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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9月3日 礼拝 説教(日本語文、韓国語訳)

 

2017年9月3日 マタイ5:4「悲しむ者の幸い」

序文)今朝のみことばは「幸いだなあ。悲しむ者は。その人は慰められるからです。」主イエス・キリスト様が語られた祝福のことばです。こころの聖い者とされた者が、神様と神様の聖さに直面すると、悲しむ者!となります。

普通に、世間一般の生まれつきの人が聞くと、愚かな言葉に聞こえます。私たちが避けようと努力している事柄の一つだからです。悲しみから逃げ出すために金銭とエネルギーと熱狂をそそぎ、少しでも楽みに変えようとします。

何を悲しむのかが問われているようです。

 

Ⅰ 主イエス様のことばに矛盾があると思われます。しかし、よくよく考えますと、事実においては決して矛盾しておりません。

1 私たちの涙にも、神樣が与えた使命があるからです。あの栄華を極めたソロモン王は「伝道者の書」に「知恵ある者の心は喪中の家に向き、愚か者の心は楽しみの家に向く」(伝道者の書7:4)、と申しています。人の悲しみを通して、人生と神について深い意味を悟るようになります。

昼の明るさはすべての物をはっきりと見せるようですが、実際は遠いところは良くみえません。むしろ、日が暮れて夜になると空の彼方の遠くに輝く星々と宇宙の果てにある星の輝きを観察することができます。

私たちを突然襲う様々な悲しみは、明るく楽しい日々には見えなかったことを見せ、人間存在が単なる肉体的存在だけではなく、神によって与えられた不滅の霊をそなえていることに気付かせられます。

 

2 故隈部敦巳姉妹(1891年生まれ 職業助産師 86才召天)の生前のあかし

隈部敦巳姉妹は、私が牧師となって初めてのお葬式を司式させていただいた姉妹でした。調布南教会の開拓の初期から、礼拝に忠実に出席され、常に祈りと励ましを絶やすことのない姉妹でした。父上から個人伝道を受けて信仰に入り、1909年(明治42年)に洗礼を受けられました。結婚後五女一男を産みました。教会中心の信仰生活を家族を上げて送っていました。この姉妹の書き残されたあかしが次の通りです。{私の五女に鵜(テイ)という娘がいました。6才で父親を亡くしました。彼女は子どもたちの中でいつも不平がおおく、いらいらして神経質で、教会学校にも礼拝にもなかなか行こうとしません。家族の心配のたねでした。ある日曜日に子どもたちは教会学校にでかけましたが、テイだけは行こうとしませんので、注意しました。しかたなく出かけるとき玄関前に自転車がとめてあり、その上に空気銃が乗せたままになっていました。彼女は、なにげなく取り上げたところ、込めたままになっていた玉が発射してしまい、しかも、向かえの家にお嬢さんの顔面に当たりました。おおさわぎになり、外科病院にお嬢さんが担ぎ込まれました。が、テイ本人は、悲しみに暮れて家でづーっと泣きつづけていました。とんでもないことをしてしまった。若い娘さんの顔に鉄砲玉を打ちこんでしまったのです。私と教会から呼び戻した姉とテイ、3人でいのりました。テイは「神様ごめんなさい」とばかり繰り返していのりました。そのうちに向かえのお嬢さんたちが病院から帰ってきて、鼻筋に打ち込まれた鉛の玉を手術してとりだすので、明日また来なさいといわれたというのです。月曜日私が懇意にしていた府立病院の耳鼻科に向かえのお嬢さんと母上をともない事情を言って調べ直し、即手術となり、無事、鼻柱の根にあった鉛の玉をとりだすことができました。一同ほっとしましたが、妙齢のお嬢さんの顔に傷が付いたのでした。手術したお医者さんがいいました。傷はたいしたことは無いが、皆様にお話があるといわれました。その内容は驚くべきことでした。実はこのお嬢さんの鼻から「ジフテリヤ菌」が見つかった。これを知らずに放っておくと命取りだったのだよ。血清注射をうっておいたから、38度の熱は出るけれどもいのちは大丈夫だよ、といわれました。「まさに怪我の功名」だねとお医者さんがいいました。

