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年3月18日 「ゲッセマネの苦悩 」 マタイの福音書26章36-46節
招詞 マタイ6:9-10
序)主イエス・キリスト様が、十字架の死を目前にされたゲッセマネの園の祈りは苦しみもだえて、苦悩に溢れていました。聖書に記されている祈りの中で一番深く、神秘的な部分です。人間の知恵を持って十分に解明しつくしえない祈りです。最も賢い神様の智恵を含んでいるのです。然しそれでもなお、この祈りを学ぶ者にとり、主の祈りの姿勢は最も重大な真理の一端を明らかにしていただけると信じます。私たちのための主イエスの犠牲の十字架を深く受け止めようとすれば、この祈りから、先ず、その苦しみを汲み取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
Ⅰ.祈りの背景
この祈りは十字架の死を目前にした祈りです。苦難に直面するために主が祈りの場を守られたのです。主の霊が異常な悲しみに満ちていた時に祈られたということを知るときに、まして私たちが悲しみにうち倒されたときに祈らざるをえません。苦難に耐えるためにこれ以上の良い処方を他に見つけることは出来ません。自分が直面している事を最初に訴えるのは人間相手ではなくて、神様に向かって祈りにおいてです。
「この杯をわたしからとりのけてください」という祈りは、主に向けられた誘惑との激しい戦いでもありました。十字架を回避させてくださいという祈りです。誘惑との戦いは、ただ祈りに祈ることで勝つのです。
Ⅱ 祈りの友
死ぬほどの苦しみと、それから逃れたい誘惑との戦いのために主は祈りの友を要請されました。ペテロ、ヤコブ、ヨハネです。この三人は他の福音書にはっきりと書かれているように「主といっしょに目を覚ましている」ようにと「目を覚まして祈っていなさい」と要請されたのです。弟子たちは、ともに、目をさまして祈っているようにと言われて、祈っていました。自身のためだけでなく、主イエスの祈りの戦いにも召されていたのです。信仰の友、祈りの友を人間は必要としています。ことに苦難に直面し、深く悲しんでいるときはそうです。悲しみ悩んで祈る主と、ともに悲しみ、泣き、祈るものとなるように。
教会の祈祷会や二人以上の者がともに祈る場は、この意味で主イエスのとりなしや、苦しみや、悲しみ、伝道の戦いに、そして、その民の中に働いておられる導きにともにあずかる場なのです。それは自分が祈れなくなっていても、兄弟姉妹が一緒に祈ってくれるそのような場なのです。そこに一緒に座っているだけでも、豊かに神はそれぞれのうえに働いてくださるのです。苦しみに会うとき、信仰から離たり集いを避けがちですが、それは違うのです。むしろ、そこに集まって、祈ってもらうこと、ともに泣き、ともに嘆き苦しみ、重荷を分けあうことにより、回復が進むのです。立ち上がる近道は、このようにして、誘惑についに打ち勝つことなのです。弟子たちは、ルカ22:45、を見ると、悲しみの果てに、眠りこんでしまっていた。彼らは始めから眠るつもりはなかった。しかし悲しみの果てに緊張した神経から疲労がおそってきて、眠ってしまったのです。主イエス様は、ルカの福音書によれば22:43「そのとき、み使いが天から現れてイエスを力づけた。イエスは苦しみもだえ、ますます切に祈られた。」とあります。
Ⅲ.主イエスの祈りの内容
1 39節「、わが父よ。できますならば、この杯をわたしから過ぎ去らせてください。しかし、わたしの願いのようにではなく、あなたのみこころのように、なさってください。」この時の祈りは、主の受難物語の中で、最も激情の荒れ狂う場として書かれています。それは十字架上での姿よりももっと激しいものです。恐れ、おののき、悩みはじめ、死ぬほどである。地にひれ伏して「汗が血のしずくのように地に落ちた。」(ルカ22:44)主の十字架への苦痛は特別な探さをともなっていた。弟子たちが分かちあえるような生易しいものではなかった。その原因は「この杯をわたしから取りのけてください。」といわれた「この杯」にあった。わたしたちの罪の身代わりのために、主イエスが受けてくださろうとしていた、「杯」とは何か。旧約聖書で「杯」はその人の運命を表し、時に神の怒りと審判を意味して度々用いられています。イザヤ書51:17「憤りの杯」。主イエスは正真正銘の人間でした。死に反発し、死を本能的に嫌悪する人間です。この祈りは、この点で人間性の極致をあらわしているのです。彼は罪を犯したことがなく、生ながら聖霊により罪の汚れから守られていた義人です。罪の罰を受けて死ぬことはありえませんでした。しかし、父から受けた救い主としての職責を果たすために、身代わりの死を遂げ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した。すべての罪人に対する神の怒りの杯が一挙にキリストに注がれようとしているのです。イエスがわたしたちのために呪われ、罪を知らなかったかたが罪となられた。彼の聖いご性質が、その上にのせられた罪の重荷を直接感じられた。ここに通常でない、異常なキリストの苦しみがあらわれた。
