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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年5月17日 礼拝 説教(日本語文、韓国語文)

2015年5月17日 礼拝音声

 

2015年5月17日  詩篇 25篇1-7節「瞑想と祈りの詩」その一

序文)へブル語のアルファベット(22文字)が一節ずつの頭についている詩篇。いわば「いろは歌」です。前に詩篇9篇と10篇がそうでした。第三番目の「いろは歌」です。しかし正確には、所々で抜けているアルファベット文字がありますし、内容的には必ずしも論理的な統一を取っていません。この詩篇の内容としては「瞑想と祈り」のいろは歌といえます。一節ずつ楽しみながら味わえば良い詩篇です。今朝は1〜7節を、次回は8-22節と二回に分けてまなびましょう。

 

0 ダビデによる

1 主よ。私のたましいは、あなたを仰いでいます。

(アレフ)原文の順序

  あなたにむかって、主よ、私のたましいを,私は上げる。

 祈りにおいてとるべき先ず第一の姿勢が、ここにあります。すべてこの世の、罪ある、むなしいおもいを捨て去り、私たちは信仰によって、至高の方、永遠の「わたしはある」といわれるお方の前に上ります。

 「たましい」をあらわす原語には、たくさんの意味が他にもあります。「息」「人」「動物」「自己」「死骸」「感情」または「願望」などです。ここでは、肉体の死後にも生き延びる者としての霊魂という意味よりも、祈っている人の全存在が、救い主である神様に意識的に向けられていることを示します。

  祈りは「神との交わり」です。クリスチャンで、これについて異議を言う方はいないと存じます。正確には、神様の呼びかけへの、わたしたちの側からの応答です。基本的には、そのようなパーソナルな(人格的な)やりとりを交わりと言います。

 皆さんの中でe-mailをしている方が大勢いるとおもいます。わたしはボランティアで日本ウィクリフ聖書翻訳協会の委員を33年間つづけました。事務局や宣教師方、国際本部からの知らせ、ニュースなどの伝達、交わり、特に突然世界で発生する危機的状況時の祈りの課題は直ちに届きます。ニュースは、瞬時に届きます。返信もそうです。本当に便利になりました。宣教師がとてもセンシテイブな国・地域に派遣されている場合等もありますから、メールは暗号化されています。私のアドレスにくるメールは全部暗号化されていましたので、他の人、内・外国政府機関、宗教管理者たちに読まれる気遣いは一応ありません。発信する場合も同じです。

 このような便利な交わりの手段より遙かにまさったものが、実は、人が創造されたときに、すでに神様との間にできたのです。神様はアダムに話しかけます。するとアダムは答えます。その交わりは、瞬時にどこからでも、どのような情況下でも可能だったのです。この神の話しかけに応じる人間からの応答を、私たちは「祈り」と呼びます。祈りとは三位一体の神様が人格的存在として人を創造してくださったときに組み込んでくださった自然的本能なのです。人類のいるところには、必ず祈りがあります。アダムは、いちいち祈らなければなどと意識しなくても良かったのです。24時間つなぎぱなしのADSLでも、こちらは発信するときは文字を打ち込み送信手続きをしなくてはなりません。祈りは、まず神様を見上げることから始まります。

 

2 わが神。私は、あなたに信頼いたします。どうか私が恥を見ないようにしてください。私の敵が私に勝ち誇らないようにしてください。

(ベース)あなたに(中に)信頼します。1節は「あなたにむかって」で未来形動詞で未完成の行為でした。ここは過去または完了した行為です。自分自身をすっかり神の上に投げやるという意味です。ダビデは自分と自分の身を、また一切の利害を全く主に任せ・委託したのです。

