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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10月15日 礼拝 説教(日本語文、韓国語訳)

 

2017年10月15日マタイ福音書5:8 「心のきよい者の幸い」
 
序文)主イエス様は言われました。「心のきよい者は幸いです。その人は神をみるからです。」神がいるなら見せてくれ、という方々がたびたびおられます。この台詞自体が、心がきよくないことを証明しています。信仰があるはずの弟子ピリポもイエス様にいいました。「主よ。私たちに父を見せてください。そうすれば満足します」(ヨハネ14:8)。イエス様は「神をみる」といわれました。見えない神を見るとは、どのような意味でしょうか。その前に「心がきよい」とはどのような意味でしょうか。

 

Ⅰ きよいことは人間の心身の健康に関わる重要事です。

きよい空気、きよい水、清潔な体、清潔な衣類、清潔な部屋、清潔な都市 などなどきよいことは人間生活に深く関わっている重要事です。心身の健康と深くかかわっていますので、病気を予防するうえで注意をはらいます。環境衛生、水道設備、下水設備は都市や村落の住民にとって重要な役割を担っています。衣食住に関してきよいことは命と直結しています。

空気にちり、ガス、けむりが混じり、きよくなくなると、喘息になる人が圧倒的にふえます。人は気管支を病み、吸い続けることで死の危機にさらされます。1962年ごろ、四日市喘息がはやり、海岸沿の工業地帯が亜硫酸ガスの混じって汚した空気により住民が苦しみました。水俣市では、水にメチル水銀化合物などの重金属が流れ出し、その水を直接、間接的に飲んだ住民が水俣病になり苦しんでいます。岐阜県の神岡鉱山や、富山県の神通川ぞいで、カドミウムが流れ出して、流域住民がやイタイイタイ病に苦しんでいます。

空気汚染について、この近くだと、京葉工業地帯の工業団地から、公害になるような汚れた空気が流れ出ないように防止策をとっていますが、それでも、完全に防ぐことはできません。東北のきれいな空気の町から引っ越してきた牧師が、風向きによってきつい臭いがして、奥様の喘息が再発して大変だよ、とはなしてくれました。

公害は本来きよい物事に、きよくない物事が混じったためにおこります。

不潔と言うことは混じってはならないものが混じっていることをさします。

私たちは、体の生命とかかわるので、外からくるものに「きよさ」を求めます。

しかし忘れてならないのは、人間全体を生き生きとさせるのは、第一義的には内面のきよさ「心のきよさ」だということです。

 

Ⅱ 「心のきよさ」は文化の発達によってますますきよくなると言うわけにはいかなかったのです。昔のユダヤ人は「清潔律法」を持っていました。たとえば「レビ記11章−15章」は、きよいものときよくないものとの区別を掲載しています。生き物の区別があります。出産後のきよめが規定されています。特別なやまいのきよめも規定されています。皮膚病のきよめもかかれています。衣服や壁にかびがはえたときのきよめもあります。それぞれのきよめの方法も規定されていたのです。それぞれに文化の背景として、環境とこころのきよめは、いろいろの工夫をかさねていますが、工夫すべきことは増えるいっぽうです。それは汚れを含む事象が増大し続けているからです。

主イエス様は、律法学者とパリサイ人に対して「忌まわしい者だ。偽善の律法学者、パリサイ人たち。あなたがたは、杯や皿の外側はきよめるが、その中は強奪と放縦でいっぱいです」(マタイ23:25)と、外面的には欠点が無いけれども、内側は強奪と放縦で満ちていると非難されました。外面的なきよめの律法には関心を払うけれども、神様や人々への愛は忘れていると、心の汚れを指摘されました。

主イエス様が地上においでになり、これら律法の成就を、その身と心によって完全に成し遂げられたことは、きよめに関わる一切を成就し、信じる者をきよめるための唯一の根拠となりました。長血の流出に悩んでいた女性は、キリストにそっと触れることで一瞬にして完全なきよめをいただきました。「娘よ。あなたの信仰があなたを直したのです。安心して行きなさい」(ルカ8:48)。と主がいわれたことで彼女は体だけでなく心までもきよめられて信仰と社会生活に公に戻ることができました。

