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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1月8日 礼拝 説教(日本語文、韓国語文)エペソ書 4章26〜27節、31節


 
2017年1月8日 エペソ書 4章:26,27,31節   「怒っても罪を犯すな」

クリスチャン生活の中で「怒り」については、聖書で二種類の取り扱われ方をしています。

1 「正しい怒り」と「間違った怒り」です。今朝のみことばは正確に訳すと「怒りなさい。そして罪をおかしてはいけません。」であって「怒るな、罪を犯すな」ではありません。この怒りは5:6の「神の怒りは不従順な子らに下る」といわれたのと同じ種類のものです。

イエスさまが,威厳をもって怒られたときがありました。 安息日に片手のなえた人を直すことで、パリサイ人が罠にかけようとしたのを見抜いた上で、安息日に善を行う事の善し悪しを問われたとき、「イエスは怒って彼らを見回し、その心のかたくななのを嘆きながら、その人に「手を伸ばしなさい」と言われました(マルコ3:4,5)。学者、パリサイ人らの律法とその主張が片手のなえた人にくるしみを増し加えていくことへの怒りがありました。

またイエス様はヨハネ2:13-17で、礼拝の場所としての神の宮で商売をしていた両替人や犠牲の動物を売る者たちを、細縄の鞭で追い払われたときも怒っておられました。このような怒りは被造物の邪悪によって、よびおこされるのです。神の恵み深い愛を人間の邪悪さは傷つけるばかりではなく、神の憐れみをもかたくなに拒否してしまうのです。そのことが神の聖なる怒りを呼び覚まします。主イエス様の怒りは、神の人格を持っておられるお方として、人間の邪悪に対する反応として示されています。神の怒りは悪にたいする神の聖の確固たる反対であります。

クリスチャンは神様ではありませんが、神の子イエス・キリストの霊にあずかり結びついて、新しい誕生といのちを得た者として地上を歩んでいます。

その歩みのなかでは、公然と神の栄光が汚され邪悪さで曲げようとする者にたいして怒らなければならない時があるのです。そのようなときにニコニコ笑っているはずがありません。神の栄光が傷つけられるとき、神の霊を内に住まわせている私たちの心に怒りがわいてくるのが自然です。使徒パウロの手紙も、また愛の使徒といわれたヨハネの晩年の手紙にも、この聖なる怒りが書き記されているのです。

私たちの怒りはどのような時に、何に向かって怒っているかを問うことで、利己的な邪悪な怒りか、神の御霊に促された正しい怒りかがためされます。キリストと隣人のために奉仕するように示された信仰の怒りは、神とこの世の働きに関わる重要な力となります。新しくされた人として主イエス様との厚い交わりの中で正しく導いていただきましょう。そうしないと、わたしたち人間は神様と全く違うのですから、正しく怒ったとしても精神的にはきわめて不安定な状態に置かれるのです。まして、間違った怒りは心臓に大変な動悸を人の内に引き起こすのです。うっかりすると,この不安定な状態で心が激しているために、正しい怒りをもっていることから離れて、罪を犯す可能性があるのです。

自分を制しきれなくなると罪に発展するのです。主の手の内に制御された怒りを祈りもとめましょう。御霊の実で最後に上げられているのが「自制」なのもそれほど難しいということでしょうか。ガラテヤ書 5章22節 「御霊の実は愛、喜び、平安、寛容,親切、善意、誠実、柔和、自制です。」

 

2 これに対して「間違った怒り」があります。26節「憤り」4:31[憤り、怒り]がそれです。これは私たちのうちに住まれる助け主聖霊を悲しませます。この怒りは、自分にとって例外と言える人はほとんどいません。ごく一般的な罪です。しかも、重大な結果を本人や周囲の人々に及ぼします。根本原因は「利己主義」にあります。誰かが自分の権利を踏みにじったり、自分に逆らったりしたとき、私たちはすぐに自己の権利を正当化しようとして、腹を立てたり、つらくあったったりします。自分の根本に「わがまま」があるということを素直に認める必要が人間にはあります。

この「わがまま」がまき散らす怒りの表現は、さまざまな形をとります。無慈悲、憤り、叫び、ねたみ、うらみ、不寛容、非難、復讐,攻撃、うわさ、皮肉、執念、嫉妬、騒乱等等です。

これらは大変な損失を自分と他の人にもたらします。まず精神的な損失です。怒りは人を狼狽させます。我を忘れさせるのです。そのとき、私たちは、無駄の多い有害でやっかいな決定をしてしまうのです。感情はゆがみ、抑圧されて聖霊の実である喜び、愛、平安などが押さえ込まれてしまいます。

職場の不満やいらだちを家庭にもちこんで,怒りのゆえに妻子に対する自由な愛の表現を無意識にうちに消滅してしまっている人が多いのです。怒りを家に持ち込んで台無しにしてしまっている人は、それで大変な損失をしています。

