コメントはまだありません

2015年3月15日 礼拝 説教(日本語文、韓国語文)

2015年3月15日 礼拝音声

 

2015年3月15日  詩篇 22篇22-31 「復活と勝利の主」

詩篇 22は、1-21節の部分と22-31節の部分に明白に分かれます。先回は十字架の主イエス様

について学びました。今回は、復活と勝利の主イエス様についての預言です。

歴史的には、この詩篇の後半はただ、ダビデの祈りに主が答えて、ダビデが救助された広範囲な結果の描写にすぎません。しかし預言的に考察されると、この章句は、神の国の偉大な詩的絵図の一つなのです。それはキリストご自身の解釈に適っています。ルカ24:26-27「 キリストは、必ず、そのような苦しみを受けて、それから、彼の栄光にはいるはずではなかったのですか。」それから、イエスは、モーセおよびすべての預言者から始めて、聖書全体の中で、ご自分について書いてある事がらを彼らに説き明かされた。」44-45節「さて、そこでイエスは言われた。「わたしがまだあなたがたといっしょにいたころ、あなたがたに話したことばはこうです。わたしについてモーセの律法と預言者と詩篇とに書いてあることは、必ず全部成就するということでした。」そこで、イエスは、聖書を悟らせるために彼らの心を開いて、・・・」

「聖霊はダビデの口を通して、キリストの御復活の公表を私たちにしておられるのです。」(カルビン)

詩篇22篇

22節 私は、御名を私の兄弟たちに語り告げ、会衆の中で、あなたを賛美しましょう。

「語り告げ」原語は「走り書きする、書き記す」からきたことばです。「物語る、何事かを告げ知らせる」詩人は17節で「私は、私の骨を、みな数えることができます。」と嘆いています。その彼がここでは、主の御名を同胞たちのまっただ中で物語る、賛美すると誓っています。

また、ここはヘブル2:11-12に引用されています。「聖とする方も、聖とされる者たちも、すべて元は一つです。それで、主は彼らを兄弟と呼ぶことを恥としないで、こう言われます。「わたしは御名を、わたしの兄弟たちに告げよう。教会の中で、わたしはあなたを賛美しよう。」

「兄弟たちに語り告げ」主イエス様は、人々が神様について知り学ぶために人となってくださったお方です。イエス様は復活された朝に、特に彼の「兄弟たち」のことをお話になりました。

マグダラのマリヤに向かってヨハネ20:17「イエスは彼女に言われた。「わたしにすがりついていてはいけません。わたしはまだ父のもとに上っていないからです。わたしの兄弟たちのところに行って、彼らに『わたしは、わたしの父またあなたがたの父、わたしの神またあなたがたの神のもとに上る。』と告げなさい。」マタイ28:10「すると、イエスは言われた。「恐れてはいけません。行って、わたしの兄弟たちに、ガリラヤに行くように言いなさい。そこでわたしに会えるのです。」

「会衆の中で」は、「社会」「集会」あるいは「会衆」をあらわすことばカーハールという語です。他にはエイザーという語も用いられますが、二つは同義語として入れかえ可能な語です。何か群衆、民衆という単純な意味から始まって、旧約聖書では「公的な集合」におけるイスラエルを指すことばとして用いられました。新約聖書では、これらをエクレシアと訳して、現在の「教会」という用語がきました。

23節 主を恐れる人々よ。主を賛美せよ。ヤコブのすべてのすえよ。主をあがめよ。イスラエルのすべてのすえよ。主の前におののけ。

ダビデは、ヤコブの末、イスラエルの子孫のことを語りました。イスラエルの集会の中で主の御名をあかしすることが彼の誓いでした。しかし兄弟たちについて、彼は、注意深く制限を付けて「主を恐れる人々よ」と言っています。イエス様も兄弟たちについて、マタイ12:50「天におられるわたしの父のみこころを行なう者はだれでも、わたしの兄弟、姉妹、また母なのです。」

