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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3月26日 礼拝 説教(日本語文、韓国語文)エペソ書 6章4節


 
2017年3月26日 エペソ書 6:4「父たちよ」

序文)「父たちよ」 これは両親の代表として言われている。子どもについて神が両親に与えられた責任、義務が示されている。親に神が与えられた責任と義務をはたすときに、子どもは自ら親を敬い、従うものとなる。

Ⅰ 両親は子どもを育てる権威を神から託されている。

1 この点を知るために、次の聖句から学びを始めます。「天上と地上で家族と呼ばれるすべてのものの名の元ある父の前に祈ります」(エペソ3:15)。「あなたがたの父はただひとり、すなわち天にいます父だけだからです」(マタイ23:9)。これらがはっきりと教えていることは、天の神だけが唯一の本来の、真の父であるということです。天の父は全被造物の創造者であり、父です。また選民イスラエルの父でもあり、神の霊的子どもたちの父、聖徒たちの父でもあります。

家族とはもともと「父から出た者たち」という意味を含んだことばです。私たちは、天の父の被造物であるとともに、信仰によって聖霊のお働きを受けて新生した神の子たちであります。神の家族と言われているとおりです。信仰の家族かどうかは別にしても、地上に存在する家族は、唯一、本来の真の父である神を反映するもので、特に父親は、その託されたところに従って、神の父性を映す存在です。両親は自分たちの歩みを通して天の父を子どもたちに見せる代理人であり、神からの委任、命令のもとに子供を育成しているのです。ですから、両親はただ子どもたちに食物、着物を与えるだけの養育者であってはいけないのです。道徳的に誤らないように見守る監督者だけであってはならないのです。神の代理人として神を子供に示す者なのです。そして神のみが真の父であり、真の教師であり、養育係であることを写し出すのです。ですから神が人間に父たらしめているのは、神の恵みであり、父であることに意味と尊厳を与え、家族が父を尊敬するようにと召しておられるのです。

 

2 クリスチャンの親は、このことについて自由にしてよいのではなく、「主の教育と訓戒によって育てる。」「これをあなたのこどもたちに良く教え込みなさい」(申命記6:1-9)と命令を受けているのです。これはこどもを神の視点で見て、育てよといわれているのです。

イエス・キリストによる信仰の民、アブラハムへの民として、親は子どもを神よりも契約の子どもとして教え育て、神をあらわし、信じるようにと働かねばならない。アブラハムは神の契約により、子供たちに神に従う事を主張して、契約のしるしである割礼を受けさせた。子どもイサクはどういうことかわからないが、そうすることによって神への約束をアブラハムは守った。子どもの親として、正しく、訓練し、指導することは責任である。子供が長じてその意味を説明し、神への信仰を訓練し、指導したのでした。

モーセは異邦人エテロの娘チッポラを妻にしたとき、その子らに契約の民としての割礼を施さなかった。エジプトに向かう途上、主の使いがモーセを殺そうとした(出エジプト4:24-26)。割礼を二人の子どもに施さなかったからでした。チッポラは大急ぎで息子たちに割礼を施したので、モーセは助かった。自分の子どもたちに神の約束を守らせること、親も守ることの重要さがここに教えられている。

神の民としての親は、神の命令にたいして自由ではなく、従順をもって神の契約を子にしめしつづける責任がある。

 

Ⅱ 両親は、子どもを育てるにあたって、「愛」を示さねばならない。

1 神から託された権威のもとに、親は神を示す存在として子供を育てますが、このとき愛をぬきにした子育てをすると失敗します。神が親の賜った愛は本能的なものばかりでなく、特に信仰の親の心には、イエス・キリストの犠牲の愛が注ぎ込まれています。神の愛は信仰者に間違いなく宿っています。ですから信仰の親は子育てにさいして「愛」を増し加えてくださいと祈り求めてゆ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の上で育てのわざを続けなければなりません。愛なしの教育は命令を出すだけであって、単なる命令は教育を行わない。それは人間を法律の抜け穴をさがし利用する小賢しい者とするが、良き人格、信頼するにたる人格を形成することはない。

 