社会的には、怒りポイ人は不愉快です。それでのけ者にされます。怒りのため、家族や夫婦がこの犠牲を払っています。楽しいはずの関係を制限してしまうのです。

身体的には、病気の原因として怒り、恐怖は60〜90%です。胃がまっ先にやられます。

その影響はすべての内蔵に及びます。心臓、高血圧、甲状腺腫など。多くの人は他人にたいして、怒っていても実際は自分自身に対して怒っている場合がおおいのです。

霊的に 聖霊のいのち力働きを抑圧し悲しませるので、成長が止まり、クリスチャンに約束されている実り豊かな人生をストップしています。祈りもとどまり、不機嫌がいっぱいのクリスチャンになります。教会礼拝に出席しなくなります。

 

3 さてこのような損失を招く誤った怒りから目を転じて、パウロは「憤り」の問題について注意をします。憤りは長くつづけてはいけません。日の暮れるまで憤ったままでいてはならない。「憤り」ということばは「激怒」です。感情の大爆発です。長くほっておくと、その人を破滅させてしまいます。悪魔がその機会を捕らえて傷つけ,中傷しようと待ちかまえているのです。「悪魔」と訳している原語は「中傷する者」という意味です。悪魔はキリスト者を中傷し、弱点を見つけては、それを誹謗するのです。悪意をもって訴え続けるのです。これはヨブ記にもはっきり示されているところです。ですから人を中傷し、誹謗ばかりしている人は悪魔の手先だと、ぞくにいわれているのです。怒り、憤りは和解のない争い、回復されることの無い分裂に発展し、悪魔はこれを利用して神の民と、その教会を破壊しようとします。人間関係の悪化は悪魔が利用することを忘れてはなりません。

憤りが湧きあがり、中傷誹謗したくなったとき、どうしたらよいのでしょうか。詩篇4:4,5「恐れおののけ。そして、罪を犯すな。床の上で自分の心に語り、静まれ。罪のいけにえをささげて、主に拠り頼め。」

床の上で自分のこころに語り、静まれ。義のいけにえをささげて、主に拠り頼め。祈りをもって自分の激した感情を解決するように、主に拠り頼んで、その交わりの中に自分を置くように。悪魔が隙を突いて入り込まないように、神の交わりの中に自分が入って祈りにおいて、泣きたければ泣き、怒りたければ怒り、わめきたければわめきなさい。その時自分でももてあまし気味の激情を、神はうけとめコントロールして静めて下さいます。神は正しくうけとめ処理してくださいます。

 

結び)祈りをすることは悪魔にチャンスを与えない道であり、自分を破滅させない道なのです。私たちの内に住まわれる聖霊は、祈りの中で働いて、相手が相手がと赦せないと憤る自分を変えてくださるのです。

エペソ4:32「お互いに親切にし、心の優しい人となり、神がキリストにおいてあなたがたを赦してくださったように、互いに赦し合いなさい」の実行をできる者へと造り替えていただきましょう。

 

2017 18 에베소서 4:26,27,31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크리스챤 생활 중에 「분」에 관하여 성경은 두가지 분류를 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분」과 「잘못된 분」입니다. 오늘 아침의 말씀은 정확하게 번역하면, 「분을 내라. 그리고 죄를 지어서는 안된다」로, 「분을 내지말고, 죄를 범하지 말라」가 아닙니다. 이 분은 5:6「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라고 쓰여진 것과 같은 종류의 것입니다.

예수님도 엄하게 화를 내신 적이 있었습니다. 안식일에 한쪽 손이 마른 자를 고치신 것에 대하여 바리새인이 시험하려는 것을 알아보시고,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에 대하여 물으셨을 때, 「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사 노하심으로 저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마가복음3:4,5)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학자, 바리새인들의 율법과 그 주장이 손이 마른자에게 고통을 더 가하게 한 것을 노여워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요한복음2:13-17에서 예배 장소인 하나님의 성전에서 장사하던 환전인이나 희생제물을 파는 사람들을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셔서 내어 쫓으신 일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노여움은 피조물의 자악함으로 발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깊은 은혜의 사랑을 인간의 자악함이 상처를 입힌 것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를 완고하게 거부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스러운 노여움을 불러 일으킵니다. 예수님의 노여움은 하나님의 인격을 갖고 계신 분으로써 인간의 자악함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노여움은 악을 거부하시는 하나님의 성스럽고 확고한 모습입니다.

