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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9月10日 礼拝 説教(日本語文、韓国語訳)

 

2017年9月10日 マタイ5:5 「柔和な者の幸い」

序文)主イエス・キリスト様の山の上の教えは、この世の人々の考えと違うことをおっしゃっています。でもよくよく考えてみますと、常に的を射ているのです。普通、「強い者は幸いである。彼らは世界を征服するであろう」とか、「力のある者は幸いである」「能力ある者は幸いである」「お金のある者は幸いである」とか言うと、一同は心からうなずくのです。自分を強く主張し、全面に押し出し、自分の知恵と力を巧みに結集して表現すればするほど、成功し、うまく世渡りができるのです。地を相続できるのです。世界を獲得するのです。そのような大それたことを考えなくても、これは私のものといえるものを少しでも多く手に入れようとするために、人は能力、組織、制度に信頼をおいて働き続けます。その時、地をうけつぐのです。

「柔和」の原語(プラエイス)から英語に訳すときは「GENTLE」「MILD」「MEEK」を当てますがいずれも温和な、親切な、優しい、温厚な、辛抱強い、おとなしい、柔和などと日本語に訳します。聖書では他に謙遜ということばも当てられます。原語はこれら翻訳語のニュアンスとかなり違う意味です。主イエスさまが「柔和な者は」というとき、世とキリスト者の間に全く本質的な違いがあります。

 

Ⅰ 柔和な者とはどのような人?

この言葉を言われたイエス様自身がまず柔和な人です。「わたしは心優しく、へりくだっているから、あなたがたもわたしのくびきを負って、わたしから学びなさい。そうすればたましいに安らぎが来ます。」(マタイ11:29)。主イエス様のおこころは柔和で謙遜でした。有名なメシヤ預言ゼカリヤ9:9に「シオンの娘よ、大いに喜べ。エルサレムの娘よ。喜び叫べ。見よ。あなたの王があなたのところに来られる。この方は正しい方で、救いを賜り、柔和で、ろばの子に乗られる。それも雌ロバの子の子ロバに。」と言われています。紀元前520年頃のことです。預言者はアレキサンダー大王や、その他、どのような軍事的英雄の勝利にも勝る、輝かしい恒久的な勝利を収める征服者の来臨を語ります。マタイ21:5とヨハネ12:5に引用されており、メシヤの来臨、王の到来をエルサレムに入城されるイエス・キリストに当てはめています。ろばの子の上に乗る王は「正しい方」と言われ、神様との関係で正しい王です。また「救いを自らのうちにもつ」王です。そして柔和です。この王がろばの子に乗ると言うことは、主が柔和で平和の中にやってくるということを示しました。王は戦争の時は軍馬にのるのです。平和の時はロバに乗るのです。この王の姿、彼の国が、この世の壮麗さや権力、軍事力や富と共通するようなものではなく、神の目に正しく、救い主であり、平和の王として君臨される霊的なものであることを象徴していました。

柔和という特徴を持っています。バプテスマのヨハネが、イエス様のことを「見よ。世の罪を取り除く神の小羊」と紹介したとき、「小羊」と言うことで柔和なご性格であることを教えました。ナポレオンがセントヘレナ島に流刑にあったとき、彼は「私は剣をもって全ヨーロッパを征服したが、結局失敗した。しかし、イエス・キリストは十字架の愛をもって、全人類を征服した」といいました。第一ペテロ2:22-23「キリストは罪を犯したことがなく、その口に何の偽りも見いだされませんでした。ののしられても、ののしり返さず、苦しめられても、おどすことをせず、正しくさばかれる方にお任せになりました。」ペテロはイエス・キリストの柔和な姿と十字架の受難をこのように描きました。

 

Ⅱ 柔和な人は聖書の神様に対して謙虚な人です。

イエス・キリスト様が特別な人ではなく、旧約のモーセも次のように言われています。「さて、モーセという人は、地上のだれにもまさって非常に謙遜であった」(新改訳:民数12:3)。「モーセはその人となり温柔なること世の中のすべての人に勝れり」(文語訳聖書)。「モーセはその人となり柔和なこと、地上のすべての人にまさっていた」(口語訳聖書)。