2「子どもを怒らせたりしないで、」「彼らを気落ちさせないため」(コロサイ3:21)。

「怒らせる」。なぜ。親が一つの正しいものさしを使わずに、気分屋で、その時、その時の思いつき等で子どもを叱る時に、子どもは怒ります。親が自分の従わねばならない「主の教育と訓戒に」よって教育する時に、子は従います。それは愛のこもったものである。子どもを気落ちさせ、失望させ、落胆させることは教育上、もっともへたくそで失敗させる方法である。子どもはいじけて性格がゆがむ。主は愛と信頼とをこめて全人格をかけて教育された。そのとき普通は心を開きそうもない人々が、心を開き、信仰を持ち、新しい人に生まれ変わった。弟子達、サマリヤの女性、罪深い女、取税人のかしらザアカイ、ツァラアトの病人、などなど皆そうである。そして、わたしたちにも主の愛と信頼は寄せられている。主は十字架上で血をながし、死に、葬られ、復活してくださいました。それによって大きな愛を私たちに注ぎ、そこまでして救う者として信頼を寄せ、今も導いておられるのです。

親の権威は神の権威を現すが、それは同時に神の愛をともなっているのです。親は愛をそえて子どもを育てねばならない。親の権威が子どもの意識において、親の愛から引き離されると、子どもが親に対して、おぼえる愛から切り離されてしまうや否や、その権威は初期の目的を果たさなくなりはじめる。両親の権威ぬきの愛はあまやかし、むら気によって、子どもの思うままの要求を認める生活に陥る。神を敬う道からは離れ去るのです。親は神の契約の関係、すなわち、神が私たちの神であり、私たちが神の民であるという関係において、その権威と愛と責任を一つの事として受けている。

 

Ⅲ 両親が子どもを教育、訓戒するとき、神の託された権威と愛と委任を統一ある者として用いることが大切になります。

「主の教育と訓戒」この違いは何か。

教育(ギリシャ語パイディア)=行動による訓育、薫陶、訓練と訳しても良いことばである。矯正とか、こらしめの意味をもっており、自己を抑制すること、役だつように修行すること、過失は正直に告白することなどをしつけるという意味である。

訓戒(ギリシャ語ヌーセシア)=ことばによる訓練、はげましたり、忠告したり、叱責したりの言葉によるしつけをさす。

いずれも「主の」とある。これは自分を神より勝っていると思い上がる人間、子どもたちを、そうではないよ、神の前には、どうかと訓育する事を求めています。このようなしつけは何よりもまず、親が日々の態度において、注意しなければならない。

神の契約の子どもは、契約にかなった道で教育されるべきである。いつも契約の子、神の民の子どもとして、見なされていなければならない。そして子どもは、かつて自分を愛しておられるキリストの愛を示し、他方、親自身もまた、神を愛さねばならない。罪のゆるしを求め、救いをうける者でなければならない。その上で、しつける行動やことばであれ、子どもにガイダンスを与える。

しつけは抑制することや、手綱をかけることと関係しているが、これは消極的な意味のものではない。正しい歩みに進み行かせるもので目的に到達する手段である。この場合、子どもの自由と言う事をはき違えてはならない。子どもはあらゆる事から自由なのではない。魚が自由であるのは、水の中で泳ぐときだけである。水に縛られている。鳥が飛ぶのは空間があるときだけである。クリスチャンの子どもたちは契約の民として、神を信じる者としての行動の中で自由がある。神を信じないで滅びるのは自由というわけはない。神に創造された人間の本性に縛られているときに自由である。本性を無視して自由はない。神を信じることにより被造物としての本来の自由があることを積極的に教えなければならない。また社会生活もこどもにとっては、本性上、欠く事のできないきずなである。さまざまな人間関係の中で子どもが調和的に生きてゆくとき幸福を感じる。

しつけはこの点で家庭にはじまり社会生活の諸々の関係にふさわしい仕方で生活できるように配慮してゆき、共同体のメンバーであること、ことに主のみからだのメンバーである事を明らかにしてゆく。契約の子どもを育てる責任は、その成長に応じて、なぜ、そう親が命じるのかをみことばから理解させ、自発的に神の愛に応答してゆくように育て、自らも歩むことによってはたされます。

教会学校教育の重要さは、通わせても通わせなくてもよいのではなく、主の命令の一つとして自発的に担い参加し、参加させねばならない。

 

結び)神を畏れ、その愛の戒めを守る子どもに育てましょう。

 

2017 3 26   에베소서6:4  아비들아

 

서문) 「아비들아」 이것은 부모를 대표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맡기신 책임, 의무가 나와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주신 책임과 의무를 다할 때, 자녀들은 마음으로부터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게 됩니다.