このようにダビデも自分の聴衆を制限しました。

真の賛美を勧めています。賛美は人から人へと伝染します。「さんびせよ」「あがめよ」「おののけ」の三つ続く動詞があります。「さんびせよ」救いの喜びの幸いな歓呼です。「あがめよ」重い、重要で、名誉ある、栄光ある、ということばから来ている。私たちは神を賛美するにあたり、神の栄誉を一番重くはかるべきです。「おののけ」かしこむこと。崇敬のおそれを抱く者を「主を恐れる人々」と言っています。

24節 まことに、主は悩む者の悩みをさげすむことなく、いとうことなく、御顔を隠されもしなかった。むしろ、彼が助けを叫び求めたとき、聞いてくださった。

「悩む者」ここでは、受難のメシヤ、キリストを指します。イザヤ53:4-7「まことに、彼は私たちの病を負い、私たちの痛みをになった。だが、私たちは思った。彼は罰せられ、神に打たれ、苦しめられたのだと。しかし、彼は、私たちのそむきの罪のために刺し通され、私たちの咎のために砕かれた。彼への懲らしめが私たちに平安をもたらし、彼の打ち傷によって、私たちはいやされた。私たちはみな、羊のようにさまよい、おのおの、自分かってな道に向かって行った。しかし、主は、私たちのすべての咎を彼に負わせた。彼は痛めつけられた。彼は苦しんだが、口を開かない。ほふり場に引かれて行く小羊のように、毛を刈る者の前で黙っている雌羊のように、彼は口を開かない。」24節は個人的意味をおびています。キリストがお話しになっている。ヨハネ16:33「わたしがこれらのことをあなたがたに話したのは、あなたがたがわたしにあって平安を持つためです。あなたがたは、世にあっては患難があります。しかし、勇敢でありなさい。わたしはすでに世に勝ったのです。」

25節 大会衆の中での私の賛美はあなたから出たものです。私は主を恐れる人々の前で私の誓いを果たします。

詩人は今、目前の会衆だけでなく、将来の大会衆にまで、賛美を聞くことを広げている。彼が受難の苦しみにあった時になされた誓いの弁償は、今や贖われます。彼は個人的な誓願の感謝の捧げ物を自発的に捧げます。犠牲が屠られてのちに、血がそそぎだされ、肉の切片が祭壇の上に置かれ、それから犠牲の肉の残りは喜ばしい祭りの宴のために奉献者に割り当てられました。(レビ記7:11-21)。その肉は、捧げられた日か、次の日までに食べ尽くされ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した。それは当然、自分たちだけでは食べ尽くしえないので、貧しい者を招待することが暗示されております。25-26節で詩人が指していることばはその習慣です。

26節 悩む者は、食べて、満ち足り、主を尋ね求める人々は、主を賛美しましょう。あなたがたの心が、いつまでも生きるように。

この感謝の捧げ物の受難者による招待は、ただ謙遜なものにだけ与えられます。彼は食事するすべての物に満腹を約束しておられるのです。これは主イエス様によって制定された聖餐式を暗示しています。第二のダビデであるイエス様は、死の受難を経て王座につかれたが、私たちを彼の受難の実りに与からせてくださるのです。

キリストの公布の世界的効果 27-31節

27節 地の果て果てもみな、思い起こし、主に帰って来るでしょう。また、国々の民もみな、あなたの御前で伏し拝みましょう。28節まことに、王権は主のもの。主は、国々を統べ治めておられる。

「思い起こし」何を思い起こすのでしょうか。目的語がありません。一つの示唆は、異邦人がちょうど放蕩息子のように遠隔地で「われにかえり」父の元に返ってくるように、自分たち自身を思い出すということです。宗教改革者カルビンは、異教の諸国民が真の礼拝様式と主への信仰を与えられて偶像から復帰を思い起こすことと説明しています。キリストによる福音の公布が、世界中の国民に「思い起こさせて」主に立ち返ることが起こると言うことを信じるように。

