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年4月2日 エペソ書 6勝5-9 「主に仕えるように」
序文)主従関係についてパウロは解いている。パウロがエペソの手紙を書いた時代は、ローマ帝国全体で6、000万人からの奴隷がいたと推定されている。奴隷の存在は一般的な社会情勢があった。この時代は帝国内に怠惰が満ちて、ローマ市民は世界の覇者として働くことは、自分たちの尊厳を卑しめる事と理解していた。それであらゆる種類の仕事が奴隷によって行われていた。医者や、教師さえも奴隷であった。皇帝の最も親しい友人や手紙、訴訟、財務を取り扱う秘書たちさえも、奴隷であった。ストア派の哲学者エピクトテスも奴隷でした。そして例外を除いて一般には「物」として扱われていた。このような現実の中で、エペソの手紙が書かれた
Ⅰ 5節 奴隷たちよ。地上の主人に従え。聖書が奴隷制度を容認している。反社会的であると、批評されてきた。しかし、「主人が奴隷に対して生与奪の権威を所有していることは、世界中で容認されていると知るべきである。」というローマの法律家ガイウスのことばが、ごく当たり前に受け取られていた時代にあって、パウロは「ユダヤ人もギリシャ人もなく、奴隷も自由人もなく、男子も女子もありません。なぜならあなたがたは、みなキリスト・イエスにあって一つだからです。」(ガラテヤ3:28)と宣言をした。時代をはるかにこえた視点を示している。パウロは奴隷制度以前の根本的な制度を作り上げている人心の改革をねらっております。逃亡奴隷オネシモを主人ピレモンに送りかえすとき「もはや奴隷としてではなく、奴隷以上の者、すなわち、愛する兄弟として受け入れてほしい」と言っている。{アンテオケの監督イグナチウスはAD110年ローマで殉教しましたが、彼がエペソに宛てた第一手紙の中で「エペソの監督オネシモ」と記しています。同一人物だったとすれば、「エペソ人への手紙」を受け取った教会はオネシモを牧師に迎えたことになります。また、伝承によるとオネシモはその後にマケドニア地方のベレヤ教会監督も務めたと言われています。}(小畑進著 ピレモンへの手紙)
一見、遠回りのように見えながら、このような真に宗教的、根本的改革は、ついにこの奴隷制度をギリシャ・ローマ世界から一掃する土台となったのです。
5節 心の改革を狙ったパウロは、主人に従う時、今までの屈従、隷属ではなく、キリストに従うように恐れおののいて真心からと、まず説きます。クリスチャン労働者が、その遣わされた場所で精一杯キリスト者として、生き抜くように。ペテロ「しもべたちよ。尊厳の心を込めて、主人に服従しなさい。善良で優しい主人にたしてだけではなく、横暴な主人も対しても従いなさい。」(第一ペテロ2:18)横暴な主人に従うことができるのは、「キリストの恐れをもって互いに相手をたてる」ことができるからです。人に従うのであれば、心に抵抗があります。しかしキリストに従う心をもってするというのであれば、決して不可能なことではない。パウロはここで謀反をおこすようにとは言わないで、どこまでもキリスト者であるようにと勧告しています。
Ⅱ 6−7節 パウロは奴隷たちに主人の目が注がれている時だけ、立派な仕事をするのではいけないし、仕事は人の目にはごまかし得ても、絶対にごまかし得ない神の前で生きているものとなったから、心から仕えるクリスチャン労働者の確信は、彼の行うどんな小さな仕事も神の目から見て十分に立派であると言われるのでなければならない。神から与えられた仕事を、神のために、神に対して責任を負うという形でする。
牧師のバークレーは次のように勧めています。「この世が絶えず直面し、今日、鋭く直面している問題は、根本的にいえば、それは決して経済的な問題ではなく、宗教上の問題である。私たちは給料を増額したり、労働条件を改善したり報酬を高めたりすることによって人を立派な労働者にすることはできない。もちろん、これらのことを考えて、それぞれの立場から努力することはクリスチャンのつとめである。しかし、それらのことだけが良い仕事を生み出すことにならない。あるいは強い脅迫とか、監督者からの強化とか、懲罰の回数を増加するといった方法によっては、ますます、良い仕事をしなくなるであろう。
すぐれた労働意識をもつ秘訣は、神のために仕事をすると言う意識をもつことだけである。自分に与えられた仕事を神のために受け取り、神に見せるためにするときだけ、人は立派な仕事をなしうる。」