一同、大いに主イエス様の御名をほめたたえました。人生で悲劇的な悲しみに見舞われたテイは、その後、家族で一番信仰の篤い姉妹となり、教会生活をつづけ奉仕を生き生きとしまた。テイは21才で粟粒結核にかかり天に召されまし。1943年(昭和18)1月25日のことでした。教会でのお葬式のときに讃美歌515番「十字架の血にきよめぬれば」を大声で皆で歌いました。}

 

3 イエス・キリスト様の言われた「悲しむ者」とは、神の光の前に自分を照らすとき、罪深さに望みを失うほどであって、それに気付いて悲しみ悔いる者のことです。悲しみを点検し、自分のことに置き換え、永遠を見つめ出すときに、そこに発見する自分の罪の姿があります。預言者イザヤは、神のみ座の前に、栄光に満ちた聖なる、聖なる、聖なるお方のみ顔を拝したとき、直感的に自分の汚れた罪を悟りました。叫びがでました。「ああ。私は、もうだめだ、わたしは口びるの汚れた者で、口びるの汚れた民の中に住んでいる。しかも万軍の主である王を、この目で見たのだから」(イザヤ6:5)。神は、この悲痛な嘆きの叫びを上げた彼に、み使いを遣わして、祭壇の上から火ばさみでとった燃えた炭火を彼の口に触れて「みよ。あなたの不義は取り去られ、あなたの罪も贖われます」と言った。

主イエス・キリスト様は、贖いのためにご自分の身をささげて、私たちの罪、不義は取り去られたと宣言してくださっているのです。

 

Ⅱ イエスに習って、クリスチャンは他人の罪の故に悲しむ

イエス様は私的生涯でも、公生涯でも、様々な悲しみを経験されました。自分の罪のための悲しみはありませんでした。罪なきかたとして生まれた時から聖霊に守られ、きよめられ、満たされて、私たちの罪を背負う地上生涯を全うしておられたからです。しかし、人として私たちが経験する悲しみ、つらさを経験されました。たとえば、父ヨセフの死に直面されて、後、家族(母マリヤ、弟たち、妹たち)を養うための労苦を背負われたと考えられています。大工の働きをナザレの村で続ける苦労があったでしょう。バプテスマのヨハネから洗礼を受けられて、宣教の生涯を歩まれるときにも、数々の悲しみを感じられました。

「主は悲しみの人でやまいを知っていた」(イザヤ53:3)と預言されていたのですから。死んだ愛するラザロを巡って家族のマルタとマリヤと近所の方々が嘆き、泣いているのをごらんになり、「霊の憤りを覚え、心の動揺を感じられ」ました。そして「イエスは涙を流されました」(ヨハネ11;33-35)。

エルサレム入城に際して、イエス・キリスト様は「ああ、エルサレム、エルサレム、わたしはめんどりがひなを翼の下にかばうように、あなたの子らを幾たび集めようとしたことか」(ルカ13:34)、と悲しみ嘆かれました。自分の民たちが罪のために滅亡することを考えるとき、主は胸が張り裂けるように痛み、はげしく叫びました。

このお方の弟子となったクリスチャンたちは、同じ心を新しく与えられているので、主イエス・キリストと同じ悲しみを隣人のために悲しみます。

そのような人は幸いだなあ!と主は実感を込めていわれているのです。隣人の涙を、自分の涙のように同感し、隣人の悲しみを自分の悲しみとして、十字架を負うものは、幸いだなあ。その結果、隣人が罪の悲しみから、福音によって救いの恵みに、喜びに変えられて行くことを経験させていただけることは、何というなぐさめでしょうか!