それは死にたいする恐怖というよりは、それがもたらす神の裁き、地獄の実体を知っているものとしての恐怖、苦しみでありました。イエス・キリストは神のみ子として、罪あるものたちが死んでどうなるかを御存じでした。神の怒りと裁きの実体を知っているがゆえの苦悩でした。わたしたちは、この点、鈍感です。それで、永遠よりも目の前の瞬間をみて歩んでしまいます。主は永遠の裁きを知っておられ、それからわたしたちを免れさせる為に、苦しんでくださったのでした。主のこの祈りは、イエス様が人間ばなれした存在でなく、地に足のついたもので、わたしたちの弱さ、死への恐怖、おののきを知るかたとして、手の届くところに立っておられることを悟らせます。多くのキリスト者がこの祈りを自分の祈りとして祈るときにどんなに支えられたことでしょうか。愛する夫や、妻や、子供がこの世から取り去られようとするとき、不治の病が自分の体を蝕むとき、その他さまざまな苦杯が信仰厚き者に与えられる時、主イエス様も、このように祈られたことは、わたしたちにどれほどの力と慰めとなることでしょうか。
この祈りの最中に、み使が現われて苦悩し祈るイエスを力づけた。このような出来事は、天の助けなくして負いきれるものではない。天からの助けは、杯を取り去るためにではなく、飲み干すための力を主イエスに与えました。わたしたちが同じいのりを祈るとき、みたまは同じ力を与えて、その苦難に耐えさせ、みこころをなさせたまえと祈る力を与えられるのです
2「みこころのとおりにしてください。」
もしも、この杯を取りさらないことが、天の父のみ心であるなら、それに従います。全き従順をこめて従います。自分の思いを神の思いに一致させます。これこそが、まことの祈りなのです。神の意志、神の目的、神の永遠のご計画に自分を従わせます。ここに、主が十字架にかかられるにあたっての自発性がはっきりと示されています。強制的に、いやいや杯を飲ませられたのでなく、ほんとうに心から従順に飲めるようにと戦った祈りでもあったのでした。
神があなたにかかわる永遠のご計画を、この地上の分としてはたそうとされる時、わたしたちは同じ祈りの戦いをして、心から主に従えるようにと自分をととのえねばなりません。「みこころのなるよう」との祈りは完全な信頼を込めてなされるとき、本来の意味のとおりであります。神の愛と、ご計画と、善意と、力とみちびきとを熱望して祈るのです。この受け入れがたいことを自発的に受け入れることが、このいのりの真意なのです。ですから茫然自失して、みこころをなどと祈るのは、希望を放棄することなのです。激しい攻撃に降伏せざるをえない人が、みこころをなさせてくださいと祈るのは、完全な敗北を認めることばとなるのです。荒れた、苛立ちのことばとなるのです。そのような祈りでなく、全幅の信頼をこめて「みこころのとおりしてください。」と祈るなら、神は、まことにみ心を成就してくださるのです。
結び)わたしたちは、この主イエス・キリスト様の御足跡をたどって、祈りに祈って神様に従う人生を進めなければなりません。またこの主イエス・キリスト様こそ死の恐れも苦しみも知り抜かれ、激しい叫びと涙で、裁きの杯を飲まれた方です。人間イエス様はまことと憐れみに豊かであり、同情できる方であり、神様の前に私たちのために執り成しできる永遠の大祭司です。私たちも祈りぬいて主イエス・キリスト様と出会いましょう。
2018년 3월 18일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누가복음22:39-46 초대의 글 마태복음 6:9-10
서문) 겟세마네 동산에 「습관을 좇아」라고 복음서의 기자 누가는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종종 그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셨습니다. 늘 가던 곳에서, 언제나처럼 기도하셨지만 그날밤의 기도만큼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날 밤의 기도는 성경중에서도 가장 심오하고, 고난에 넘친 신비적인 부분이었습니다. 인간의 지식으로는 충분하게 설명할 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기도의 배후에는 가장 현명하신 하나님의 지혜가 포함되어있기 때문입니다.