Ⅲ 8節 ここは奴隷の立場とか、主人の立場ではなく、神の立場から神の審判という観点からのことばがある。「人の子は父の栄光を帯びて、御使いたちとともに、やがて来ようとしているのです。その時には、おのおのその行いに応じて報いをします。」(マタイ16:27)。神のみまえに奴隷も自由人も絶対的区別はない。ひとしく公平な量りの上に置かれている。地上で奴隷対主人という対立的にみえる関係でも、聖書では「奴隷も、主にあって召された者は、主に属する自由人であり、同じように、自由人も、召された者はキリストに属する奴隷だからです」(第一コリント7:22)とあり、主にある奴隷は主に属する自由人、主にある自由人は、主に属する奴隷と。神の前で来るべき世では、この差別は消失する。地上では肉の主人が与える報いには立場による差別があります。しかし、天の主人、霊の主人、神のくださる報いは、主人とは誰か。奴隷とは誰かでなく、心から神の御心をおこなったのは誰かが問われて、それによって報いがくだされる。地上の主人の報いは一時的ですが、霊の天の主人がくださる報いは「わたしの喜びに入ってくれ」と言われるように、神の喜びに与る永遠の報いであります。キリストの法廷では、奴隷、自由人を問わず一人一人がその働きに従った報いをキリストのみ手から受ける。[ 第二テモテ4:5-8]
Ⅳ 9節 主人は奴隷に対して同じようにキリストへの恐れをもって互いに相手をたてなさい。「脅したりすることはやめなさい。」とにかく主人や上役は自分の権威を笠に着た態度を取りがちで、それをしないようにということです。
奴隷に求められている心の態度は、神の前で主人に求められているのです。
奴隷の主人たちには、自分が神のしもべであることを忘れてはならない。主人のおこなう事みなは神が見ておられる。神の前で行われている。天の神は人を偏り見ないおかたであるからです。
ウ大教理問答129問 上の人が下の人にするように求められているのは、何であるか。
答 上の人に求められていることは、次の通りである。すなわち、彼らが神から授かった権力と置かれている関係に応じて、下の人を愛し、祈り、祝福すること。彼らに教え、すすめ、戒めること。良いことをした人には奨励と推賞とほう賞を与え、悪いことをした人には恥と叱責と懲戒を加えること。彼らを保護し、その心と体に必要なすべてのものを支給すること。威厳ある賢明なきよい模範的態度で、神の栄光を輝かし、自身の名誉を高め、神から授かった権威を保つことである。
ウ大理問答 問130 上の人の罪とは、何であるか。
答 上の人の罪とは、次の通りである。すなわち、彼らに求められている義務を無視することの外に、自我・おのれの栄光・安逸・利益・快楽を過度に追求すること。不正なことや下の人の力ではできないことを命令すること。悪いことをすすめたり、応援したり、賛成すること。良いことをするのを止めさせたり、はばんだり、反対すること。不当にきょう正すること。不注意に不正や誘惑や危難に会わせたり、捨ておくこと。怒らせること。あるいは不正・軽率・苛酷または怠慢な振舞で、いずれにせよ自分の名誉を汚したり、その権威を傷つけることである。
結び)エペソ人への手紙に記された人間関係の根本は、神をどのようなお方として仰いでいるかによって、定まっています。そしてキリストを信じる信仰は当時の社会を変革する大きなうねりをローマ帝国の隅々に巻き起こしました。「社会を改革するために万国の労働者よ立て」とは言わなかったのです。キリストの真理に根ざす人間相互の結びつきの深さが、世のいかなる状況下にあっても、自由、平等、博愛を黙々と出現させ、その小さな、しかし、力強い交わりは、世界を変えていったのでした。
妻として、夫として、子どもとして、両親として、主人として、働き人として、どのような立場にあっても、一人一人が「キリストにあって」を心の中心において、生活を進めるとき、福音のもたらすいのち、力、愛は、そのまわりにキリストの香りを放ち、祝福と回復と再起をもたらします。あなたの内に住まわれる聖霊のお導きと支えを信じて、主にお仕えしてまいりましょう。
2017년 4월 2일 에베소서6:5-9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서문) 주종관계에 관해 사도 바울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를 쓴 시대는 로마 제국 전체에 6000만명의 노예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노예의 존재는 일반적 사회정세였습니다. 이 시대는 제국 안에 태만이 가득차, 로마시민은 세계의 군림자로써 일하는 것은 자신들의 존엄이 비하된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들은 노예가 하게 되었습니다. 의사나 교사조차도 노예였습니다. 황제의 가장 친했던 친구나 편지, 소송, 재무를 취급하는 비서조차도 노예였습니다. 스토아학파의 철학자 에픽토테스도 노예였습니다. 그리고 예외없이 일반적으로는 「물건」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에베소서가 기록되었던 것입니다.