 ペテロ第一5:7「あなたがたの思い煩いを、いっさい神にゆだねなさい。神があなたがたのことを心配してくださるからです。」

  「どうか私が恥を見ないようにしてください。」ダビデの嘆願です。

 旧約聖書で「はじ」をあらわすいくつかの語がありますが、ここは「ボーシ」が用いられています。これは「何かに卑下して赤面し、真っ赤になるという外面のしるし」を意味するのでなく、むしろ「完敗」「頓挫」「紛糾」「危険から結果する顔面蒼白と恐怖」という思想です。「私をどうか滅ぼされたり、完敗させられたりしないでください。」と祈っているのです。ダビデは自分の回りを取り巻くたくさんの敵をみるとき,敗戦からくる致命的な恥辱を免れさせてください、と神様に求めています。わたしたちが対人関係で社交上の恥ずかしいというような意味とは全く違います。ダビデは敵軍が自分を撃破して勝ち誇るという考えに耐えられないのです。

 

3 まことに、あなたを待ち望む者はだれも恥を見ません。ゆえもなく裏切る者は恥を見ます。

(ギメル)最初の文字は副詞「ガム」で、これは「付加」という思想です。日本語だと「さらに」「実に」などです。ダビデは自分が完敗して恥をみないようにということから、さらに宗教上の道理にすすんでいます。まことに、あなたを待ち望む者はだれも恥を見ません。ゆえもなく裏切る者は恥を見ます。これは詩篇1篇「正しい者は栄え、悪しき者は滅びる」という道徳的な主張の反映です。

神を待ち望む者と、何ら正当な理由もなく神または神の民に向かって秘かに不真実に振る舞う者達との間にコントラストがある。恥を見ない者と、恥を見る者です。この信仰は、へブル・キリスト教的伝統の考え方でしたが、科学と人間中心の諸哲学により入り込んだ異教化により、神様の道徳的世界統治を無視し、祈りを持って待ち望むことをやめて、多くの人々が全く何の理由もなく、永遠の主権者である神様に裏切りを働き、そして永遠の恥と破滅に突き進んでいるのです。

 

4 主よ。あなたの道を私に知らせ、あなたの小道を私に教えてください。

(ダーレス)「道」はもとの動詞が「行進する」「踏む」の意味です。それで大勢の人々が進む道路を名詞は指します。「路」ここでは「小道」と訳されるもとの動詞は「さまよう」「行く」「旅する」「巡礼する」を意味します。「あなたの道」神様の行動様式をさします。両方のことばがあわさると「人の人生航路、思想、願望が神の道と調和させられ一致させられねばならない」ことを意味します。

 道は、4.8.9.12節に、小道は4.10節に出てきます。

 ダビデは、主がその道を自分に『経験的に知らせ』てくださることを、また教えてくださることを祈り求めています。

5 あなたの真理のうちに私を導き、私を教えてください。あなたこそ、私の救いの神、私は、あなたを一日中待ち望んでいるのです。

(ヘイ)あなたの真理の中に、わたしを導きください。そして教えてください。神が彼の救いの作者であり、彼は終日主に期待し待ちに待っているから、このように祈っている。祈りをするのに一日中努力している。主イエス・キリスト様の例:ルカ22:44「イエスは、苦しみもだえて、いよいよ切に祈られた。汗が血のしずくのように地に落ちた。」

 

6 主よ。あなたのあわれみと恵みを覚えていてください。それらはとこしえからあったのですから。

(ザイン)「覚えていてください。」または「思い出してください。」むかしから、永遠からある、「憐れみと恵みを」!

神の民にたいする、その恵み深い態度と愛情ある行為とを描写するへブル語句は興味深いのです。「あわれみ」へブル語の語根は、「胎」を意味することばです。自分の胎から出た子供に対する母親の切々たる情愛や、同じ胎からでた兄弟間における近親的情愛を表現するものと言われています。愛されている者の弱さとか受難にたいする憐憫をあらわします。

 また、神のイスラエルに対するあわれみは、特にその選びと契約、さらにその契約の保持において顕著に表されている。第二列王13:23「主は、アブラハム、イサク、ヤコブとの契約のために、彼らを恵み、あわれみ、顧みて、彼らを滅ぼし尽くすことは望まず、今日まで彼らから御顔をそむけられなかった。」