Ⅰ 39-40절
누가는 이 기사를 적는데 있어서 처음과 끝부분을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액자처럼 둘러싸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은 조금 전,「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라는 경고를 받은 곳이었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게 되면 제자들을 보는 세상의 눈이 달라질 것도 말씀하셨습니다.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정세가 나빠지는 것입니다. 그것들에 충분히 대응하기 위해 믿음에 서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며, 그러기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에게 있어서 지금의 기도는 십자가의 대속물로써의 죽음을 눈앞에 둔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영혼은 깊은 슬픔과 괴로움중에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이것은 예수님을 향한 유혹과의 싸움이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 의하면, 제자들은, 그 중 베드로, 요한, 야고보는 예수님 곁에서 함께 기도하도록, 눈을 뜨고 있도록 요청받았습니다. 그것은 그들 자신이 유혹에 빠지지않기위한 기도만이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 기도하도록 요청받은 것이었습니다. 믿음의 벗, 기도의 벗을 우리들은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고난에 직면하고, 고통받고 있을 때는 더욱 그러합니다. 슬픔에 괴로워 하며 기도하는 예수님과 같이 슬픔과 괴로움에 우는 자가 되도록!
교회의 기도회나 두명 이상이 모여 기도하는 곳은 이러한 의미로 보면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며, 형제 자매의 괴로움도, 기쁨도 함께 나누며 기도하면서 나아가는 장소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괴로움 중에 있을 때는 믿음으로부터 떠나, 모이는 것을 피하게 되지만 그것은 정반대의 행동입니다. 반대로 기도의 장소에 적극적으로 참석하고, 함께 기도하며, 함께 짐을 나누는 것이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는 지름길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한 활동은 단 한사람으로 성취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또한 자신 혼자의 힘으로 고난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패의 원인이 됩니다. 함께 기도하는 것으로 유혹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고난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도 처음엔 예수님과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던 중 「슬픔을 인하여 잠든것」(45절)이었습니다. 긴장 중의 슬픔의 기도는 대단한 피로에 싸이게 됩니다. 결국엔 잠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기도하는 곳을 떠나거나 기도하는 것을 중단해버리고 만 사람들은 함께 기도하기 위한 예수님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라는 말씀으로 격려받고 일어서기를 바랍니다.