イエス様もモーセも共通していることは、柔和とは弱さではないと言うことです。聖霊の力の表現をできたのです。「ののしられても、ののしり返さず、苦しめられても、おどすことをせず」とは、そのように霊的にできたのです。たたかれたら、たたき返し、怒って怒鳴り散らし、自分の感情を押さえることのできないのは弱い人です。柔和な強い人は、挑発されても完全に冷静さを保ち、自分を抑え、たましいの激しい流れを強烈な愛の熱に変えるのです。神の前に価値のある、

この柔和で穏やかな霊を自分のものとするためにどうするといいのか。イエス・キリスト様に柔和をくださいとねがいもとめましょう。

さらに、沈黙の習慣を身につけましょう。何かをことばにだすと力と永続性を与えてしまいます。しかし、吐きたいと思っている言葉を沈黙で抑圧すると、それは、しおれて死んでしまうのです。ヤコブが全身の舵取りである舌を制御するようにとすすめたのは賢明です。柔和は必要の無い言葉を出しません。

応答する必要がある場合には、「柔らかな答えは憤りを静める」(箴言15:1)。これをこころがけましょう。柔和な人の武器はやさしいことばです。

また、神様に自分の正当性を証明してもらいましょう。モーセは、神が彼のために汚名をすすいでくださると信じていました。主はモーセに敵対したアロン・ミリヤムに対していわれました。「モーセとは、わたしは口と口とで語り、明らかに語って、ナゾで話すことはしない。彼はまた、主の姿を仰ぎ見ている。なぜ、あなたがたは、わたしのしもべモーセを恐れずに非難するのか。主の怒りが彼らに向かって燃え上がり、主は去って行かれた」(民数12:8-9)。

イエス様は「正しくさばかれる方にお任せになりました。」

 

相手のために、とりなしの祈りをしよう。モーセは神の怒りに触れてツラアトにかかったミリアムのために「神よ。どうか、彼女をいやしてください。」(12:13)と祈った。ミリアムはいやされました。

主イエス様は十字架の上で、「父よ、彼らをお赦しください。彼らは、何をしているのか自分でわからないのです」(ルカ23:34)と祈られた。

このように歩み始めるとき、あなたは柔和な人と変えられます。

 

Ⅲ その人は地を相続するから。

柔和な人は、この地上で、いつも満ち足りている。柔和の使徒パウロの例

第二コリント6:8-10「また、ほめられたり、そしられたり、悪評を受けたり、好評を博したりすることによって、自分を神のしもべとして推薦しているのです。私たちはひとをだます者のように見えても、真実であり、人に知られないようでも、良く知られ、死にそうでも、見よ、生きており、罰せられているようであっても、殺されず、悲しんでいるようでも、いつも喜んでおり、貧しいようでも、多くの人をも富ませ、何も持たないようでも、すべてのものを持っています。」

8-10節パウロが経験してきた、いろいろな局面や現象は「ほめられたり」「そしられたり」-公民権を停止されることをさす、この世の与える権利と特権をことごとく失ったかも知れないが、神の国の市民であることに変わりはない。「悪評を受けたり」彼の行動のすべてを批判し、名前まで憎む人がいたが「好評を博したり」神様には好評を博している。「人だます者のように見えても」ペテン師といわれているが「真実であり」伝える福音は真実である。「知られないようでも」パウロのことをやくざな奴と行っていたが「よく知られ」パウロの伝えた福音を通して信仰に導かれた人々はよく知っていたし感謝していたし喜んでいた。「死にそうでも」命が脅かされることがパウロの友達であり、死の予感は彼の戦友であった。「生きており」「罰せられているようでも」「殺されず」「悲しんでいるようでも」「喜んでおり」「貧しいようでも」「多くの人を富ませ」「何も持たないようでも」「すべての物を持っている」。

実に対照的な表現の数々がある。神のしもべとしてパウロが一生懸命務めてきた経過の中で、受けた非難の数々、それに対する弁明の実際の姿はことごとく食い違っていた。福音の働き人たちが味わう悲喜こもごもの心境の実体がここにあります。

しかし、誠実に行動し、喜びの中で伝道し続け、首尾一貫してしもべとしての生涯を突き進むことが、和解の使者の姿勢なのです。

もし私たちが利己的な動機からこの働きについているのなら、これらの非難や誤解が襲いかかってくるとき、すぐに信仰を捨て、働きから逃げ、放り出していたことでしょう。パウロは状況がどのようであっても、「自分を神のしもべとして推薦している」と言い切ってはばからない。彼が主にあって本当に柔和な人であったので、すべての物を持っていると断言できたのです。神はクリスチャンが受け継ぐべき地上のすべてを、受け継がせてくださったのです。