 Ⅰ 부모는 자녀를 교육하는 권위를 하나님으로부터 위탁받고 있습니다.

 이점 을 이해하는데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배우겠습니다.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에베소서3:15)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마태복음23:9) 이 말씀에서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은, 하늘 아버지만이 본래의 유일한 아버지이신 것입니다. 하늘 아버지는 모든 피조물의 창조주시며, 아버지입니다. 또한 선민 이스라엘의 아버지시며, 영적 자녀들의 아버지, 성도들의 아버지이시기도 합니다.

본래 가족이란, 「아버지로부터 나온 자들」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 아버지의 피조물임과 동시에, 성령의 도움으로 믿음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이라 불리우는 것입니다. 지상의 가족은, 본래의 참된 아버지되신 하나님을 유일하게 반영하고 있으며, 특별히 아버지는 그 위탁받은 것을 따라, 하나님의 부성을 반영하고 있는 존재입니다. 부모는 그들의 삶을 통해 자녀들에게 하늘 아버지를 보이는 대리인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위탁, 명령을 근거로 자녀를 육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들에게 그저 음식, 입을 옷을 제공하는 양육자이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지키는 감독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써 하나님을 자녀들에게 보이는 자 인 것입니다. 그러므로써 하나님만이 참된 아버지이며, 참된 교사며, 양육자인 것을 반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아버지로써의 의미와 존엄을 부여하셔서 가족이 아버지를 존경하도록 권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크리스챤 부모는 자녀교육에 있어서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신명기 6:1-9)라는 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녀를 하나님의 시점으로 보고 양육하도록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의 백성, 아브라함의 백성으로써, 부모는 자녀들을 계약의 자녀로써 가르치고, 하나님을 나타내며, 믿는 자로 성장시켜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계약을 따라 자녀들에게 하나님께 순종할 것을 주장하고, 계약의 증거인 할례를 받게 했습니다. 아들 이삭은 그 이유를 몰랐겠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자녀를 바르게 훈련하고 지도하는 것은 부모의 책임입니다. 자녀가 성장하면 그 의미를 설명하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훈련시키고 지도한 것입니다.

모세는 이방인 이드로의 딸 십보라를 아내로 맞았을 때, 아들들에게 계약의 백성으로써의 할례를 치루지 않았습니다. 이집트에 향하던 도중, 하나님의 천사가 모세를 죽이려 했습니다. (출애굽기4;24-26) 두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십보라가 서둘러 아들들에게 할례를 치뤄 모세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자녀들에게도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 부모도 지켜야 하는 중요성을 이 곳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 백성으로써의 부모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자유롭지 않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계약을 자녀들에게 몸소 보이는 책임이 있습니다.

 

Ⅱ 부모는 자녀를 키우는 있어서사랑 나타내지 않으면 안됩니다.

1 하나님으로부터 위탁받은 권위를 기초로 부모는 하나님을 나타내는 존재로써 자녀를 키우지만, 이 때에 사랑없는 자녀 양육을 하면 실패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주신 사랑은 본능적 사랑만이 아니라 신앙을 가진 부모의 마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사랑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믿는자들에게 반드시 부여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을 가진 부모는 자녀양육을 하는데 있어서 더욱 풍성한 「사랑」을 주시도록 기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런 후에 양육의 사명을 계속해 나아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랑없는 교육은 명령뿐이며, 명령은 교육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을 율법을 피하는 방법을 찾아 이용하는 자로 만들거나, 선한 인격, 신뢰받는 인격을 형성하지 못합니다.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낙심할까 함이라」(골로새서3:21)