心は人格、人の存在の中心です。すべてのものがわき出る泉です。その存在の中心、すべての行動の源がきよい人はさいわいです。心は創造主が本来、ご自身との交わりを楽しみ、栄光を褒め称えるようにと、きよく創造してくださったのでした。その心が、いろいろと汚すものがまざり、きよくないものとなりました。マルコ7:20-23によると「人から出るもの。これが人を汚すのです。内側から、すなわち、人のこころから出て来るものは、悪い考え、不品行、盗み、殺人、姦淫、貪欲、よこしま、欺き、好色、ねたみ、そしり、高ぶり、愚かさであり、これらの悪は皆、内側から出て人をけがすのです。」と主イエスさまが指摘されました。

創造主からみると、実に悲しむべき状態になっているのです。心の腐敗は滅亡を招いているのです。

このような汚れた心になったのは、環境のせいではありません。自分たちの生活ぶりや、友人関係や、あの人がいなければといったことは、理由になりません。なぜなら、人が堕落したのは、完全な環境のエデンの園においてだったのですから。

 

どのようにすれば、心をきよくする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か。

主イエス・キリスト様だけが私たちの心をきよくすることができます。

[ ヘブル9:11-14]

「第一ヨハネ1:7神子イエスの血はすべての罪からわたしたちをきよめます。」

1:9「もし、わたしたちが自分の罪を言い表すなら、神は真実で正しい方ですから、その罪を赦し、すべての悪から私たちをきよめてくださいます。」

イエスが流された、十字架上の贖いの血潮が私たちをきよめるのです。罪にかがれた心から汚れを取り除いて、きよめてくださる。日々にそのように働いてくださるのです。純真なこころ、誠実なこころ、二心をなくして一つ心としてくださるのです。それは神様の御前に、み心を応答しながら歩める心なのです。

 

Ⅲ 神をみる

「心の聖い者は幸いです。その人は神を見るからです。」と主イエス様は理由を付け加えられました。ヘブル人の手紙の著者は、このことばに反映として「すべての人との平和を追い求め、また、聖められることを追い求めなさい。聖くなければ、だれも主を見ることができません。」(ヘブル12:14 )と応じています。神を見ることができる。復活して天に帰られた主イエス様を見ることができる。

神は創造された自然世界にご自身を現されています。「神の、目に見えない本性、すなわち神の永遠の力と神性は、世界の創造された時からこのかた、被造物によって知られ、はっきりと認められるのであって、彼らには弁解の余地はないのです」(ローマ1:20)。「天は神の栄光を語り告げ、大空は御手のわざを告げ知らせる」(詩篇19:1)。と啓示されています。心のきよい人は、ご自分を啓示して下さった神をみるのです。また、人類の歴史を見るときに、その摂理的なお働きの内に神を見るのです。神の公義の現れを見るのです。きよい心で聖書を読むとき、神のみ顔を仰ぎ見、神のみ声を聞くのです。主イエス・キリストを通して、天の父を見るのです。あの弟子ピリポの「父を見せてください。」という問いかけへの、主イエス様の答えは「ピリポ。こんなに長い間あなたがたといっしょにいるのに、あなたはわたしを知らなかったのですか。わたしを見た者は、父を見たのです。どうしてあなたは{私たちに父を見せてくださいと}というのですか」(ヨハネ14:9)。

ピリポは後になって、旅の途中にイザヤ書を読んでいたエチオピアの宦官に主イエスを信じる信仰に導き洗礼を授けました。この宦官を通してエチオピアの国にキリストの福音が広がったと考えられています。ピリポは主イエス様を通して天の父をみたのです。天の父がみ子イエス・キリスト様の内に働いておられる事、天の父が、み子を通して福音の神髄を教えておられることを悟ったのです。