 同時に神のあわれみは神の「正義と公義」に基づくことも忘れてはならない。

ホセア2:19「わたしはあなたと永遠に契りを結ぶ。正義と公義と、恵みとあわれみをもって、契りを結ぶ。」

 神様の永遠の必然的な属性で、苦悩や困窮のうちにある者たちに向かって示される神の慈愛をさす。ルカ10:37「その人にあわれみをかけてやった人です。」

 わたしたちはどうでしょうか。次の句を見てください。第一ペテロ2:10「あなたがたは、以前は神の民ではなかったのに、今は神の民であり、以前はあわれみを受けない者であったのに、今はあわれみを受けた者です。」

 

 「恵み」は新約聖書にたくさんでてきて、「受けるに値しない者への神からの一方的ないつくしみをさします。」コリント第二8:9「あなたがたは、私たちの主イエス・キリストの恵みを知っています。すなわち、主は富んでおられたのに、あなたがたのために貧しくなられました。それは、あなたがたが、キリストの貧しさによって富む者となるためです。」ピリピ2:5-8「あなたがたの間では、そのような心構えでいなさい。それはキリスト・イエスのうちにも見られるものです。 キリストは、神の御姿であられる方なのに、神のあり方を捨てることができないとは考えないで、ご自分を無にして、仕える者の姿をとり、人間と同じようになられたのです。 キリストは人としての性質をもって現われ、自分を卑しくし、死にまで従い、実に十字架の死にまでも従われたのです。」

 主イエス・キリストの受肉、十字架、復活にあらわされた救いに関する神のわざを総括し、そのわざによって人間に示された神様の好意的態度を「恵み」といいます。それはローマ5:8「しかし私たちがまだ罪人であったとき、キリストが私たちのために死んでくださったことにより、神は私たちに対するご自身の愛を明らかにしておられます。」恵は、受けるに値しない罪人わたしのために注がれる自己犠牲的な神様の愛です。

 

7 私の若い時の罪やそむきを覚えていないでください。あなたの恵みによって、私を覚えていてください。主よ。あなたのいつくしみのゆえに。

(ヘイス)若いときの「罪」は、「的をはずれる、正しい道からそれる」を意味することばです。「そむき」と訳されていることばは「権威に逆らう、不服従である、契約を破る、違反する」です。ダビデは若いときからのたくさんの過ちや罪深いさすらいを思いおこし、自分の恐ろしい反逆も契約破棄も忘れることができない。どうして神様がそれを忘れる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か。

ただあわれみと神のいつくしみによるだけです。日本語で「恵」と訳しているのは「善」がへブル語なので、言い換えている。ただし結果の意味は同じです。

 

8節以降は6月7日に続けます。

 

2015 5 17    시편25 1-7   명상과 기도의

 

히브리어의 알파벳(22문자)가 한절씩 머릿말에 붙어 나오는 시편. 말하자면 “가나다 노래” 입니다. 이전에 시편9편과 10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5편은 세번째의 “가나다 노래”가 됩니다. 그러나 정확하게는 몇군데 빠져있는 알파벳문자가 있으며, 내용적으로 논리적인 통일성을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이 시편의 내용으로는 「명상과 기도」의  “가나다 노래”라 할 수 있습니다. 한절씩 재미있게 음미하는 데 알맞은 시편입니다. 오늘 아침은 1절∼7절까지를, 다음주는 8∼22절까지로 두번에 걸쳐 배우겠습니다.

 

0 다윗의

1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아레후> 원문의 순서: 당신을 향해. 여호와여, 나의 영혼을 나는 바라봅니다.

 기도하는데 있어서 가장 먼저 갖추어야 할 자세가 이곳에 나오고 있습니다. 이 세계의 모든 죄된 허무한 생각을 버리고, 우리는 믿음으로, 지고한 분, 영원의 「나는 스스로 있는자」라 말씀하신 분을 바라봅니다.