キリストにあって天を受け継ぐだけではなく、新創造の世界も受け継ぐのです。「もし子どもであるなら、相続人でもあります。私たちがキリストと、栄光を共に受けるために苦難をともにしているなら、私たちは神の相続人であり、キリストとの共同相続人であります」(ローマ8:17)。

 

結び)柔和な者になるのに、自分で自分を柔和にしようとしてもむつかしいでしょう。「聖霊の実は、愛、喜び、平安、寛容、親切、善意、誠実、柔和、自制です」(ガラテヤ5:22-23)。とあるとおり、聖霊に祈り求めて、柔和にしていただくことが、道です。神の前に貧しい心をもち、謙遜で、悲しい心、すなわち、自分の罪と咎を悟って悔い改める人、そのような人は、聖霊がうちに働いておられるので、柔和の実をむすびます。聖霊の働きを拒んでいるとか、悲しませているばあいは、実を結びません。柔和になれないで生涯を歩みます。それはかたくなだからです。主イエス・キリストを見上げて、謙虚に祈り求めてまいりましょう。

 

2017 9 10 마태복음 55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서문)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산상수훈은 이 세상 사람들의 생각과 다른 것임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언제나 우리들 마음에 적중되는 말씀을 하십니다. 보통 「강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세상을 정복할 것이요」라든지, 「힘있는 자는 복이 있나니」 「능력있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말을 하는 편이 곧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입니다. 자신을 강하게 주장하고, 전면적으로 내보이며,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공묘하게 결집해서 잘 표현하면 할수록 성공하고, 세상에서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땅을 상속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획득하게 됩니다. 이런 터무니 없는 일을 생각하지 않아도, 조금이라도 자신의 소유를 많이 늘리기 위해서 인간은 능력, 조직, 제도를 신뢰하고 일합니다. 그럴 때, 땅을 소유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온유」의 원어(프라에이스)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 「GENTLE」 「MILD」 「MEEK」이 됩니다. 이것들은 모두 온화한, 친절한, 상냥한, 온후한, 잘 참는, 얌전한, 온유 등의 일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성경에서는 겸손이라는 말에 해당됩니다. 원어는 이것들 통역어의 느낌과는 꽤 다른 의미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온유한 자」라고 말씀하실 때 세상과 크리스챤 사이에 전혀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Ⅰ 온유한 자란 어떤 사람?

이 말씀을 하신 예수님은 그 분이야말로 온유한 분이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태복음11:29) 주 예수님의 마음은 온유로 겸손하셨습니다. 유명한 메시야 예언 스가랴9:9에는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찌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찌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라고 나와있습니다.  기원전520년 경의 말씀입니다. 선지자는 알렉산더 대왕이나 다른 어떤 군사적 영웅의 승리보다 강하고, 훌륭하고 영구적인 승리를 거두시는 승리자의 재림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21:5와 요한복음12:5에 인용되어 있으며, 메시야의 재림, 왕의 도래를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나귀 새끼를 탄 왕은 「공의로운 분」이라 불리워,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올바른 왕입니다. 또한 「구원을 베푸시는」 왕 입니다. 그리고 「온유」하십니다. 이러한 왕이 나귀 새끼를 탄다는 것은, 예수님이 온유하시며, 평화 중에 오신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전쟁 중의 왕은 말을 탑니다. 이러한 왕의 모습, 그의 나라가 이 세상에 장려함이나 권력, 군사력, 부와 공통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눈이 올바른 구세주이며, 평화의 왕으로써 군림하시는 영적 모습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온유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라고 소개할 때, 「어린 양」이라고 말한 것으로 온유한 성격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나폴레옹이 센트헬레나 섬에 유배되었을 때, 「나는 검으로 전 유럽을 정복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전인류를 정복했다.」 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전서 2:22-23 「저는 범죄를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베드로는 그리스도 예수의 온유한 모습과 십자가의 수난을 이렇게 그렸습니다.