29節 地の裕福な者もみな、食べて、伏し拝み、ちりに下る者もみな、主の御前に、ひれ伏す。おのれのいのちを保つことのできない人も。30節 子孫たちも主に仕え、主のことが、次の世代に語り告げられよう。31節 彼らは来て、主のなされた義を、生まれてくる民に告げ知らせよう。

29節はもう一つの宴会、26節に描かれたものよりもさらにずっと盛大な宴会のことを語っております。最もこれも同じ聖餐式ですが。現代の世界に存在する階級による人々の区別も、来るべき世界では一掃されています。「裕福な者もみな」主のもとにやってきます。彼らの高ぶり奢侈(しゃし)は、キリストの霊的富を味わった人々が、彼の聖なる臨在の場で自らへりくだると同様に、全く変えられます。貧しい者、迫害の中にあって監視されていた受難者たちも、キリストの贖いに満腹します。彼らもまた、彼の聖なる臨在の場にひれ伏します。貧しい者、死のぎりぎりの縁にたっている者(ちり—墓のちりのこと)、自分の魂を生き保たせることのできないものが、メシヤの宴会に生命と喜びを見いだします。

結び)こういう贖罪的な宴会、キリストの福音の革命的な社会力のおかげで、子孫たちは代々、主に仕えます。詩篇は幾世紀にもわたって到来する神の約束をもって終わります。最後の終末ははっきりと述べられています。私たちに見える限り王なるキリストの福音は前進し、さらに前進してついに、彼は再びこられるのです。

 

2015 3 15     시편 2222-31   부활과 승리의 주님

 

시편22편은 1-21절의 부분과 22-31절 부분으로 명백하게 나뉘어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십자가의 주예수님에 대하여 배웠습니다. 오늘은 부활과 승리의 주예수님에 대한 예언입니다.

 

역사적으로, 이 시편의 후반부는 다윗의 기도에 여호와께서 응답하셔서, 다윗이 넓은 범위에 걸쳐 구조된 결과를 그리고 있는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예언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면, 이 문구는 하나님나라의 위대한 시적 묘사의 하나가 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24:26-27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44-45절「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에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성령은 다윗의 입을 통해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을 공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칼뱅)

시편22

22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선포하고」는 「달리면서 쓰다, 기록해 남기다」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전하다, 무언가를 알리다」 시인은 17절에서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라고 한탄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동포들에게 전하고, 찬미할 것을 서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곳은 히브리서2:11-12에 인용되고 있습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의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형제에게 선포하고」주 예수님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깨닫게 하도록 인간이 되어주신 분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아침, 특히 그의 「형제」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막달라마리아에게 요한복음20: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 마태복음28:10「이에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무서워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하시니라」

「회중에서」란 「사회」 「집회」 또는「회중」을 나타내는 말, 카바르라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는 에이자라는 말도 쓰이는데, 이 두가지는 동의어로 서로 바꾸어 사용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이것은 어떤 군중, 민중이라는 단순한 의미에서부터, 구약성경에서는 「공적인 집회」에 관한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말로써도 사용되어 왔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이것들을 에크레시아라 번역하고, 현재는 「교회」라는 용어가 쓰이고 있습니다.

 

23 여호와를 두려워 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찌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찌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찌어다

다윗은 야곱의 자손,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집회중에 여호와께 영광돌리는 것이 그의 서원이었습니다. 그러나 형제들에 대하여 주의 깊은 제한을 붙여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형제들에게 마태복음12: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이와같이 다윗도 자신의 청중을 제한했습니다.