「노엽게」 어째서? 부모가 일관된 기준을 사용하지 않고, 기분에 따라 그때그때 생각대로 자녀를 꾸짖으면 자녀들은 화를 냅니다. 부모는 자신도 순종하지 않으면 안되는 「주의 교양과 훈계」로써 교육할 때, 자녀는 순종합니다. 이것은 사랑이 담긴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낙심시키고, 실망시키고, 낙담시키는 것은 교육상 가장 어리속은 실패입니다. 자녀는 주눅들어 성격이 굽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사랑과 신뢰를 통해 전인격적으로 교육하셨습니다. 그럴 때에 마음을 열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믿음을 갖게 되고, 새로운 인생으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제자들, 사마리아 여인, 간음한 여인, 세리장 삭개오, 문둥병자, 등등 모두가 그랬습니다. 또한 우리도 예수님의 사랑과 신뢰에 마음을 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시고, 돌아가셔서, 장사지내시고, 부활해 주셨습니다. 이러므로 그 크신 사랑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고, 이렇게 까지 하셔서 구원받는 자로써 신뢰를 주시고 지금도 인도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부모의 권위는 하나님의 권위를 나타내는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부모는 사랑을 담아 자녀를 키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랑이 결핍된 부모의 권위는 자녀들에게 있어서 그 권위가 초기의 목적을 달성되지 못하게 됩니다. 권위없는 부모의 사랑은 제멋대로 행동하거나 변덕스러운 자녀를 만들어 자녀의 요구를 무조건 들어주는 생활로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길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것입니다. 부모는 하나님과의 계약관계 즉,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그 권위와 사랑과 책임을 통해 받고 있습니다.

 

Ⅲ 부모가 자녀를 교육, 훈계할 , 하나님으로부터 위탁받은 권위와 사랑와 위임을 일관된 모습으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이것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교양(그리스어 파이디아) 〓행동을 통한 훈육, 훈도, 훈련이라 번역해도 좋은 단어. 수정이나 징벌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자기를 제압하는 것, 유용하도록 수행하는 것, 과실을 정직하게 고백하는 것 등을 가르치는 의미이다.

훈계(그리스어 누세시아) 〓 말을 통한 훈련, 격려, 충고, 질책의 말로 가르치는 것.

어느쪽도 「주의」가 따른다. 이것은 자신을 하나님보다 탁월하다고 생각하는 인간이 자녀들 앞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훈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교육은 무엇보다 부모가 일상에서의 태도를 주의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계약의 자녀들은 계약을 따른 길로 교육해야 할 것입니다. 언제나 계약의 자녀, 하나님 백성의 자녀로 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자신을 사랑하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이고, 부모 자신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죄의 용서를 구하고, 구원을 받은 자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런 후에 가르치는 행동이나 말이 자녀들에게 본이되는 교육이 됩니다.

훈육은 제압이나 통제하는 것과 관련되지만, 소극적 의미가 아닙니다. 바른 길을 걷게 하는 것으로써 목적에 도달하는 수단입니다. 이 경우, 자녀의 자유라는 말과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자녀는 모든 일에 있어서 자유로와서는 안됩니다. 물고기가 자유인 것은 물 속에 있을 때만입니다. 물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새가 하늘을 나는 것은 공간이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크리스챤 자녀들은 계약의 백성으로써, 하나님을 믿는 자로써의 행동속에서만 자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멸망의 길에 있어서도 자유로와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인간의 본성에 속해 있을 때에 자유할 수 있습니다. 본성을 무시한 채 자유로와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보다 피조물로써의 본래의 자유가 있음을 적극적으로 가르치지 않으면 안됩니다. 또한 자녀들에게 있어서 사회생활은 무시할 수 없는 유대관계입니다. 다양한 인간관계속에서 자녀들이 조화로운 삶을 살아갈 때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훈육은 이 점에서 가정은 물론 사회생활의 모든 관계에 적합한 방법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배려해 나아가도록 하며, 공동체의 일원으로써, 예수님의 지체로써의 자신을 밝혀 나아가게 합니다. 계약의 자녀들을 키우는 책임은 그 성장에 따라, 어째서 부모가 이렇게 말하는 지를 말씀을 통해 이해시키고, 자발적으로 하나님 사랑에 응답해 나가도록 키우며, 자기자신도 그렇게 살아감으로써 완수되는 것입니다.

교회 주일학교 교육의 중요성은 다녀도 되고 다니지 않아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의 하나로써 자발적으로 참가하고 참가시키지 않으면 안됩니다.

 

맺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사랑의 훈계를 지키는 자녀로 양육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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