- Ⅱ 41-44절
제자들의 이러한 모습 중에서도,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중대한 과제를 위해 고통을 참아가며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때의 기도는 예수님의 수난말씀중에 가장 격정적인 곳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 위에서의 모습보다 더욱더 격한 것이었습니다. 두려움, 전율, 번민, 죽을 정도로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같은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고민은 더이상 제자들과 함께 나눌 만한 간단한 수준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 원인은 「이 잔」에 있었습니다. 보통의 잔이 아니었습니다. 이 경우의 「잔」은 본인의 운명을 나타내며, 특히,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노여움과 심판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사야51:17「여호와의 손에서 그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깰찌어다」
예수님께서는 한치의 거짓없는 인간이셨습니다. 죽음에 반발하고, 본능적으로 죽음을 혐오하는 인간이셨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이 기도는 예수님의 인간적인 면을 극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태어나면서 성령에 의해 죄의 더러움으로부터 보호받았던 의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죄로인한 벌로 죽을 이유가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아버지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구원의 주로써 그 직책을 다하기 위해, 죄인들의 대속물로써 우리들의 죄를 대신 지어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순간 십자가의 죽음을 향해, 죄를 향한 하나님의 노여움의 잔 전부가 예수님의 위에 부어지려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들을 위해 저주받은 존재가 되어주셨습니다. 죄를 몰랐던 분이 죄인이 되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성스런 성질이 그 위에 놓여진 죄의 무게 전부를 직접 느끼신 것이었습니다. 이곳에 상상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고민이 있습니다.
주 예수님의 이 기도는, 그의 구원의 주로써의 일하심이 인간과는 동떨어진, 유유자적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의 모든 것이 땅과 관련깊은 것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들 연약한 자의 마음을 따뜻하게하시고, 우리들 손에 닿는 곳에 예수님께서 서 계심을 깨닫게 하십니다. 얼마나 수많은 크리스챤이 이 기도를 자신의 기도로 울며 외쳤을까요? 자신의 남편, 아내,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려 할 때, 불치의 병이 자신의 육체를 갉아먹을 때, 그 외의 수많은 고민의 잔이 굳게 믿는 자들에게 주어졌을 때, 예수님조차도 이러한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를 하신것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을까요? 이 기도하시던 중에,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의 힘을 도왔습니다. (43절) 하늘로부터의 도움, 힘을 도와주는 것은 잔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전부 다 마시게 하기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이 같은 기도를 할 때, 예수님의 영은 같은 힘을 주시고, 그 고난을 견디고,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힘을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Ⅲ 예수님은 이 기도후에 더욱더 깊은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아버지의 원대로, 라는 것은 하나님의 「생각, 계획, 예전 결정」라는 일들의 총칭입니다.
이 세계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영원이 정하신 뜻(성정)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잠언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16:9「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히브리서6:17「하나님의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진리 그 자체되시는 하나님께서 맹세하시면서까지 그 뜻, 계획이 불변하심을 보증하셨습니다. 아침에 생각한 것을 저녁에 변경하고 마는 인간이 이러한 하나님을 어리석게 여기며 경시하는 거만에 빠져있습니다. 인간이야말로 어리석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곳에서 우리들의 뜻대로가 아닌, 아버지여,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만일 이 잔을 옮기지않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라면 그대로 하옵소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뜻에 따랐습니다. 예수님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 생각에 일치시키는 것, 그것이 기도의 진정한 의미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주로써 지상에 보내심을 받은 데다가, 대속물로 죽임당할 것을 받아들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의지,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영원의 계획에 자신을 순종시키셨습니다.
이곳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자발적인 것이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강제적으로 억지로 잔을 마신것이 아니었습니다. 진실로, 마음으로부터 순종하며 마실 수 있도록 싸운것이 이 기도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향한 영원의 계획을 이 지상에서의 역할로 수행하려 할 때 우리들은 예수님과 같은 기도의 싸움을 하고, 마음으로부터 적극적으로 순종하도록 자신을 정돈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는 원하나이다」라고 망연자실하며 기도하는 것은 소망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심한 공격에 항복한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라며 기도하는 것은 완전한 패배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완전히 패배하여 꿈도 잃어버린 사람이 이런 기도를 하는 것은 심한 통한과 자포자기의 말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가 아닌, 완전히 신뢰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때가 본래의 의미하는 대로의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선의와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능력과 인도를 진실하게 신뢰하고, 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들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이 기도의 진의인 것입니다. 신뢰를 담은 기도만이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여러분 위에 성취됩니다.
