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年7月24日 エペソ 2:11 〜18「敵意の廃棄」
序文)今日の箇所11節から22節までは「キリストにある異邦人とユダヤ人の統合」という大主題が展開されているところです。これはすでに10節で語られていたところでした。互いの中にある敵意は、どのようにして、和解と主の平和に与るのかをおしえられます。
Ⅰ 11-12節 「以前は」
神があなたのために偉大なことをしてくださった。それは死んでいた者を生かし、神の作品としてあわれみと愛を豊かにそそぎこんでくださった。ここで、以前の状態を思い出してください。キリストにある日々において、謙遜と感謝を一杯に満たすためです。
エペソ人を始め私たちはキリストに出会う以前は無割礼の異邦人でした。神の人類救済の歴史において異邦人であり、神の民として契約のしるしである割礼を受けることのない存在でした。神の救いの祝福にあずかれない者たちとユダヤ人から見られていました。
ユダヤ人は異邦人を、地獄の火を燃やす薪になるために神が造られたと言っていた。蛇は押しつぶすのが一番で、異邦人は殺すのが一番であるとまで言われていた。異邦人の家に入ることは汚れることであると考えていた。
エペソ人の教会にたいする以前の関係は、異邦人であり、無割礼である。神に対する以前の関係は遠く離れており救いの知識をもたず、神の約束にも与かっていなかった。
「そのころの」「あの時期」「この状況下に」「キリストから離れ」ていた。異邦人としてメシアの知識と希望に欠けていた。キリストは人々の唯一の贖い主であり、神と人との間の唯一の仲保者であるので、キリストから離れていることは、贖い主から離れ、神から離れていることである。キリストのうちにあることはすべての祝福の総計である。キリストから離れることはすべての悪を含んでいる。
「イスラエルの国から除外され」キリストに関わる期待において救いと祝福の宝庫であったイスラエル国自体から除外されていた。今は天の国の市民権を得ている。
「約束の契約については他国人」救い主を世に下すという神の約束(恵みの契約)を含む、族長たちと神の諸契約、「この世にあって望みなく、神もない」霊的な暗黒が、ここにとどめを刺されている。「明日は死ぬのだ、さあ飲み食いしよう」と言っていた。メシアを待望することは、現在がどのような者でも、将来は光り輝いている。歴史は楽観的である。しかし、異邦人であることは、望みがない。未来は行き場がない。聖歌の「神なく、望みなく、さまよいし我は」のとおり。
キリストにあって、私たちは神に至る道の途上にあるという、新しい歴史観を持つことを得た。
Ⅱ エペソ2:13〜16「しかし・・・今は」
「しかし以前は遠くはなれていたあなたがたも、今ではキリスト・イエスの中にあることにより、キリストの血によって近い者とされたのです。キリストこそ私たちの平和であり、二つのもの(注:異邦人とユダヤ人の間にある隔ての壁をとりのぞく)を一つにし、隔ての壁を打ち壊し、ご自分の肉において、敵意を廃棄された方です。敵意とはさまざまな規定から成り立っている戒めの律法なのです。このことは、二つのものをご自身において新しいひとりの人に造り上げて、平和を実現するためであり、また、両者をひとつからだとして、十字架によって神と和解させるためなのです。敵意は十字架によって葬り去られました。」
今は、暗黒の闇は去り、喜びの光が舞踊っている。聖にして霊的な神の国に異邦人は近づけられ救い主の祝福のただ中へ入れられた。キリストから離れていた者が近い者になった。それどころか、キリストの中にいる者となった。それはキリストの血によったのである。そのために払われた犠牲の高価さを覚えよう。キリストの血の注ぎなしには神と異邦人の和解はないし赦しはない。
二つのものを一つにする。異邦人とユダヤ人の間にある隔ての壁を取り除く。神殿には、第一番目の庭、異邦人の庭、第二番目の庭、婦人の庭とあり、この境目に大理石の衝立てがあり、この壁の所々に異邦人がここから入ると直ちに死罪と宣告した立て札があった。
神の御前から異邦人を閉め出していた。これをキリストは廃棄してくださった。
キリストこそ平和 平和を造り出す者ではなく、平和そのものである。キリストの前にあるあらゆる隔ては解け去っている。
敵意 ユダヤ人の異邦人への敵意は大変なものである。その原因は律法を知らず守っていないからである。異邦人が神に敵意を示す者となっているから。キリストはこの律法の要求を具体的に肉において満たされた。律法の命じるところを完全に踏み行われて、これを廃棄された。「廃棄」=「働くことができなくした。」「力を奪った。」それによって、二つの人間集団を一つからだに造り上げ、それを神に和解させられた。ユダヤ人と異邦人をご自身のもとにおいて、新しい一人の人にした。クリスチャンとした。質的に新しい者とした。私たちは信仰により、ユダヤ人となるのではない。ユダヤ人は信仰により異邦人となるのではない。信仰により両者はクリスチャンとなる。
人と人の和解は、人と神の和解に関係を持っている。キリストは十字架によってそれを成し遂げられた。十字架は屈辱と敗北のしるしではなく、人間のための祝福と勝利であった。キリストにあって過去にお互いが持っていた相違はどうでもよいものとなった。同じ主につながる者としての、新しい関係が大切である。
私たちが、互いに和解を必要とするときは、いつも、キリストのもとに来れば良いのです。キリストを見つめるとき、自分の罪のために肉を裂き、血を流してくださった事を覚え、つまらない自己主張を続ける事ができなくなります。相手の罪ではなく、自分の罪を見つめてへりくだる以外にないのです。そして「たましいの砕かれた者を救われる」(詩篇34:18)主・キリストの平和がくるのです。同じ御霊によって祈る事で、一致がもたらされます。「からだは一つ、御霊は一つです」(エペソ4:4)。