Ⅰ 5절 종들아. 상전에게 순종하라. 성경이 노예제도를 용인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반사회적이라는 비평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주인이 노예에게 생사여탈권의 권위를 각고 있는 것은 세계중에 용인되어있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라는 로마의 법률가 가이우스의 말이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시대였으므로 사도 바울은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라디아서3:28)라고 선언했습니다. 시대를 뛰어넘은 시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노예제도 이전의 근본적 제도를 만든 사람들의 마음의 개혁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도주한 노예 오네시모를 주인 빌레몬에게 돌려보낼 때, 「이후로는 종과 같이 아니하고 종에서 뛰어나 곧 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라」라고 말했습니다. {안디옥 감독 이구나티우스는 AD110년 로마에서 순교했지만, 그가 에베소에 보낸 편지 중에서 「에베소 감독 오네시모」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가 동일 인물이라면 「에베소서」를 받은 교회는 오네시모를 목사로 영접한 것이 됩니다. 또한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오네시모는 그 후 마케도니아 지방의 베뢰아 교회의 감독이었다고 합니다. (小畑進저 빌레몬서)}
얼핏보면 멀리 우회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참된 종교적, 근본적 개혁은 결국엔 노예제도를 그리스 로마세계에서 청산시키는 토대가 된 것입니다.
5절 마음의 개혁을 노린 사도 바울은 주인에게 순종할 때 지금까지의 굴종, 예속이 아닌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듯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크리스챤 노동자가 그 쓰임받는 장소에서 마음을 다해 크리스챤으로써 살아가도록 베드로는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베드로전서2:18)라고 말했습니다. 까다로운 주인에게 순종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에는 마음에 거부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마음으로 한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곳에서 반모를 일으키도록 말하지 않고, 언제까지라도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Ⅱ 6-7절 사도바울은 노예들에게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지만 절대로 속일 수 없는 하나님을 앞에 두고 살아가는 자가 되었으므로, 마음으로부터 순종하는 크리스챤 노동자는 아무리 작은 일이라고 하나님눈에는 커다란 일임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일을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목사 바클레이는 다음과 같이 권했습니다. 「이 세상이 끊임없이 직면하고, 오늘날 민감하게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근본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결코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종교적 문제이다. 우리는 월급을 올리거나, 노동조건을 개선하거나 보너스를 받는 것으로 훌륭한 노동자로 만들 수는 없다, 물론 이것들을 생각해 각각의 입장에서 노력하는 것은 크리스챤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이것들만이 훌륭하게 일을 완수하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없다. 또는 심한 협박이나 감독들의 엄한 감독, 징벌의 회수를 늘리는 방법으로는 더욱더 일을 완수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뛰어난 노동의식을 갖게 되는 비결은 하나님을 위해 일한다는 의식을 갖는 것 뿐입니다. 자신에게 부여된 일을 하나님을 위해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보이기 위해서 일할 때 사람은 훌륭하게 일을 완수 할 수 있다.」