「영혼」을 나타내는 원어에는 그 외에 다른 의미의 말이 많이 있습니다. 「숨」 「사람」 「동물」 「자기」 「시체」 「감정」 또는 「소망」등 입니다. 이곳에서는, 육체의 죽음후에도 살아남는 자로써의 영혼이라는 의미보다는, 기도하고 있는 사람의 전존재가 구세주되신 하나님께 의식적으로 향하고 있는 것을 나타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크리스챤으로써 이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정확하게는, 하나님의 부름에 대한 우리들의 응답을 말합니다. 기본적으로, 그러한 파소널(인격적인)의 주고받음을 교제라합니다.

 

 여러분중에도 e-mai을 하고있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자원봉사로 일본 위글리프 성경번역협회의 위원으로 33년간 일했습니다. 사무국이나 선교사, 국제본부의 소식이나 뉴스등의 전달, 교제, 특히시계각지에 갑자기 발생하는 위험적상태에 대한 기도의 과제는 바로 알렸습니다. 뉴스는 일순간에 도착합니다. 답장도 그러합니다. 이전에 비해 정말 편리해졌습니다. 선교사가 대단히 민감한 국가나 지역에 파견되는 경우도 있지만, 메일은 암호화되어 있습니다. 저의 메일 어드레스에 오는 메일은 모두 암호화되어 있었으므로, 타인, 국내외 정부기관, 종교관리자들에게 잃혀지는 일은 없습니다. 발신하는 경우로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편리한 교제의 수단보다도 훨씬더 훌륭한 것이 실은 인간이 창조되었을 때 이미, 하나님과의 사이에 생겨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아담은 대답했습니다. 그 교제는 일순간, 어디라도, 어떤 상황에도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이 하나님과 말씀에 인간이 응답하는 것을 우리는 「기도」라 부릅니다. 기도란,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인격적인 존재로써 인간을 창조하실때 넣어주신 자연적 본능입니다. 인류가 있는 곳 어디에나 반드시 기도가 있습니다. 아담은 일일이 기도하지않으면 안된다는 의식이 없었어도 괜찮았습니다. 24시간 계속 연결되고 있는ADSL이라도 한쪽이 발신할 때는 문자를 치는 송신절차를 하지않으면 안됩니다. 하지만, 기도는 먼저 하나님을 우러러보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2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로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로 나를 이기어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베이스> 주께 (안에) 의지합니다. 1절은 「주를 우러러」로, 미래형동사의 미완성 행위였습니다. 이곳에서는 과거, 또는 완료한 행위입니다. 자기자신을 전부 하나님께 던진다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자신과 자신의 몸을, 또한 일체의 모든 이해를 주께 맡기고 위탁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나로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다윗의 탄원입니다.

 구약성경에서 「부끄럼」을 나타내는 말이 몇가지 있는데, 이곳은 「보시」가 쓰여있습니다. 이것은 「무언가에 비하되어 얼굴이 붉어진, 창피하게 된다는 외면적인 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완패」 「좌절」 「분규」 「위험을 맞은 결과 안면이 창백하게 되는 것과 공포」라는 의미입니다. 「제가 멸망당하거나 완패당하지 않게 하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주위를 둘러싼 많은 적들을 볼 때, 패배로 맞게 될 치명적인 굴욕을 면하게 하소서, 라고 하나님께 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대인관계에서 사교적인 면에서 당하는 창피스러움과는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다윗은 적군이 자신을 격파해 승리를 자랑할 지 모른다는 생각을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3 주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무고히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리이다