크리스챤은 하나님이 아니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영에 속하여 새롭게 태어나 생명을 얻은 자로써 지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더럽히고 굽히려 하는 자를 향해 분을 내지 않으면 안되는 때가 있습니다. 이런 때에도 미소를 지으며 웃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질 때, 하나님의 영을 우리들 속에 모시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에 분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사도 바울의 서신에도, 또한 사랑의 사도라 불리우는 사도요한이 말년에 쓴 편지에도 이 성스로운 노여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의 노여움은 어떠한 때, 무엇을 향해 일어나는 지를 생각할 때, 이기적인 자악함의 노여움인지, 하나님의 성령으로 일어난 올바른 노여움인지 알게됩니다. 그리스도와 이웃에 대한 봉사를 할 때, 신앙의 노여움은 중요한 능력이 됩니다. 새사람으로써 주 예수님과 깊은 교제 속에서 올바른 길로 인도받도록 합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인간은 하나님과 전혀 다른 존재이므로 올바르게 분을 내어도 정신적으로는 대단히 불안정한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더욱이 잘못된 노여움은 심장에 대단한 동요를 일으킵니다. 잘못하면 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마음이 격해지므로 올바른 노여움을 떠나, 죄를 범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는 죄로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안에서 제어된 노여움을 기도로 구합시다. 성령의 열매 중 마지막에 있는 것이 「절제」인 것도 그만큼 어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5:22「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것에 대해 「잘못된 분」이 있습니다. 26절 「분, 노여움」이 그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 속에 계시는 도우시는 분 성령님을 슬프게 합니다. 이 노여움은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사람을 없습니다. 아주 일반적인 죄입니다. 그것도 중대한 결과를 본인이나 주위에 미칩니다. 분을 내는 것의 근본 원인은 「이기주의」입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권리를 침범하거나 자신의 의견에 따르지 않을 때, 우리는 자기 권리를 정당화 하려고 분을 내거나 신경질을 내곤합니다. 자기속에 「제멋대로」의 마음이 있음을 인간은 솔직하게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이 주변에 퍼드리는 노여움의 표현은 여러 형태가 있습니다. 무자비, 노여움, 외침, 질투, 원망, 불관용, 비난, 복수, 공격, 소문, 빈정거림, 집념, 시샘, 난동 등등입니다.

이것들은 자신과 주변사람들에게 대단한 손실을 일으킵니다. 먼저 정신적 손실이 있습니다. 노여움은 인간을 당황시킵니다.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해롭고 유익없는 결정을 해버립니다. 감정은 굽어지고, 성령의 열매인 희락과 사랑, 화평등이 제압되고 맙니다.

직장의 불만이나 신경질을 가정까지 끌어와서 화를 내고 가족에게 사랑의 표현을 소멸시키고 마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노여움을 가정에까지 가져오는 것은 대단한 손실을 일으킵니다.

사회적으로 화를 자주내는 사람은 불쾌합니다. 이것으로 따돌림을 받습니다. 노여움으로, 가족이나 부부가 많은 희생을 치룹니다. 즐거워야 할 관계를 제한시키는 것입니다.

신체적으로는 병의 원인으로써 노여움, 공포는 60∼90%를 차지합니다. 위가 가장 먼저 영향을 받습니다.

이 영향은 모든 내장에 퍼지게 됩니다. 심장, 고혈압, 갑상선 등. 많은 사람들이 타인에게 화를 내어도 실제는 자기자신에 대해 화를 내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영적으로 성령의 일하심을 제압하고 슬퍼하게 하므로, 성장이 멈추고, 크리스챤에게 약속된 풍성한 열매 맺는 인생을 멈추게 합니다. 기도도 멈추고, 언제나 불평에 가득찬 크리스챤이 됩니다.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지 않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손실을 초래한 잘못된 노여움으로부터 눈을 돌려, 사도바울은 「노여움」의 문제에 주의하고 있습니다. 노여움은 길게 품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해가 지도록 분을 품어서는 안됩니다. 「노여움」이라는 말은 「격노」 입니다. 감정의 대폭발입니다. 길면 길어질수록 그 사람을 파멸시킵니다. 악마가 이 기회에 상처를 입히려고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악마」라고 변역하고 있는 말의 원어는 「중상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악마는 그리스도를 믿는자들을 상처입히려고 약점을 발견하면 그것을 비방하는 것입니다. 악의를 가지고 소송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욥기에도 분명하고 나와있습니다. 그러므로 타인을 상처입히고 비방만을 하는 사람들은 악마의 손안에 있는 것입니다. 노여움, 분은 화해없는 싸움, 회복되지 못하는 분열로 발전하고, 악마는 이것을 이용해 하나님의 백성과 그 교회를 파멸시키려 합니다. 인간관계의 악화는 악마가 이용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분이 나고, 중상비방을 하고 싶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시편4:4,5「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뢰할지어다」

자리에 누워 자신에게 말하고, 잠잠합니다. 의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께 의뢰하고, 하나님과의 교제속에 자신을 두는 것입니다. 악마가 빈틈을 파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나님과의 교제속에 자신이 들어가 기도중에 울고싶을 때에는 울고, 화를 내고 싶을 때에는 화를 내고, 한탄하고 싶을 때에는 한탄합니다. 그 때에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격정을 하나님은 받아주셔서 제어해 주시고 잠잠케 해주십니다. 하나님은 올바르게 받아주셔서 처리해 주십니다.

맺음) 기도는 악마에게 기회를 주지않는 길이며, 자신을 파멸시키지 않는 길입니다. 우리들 속에 살고 계시는 성령님은 기도를 통해 일하시고, 상대를 용서하지 못하는 노여움에서 떠나 자신이 변화를 받게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4:32「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의 말씀을 실행하는 자로 변화받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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