로운 생명, 능력을 받게됩니다. 그것이 나에게 필요하다고 기도하는 일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로마서8장1-2절)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로마서 4장24-25절, 5장 1절)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불의를 사라지도록 해 주셨습니다. 우리들의 죄로 인해 십자가에서 목마르시고, 대신해서 죽어주셨습니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자는 동시에 하나님 앞에 의로 인정받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를 채워주시고 계십니다. 의라 인정받은 자에게 어울리는 삶을 살도록, 한사람한사람 마음속에 도우시는 분 성령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주셔서 일하시고 계십니다. 일상생활에 있어서 의의 능력을 지니고, 나타내 가는 것을 구하는 자에게 그 능력을 주십니다. 성령은 믿는자들 속에 들어가셔서 일하시고, 하나님을 기뻐하시게 하고 깊은 마음을 불러일으키시며, 그것을 실현시켜 주십니다.

 

맺음) 이러한 삶은 그리스도를 믿으면 모든 사람들이 흠없이, 주름과 상처없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날이 오면 완성되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3장13-14절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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