맺음) 하나님께서 세우신 우리들을 향한 영원의 계획을 우리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지상에서 실현할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여러분을 통해 실현되는 것이며, 또한 저를 통해서 실현됩니다. 우리들이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할 때, 우리들의 믿음에 가져오게 될 열매는 다음과 같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한층 더 자신을 낮추게 됩니다. 우리들은 한층 더 하나님을 신뢰하는 방향에 전진합니다. 우리들은 한층 더 인생에 있어서 열매를 맺는 방향에 인도받게 됩니다. 우리들은 지금보다 더욱 영적으로 높은 상태로 울려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이 예수님의 기도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계속해나아갑시다. 하늘나라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도록.
18nd March 2018
“Prayer at Gethsemane” Luke 22:39-46 cf Matt 6:9-10
Introduction
Gethemane’s garden was “the usual place”, as the author of Luke’s Gospel tells us.
Jesus often prayed with the disciples there. He prayed in the same place as usual, but he prayed a totally different prayer on the night. This prayer he prayed was the deepest, filled with suffering, and mysterious part in the Bible. It is not possible to explain with human wisdom. Behind this prayer is the wisdom of God who has complete wisdom.
I v39-40
Luke began describing the event of this passage with Jesus words “Pray that you may not enter into temptation”, and finished with the same words. The disciples who followed the Lord has just received the warning that “Satan may sift you like wheat”. Furthermore they were told the way the world sees the disciples of Jesus would change with the event of Jesus’ crucifixion. The situation surrounding the disciples will worsen. Responding to these changes requires holding firm onto faith. And to do so, perseverance in prayer is the most important.
For Jesus himself, it is the prayer of facing his substitutional death. The Spirit of the Lord prayed in excessive sorrow and grief. “Father, if you are willing, remove this cup from me.” It was the war against temptation of the Lord.
The disciples, according to the other gospels, Peter, John, James, were invited to stay close to Jesus and received instructions to stay awake and to pray together with the Lord. They were not only to pray for themselves so they would not fall into temptation, but also to pray for the Lord. We need friends in faith, and friends to pray with. It is particularly true when we face difficulties and sufferings. May we be the one who grieve and suffer with our Lord who prays with grief and suffering.
Church prayer meeting and other places where more than two gather to pray are the place where not only we share the work of Lord Jesus but also share sufferings, sorrows, joys of our brothers and sisters in their walk. Many people avoid meeting together and abandon faith when they face sufferings, but it should be the opposite. Rather, actively meeting with others to pray with, and sharing the yoke is the faster way to regain one’s strength. The work for the gospel of Christ is not something we can accomplish alone. It is also a mistake to think that you can recover from the suffering by yourself. When we pray together we can win over temptations, and overcome sufferings.
The disciples were praying with Jesus in the beginning, but they “fell asleep for sorrows” as they watched Jesus praying (v45). In the tension, prayer of sorrow had brought exhaustion, and they fell asleep. If you stopped praying and left meetings of prayer, I hope you will be encouraged by the word of Jesus “Why are you sleeping? Rise and pray that you won’t enter into temptation” and get back to praying together.
v41-44
Despite the disciples’ predicament, the Lord Jesus prayed in anguish for the important matter. “Father, if you are willing, remove this cup from me. Nevertheless not from my will, but yours, be done.”