 

Ⅲ 悲しむ者は慰められる

救い主の預言に書かれている通りの目的に合うので、主が慰めてくださる。

イザヤ61:1-3「神である主の霊が、わたしの上にある主はわたしに油を注ぎ、貧しい者に良い知らせを伝え、心の傷ついた者をいやすために、私を遣わされた。捕らわれ人には開放を、囚人には釈放を告げ、主の恵みの年と、われわれの神の復讐の日を告げ、すべての悲しむ者を慰め、シオンの悲しむ者たちに、灰の代わりに頭の飾りを、悲しみの代わりに喜びの油を、憂いの代わりに賛美の外套を、着けさせるためである。彼らは、義の樫の木、栄光を現す主の植木と呼ばれる。」主イエス・キリスト様は、すべての悲しむ者を慰め、シオンの悲しむ者たちに、灰の代わりに頭の飾りを、悲しみの代わりに喜びの油を、憂いの代わりに賛美の外套を、着けさせるため、このように救い主としてはたらかれました。今も、働いておられます。

 

結び)まことの悲しみのある所に、まことの喜びが主によって用意されているとは、キリスト者生活の驚くべき事実です。

ロマ8:23

 

2017 9 3   마태복음5 4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서문) 오늘 아침의 말씀은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축복의 말씀입니다. 마음이 정결한 자로 된 사람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성결함에 직면하게되면 애통하는 자!가 됩니다.

일반적으로 세상 사람들이 이 말을 들으면 어리석은 말로 여깁니다. 이것은 우리가 피하려고 노력하는 일들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슬픔으로부터 도망치기위해 돈과 힘과 열정을 쏟아 부어서 조금이라도 즐겁게 사려고 합니다.

무엇을 슬퍼하는 것인지를 질문받고 있는 듯합니다.

 

 주예수님 말씀에는 모순이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실제로는 전혀 모순되지 않는 일입니다.

 

우리들 눈물에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기때문입니다. 그 영화롭던 솔로몬왕은 「전도서」에서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7:4)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슬픔을 통해 인생과 하난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낮의 밝음은 모든 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게 하지만, 면곳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더욱이 해가 져서 밤이 되면 훨씬 더 먼 곳에 있는 별들의 빛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우리들에게 갑자기 닥치는 수많은 슬픔은 밝고 즐거운 날들속에서는 볼수 없는 것들을 보여주고, 인간 존재가 단순한 육체적 존재만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불멸의 영이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고隈部敦巳자매 (1891생. 직업:조산부 86세 천명) 의 생전 간증

隈部敦巳자매는 제가 목사가 되어 처음으로 장례식을 집도하게 된 자매입니다. 調布南교회 개척 초창기부터 충실하게 예배에 출석하고, 언제나 기도와 격려를 끊치지 않는 자매였습니다. 그 분의 아버지로부터 개인전도를 받아 믿음을 얻게 되었으며, 1909년(메이지42년)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결혼 후 1남5녀를 두었습니다. 교회중심의 믿음생활을 가족과 함께 보냈습니다. 이 자매가 남긴 간증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에게는 5번째 鵜(테이)라고 하는 딸이 있습니다. 그녀가 6살때에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그녀는 자녀들 중 가장 불평이 많고, 신경질적으로 교회학교에도 좀처럼 가려하지 않았습니다. 가족의 걱정거리였습니다. 언젠가 일요일에 다른 아이들은 교회학교에 갔지만 테이는 가려하지 않았기 때문이 주의를 주었습니다. 할수 없이 그녀가 나가자, 현관앞에 공기총이 달려있는채로 자전거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무 생각없이 자전거를 올라타자 공기총의 총알이 발사되었습니다. 그것도 맞은 편 집의 여자아이의 얼굴에 맞혔습니다. 집안이 발칵 뒤집혀, 이 아이를 외과병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이런 와중에 테이는 슬픔과 충격으로 계속해서 울고만 있었습니다.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아직 젊은 여자아이의 얼굴에 공기총을 쏘고 만 것입니다. 저는 테이와 다른 딸, 3명이서 기도했습니다. 테이는 「하나님, 죄송해요」라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그러던 중, 맞은 편 집의 딸을 태운 차가 돌아와, 콧날에 박힌 총알을 내일 빼내는 수술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다음날, 저는 제가 근무하고 있는 부립병원의 이빈후과에 사정을 설명하고 자세히 검사한 후, 바로 총알을 빼는 수술을 했습니다. 수술은 무사히 끝나 안심했지만, 젊은 아가씨의 얼굴에 상처를 남기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수술을 끝낸 의사가 말했습니다. 상처는 대단한 것이 아니지만 여러분께 할 말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실은 이 환자의 코에서 「디프테리아 균」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을 방치두면 목숨이 위험했을 것입니다. 혈청주사를 놓았으니까 38도의 열이 있어도 문제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모두가 주 예수님을 찬양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비극적 슬픔에 직면했던 테이는 그로부터 가족 중에 가장 깊은 신앙을 가지고, 교회생활을 열심히 보내며 섬기게 되었습니다. 테이는 21살 粟粒結核에 걸려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1943년(쇼화18) 1월 25일이었습니다. 교회 장례식에서 찬미가515장 「십자가의 피로 정결하게」 를 모두 함께 찬송했습니다.}