Ⅲ エペソ2:17〜18 「父に近づく道」
「それからキリストは来られて、遠くにいたあなたがたに平和を宣べ、近くにいた人たちにも平和を宣べられました。私たちは、このキリストによって両者ともに一つの御霊において、父のもとに近づくことができるのです。」
キリストは、いつ来られたか。三つの考え方があります。1 十字架以前の宣教ととる説。2 復活後の40日間ととる説。3 聖霊による霊的な来臨と宣教ととる説です。
聖霊によるととるのが、順当で、聖霊の降臨により、それ以後異邦人にもユダヤ人にも平和を述べつたえたこと、一つみたまによって父のみもとに近づく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た。キリストは平和の福音を携えてこられたのです。和解と平和のメッセージは、十字架を土台とした教会を通して告げ知らされてきたのです。
私たちは「大胆に神の恵みの御座に近づく」(ヘブル4:16)ことができるのです。
「一つの御霊」が、ユダヤ人の内にも、異邦人のうちにも働かれるので、私たちは父なる神の子どもとして近づくことができるのです。御霊は、私たちクリスチャンの生きる環境であり、私たちを生かす力なのです。
結び)あなたがたの中に敵意がありますか。自分の心の中に、家族の間に、隣人との間に、自分が関係する働きの中にありますか。共に、キリストのもとに、十字架のもとにひざまずき、助け主・御霊を崇めて平和の実りを求めましょう。
2016년 7월 24일 에베소서 2:11-18 「적의의 폐기」
서문) 오늘 말씀은 11절부터 22절까지로 「그리스도에 속한 이방인과 유대인의 통합」이라는 대주제가 전개되는 곳입니다. 이것은 이미 10절에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서로간에 품고있는 적의는 어떻게해서 하나님의 평화와 화해를 얻게되는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Ⅰ 11절-12절 「그때에」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위해 위대한 일을 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하나님의 작품으로써 자비와 사랑을 풍성하게 부어주셨습니다. 이전 상태를 다시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에 속한 생활로써 겸손과 감사를 가득 채우기 위해서입니다.
에베소인들을 시작하여 우리들은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무할례의 이방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류구제의 역사속에 이방인이었으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계약의 증표로 할례를 받지 않은 존재였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축복을 받지 못한 자들로 여겼습니다.
유대인은 이방인을 지옥의 불로 태워 재로 만들기 위해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뱀은 발로 밟는 것이 제일이며, 이방인은 죽이는 것이 제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방인 집에 들어가는 것은 부정하게 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에베소 교회에 대한 이전 관계는 이방인이었으며 무할례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이전 관계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 구원의 지식도, 하나님의 약속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 즈음의」 「그 때」 「이 상태에서」 「그리스도 밖에」 있었습니다. 이방인으로 메시야에 대한 지식과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유일한 대속자이며,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유일무이한 중보자이시므로, 그리스도의 밖에 있는 것은 대속자로부터 떨어져, 하나님 밖에있는 것이 됩니다. 그리스도안에 있는것은 모든 축복의 합계입니다. 그리스도의 밖에 있는 것은 모든 악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밖의」 그리스도에 관련된 기대로써 구원과 축복의 창고였던 이스라엘 나라에서 배제되어 있었습니다. 지금은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얻었습니다.