私たちは、神を見るでしょうか?復活の主イエス・キリスト様を見るでしょうか?私たちは、当時の弟子ピリポたちのようには主イエス様を見ていないのです。しかし、伝えられた福音のことばにより、その証言により、信じています。それでも、それはおぼろげに見ているのです。「私たちは鏡にぼんやり映るものをみています」(第一コリント13:12)。しかし確実に「その時には顔と顔とを合わせて見る」(第一コリント13:12)のです。「愛する者たち。私たちは、今すでに神の子どもです。後の状態は明らかにされていません。しかし、キリストが現れたなら、私たちはキリストに似た者となることが分かっています。なぜならそのとき、私たちは、キリストのありのままの姿を見るからです」(第一ヨハネ3:2)。「もはや、のろわれるものは何もない。神と小羊との御座が都の中にあって、そのしもべたちは神に仕え、神の御顔を仰ぎ見る。また、彼らの額には神の名がついている」(黙示録22:3-4)。

 

結び)幸いです。主イエス・キリスト様により、その罪の赦しときよめの血潮に与って、生まれ変わり新しい心をいただいた者たち、必ず神を見る時がくるのです。それは待ち遠しい時ですし、目指すべきゴールです。聖められた心を日々に保ち養い、福音を伝え、あかしし、生活しましょう。

 

2017 10 15  마태복음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서문) 주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그 모습을 보여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말 자체가 마음이 청결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을거라 믿었던 제자 빌립보도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요한복음14:8) 이에 대한 대답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 전에 「마음이 청결한」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청결이란 인간의 심신에 관련된 중요한 일입니다.

청결한 공기, 청결한 물, 청결한 몸, 청결한 의류, 청결한 방, 청결한 도시등등 청결이란 인간생활에 깊이 관련되어있는 중요한 일입니다. 심신의 건강과 깊이 관련되어있으므로, 병을 예방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환경위생, 수도설비, 하수도설비는 도시나 마을 주민에게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의식주에 관련한 청결의 문제는 생명과 직결되기도 합니다.

공기에는 먼지, 가스, 연기등이 섞여있어서 천식 환자가 압도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기관지 병을 앓고, 더러운 공기를 들이키는 것에 대해 죽음의 위험에 직면해 있기도 합니다. 1962년경, 四日시 천식이 유행해, 해안가의 공업지대가 아황산가스가 섞인 공기로 주민들이 고통을 받았습니다. 水俣시에는 물에 메탈수은 화합물 등의 중금속이 흘러나와, 그 물을 직접, 간접적으로 마신 주민이 水俣병에 걸렸습니다. 키후현의 神岡광산이나, 토야먀현의 神通강 근처에는 카드뮴이 흘러나와 근처 주민이 이타이이타이 병에 걸렸습니다.

공기오염에 관해, 근처로는, 케이오공업지대의 공업단지로부터 공해가되는 공기가 흘러나오지 않도록 방지대책을 하고 있지만 완전하게 막을 수는 없습니다. 동북쪽의 공기가 맑은 곳에서 이사 온 목사님으로부터,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심한 냄새가 난다든지, 사모님은 천식이 재발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공해는 본래 정결한 것에 정결하지 않은 것이 섞여 생긴 것입니다.

불결은 섞여서는 안될 것이 섞이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생명과 관련되는 것이므로, 외부로부터의 것들에는 「청결함」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한가지 잊어서 안될 것은, 인간전체를 생명력 있게 하는 제일 중요한 것은 내면의 청결함 「마음의 청결함」인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한」은 문화의 발달로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예전 유대인은 「청결율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를들면, 「레위기 11장-15장」 은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에대한 구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동물의 구별도 있었습니다. 출산후의 정결법이 있었습니다. 특별한 병에대한 규정도 있었습니다. 피부병의 정결법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복이나 벽에 생긴 곰팡이에 대한 정결법도 있습니다. 각각의 정결법이 규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각각의 시대적 문화를 배경으로 한, 환경과 마음의 정결은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만, 규정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더러움을 포함한 여러가지 현상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님은 율법학자와 바리새인들에게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 도다」(마태복음23:25)라고 외면적으로는 결점이 없어보이지만, 내적으로는 강탈과 방종으로 가득 찬 그들을 비난하셨습니다. 외면적 청결의 율법에는 관심이 있었지만, 하나님이나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잊어버리는 마음의 더럽힘을 지적하셨습니다.