 

Ⅱ 온유한 자는 성경의 하나님에 대해 겸손한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구약의 모세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신개역 민수기12:3)

예수님과 모세의 공통점은 온유함이란 약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능력의 표현을 한 것입니다.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이란, 그렇게 영적으로 하게 된 것입니다. 매 맞았다고 해서 같이 때리거나, 화를 내며 언성을 높이고,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는 것은 약한 사람입니다. 온유한 사람 강한 사람은 상대가 도발해도 냉정함을 잃지않고, 자신을 억누르며, 영혼의 격한 흐름을 강렬한 사랑의 열로 바꾸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가치있는 일입니다.

이 온유함으로 안정된 영혼을 자신의 것으로 삼기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께 온유를 받도록 기도로 구합시다.

더욱이 침묵의 습관을 익히도록 합시다. 무언가를 말로 나타내면 능력과 영속성을 부여하게 됩니다. 그러나 말하고 싶은 것을 침묵으로 억압하면, 그것은 말라 죽게 됩니다. 야곱이 전신을 지배하는 혀를 지배하도록 권한 것은 현명한 일입니다. 온유는 필요없는 말을 말하지 않습니다.

응답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잠언15:1) 이것을 마음에 새깁시다. 온유한 사람의 무기는 친절한 말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받읍시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오명을 벗겨주실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모세를 적대하던 아론과 미리암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시매」 (민수기12:8-9)

 

상대를 위해 중보기도 합시다. 모세는 하나님의 노여움으로 문둥병에 걸린 미리암을 위해 「하나님이여 원컨대 그를 고쳐 주옵소서」(민수기12:13)라고 기도하자 미리암은 나았습니다.

주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누가복음23:34)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러한 삶을 시작할 때, 여러분은 온유한 사람으로 변해져 갑니다.

 

Ⅲ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지상에서 언제나 채워집니다. 온유의 사도 바울의 예입니다.

고린도후서6:8-10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8-10절 사도바울이 경험해 온 수많은 국면이나 현상은 「칭찬받거나」 「경멸당하거나」- 시민권이 정지된 것을 말합니다. 이 세상의 부여된 권리와 특권을 모두 잃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 나라의 시민인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악평을 받거나」 그의 행동 모두를 비판하고, 이름조차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호평을 얻거나」 하나님에게는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사람을 속이는 자처럼 보여지더라도」 사기꾼이라고 불리우지만 「참되고」 전하는 복음은 진실합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사도바울을 무뢰한 사람이라 말했지만 「유명한 자요」 사도바울이 전한 복음으로 믿음을 얻게된 사람들은 그를 잘 알고 있었으며, 감사하며 기뻐했습니다. 「죽은 자 같으나」 생명의 위협을 받는 것은 사도 바울의 친구였으며, 죽음의 예감은 그의 전우였습니다.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실로 수많은 대조적 표현이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 종으로써 사도바울이 열심히 일해온 경과 중에, 받은 수많은 비난, 그것에 대한 변명의 보습은 달랐습니다. 복음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맛보는 희비의 심경이 실체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실하게 행동하고, 기쁨 속에 전도를 계속해 나가면 일관된 종으로써의 생애를 끝까지 마치는 것이 화해의 사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기적 동기를 가지고 이 일을 한다면, 이에대한 비난이나 오해가 닥쳐 오게되면 곧장 신앙을 버리고, 일하는 것을 멈추고, 그 곳에서 도망치게 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어떠한 상황에도 「자신을 하나님의 종으로 추천하노라」 라고 단언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예수님으로 인해 정말로 온유한 사람이었으므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고 단언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크리스챤이 물려받을 지상의 모든 것을 물려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인해 하늘을 이어받는 것만 아니라, 새롭게 창조된 세계도 이어받게 됩니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로마서8:17)

 

맺음) 온유한 자가 되기위해 자신을 온유한 자로 만드려 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간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라디아서5:22-23)라고 나와있는 것처럼 성령에게 기도로 구하여 온유한 자로 만들어져가는 것이 길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난한 마음을 가지고, 겸손하게, 슬픈 마음, 즉,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고 회개하는 사람, 이러한 사람은 성령의 일하심으로 온유의 열매를 맺게됩니다. 반대로 성령의 일하심을 거부한다든지 성령을 슬퍼하게 하는 경우에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온유하게 되지 못하는 생애를 걷게 됩니다. 이것은 마음이 강팍하게 때문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겸손하게 기도로 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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