「약속의 계약에 따르면 타국인」 구세주를 세상에 보내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혜의 계약)을 포함, 족장들과 하나님의 계약, 「세상에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영적인 암흑이 이 곳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내일은 없다, 자!먹고 마시자」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메시아를 기대하는 것은 현재 어떠한 자라도 장래는 빛을 발하게 됩니다. 역사는 낙관적입니다. 그러나 이방인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미래에 대한 소망이 없습니다. 찬송가의 「하나님은 없고, 소망이 없고, 헤메는 우리」와 같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향하는 길을 걷고 있으며 새로운 역사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Ⅱ 에베소서2:13-16 「이더니 … 이제는」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주: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의 벽을 없애다) 자기의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지금은 암흑이 사라지고 기쁨의 빛이 넘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성결케 된 이방인은 하나님나라에 나아가게 되고, 구세주의 축복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밖에있던 자가 가까이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인간 것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치러진 값진 희생을 기억합시다. 그리스도의 피가 없이는 하나님과 이방인의 화해는 없으며 속죄도 없습니다.
둘을 한 몸으로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에 있는 벽을 없애다. 성전에는 첫번째의 정원, 이방인의 정원, 두번째 정원, 부녀자의 정원이 있어서 이 경계에는 대리석의 칸막이가 있으며, 이 벽안에 이방인이 들어가려 하면 즉시 사형을 받게된다고 쓰여있는 패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앞에서 이방인을 쫓아내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그리스도가 없애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야 말로 평화 평화를 만들어내는 자가 아니라 평화 그 자체인 것입니다. 그리스도 앞에 있던 수많은 벽이 사라졌습니다.
적의 이방인을 향한 유대인의 적의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이방인은 율법을 모르고 지키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방인이 하나님께 적의를 품고있는 자로 되어있으므로. 그리스도는 이 율법의 요구를 구체적으로 몸소 완수하셨습니다. 율법이 명하는 것을 완전하게 실천하시고, 그리고 이것을 없애셨습니다. 「폐기」〓「일할 수 없게 하다」 「능력을 없애다」 그러므로 두가지의 인간집단을 하나로 만드시며, 그것을 하나님과 화해시키셨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그분의 발 아래에 두시고, 새로운 한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그것은 크리스챤입니다. 질적으로 새로운 자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써 유대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은 믿음으로 이방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양자가 믿음으로써 크리스챤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화해는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화해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로써 그것을 성취하셨습니다. 십자가는 굴욕과 패배의 증표가 아니라, 인간을 위한 축복과 승리입니다. 그리스도로 인해 과거의 서로간의 다른점이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같은 예수님에 속한 자로써의 새로운 관계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간에 화해를 필요로 할 때는 언제나 그리스도에게 돌아오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자신의 죄를 위해 몸이 찢기고, 피를 흘려주신 것을 기억할 때, 부질없는 자기주장을 계속하지는 않게 될 것입니다. 상대의 죄가 아니라, 자신의 죄를 바라보고 회개하지 않을 수는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편34:18) 주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를 얻게되는 것입니다. 같은 성령에게 기도함으로써 일치가 유지되는 것입니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에베소서4:4)
Ⅲ 에베소서2;17-18 「아버지께 나아감」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는 언제 오셨는지 세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1.십자가 이전의 선교로 보는 설 2.부활후의 40일간으로 보는 설.
3성령을 통한 영적 재림과 선교로 보는 설입니다.
성령에 의한 것으로 보는것이 순당하며, 성령의 임재로 이 후의 이방인에게도 유대인에게도 평화를 전했던 것, 하나의 성령으로 아버지께 나아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평화의 복음을 준비해오신 것입니다. 화해와 평화의 메세지는 십자가를 토대로 한 교회를 통해 전해져 온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히브리서4:16) 수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 중에는, 「한 성령」이 이방인 속에도 일하시므로, 우리는 아버지되신 하나님께 그 분의 자녀로써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 크리스챤이 사는 환경이며, 우리를 살리시는 힘이십니다.
맺음) 여러분들 속에 적의가 있습니까? 자신의 마음속에, 가족간에, 이웃사이에, 자신이 속한 관계속에 일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 앞에, 십자가 앞에 무릎꿇고, 도우시는 분, 성령을 따르며 평화의 열매를 구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