진실한 찬송을 권하고 있습니다. 찬송은 사람에서 사람에게 전염됩니다. 「찬송할찌어다」 「영광을 돌릴찌어다」 「경외할찌어다」 이 세가지 동사가 있습니다. 「찬송할찌어다」 구원의 기쁨으로 인한 행복을 기뻐합니다. 「영광을 돌릴찌어다」 중하다, 중요하고 명예있는, 영광있는 이라는 말에서 유래하고 있다. 우리들은 하나님을 찬송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영예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경외할찌어다」 받드는 것. 숭배의 경외함을 가지고 있는 자를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24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얼굴을 저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브루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곤고한 자」 이곳에서는 수난의 메시아,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이사야53:4-7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24절은 개인적 의미를 띠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25 대회 중에 나의 찬송은 주께로서 것이니 주를 경외하는 앞에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

시인은 지금 눈앞의 회중만이 아니라, 장래의 대회중에게 까지도 찬송을 듣는 것을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그가 수난의 고통속에 있을 때 맺어진 약속의 보상이 지금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그는 개인적 소원에 대한 감사의 제물을 자발적으로 드리고 있습니다. 희생물을 잡아 피를 뿌리고, 잘린 고기조각이 제단위에 올려져, 남은 희생의 고기는 기쁨의 축제를 위해 봉헌자에게 나뉘어집니다. (레위기7:11-21) 그 고기는 바쳐진 날이나 그 다음날까지 다 먹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것은 당사자들만으로는 다 먹어 치울 수 없으므로, 가난한 자들을 부르는 것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25-26절에서 시인이 가리키고 있는 말은 그 습관입니다.

 

26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찌어다

이 감사의 제물을 바친 수난자의 초대는 그저 겸손한자들에게만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는 먹는자 모두가 배부르게 될 것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제정된 성찬식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제2의 다윗되신 예수님은 죽음의 수난을 걸쳐 왕좌에 앉으시지만, 우리들에게 그의 수난의 열매를 부여해주고 계십니다.

그리스도 공포의 세계적 효과  27-31

27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열방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경배하리니 28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열방의 주재심이로다

「기억하고」 무엇을 기억하는 것일끼요? 목적어가 없습니다. 한가지 시사는, 탕자와 같은 이방인이 머나먼 곳에서 「제정신이 들어」 아버지게께 돌아가는 것처럼,  자기자신에 대해 기억하는 것을 말합니다. 종교개혁가 칼뱅은 이교의 각 국민이 진실한 예배와 예수님에대한 믿음을 부여받아 우상으로부터 복귀를 기억하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인한 복음의 공포가 세계의 모든 국민이 「기억하게해서」 예수님께 돌아올것이라는 말을 믿도록 하고 있습니다.

 

29 세상의 모든 풍비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에 내려가는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앞에 절하리로다 30 후손이 그를 봉사할 것이요 대대에 주를 전할 것이며 31와서 공의를 장차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것이로다

29절은 또 한가지의 연회, 26절에 그려진것 보다 훨씬 더 성대한 연회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같은 성찬식이지만. 현대 세계에 존재하는 여러 층의 사람들의 구별도 다시오게 될 세계에서는 모두 청산됩니다. 「모든 풍비한 자」 예수님 앞에 모두 나아오게 됩니다. 그들의 거만한 사치는 그리스도의 영적인 부를 알고있는 자들이 그의 정결한 임재의 장소에 엎드릴 때 모두가 변하게 됩니다. 가난한 자, 박해중에 감시받고 있는 수난자들도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배부르게 됩니다. 그들도 예수님의 정결한 임재의 장소에 엎드립니다. 가난한 자, 죽음의 경계에 서있는, 자기 영혼을 유지시킬수도 없는 자가 메시아의 연회에 생명과 기쁨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맺음) 이러한 속죄적인 연회, 그리스도 복음의 혁명적인 사회력 덕분에, 자손들은 대대에 걸쳐 예수님을 섬김니다. 시편은 수세기에 걸쳐 도래하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최후의 종말은 분명하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이 보고있는 한 왕되신 그리스도의 복음은 전신하고, 더욱이 전신 끝에 예수님은 다시 오시는 것입니다.

 

コメントを投稿

海浜幕張めぐみ教会 - Kaihin Makuhari Grace 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