주 예수님이 지상에 오셔서 이들 율법의 성취를, 그 몸과 마음으로 완전하게 성취하신 것은 청결에 관련된 모든 것을 성취하시고, 믿는 자들을 청결하게 하기 위한 유일한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해 온 여인이 예수님의 옷식을 만져 한 순간에 완전하게 정결하게 나았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누가복음8:48)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심으로 그녀는 몸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청결하게 되어 믿음의 생활과 사회생활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마음은 인격, 사람의 존재에 대한 중심입니다. 모든 흘러나오는 것의 원천입니다. 그 존재의 중심, 모든 행동의 원천이 청결한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마음은 창조주께서 본래 그분과의 교제를 즐거워하고, 영광을 돌리도록 청결한 마음으로 창주해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마음이 여러 더러운 것들과 섞여져 버려, 더러운 마음이 되고 말았습니다. 마가복음7:20-23에 의하면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웨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라고 주 예수님은 지적하셨습니다.

창조주의 눈으로 보면, 실로 슬픈 상황이 되어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부패는 멸망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이 더럽혀진 것은 환경의 탓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생활습관이나, 친구관계, 타인을 탓하는 것은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타락한 것은 완전한 환경이었던 에덴동산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이 청결해 질 수 있을까요?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들의 마음을 청결케 해 주실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9:11-14〕

요한일서1:7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예수님의 흘리신 십자가의 보혈이 우리를 정결케 하는 것입니다. 죄로인해 더렵혀진 마음을 거둬내시고, 정결케 해주십니다. 매일매일 그러한 일을 해주고 계십니다. 진실한 마음, 성실한 마음, 두 마음을 없앤 한가지 마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그 분의 마음에 응답하며 살아가게 되는 마음입니다.

 

Ⅲ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주예수님은 그 이유를 붙여주셨습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 말씀을 반영해,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브리서12:14)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부활하신, 하늘로 돌아가신 주 예수님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자연세계에 그 분 자신을 표현하고 계십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 찌니라」(로마서1:20)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편19:1)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그 분자신을 보여주셔서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또한 인류역사를 볼 떄, 그 섭리적 일하심 속에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청결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 얼굴을 보게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늘 아버지를 보게되는 것입니다.

그 제자 빌립보의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라고 말한 것에 대해, 주 예수님의 대답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제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한복음14:9)

그 후에 빌립보는 여행중, 이사야를 읽고있던 에티오피아 관료를 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길로 인도해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이 관료를 통해 에티오피아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퍼졌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빌립보는 주 예수님을 통해 하늘 아버지를 본 것입니다. 하늘 아버지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는 것을, 하늘 아버지가 그 아들을 통해 복음의 진수를 가르치고 계심을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보게 될까요?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될까요? 우리는 당시의 제자 빌립보처럼 예수님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전해진 복음의 말씀으로, 그 증언을 통해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직 흐릿하게 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고린도전서13:12) 그러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고린도전서13:1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요한일서3:2)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요한계시록22:3-4)

 

 맺음) 복이 있나니. 주 예수님 그리스도를 통해 그 죄의 용서와 정결의 피로 다시 태어난 마음을 얻은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을 볼 때가 옵니다. 그것은 정성을 다해 기다리게 되며,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할 종착점입니다. 정결해진 마음을 매일매일 지키고 성장시키며, 복음을 전하고 증거하는 생활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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