<기멜> 최초의 문자는 부사 「가므」로써, 이것은 「첨가」라는 의미입니다. 일본어로 하면 「더욱이」 「참으로」 등 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완패를 당해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으로 더욱더 종교상 도리를 걷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당신을 기다리는 자는 누구도 수치를 당하지 않습니다. 무고히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합니다. 이것은 시편1편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라는 도덕적 주장의 반영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는 자와, 아무런 정당한 이유없이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백성에게 불성실한 행동을하는 자는 대조가 됩니다. 수치를 당하지 않는 자와 수치를 당하는 자입니다. 이 믿음은 히브리∙그리스트교의 전통적 생각이었지만, 과학과 인간중심의 철학에 더욱 치우친 이교화로 인해, 하나님의 도덕적 세계통치를 무시하고, 기도를 가지며 소망하는 것을 그만두고,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이유없이 영원의 주권자되신 하나님을 배반하며, 영원의 수치와 파멸이 전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4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다레스> 「길」은 본래 동사 「진행하다」 「밟다」의 의미입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이 진행하는 길을 명사로 가리키고 있습니다. 「길」 이곳에서는 「작은 길」로 번역되는 본래의 동사 「헤메다」 「가다」 「여행하다」 「순례하다」를 의미합니다. 「주의 길」 하나님의 행동양식을 가리킵니다. 이 두가지 말을 합하면 「사람의 인생행로, 생각, 소망이 하나님의 길과 조화되어 일치되지 않으면 안된다」를 의미합니다.

 길은, 4.8.9.12절에, 작은 길은4.10절에 나옵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그 길을 자신에게 『경험적으로 알려』주실 것을 또한, 가르쳐 주실 것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5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바라나이다

<헤이> 주의 진리안에 나를 인도하소서. 그리고 가르치소서. 하나님께서 그의 구원의 작자이시며, 그는 종일 주를 기다리고 있기때문에 이런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데 하루종일 노력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예: 누가복음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 같이 되더라」

 

6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주여 이것을 기억하옵소서

<자인> 「기억하옵소서」 또는 「떠올려 주옵소서」 예전부터 영원부터 있는 「자비와 은혜를!」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그 깊은 으네ㅖ의 태도와 애정깊은 행위를 나타내는 히브리어 구는  흥미롭습니다.

「자비」 히브리어의 어근은, 「태」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자신의 태에서 나온 자녀에대한 어머니의 절절한 애정이나, 같은 태에서 태어난 형제간의 근친적애정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랑받는 자의 연약함이나 수난에 대한 연민을 나타냅니다.

또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 특히 그 선택과 계약, 더욱이 그 계약의 유지에 대하여는 두드러지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열왕기하13:23「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인하여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어 긍휼히 여기시며 권고하사 멸하기를 즐겨 아니하시고 이때까지 자기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셨더라」

 

동시에 하나님의 자비는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에 근거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호세아2:19「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하나님의 영원한 필연적 속성으로써, 고난과 곤란에 처한 자들을 향해 나타나고 있는 하나님의 자애입니다. 누가복음10:37 「가로되 자비를 베푼자니이다」

 

 우리들은 어떠합니까? 다음의 구절을 봅시다.

베드로전서2;10「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은혜」는 신약성경에 많이 나오고 있어서, 「받을만한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으로부터의 일방적인 자비」를 가리킵니다.

고린도후서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빌립보서2:5-8 「너희안에 이 마음을 품으로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십자가, 부활에 나타난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업적을 총활하여, 그 업적으로 인간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호의적 태도를 「은혜」라 부릅니다.

로마서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은혜는 받을만한 자격이 없는 죄인인 우리들을 위해 부어진 자기희생적인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7 여호와여 소시의 죄와 허물을 기억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을 인하여 하옵소서

<헤이스> 소시때의 「죄」는 「과녁을 벗어남. 바른길에서 일탈하다」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허물」이라 번역되고 있는 말은 「권위를 거역하다, 불순종하다, 계약을 파괴하다, 위반하다」 입니다. 다윗은 젊은시절부터의 많은 잘못이나 깊은 죄를 떠올려 자신의 두려운 반역도 계약파괴도 잊을수 없었습니다. 어째서 하나님이 그것을 잊으실 수 있을까요?

그저 자비와 하나님의 자애에 의지할 뿐입니다. 일본어로 「은혜」로 번역하고 있는 것은 「선」이 히브리어이므로, 변환된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적인 의미는 같은 것입니다.

 

8절부터는 다음주에 공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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