This prayer is described as the greatest passion amongst the stories of the Lord’s suffering. It was even more passionate than when he was on the cross. Fearing, trembling, beginning to suffer, even to the death, as much as “great drops of blood falling down to the ground”. The Lord’s suffering was beyond what the disciples can share with. The reason was this “cup”. It was not a common cup. It shows the destiny of the person, and especially in the Old Testament, it symbolised God’s anger and judgement. Isaiah 51:17 “you who have drunk from the hand of the Lord, the cup of his wrath, who have drunk the dregs the bowel, the cup of staggering”.
The Lord Jesus was the real human. He was a human who instinctively fear death and react against. This prayer describes the culmination of humanity of Lord Jesus. The Lord did not sin; he was the righteous one protected from sin from birth by the Holy Spirit. Therefore he shouldn’t have to die for the judgement for sin. But as the Messiah sent from the heavenly Father, to complete the task of the saviour, he bore our sins on himself as a substitute for sinners. And now, facing the death of the cross, the cup of wrath of God was about to pour on the Lord. Christ has become the curse for us. The one who knows no sin has become sin for us. The nature of God’s holiness directly felt the weight of all sins. In this is the indescribable suffering of Christ.
The prayer of Jesus shows that his work as a saviour was not done calmly, but an earthly work. Furthermore, it warms our weak hearts and reminds us that the Lord is standing in the reach of our hands. How many Christians cries out this prayer as their prayers? When our own husband, wife, child is taken from this world, when we suffer from incurable disease, when so many suffering cups are given to the faithful one, remembering how our Lord Jesus prayed at Gethsemane gives much encouragement. During the prayer an angel appeared and encouraged Jesus (v 43). The help from heaven was not to take away the cup, but to give strength to drink it all. When we pray like this, the Spirit of Jesus gives strength to bear the suffering, and strength to pray that your will be done.
III The Lord then prayed to the heavenly Father,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God’s will encompass all aspects of God’s “thought, scheme, plan, decision”. The world progress according to God’s permanently set will. Proverbs 19:21 says “Many are the plans in the mind of a man, but it is the purpose of the Lord that will stand”. “The heart of man plans his way, but the Lord establishes his steps (16:9).” Hebrew 6:17 “ So when God desired to show more convincingly to the heirs of the promise the unchangeable characters of his purpose, he guaranteed it with an oath.” God of truth guaranteed with an oath that his will and plan is unchangeable. Humans who change the minds quickly despise truthful God, and foolishly become arrogant, thinking we are better. Such is the foolishness.
Jesus prayed here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If it was his will that this cup wasn’t taken, then let it be done. He follows the Father’s will with obedience. Matching His own will with the will of God, that is the true meaning of prayer. As a saviour sent to the earth, the Lord accepted the substitutional death. He was obedient to God’s will, God’s purpose, God’s unchangeable plan.
From this we can see clearly his willingness to be put on the cross. He wasn’t made to drink the cup forcefully. The prayer was the fight to drink the cup with true obedience. When God tries to accomplish his unchangeable plan for you on earth, you must fight the same fight so that you can follow with active obedience from the heart. When you pray without thinking clearly “your will be done”, it means the death of hope. When you surrender to massive attacks and pray “your will be done”, you acknowledge your loss.
When you made an utter mistake and you know your dream is gone and pray this prayer, your words become regretful and frustrated. Unlike these examples of praying, when it is prayed with complete trust, it becomes true meaning. Trusting God’s love, goodness, his plan, power and guidance, and accepting difficult circumstances is the true meaning of this prayer. When you trust and pray, God’s will will be done in your life.
Conclusion:
As God’s people, we have a commission from God to realise God’s unchanging plan for us on earth. Truly, the will of God will realise through you and through me. When we pray that “your will be done”, it will lead to more fruits in our faith. We are humbled even more. We walk further towards trusting God himself. We are led to bear more fruits in our lives. We are drawn up to higher spiritual standard.
Therefore, with the help of the Holy Spirit, let us continue to live in faith with this Lords prayer. Let us press on to receive the prize of the kingd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