 

3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하셨습니다. 「애통하는 자」란 하나님 영광 앞에 자신을 비춰보았을 때, 자신의 깊은 죄를 보고 희망을 잃어버리게 될 정도로 슬퍼하며 후회하는 자를 말합니다. 슬픔을 점검하고, 자신을 되돌아 보고, 영원을 바라볼 때, 그 곳에서 발견하게 되는 자신의 죄의 모습이 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 보좌앞에 영광으로 가득찬 거룩, 거룩, 거룩하신 분의 얼굴을 보았을 때, 직감적으로 자신의 더러운 죄를 깨달았습니다. 그는 외쳤습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이사야6:5) 하나님은 그 비통한 외침을 바친 그에게 천사를 보내셔서 화저로 단에서 취한 핀 숯을 그의 입에 대며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 예수님이 대속을 위해 그 분 자신을 바치셔서 우리들의 죄, 불의가 사라졌음을 선언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Ⅱ 예수님을 닮아 크리스챤은 타인의 죄를 위해 애통합니다.

예수님은 사적, 공적으로 수많은 슬픔을 경험하셨습니다. 자신의 죄로 슬퍼하신 것은 아닙니다. 죄없으신 분으로 태어나셔서 성령의 보호를 받고, 정결하시며, 성령으로 충만하셔서, 우리들의 죄를 대신 지시는 지상생애를 완수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으로써, 우리가 경험한 슬픔, 괴로움을 경험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아버지 요셉의 죽음에 직면하시고, 가족(어머니 마리아, 동생들)을 부양하기 위해 노동의 짐을 지셨슴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목수의 일을 나사렛에서 계속하셨을 것입니다.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선교의 생애를 걸으셨을 때도 수많은 슬픔을 느끼셨습니다.

「그는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이사야53:3)라고 예언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랑하는 제자 나사로가 죽은 일로 그의 가족인 마리아와 마르다와 주변 가함들이 울며 슬퍼하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그리고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요한복음11:33-35)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주 예수님은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누가복음13:34)라고 말씀하시며 슬퍼하셨습니다. 자신의 백성들이 죄로인해 멸망하는 것을 생각할 때, 예수님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으로 슬퍼하셨습니다.

이 분의 제자가 된 그리스챤들은 예수님과 같은 새롭운 마음을 받았으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처럼 이웃을 위해 애통해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복있는 자라고 실제적으로 하나님은 느끼게 해주십니다. 이웃을 위해 눈물을 자신의 눈물처럼 동감하며, 이웃의 슬픔을 자신의 슬픔으로 여기고, 십자가를 지는 것은 복있는 자라. 그 결과 이웃이 죄로 인한 슬픔에서 복음으로 인한 구원의 은혜로, 기쁨으로 바뀌어가는 것을 경험시켜 주시는 것은 말로할 수 없는 위로가 될 것입니다.

 

 

Ⅲ 애통하는 자는 위로를 받을 것임이라

구세주의 예언이 기록되어있는 목적에 맞는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십니다.

이사야61:1-3「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애통하는 자를 위로하시고, 시온을 위해 애통하는 자들에게 재 대신 화관을, 슬픔 대신에 기쁨의 기름을, 근심 대신에 찬송의 옷을 입혀주시기 위해 구세주로 와주시고 일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일하고 계십니다.

 

맺음) 참된 애통이 있는 곳에 하나님을 통해 참된 기쁨을 얻게되는 것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생활속에 놀라운 사실입니다.

로마서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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