Ⅲ 8절 이 곳에서는 노예의 입장이나 주인의 입장이 아닌 하나님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관점에서의 말씀이 있습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마태복음 16:27) 하나님 앞에서는 노예도 자유인도 절대적 구별이 없습니다. 모두가 공평한 자로 재어지게 됩니다. 지상에서 노예와 주인사이의 대립적으로 보이는 관계도, 성경에서는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고린도전서7:22)이며, 주 안에서 노예는 주 안에서 자유인, 주 안에서 자유인은 주 안에서 노예입니다. 다시 오실 세상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이 차별은 사라지게 됩니다. 지상에서는 육신의 주인이 주는 보상에는 차별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주인, 영적 주인, 하나님께수 주시는 보상은 주인은 누구고, 노예는 누구인가가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하나님 뜻을 행한 것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 보상을 받게 됩니다. 지상의 주인에게 받는 보상은 일시적인 것이지만 영적 하늘의 주인이 주시는 보상은 「나의 기쁨에 들어오라」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기쁨에 들어가는 영원한 보상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법정에서는 노예, 자유인 관계없이 한사람 한사람이 그 일한 것에 따라 예수님께 직접 보상을 받게 됩니다. (디모데후서 4:5-8)
Ⅳ 9절 주인은 노예에게도 똑같이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합니다. 「공갈을 그치라」주인이나 상사는 자신의 권위를 믿고 행세를 부리기 쉽지만 그렇게 하지 않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노예에게 권장하고 있는 마음의 태도는 하나님 앞에서 주인에게도 권장되고 있는 것입니다.
노예의 주인들은 자신도 하나님의 종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주인이 하는 행동은 모두 하나님께서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앞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하늘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시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 129문> 상사가 부하에 대해 요구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답 상사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은 다음가 같다. 즉,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권위와 놓여진 관계에 따라, 부하를 사랑하고 기도하며 축복하는 것. 그들을 가르치며, 권장하고, 훈계하는 것. 선한 일을 한 사람에게는 장려와 보상을 주고, 악한 일을 한 사람에게는 질책과 징계를 더한다. 그들을 보호하고, 그 마음과 몸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지급한다. 위엄있는 현명하고 정결한 모범적 태도로써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고, 자신의 명예를 높이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권위를 유지한다.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 130문> 상사의 죄란 무엇인가?
답 상사의 죄란 다음과 같다. 즉, 그들에게 요구되고 있는 의무를 무시하는 것 이외에, 자아∙자기자신의 영광∙안면∙ 이익∙쾌락을 추구하는 것. 부정한 일이나 부하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명령하는 것. 나쁜 일을 권장하거나, 응원하거나 찬성하는 것. 좋은 일 하는 것을 멈추게 하거나 방해하거나 반대하는 것. 부당하게 부정이나 유혹이나 위험에 빠지게 하거나, 내버리는 것. 노엽게 하는 것. 또는 부정∙경멸∙가혹 또는 태만한 태도로 자신의 명예를 더럽히거나 그 권위를 상처입히는 것이다.
맺음) 에베소서에 기록된 인간관계의 근본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써 여기고 있는가에 따라서 정해지게 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당시의 사회를 개혁시키는 커다란 기복을 당시의 로마 제국 구석구석에 일으켰습니다. 「사회를 개혁시키기 위해 만국의 노동자여 일어서라」라고 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진리위에 선 인간 상호의 깊은 관계가 세상의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 평등, 박애를 묵묵히 드러내고, 그 작은, 하지만 강력한 교제는 세계를 변화시킨 것이었습니다.
아내로써, 남편으로써, 자녀로써, 부모로써, 주인으로써, 종으로써 어떠한 입장에서도 한사람한사람이 「주 안에서」를 마음 중심에 두고 생활한다면 복음을 통해 생명, 능력, 사랑은 그 주변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고, 축복과 회복과 재기를 일으키게 됩니다. 여러분 속에 살아계시는 성령의 인도와 보호를 믿고 예수님께 순종해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